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모모 |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짓 소문을 퍼트려 - WOM (Word of Mouth), 입소문 - 경쟁사의 매출을 떨어트리고, 특정 제품의 판매를 신장시켜온 '컴사이트'의 대표 쓰에무라는 '뮈리엘'이라는 향수 브랜드를 위해 죽인 여자의 발을 가져가는 살인마 레인맨은 뮈리엘 로즈 향수를 뿌린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런데 실제로 고등학생 등 젊은 여성들이 살해당하고 발목이 사라진채 유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내를 잃은 뒤 고등학생 딸을 키우는 형사 고구레는 사건 수사에 투입되어 나이어린 신참 여성 경부보 나지마와 한 조가 되어 피해자들이 컴사이트에서 주도해서 레인맨 소문을 퍼트렸던 뮈리엘 향수 아르바이트를 했다는걸 알아냈다. 그리고 쓰에무라의 오른팔인 아소를 체포했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결정적 단서는 컴사이트 압수 수색에서 발견된 '카드 브레인스토밍' 자료였다.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레인맨 설정을 이야기한 사람이 있었으며, 그는 광고회사 직원 니시자키라는게 밝혀지는데....
오기와라 히로시의 장편. 2000년대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었던 작품입니다. 수년전 재간되었네요. '일본 미스터리 역사상 최고의 반전' 운운하는 띠지에 혹해 읽게 되었습니다.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 타율도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고요.
경찰과 일종의 게임을 벌이는 엽기 변태 연쇄 살인마와 형사의 대결이라는 설정의 작품은 많습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 범죄 스릴러와는 다른 점은 경찰 수사가 정말 '발로 뛴다'는 겁니다. 어딘가의 천재가 활약하는게 아니라요. 고구레가 딸 뻘인 여자 아이들과 어울려 단서를 모으고, 나지마가 지인들을 동원하여 '레인맨' 소문이 퍼진 경로와 위치, 날짜를 수집하여 도식화하는 등의 과정은 굉장히 실감났습니다. 고구레의 말 그대로, '과수원에 벌레 먹은 사과가 있다면, 해야 할 일은 나무에 매달린 사과 가운데 벌레 먹은 사과를 찾는 일이 아니라 땅바닥에 엎드려 사과를 골라내는 일'인 것이지요. 덕분에 소문을 낸 원흉이 컴사이트의 쓰에무라라는게 밝혀지는 과정도 설득력이 충분했고요.
고구레와 나지마가 마지막에 발견된 피해자 발에 칠해진 패디큐어를 보고 펼치는 추리도 좋았습니다. 고구레는 범인이 왼손잡이라고, 나지마는 발톱에 범인 지문이 남아있을거라고 추리하는데 설명이 아주 그럴듯했거든요. 패디큐어 색깔이 다른건 범인이 색맹이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수사 관계자가 모인 수사본부에서 마지막 스커츠 차림으로 발을 들어 올려 설명하는 장면도 극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짜임새도 발군입니다. 범인 니시자키가 왼손잡이라는걸 앞서부터 설명한다던가, 세 번째 발견된 피해자 미사키 야스요가 니시자키와 함께 살던 '사키'였고, 그녀가 이미 죽었음을 치밀하게 복선으로 깔아둔 전개 - 예를 들어 '냉장고에서 악취가 났다. 사키가 또 음식물을 썩힌 것이다' 등 - 에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청 캐리어와 출세는 포기한 관할서 형사라는 캐릭터, 두뇌와 실무로 나누어진 캐릭터 구도도 흔해 빠졌지만, 본청의 경부보인 나지마가 더 나이가 어린 여성이라는 점과 둘 다 남편, 아내를 잃은 편모, 편부 가정이라는 등의 세세한 설정을 덧붙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줍니다. 상당히 디테일하게 짜여져 있어서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본청 캐리어와 출세는 포기한 관할서 형사라는 캐릭터, 두뇌와 실무로 나누어진 캐릭터 구도도 흔해 빠졌지만, 본청의 경부보인 나지마가 더 나이가 어린 여성이라는 점과 둘 다 남편, 아내를 잃은 편모, 편부 가정이라는 등의 세세한 설정을 덧붙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줍니다. 상당히 디테일하게 짜여져 있어서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사건 이면에 존재하는 WOM 이론도 흥미로왔습니다. 한 명이 WOM으로 정보를 전파하는 평균치는 일주일에 대략 2.5명, 대략 한 달 만에 10만명 가까운 사람에게 퍼진다는 데이터는 놀라왔고요. 실제로 쓰에무라처럼 괴소문을 퍼트려 매출을 떨어트리는 행위는 암암리에 있어 왔기에, 남의 이야기같지 않았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이지만, 바로 옆 경쟁 점포를 음해하려고 했던 '밤식빵 쥐 혼입 조작 사건' 같은 것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죠.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떤 정보가 진실인지를 알아내는게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보았던 만화 <<로켓맨>>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하지만 카드 브레인스토밍 자료와 사체에서 발견된 지문으로 범인이 니시자키라는게 밝혀지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는 재미가 떨어집니다. 전개를 보면 니시자키는 딱히 의도적으로 범행을 숨기려거나 과시하려고 했던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체포되지 않은건 운이 좋아서 - 그리고 경찰이 멍청해서 - 였을 뿐입니다. 심지어 알 수 없는 이유로 고구레 앞에 나타나 직접 정보를 제공하기까지 했는데 말이지요. 즉, 이런 류의 작품에서 핵심인 '천재 범인과 경찰과의 두뇌 게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경찰의 수사만 있는 셈이에요.
물론 경찰과 게임을 펼치는 천재 범인이라는 만화적인 설정이 좋은건 아닙니다. 그러나 니시자키가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이유를 단지 정신이 이상한 변태라고 설명한건 아쉬웠습니다. 도화선이 된 '사키'의 존재도 억지스러웠고요. 변태 정신병자의 클리셰만 모아 놓아서 진부했는데, 그나마 클리셰의 재미 요소는 빼 먹은 셈입니다.
띠지에서 광고했던 반전도 그닥입니다. "마지막 4글자에 모든 것이 뒤바뀐다!"의 4글자는 '기나오싹'입니다. 고구레의 딸 나츠미가 만든 말이지요. 즉, 쓰에무라를 살해한건 나쓰미였다는 것이지요. 사회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약간의 사회파적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생각됩니다. 작 중 고구레가 피해자들 부모를 만나며 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 역시 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는건 말 그대로 기나오싹 - 기분 나쁘고 오싹하다 - 했거든요. 굉장히 자상한 아빠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건데, 세대 차이를 충격적으로 드러내는데는 적당했습니다. 나츠미가 잦은 외박을 한다던가, 머리 색깔이 바뀌었다는 등의 복선도 충실히 설명되고요.
그러나 이 반전은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궁금증만 더 키운다는 점에서 별로였어요. 평범한 여고생들이 어떻게 쓰에무라 집에 침입해서 살인을 저질렀고, 시체를 토막까지 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4글자라는걸 띠지에서 강조하는건 일종의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기나오싹이 작중에서 좀 비중있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띠지가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의 호토리가 미스터리를 읽는 방법을 따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답게 흡입력은 높습니다. 잘 짜여져 있기도 하고요. 반전 운운하는 마케팅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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