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
마술쇼를 위해 준비한 인형의 목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 뒤, 아야노코지 가문의 딸 유리코가 무대 장치 길로틴으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마술 협회 회원들이 모인 별장 지수장 근처 철길에서 마네킹이 열차에 치인 뒤, 둘째딸 요시코마저 열차에 치어 죽자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가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섰다.
다카기 아키미쓰의 대표작 중 한 편입니다.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지요. "주간문춘 동서 미스터리 100"에도 실려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채로운 트릭들입니다. 무려 4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모든 사건들에 나름의 트릭이 구사되고 있거든요. 특히나 두 번째 사건의 트릭이 좋아요. 제목인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와 부합되는, 그야말로 상식을 깨는 멋진 알리바이 트릭이었습니다. 간단한 소실 트릭이나 현실적이고 "마술"을 테마로 한 작품에 어울리는 첫 번째 트릭, 사건 전체 음모의 핵심이자 배경이 되는 바꿔치기 트릭인 네 번째 사건 트릭도 괜찮았고요.
퍼즐 미스터리의 자존심? 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에의 도전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완벽한 정통 본격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트릭적인 부분 이외의 부분은 모두 실망스럽습니다.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볼 때 이야기 수준이 너무 낮은 탓입니다. 우선, 일단 일본 굴지의 명탐정이라는 가미즈 교스케가 너무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나마의 추리도 스기우라와 나카타니 죠지가 전한 자료와 단서에 근거하고 있고요. 이 둘보다도 추리력이 떨어진다는 뜻이잖아요? 결국 결말도 죽을 사람들은 다 죽고나서야 범인을 밝혀낸다는 것이니 이래서야 왜 명탐정인지 알 수가 없네요.
작위적인 전개와 설정도 짜증을 유발합니다. 예를 들어 스기우라가 진상에 대해 남긴 글입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암호같은 문구로 남긴건 추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작위적 설정에 불과합니다. 앞서 장점에서 이야기했던 기차 트릭은 분명 걸작이지만, 범행이 실패했다면 결국 요시코와 미즈타니가 결혼하여 아야노코지 가문의 재산을 얻을 기회는 영원히 없었으리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작위적이었고요. 그 외에도 첫 사건에서의 마술 트릭 후 유리코가 보험에 가입한 이유, 나카타니 죠지의 정체가 무엇이며 무슨 꿍꿍이였는지, 요시코가 준비했다는 덫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사와무라가 진상을 눈치챘으나 왜 아무런 말도 안하고 혼자 겁에 질려있다가 살해당하는지 등 설명되지 않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마술이라는 소재도 도입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올드 블랙 매직 어쩌구라는 악마 미사까지 등장시키면서 마법의 영역으로까지 분위기를 몰고가는 것은 지나쳤습니다. 딕슨 카의 고딕 호러 스타일 추리물의 아류작이라는 느낌만 전해 줄 뿐이었습니다. 변격물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낡은 스타일의 문체는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감안하면 어쩔수 없었더라도, 지금 읽기에는 촌스러웠고요.
뒷부분에 실려있는 두편의 단편 "무고한 죄인"과 "뱀의 원"도 국내 초역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두 작품 모두 가미즈 교스케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과 동기나 전개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뱀의 원"에서 서로의 꼬리를 물고 맞물려 있는 두마리 뱀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괜찮았지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수준 이상이지만,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인형을 이용한 트릭을 먼저 떠올리고 억지로 장편으로 끼워 맞춘 듯한 작품이었어요. 고전 추리 애호가분들께는 출간 자체가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지금 출간되기에는 너무 늦은 듯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띠지에서부터 일본 3대 명탐정 어쩌구하고 광고를 하는데 이런 리스트는 대체 누가 뽑는지 모르겠네요. 맥락도 없고 기준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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