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니토리 고이치 지음, 이소담 옮김/은행나무 |
제목 그대로 아사쿠사 변두리의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의 주인 구리타 진과 수수께끼의 미녀 아오이가 소소한 수수께끼와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의 일상계 중단편집. 모두 3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일하게 화과자점을 주제로 한 일상계 작품은 이전에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화과자의 안>>이 그것이죠. 두 작품을 비교해보자면 이 작품은 <<화과자의 안>>에 비해 추리적 요소는 덜하고 로맨스, 인간드라마가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로맨틱 일상계라는 점에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히트에 편승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솔직히 이러한 선입견 탓에 그동안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류인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는 명약관화한 지뢰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추석 맞이로 가볍게 집어들고 읽어 본 결과로는 의외로 만족입니다.
우선 단점은 명확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추억의 시간을...>>과 마찬가지로 추리적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것으로, 과연 이 작품을 일상계 추리물로 부를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요리"와 "음식"이라는 분야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3편의 에피소드 모두 "음식의 맛"이 가장 중요한 소재거든요. 첫번째 이야기에서 '과거의 맛이 현재에 재현되지 못한 이유'가 대표적이죠. 다른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화과자를 싫어하는 친구에게 화과자를 좋아하게 만드는 비결, 와산본이 무엇인지 등 "화과자"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덕분에 음식, 요리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면 즐길거리가 제법 많은 편입니다.
또 첫번째 이야기 <<마메다이후쿠>> 만큼은 부족하더라도 분명한 일상계 추리물이기도 합니다. 브라질로 출국한 후 20년만에 구리마루당을 찾은 다나베의 말 실수를 토대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는 전개는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죠. 이에 더해 "곶감 맛 자체는 담백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서 수상함을 느낀 이유가 "주인공이 화과자 전문가"였다는 점에서 작품의 특징과 잘 어울리고요. 하기사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맛의 비결이나 레시피를 찾는 이야기 역시 넓게 보면 추리의 영역이기도 하겠죠.
아울러 만화적이기는 해도 캐릭터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구리마루당 3대인 구리타 진이 괜찮았어요. 화과자 가게를 잇기 위해 어렸을 때 부터 수련을 쌓았지만 반항기에 한창 엇나가다가 부모님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가게를 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이력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에 위화감없이 녹아듭니다. 어린 시절의 수련과 재능으로 실력은 나름 확실하나 그에 걸맞는 연륜과 경험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맛의 달인>> 지로와 약간 비슷하기도 하네요.
컴비로 등장하는 화과자에 정통한 정체불명의 미녀 아오이 역시 설정만큼은 완전 스테레오 타입이나 지독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면에 관심 분야에 대한 초인적인 호기심이 부각되어 나름의 매력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 풍경 속 잔잔한 드라마라는 측면에서는 볼만합니다. 읽으시기 전,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록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마메다이후쿠>>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에 손님이 찾아온다. 다나베라는 손님은 20년 전 구리마루당에 신세를 졌던 인물로 그 당시 먹었었던 마메다이후쿠를 주문한다. 그러나 20년 전과 맛이 다르다는 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주인 구리타 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인 카페 마스터가 소개해 준 아오이라는 수수께끼의 미녀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요리만화에 흔히 나옴직한 "추억의 맛을 찾아드립니다." 스타일의 이야기. 첫번째 에피소드답게 구리타 진과 그 주변 인물 관계가 상세하게 설명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3편의 이야기 중 거의 유일한 추리물로 "왜 마메다이후쿠의 맛이 다른지?"왜 대한 설명 (시부키리가 너무 많았다) 이라던가,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다나베의 "곶감"에 대한 말실수를 "곶감"의 정의를 통해 밝혀 진상을 드러내는 전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망해가는 구리마루당을 살리려는 소꼽친구 유카의 작전이라는 동기도 그럴듯했고요.
다나베가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의 맛과 지금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로 절대 미각의 소유자라는 것은 영 설득력이 없다는 점, 구리타 진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무능한 장인인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점 등은 약점이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치고는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라야키>>
"이러쿵저러쿵해도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거니까요. 실제 체험에는 절대 못 이겨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지고...... 그렇게 실제로 경험하면 이미지는 간단히 바뀌죠. 말하자면 이미지란 불완전한 정보, 즉 선입견이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구리타의 라이벌인 아사바가 대학 축제에 구리타를 초대한다. 구리타는 축제에서 아사바가 만든 "베이비 카스텔라"의 맛을 인정하나 아사바는 화과자를 싫어한다는 말로 구리타를 자극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오이는 아사바에게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겠다고 약속하는데...
드라마는 별게 없지만 카스테라, 다이나곤 팥과 같은 기본 재료에 대한 설명은 물론, 1등 상품인 팥을 구하기 위해 "화과자 퀴즈 대회"에 나가 각종 화과자 관련 상식을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또 카스테라는 좋아하는 아사바에게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기 위해 카스테라 반죽에 팥소를 더하여 도라야키를 만들어주는 결말은 깔끔하며 설득력 높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결!" 된다는 <<맛의 달인>> 류의 작품에서는 억지스러운 전개가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이 작품 정도면 잘 마무리 된게 아닌가 싶네요. 이게 맛이 없을리가 없을 뿐더러, 맛이라는 것은 작중 아오이의 말 그대로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때문에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더라도 별점은 3점. 화과자 관련 이야기로는 최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히가시>>
"화과자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고안할 방법은 딱 한 가지. 입으로 말해서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먹여서 알게 해주자고요!"
어린 시절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던 동네 누나 고하루를 오랫만에 만난 구리타는 고하루의 집을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닥에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엿보기를 당한 날짜를 토대로 범인이 고하루와 거의 의절상태인 친아버지 기라라는 것을 알게 된 구리타는 그를 찾아가 설득하려 하지만 실패하는데....
3편 중 가장 처지는 이야기. 이야기부터가 별게 없어요. 우선 엿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가 남긴 과자 부스러기보다 잠복해서 잡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죠.
게다가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고 모든 갈등이 눈독듯 사라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어처구니 없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전개였어요. <<도라야키>>에서처럼 설득력있게 넘어가면 모를까, 갈등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과자를 맛보고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북경오리나 프랑스 요리를 먹어도 되는게 아니었을까요?
구리타 진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넘쳐나는 마무리는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