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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7

방황하는 칼날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방황하는 칼날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하빌리스
<<아래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번 생긴 ‘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령 가해자가 갱생하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악’은 피해자들 속에 남아, 영원히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나가미네가 아내와 사별 후 홀로 키워왔던 딸 에마가 강간 살해당했다. 좌절한 나가미네에게 범인이 도모자키와 스가노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메시지 속 주소로 도모자키의 집에 잠입한 나가미네는 에마가 강간당하는 동영상을 확인하고 분노에 휩싸여 도모자키를 잔혹하게 죽였다. 그리고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스가노가 있다는 나가노 현으로 향했다. 도모자키 살해범이 나가미네라는걸 알아낸 경찰 역시 그의 뒤를 쫓는데....

우연찮게 제 구글 홈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 소갯글이 떳길래 잠깐 찾아보았다가 급 호기심이 생겨 구독 중인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무섭다 알고리즘!

작품은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도 가벼운 형을 선고받는게 과연 옳은지를 비판하는 사회파 범죄 소설입니다. 미성년자 범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극도로 흉악하게 설정한 덕분에 읽는 내내 나가미네에게 감정이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딸이 강간 살해당했다면 어떤 아버지가 가만 있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 상황의 동영상까지 보았다면 피가 꺼꾸로 솟는다 정도의 말로는 부족한 분노에 휩싸이는게 당연합니다. 때문에 범인들 - 특히 도주한 스가노 - 이 나가미네에게 합당한 응징을 받기 원하며 응원하면서 읽었습니다. 
미성년자 범죄에 대해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네요. 요새처럼 아이들 성장이 빠른 시기에 오래전 잣대를 기준으로 판단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저는 중학생부터는 성인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관용 원칙으로요. 하긴 그래봤자 술을 먹어서 심신 미약이었다던가, 초범이라던가, 깊이 뉘우치고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빠져나올 놈들은 다 빠져나오는게 현실이라는게 더 씁쓸하기는 합니다만.
최근 언론에 언급되는 여러 학부모들의 민원(?)과 같이, 미성년자 범죄자들의 부모들의 눈 뜨고 못 볼 작태들도 잘 묘사됩니다. 이런걸 보면 미성년자 범죄는 그 부모도 함께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역시 무관용 원칙으로요.

하지만 나가미네가 결국 응징에 실패하고 경찰에게 사살당한다는 결말은 씁쓸했습니다. 이 마지막 장면, 그리고 경찰 수사 과정과 경찰들의 생각을 통해 경찰의 자괴감 -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어떤 보복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나?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 ‘악’을 벨 힘을 가지고 있나? - 을 잘 드러내기는 하나 독자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어요.
특히 경찰 히사쓰카 반장이 나가미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는 반전은 최악이었습니다. 자수를 결심했던 나가미네가 사살당한건 히사쓰카 반장이 준 정보 탓입니다. 이렇게 애매한 정보만 전달하고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하기 보다는 직접 수사를 뛰는 마노, 오리베와 같은 부하들을 설득해서 더 적극적으로 나가미네를 도와주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어요. 과거 유사 범행의 수사를 맡았던 경험 때문이었다는 동기도 별로 와 닿지 않고요. 
정보를 나가미네의 핸드폰으로 보내는 것도 당황스러웠어요. 잠깐이라도 핸드폰을 켜서 메시지를 확인하면 현재 위치가 바로 추적되지 않나요? 경찰이 이 정도 수사도 하지 않는다는건 솔직히 억지스러웠습니다.

짜임새도 헐겁습니다. 중간에 매스컴이 단순히 화제와 시청률을 위해 보도를 벌이는 장면은 그냥 뻔한 이야기를 답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펜션 여주인 와카코가 나가미네에게 협력자가 된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나가미네에게 협력자가 필요했던 상황도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은신처를 제공받으며 스가노 추적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그녀 없이도 이야기를 풀어갈 방법은 많았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없으면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스가노가 폐업한 펜션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걸 깨닫는게 훨씬 자연스러웠을거에요.
그리 기대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추리적인 요소도 거의 없습니다. 나가노에 있던 나가미네가 범인 스가노에게 안도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아이치에서 편지를 보냈다는 정도만 약간 머리를 쓸만 했을 뿐입니다.

한국 영화 소개를 보니 제가 언급한 단점들을 인지했는지 보다 명확하게 이야기를 정리한 듯 하더군요. 펜션 여주인 와카코의 존재를 지우고, 직접 수사에 뛰어든 형사가 정보 제공도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결국 나가미네가 사살당하는건 변함이 없던데, 자수해서 집행유예를 받은 뒤, 스가노를 끝없이 추적한다는 결말은 어땠을까 싶네요. 다른 피해자 가족들과 연대해서요. 스가노 같은 녀석 때문에 인생을 망칠 이유는 없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몇 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 법이고요. 살아서 스가노와 그 일당, 가족들에게 영원한 지옥을 선사하는게 복수로서 더 의미가 있었을겁니다. 지금의 죽음은 그냥 개죽음이니까요.

하여튼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몰입해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완성도와 결말 부분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덧붙이자면, 범죄자 가족이라고 모두 고통받아야 하는지? 에 대해서 히가시노 게이고 자신이 <<편지>>를 통해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범죄의 종류와 범죄자 상황을 다 고려해서 선별적으로 비난하기는 불가능하니, 참 어려운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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