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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30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 도진기 : 별점 2점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 4점
도진기 지음/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룸살롱에서 일하던 정유미,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던 아래층 남자 이필호가 함께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정유미의 집에 침입한 이필호가 정유미를 찌른 뒤, 정유미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이필호를 살해한 것 처럼 보였지만 이유현 반장은 아파트 경비 조판걸을 기소했다. 조판걸이 고진의 도움으로 풀려난 후 고진은 진범이 따로 있을거라며 자기 추리를 들려주었다. 이유현 반장은 고진의 추리대로 정유미의 애인 김형빈에 대한 수사에 나섰지만 김형빈의 탄탄한 알리바이는 풀어낼 방법이 없었다....

전작에 이어 읽은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범인이 아랫층 이필호 집 베란다를 통해 이필호 집으로 들어간 뒤, 내부 계단으로 정유미 집에 들어가 정유미를 살해했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이필호가 죽기 전 했다는 말 - 정유미를 자기 것으로 하겠다 - 과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 등으로 설득력있게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고요. 윗층 남자가 들었던 '쨍그랑' 소리는 이필호의 열쇠를 베란다를 통해 던져 넣을 때 났던 소리라는 추리도 합리적이었습니다. 열쇠의 존재가 이필호 범인설을 무력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도 잘 짜여진 트릭이라 생각되네요.
무엇보다도 김형빈은 '노인 성애자'로 그 대상이 정유미의 가정부인 할머니 황금순이었으며, 질투에 눈이 먼 황금순이 정유미를 살해했다는 진상과 반전이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비현실적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김형빈의 이상한 성적 취향은 정유미의 룸살롱 동료들 증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도록 전개됩니다. 김형빈 모친 집에 강도가 침입했던 사건도 황금순의 질투 - 모친을 또 다른 애인으로 오해 - 를 설명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요.

그러나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아쉬움을 많이 남깁니다. 우선 이유현 반장이 아무리 보아도 타당한 이필호 범인설을 놔두고 왜 제 3자 범인설을 포기하지 않는지부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형사들의 대화로 어떻게든 수사의 당위성을 펼쳐보려 하지만, 이필호가 범인이라는 심증만 굳게 만듭니다. 근거라는게 예를 들면 피해자가 죽기전 "강도!"라고 외쳤기 때문이라는데, 복면을 하고 침입했다면 누군지 모르는게 당연한거 아닙니까? 그 외의 주장들 역시 일고의 가치가 없습니다. 이보다는 이필호가 범인이겠지만 뭔지 모를 찜찜함이 느껴졌던 이유현이 고진에게 의견을 물었고, 고진이 사건 이야기를 들은 뒤 이필호 집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다른 누군가가 상황을 조작했을 거라고 알려주는게 훨씬 바람직했습니다.
외부인이 범인이 아니라면 당연히 이필호가 범인일텐데, 경비원 조판걸을 범인으로 기소한다는 것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증거가 없다고 이유현 스스로도 인정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건 공권력을 가장한 폭력입니다. 고진의 몇 가지 주장에 반론도 하지 못하는 이유현의 모습은 한심과 무능 그 자체였고요.

이후 고진이 개입하여 김형빈이 범인일 수도 있다는 추리를 들려주면서부터는 더 기가 찹니다. 누가 봐도 김형빈이 가장 수상합니다. 정유미가 번 적지 않은 돈은 김형빈에게 흘러들어갔고, 김형빈은 현관 비밀 번호를 알고 있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유현의 수사를 통해 김형빈이 범인이 아니라는게 너무 빨리 밝혀져서 전개가 이상해집니다.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는 이유현의 무리한 수사와 김형빈의 반론으로 이유현이 망신당하는 과정이 반복될 뿐이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신인 작가라는 티가 물씬 나더군요.

"조판걸", "황금순"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이름들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아래 <<아오이 호노오>>에서처럼 이름만 가지고도 캐릭터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해야 했습니다.

"굉장해! 이름만 읽어도 이미지가 떠오른다! 네이밍 능력이 장난아니야! 
이것이 일류 원작자의 힘이다!!"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많은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다소 변태적이면서 엽기적인 동기가 엮여 있다는 점에서는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와 같은 일본 변격물 느낌도 전해주는데, 이런 작품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테고요. 그러나 전개면에서는 미숙한 티가 많이 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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