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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

방과 후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3점

 

방과 후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이카 여고 수학교사인 '나' 마에시마는 누군가로부터 생명을 위협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유와 범인을 알지 못해 답답해 하던 중, 특별 활동인 양궁부 지도를 마친 뒤, 남자 탈의실에서 학생 지도부 부장 무라하시 선생이 살해된걸 발견한다. 발견은 양궁부 주장 게이코와 함께였다.
남자 탈의실은 밀실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불량학생 다카하라 요코가 용의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학교 제일의 수재 호죠 마사미가 친구 요코를 위해 밀실 수수께끼를 풀어내었고, 다행히 알리바이가 증명된다.
그 뒤 학교 문화제에서 마에시마로 오인된 다카이 선생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독살당하고, 마에시마도 차량 공격으로 죽기 일보 직전에서 겨우 탈출하는데...


우리나라 기준으로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기념할만한 데뷰작. '제 31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데다가 '일본 본격 미스터리 100'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에서도 높은 순위로 랭크되어 있어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수작입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본격 추리물치고도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인 밀실 트릭은 무려 2개나 등장하고, 우연히 대신 죽은걸로 보였던 다케이 선생이 사실은 진짜 목표였으며 마에시마를 노린 범행은 다케이 선생이 진짜 목표라는걸 가리기 위한 연막이었다는 것, 차량을 이용해서 생명을 위협하고 마지막에 칼로 찔렀던 범행은 아내 유미코가 불륜남과 벌인, 진짜로 마에시마를 노린 범행이었다는 것 등 추리적으로 볼거리가 아주 많거든요. 데뷰작이라 아이디어가 넘쳤던게 아닌가 싶네요.

특히 범행 장소인 남자 탈의실 문에 빗장이 가로질러 있었는데, 범인이 어떻게 빠져나갔는지?에 대한 밀실 트릭은 공들여 만든 티가 물씬 납니다. 여자 탈의실에 출입했던 호리 선생님이 자믈쇠에 열쇠를 꽂은 채 들어가는 버릇을 이용하여, 자물쇠 자체를 통째로 바꿨다는 첫번째 트릭부터 굉장히 설득력있고 좋은 트릭이었거든요. 특별한 버릇을 이용하고 있다는 약점은 있지만, 아주 그럴듯했습니다.
좁은 창문으로 볼 때 문을 막고 있어 보였던 빗장은 위장이고, 사실은 양궁 화살로 문을 막고 있었다는 두 번째 트릭도 첫 번째보다는 별로이고 번거롭기는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어요. 처음에 문을 부술 때 빗장이 먼저 떨어졌을텐데, 떨어지는 소리는 어떻게 막았을지와 같은 사소한 의문은 들어도, 비현실적이지는 않았으니까요. 무엇보다도 화살은 막 양궁 훈련을 마친 뒤라 화살통에 자연스럽게 넣을 수 있었다는 디테일만큼은 아주 좋았습니다.
이외에도 디테일이 돋보이는 부분은 많았습니다. 무라하시 선생 주머니에 콘돔이 들어있던 이유라던가, 아소 선생이 경찰에 협력한 이유들도 작 중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있거든요.

그러나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범행 동기가 애매해 보였어요. 학생 미야사카 에미가 합숙 훈련 중 자위하는 모습을 무라하시, 다케이 선생님에게 들킨게 동기라는데, 과연 살의를 품을 일인지 좀 아리송하거든요. 남학생에게 들켜 협박을 받거나, 소문이 났거나 했더라면 나름 설득력이 있었을텐데, 두 명의 교사는 그래도 비밀을 지키고 함구했던걸로 보이는데 말이지요. 설령 에미는 수치심에 살의를 품었다 치더라도, 친구 게이코까지 직접 공범으로 나서서 살인을 저지를 타당한 이유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바꿔치기된 다케이 선생이 사실은 진짜 타겟이었다는 아이디어는 좋은데. 바꿔치기에 마에시마가 동의하지 않았서 그대로 피에로 역할을 했다면 어쩔 셈이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 외에 마에시마를 노리는 걸로 보였던 공격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마에시마는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았던걸까요? 이 점 때문에 두 소녀가 선생들에게 품은 살의는 진정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무고한 희생자가 생겨도 복수가 중요하다면, 그건 그냥 살인귀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아울러 술 취한 피에로 연기를 한다고 소품인 술병 속 물을 마신다는 보장도 없지요. 저라면 절대 마시지 않았을 겁니다.

아내 유미코와 사이가 벌어진걸 드러내다가, 마지막 마에시마를 칼로 찌르는 범행을 유미코와 불륜남이 저질렀다는 결말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앞서 아이와 유산 문제, 그리고 마에시마를 유혹하는 여학생들에 대한 묘사로 부부는 이미 거리가 멀어졌다는걸 독자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외성이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또 경찰이 왜 이 때는 마에시마를 경호(?)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고요. 어차피 범행도 어설퍼서 경찰 수사로 진범은 쉽게 드러날 수 있어 보였습니다. 마에시마도 그걸 직감했기에, 이대로 죽어서 유미코를 살인범으로 만들면 안된다고 발버둥쳤을테지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청춘 학원 본격 추리물로는 나무랄데 없는 수작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국내 번역본 표지는 스포일러네요. 범인과 핵심 트릭에 사용된 도구(?)를 드러내는 그림이거든요. 읽어봐야 알 수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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