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시스터 - |
필립 말로는 캔자스시티 출신의 소녀 오파메이 퀘스트로부터 소식이 두절된 자기 오빠 오린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하루 경비는 20달러. 호기심과 동정심에 사건을 맡은말로는 오빠가 살고 있었다는 베이시티의 하숙집을 찾아가지만 하숙집에는 까닭모를 범죄의 냄새가 가득하고 하숙집 관리인조차 얼음송곳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돌아온 말로에게 중요한 물건을 맡아달라는 의뢰 전화가 걸려오고 호텔로 찾아간 말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의뢰인의 시체였다. 그는 베이시티 하숙집의 오린의 방에서 보았던 인물이었고 말로는 순간의 기지를 발휘하여 시체에서 "물건"을 입수하는데 성공한다.
입수한 전표에서 얻은 사진으로 사진에 찍힌 인물이 경찰이 추적하고 있는 거물갱 위피 모이어라는 사실, 그리고 그의 범행을 증명하는 유일한 단서라는 것을 알게된 말로는 사진에 같이 찍혀있던 위피의 애인인 헐리우드 여배우 메이비스 웰드에게 수사를 집중함으로써 점차 갱단과 연예계에 걸친 커넥션에 서서히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6번째로 읽은 필립 말로 시리즈 장편입니다. 작가가 헐리우드의 각본가 생활 이후 내 놓은 후기작이죠. 헐리우드 경험때문인지 연예계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한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띕니다. 챈들러라는 작가가 느낀 헐리우드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주로 경멸과 혐오겠지만요)이 잘 투영된 어떻게 보면 자전적인 소설이랄까요?
당시 미국의 꼬여버린 가족사나 인간의 잔인성을 표현하는 것은 루 아처를, 헐리우드를 무대로 하여 갱들과 경찰들을 묘사한 부분은 제임스 옐로이를 닮았지만 챈들러는 역시 이 바닥의 왕고참답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품의 레벨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파메이 퀘스트를 비롯해서 헐리우드 여배우인 메이비스 웰드와 곤잘레스 양이라는 여성을 3명이나 등장시키고 각자에게 확실한 역할을 줌으로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점이 이전과는 좀 다르더군요. 무엇보다 작가의 애증이 교차하는 중요 인물인 헐리우드 스타 여배우 메이비스가 그나마 가장 괜찮고 믿을만한, 실제로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여인이었으며 가장 범죄와 거리가 멀어보이던 소녀 오파메이 퀘스트가 사악한 존재였다는 반전은 놀라왔어요. 마지막에 말로의 독설과 시니컬한 유머를 뒤섞어 사건을 정리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상당히 부실합니다. 일단 오파메이 퀘스트가 사건을 의뢰하는 이유조차 타당성이 약해요. 또한 가장 중요한 단서인 사진에 찍힌 인물이 위피 모이어라는 것에 대해서 그 어떠한 정황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고요. 또한 각 살인사건 (총 4건이나 발생하죠)의 범인들이 각각 누구인지조차 한번 읽었을때는 명확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고 있지 못합니다. 등장인물도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우연과 추정으로 얽힌 관계들이 많아서 이야기만 복잡해진 느낌이에요. 단적인 예로 대체 라가르디 박사라는 인물은 왜 나오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무엇보다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우연으로 이루어지고 말로는 "사건을 부르는" 역할만 담당할 뿐 변변한 활약 자체를 보여주지도 못하는 점이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흡사 코난의 모리탐정 같아요. 사건만 맡으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점이...
결론내리자면 챈들러의 장편은 이제 거의 다 접해보았으나 이 작품은 솔직히 그간의 시리즈중에서는 최악이었습니다. 내용면으로나 추리적으로나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거든요. 말로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한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나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번역되어 나온 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겠지만...
PS 1: 책 뒷부분의 해설이 참 마음에 듭니다. 책의 소제에 걸맞게 헐리우드에서의 챈들러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상세한 설명이 무척 좋더군요.
PS 2 : 해설에서 다루는 이 책의 게임판이라는 "Private Eye"라는 게임은 국내에도 한글화 되어 정식 발매된 적이 있어서 그 당시 해봤었는데 그 당시 감상 역시 "무슨 내용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였죠. 소설을 읽고 나니 한번 더 구해서 해보고 싶어지기는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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