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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1

고양이 발 살인사건 - 코니 윌리스 / 신해경 : 별점 3점

고양이 발 살인사건 - 6점
코니 윌리스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SF 쪽에서는 명성이 높은 코니 윌리스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쓴 작품들을 모아놓은 중단편집.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데 아주 재미있더군요! 깜짝 놀랐고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을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도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수록작 대부분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갖춘 데다가, 밝고 따뜻하면서 유머러스해서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으로, 저도 크리스마스 관련된 이야기를 몇 번 써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이거 참... 수준 차이가 엄청나네요.

정통 SF라기 보다는 약간의 SF 설정이 가미된 작품들로 구태여 장르를 구분하자면 일상 - 홈 드라마이자 사회 비판물인 <<말하라, 유령>>, 본격 추리물 <<고양이 발 살인사건>>, 로맨틱 코미디 첩보물 <<절찬 상영중>>, 로맨틱 코미디 SF <<소식지>>, 로드무비 <<동방박사들의 여정>>, 일상 드라마인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 기본 이상은 해 주는 작품들입니다.
대부분 친숙한 작품들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익숙한 클리셰, 설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장르문학, 컨텐츠 애호가로서 반가왔던 점이에요. 그만큼 볼거리가 아주 풍성합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3점. 하지만 아래 상세 리뷰에서 처럼 별점 5점짜리! 작품도 수록되어 있는 만큼, 장르문학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아울러 리뷰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은 참고 부탁드립니다.

<<말하라, 유령>>
이혼남으로 책이 유일한 취미인 서점 직원 그레이는 크리스마스에 딸 젬마와 보낼 시간이 유일한 낙이다. 구러나 서점의 사인회와 전처 때문에 딸을 만나지 못하게 되고, 그는 서점 직원으로 임시 채용된 크리스마스의 유령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딸 아이를 위해 열심히 해 보려고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꾸만 엇나가는 그레이와 사람을 개과천선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유령들에 대한 이야기.

약간의 판타지 설정으로 흥미를 자아내며 묘사도 일품입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때 바쁜 백화점 서점에 대한 무시무시한 묘사가 압권이에요. 이래서야 정말 빠져나가기 힘들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으니까요. 크리스마스 캐럴 을 비롯해 딸 젬마가 좋아하는 소공녀, 그 외에도 디킨스와 월터 스콧의 작품이 많이 인용되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완벽한 크리스마스 해피 엔딩은 아니라 의외였습니다. 마지막에 유령들이 뭔가의 슈퍼 파워로 딸 젬마를 그레이에게 데려다 줄 줄 알았는데 그냥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끝나버리거든요. 결국 돈이 최고이고 (작 중 표현대로라면 유일한 것) 유령들은 힘도 없고, 크리스마스에 기적 따위는 없다는 결말로 서늘하고 냉소적인 사회 비판 소설에 가깝습니다. 이게 현실적이긴 합니다만 씁쓸하네요. 디즈니 작품과 비슷한 가족 판타지로 위장된 탓에 이런 갭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 않을까 싶군요. 저는 다소 불호입니다. 딸아이 아빠로서 젬마는 최소한 행복해졌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고양이 발 살인사건>>
세계 최고의 탐정 투페는 크리스마스에 친구 브리들링스 대령과 함께 마웨이트 장원으로 향한다. 그곳은 사건을 의뢰한 샬롯 발라디 부인이 영장류를 연구하는 인공지능 연구소로 람의 말이 가능한 고릴라 달타냥, 추리소설도 좋아하는 똑똑한 침팬치 하이디가 하인으로 일하는 등 연구 실적이 빼어난 곳이었다. 그러나 함께 사는 그녀의 동생 제임스는 영장류를 증오하여 자신이 유산 상속을 받으면 모두 쫓아낸다고 공언한 상태. 다행히 그들의 아버지인 억만장자 알리스테어 경은 치매로 난폭한 바보가 되었지만, 앞으로 수년은 더 살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다.

투페 컴비는 다른 손님들, 기자인 루트거스와 폭스양, 지역 경찰 유스티스 경사, 알리스테어 경의 간화사 파치트리 양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이 와중에 의뢰하는 수수께끼가 단지 영장류의 존재에 대한 질문임을 알게 된 투페는 당장 떠날 준비를 하나, 알리스테어 경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모든 정황은 고릴라 달타냥의 범행임을 암시하는데....

포와로와 헤이스팅스 컴비를 빼닮은 탐정 컴비가 전형적인 영국 장원을 무대로 한 알종의 클로즈드 써클 미스테리에 도전하는 작품입니다.
일단, 고전 본격물에 대한 높은 이해가 돋보여요. 탐정 컴비의 묘사는 물론 장원에 머무는 사람들 모두가 모두가 동기가 있어 보이고, 수상쩍은 등 여사님 작품에서 보았었던 그런 느낌으로 묘사되거든요. 패러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전 캐릭터를 쏙 빼 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조금은 전형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 역시 고전 본격물 그대로고요. 무엇보다도 추리에 있어서 영장류의 지능이 높다는 설정으로 독특함과 재미를 안겨다 주는 부분이 탁월했습니다. 이 설정이 단지 재미요소가 아니라 진짜 반전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으로, 영장류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그들이 알리스테어 경을 살해하고 제임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약간의 SF가 가미된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정통 본격물로 추리와 재미 모두 기본 이상은 해 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고전 본격물 팬이시라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실 거에요. 별점은 5점!입니다.

<<절찬 상영중>>
<<크리스마스 소동>> 이라는 고전 영화를 보기 위해 애쓰는 사라와 그녀가 그 영화룰 왜 못 보는지를 설명해주는 전 애인 잭의 이야기.

사라가 방문한 영화관 시네드롬은 온갖 영화 관련 오락거리가 가득차 있는 일종의 테마 파크인데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손님들이 밀어닥친 탓에 난리도 아닌 상황이 펼쳐지는 복잡한 상황 묘사가 대단하더군요.
사라가 영화를 보지 못한 이유도 아주 그럴듯합니다. 영화를 만든다고 사기친 다음 시네드롬에 돈 좀 쥐어줘서 아무도 못보는 환상의 상영관을 확보한 후 제작비를 쓴 것 처럼 꾸미는 제작사의 음모이기도 하며, 이는 백 개도 넘는 상영관을 모두 채우는 건 무리라 시네드롬에게도 필요한 사기라는 진상인데 생각도 못했네요.

이러한 내용을 소비자 사기국에서 근무하는 잭의 화려한, 영화를 방불케하는 첩보 작전처럼 전개하는게 아주 매력적인데 사라에게 사 준 티셔츠가 카메라 부착형이라는 아이디어 등 디테일도 볼거리이며, <<백만 달러의 사랑>>, <<아이 러브 트러블>>, <<위기의 암호명>> 등 비슷한 영화들의 장면 장면과 엮이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실제로 로맨틱 코미디 첩보극이라는 장르 공식에 굉장히 충실하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죠.
그 외 다수 영화들의 인용, 묘사도 볼거리였어요. 심지어 <<디워>>까지 등장하는데 이게 원작에도 등장하는 건지는 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망한 영화도 매니아가 따라붙고, 온갖 매체에서 흥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설정인지는 좀 의문입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잭이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부족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소설보다는 영상물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네요.

<<소식지>>
크리스마스를 앞 둔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착해진다. 이를 처음 눈치챈 건 주인공 "나"의 직장 동료이자 그녀가 흠모하는 이혼남 게리. 둘은 곧 착해진 사람들이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다른 악영향없이 착해지기만 한 탓에 이를 밝히고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착해진 사람들의 몸 관절이 이상해지는 부작용을 알아낸 주인공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생수를 박멸하고자 직장과 집의 온도를 올린다 (모자를 벗게). 다행히 기온이 올라 이 소동은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로 변주된 <<신체 강탈자의 습격 (바디 스내쳐)>> 입니다. 기생수의 부작용이 착해지는 거라니!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에요. 이변을 눈치채지만 착해지는 게 과연 무슨 문제인지?를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딜레마도 웃음을 자아내고요.

하지만 디테일이 좀 지나쳤습니다. 보다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텐데, 과유불급이랄까요? 제목이기도 한 가족들 간의 '소식지' 가 대표적인 예에요. 사람들의 이변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품이기는 하지만 구태여 등장시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지역별 편차가 있고 이유는 기온이다! 를 드러내려면 TV나 신문 등의 뉴스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등장인물들도 너무 많은데, 이 역시 주인공과 게리가 잘 되게 만드는 식으로 깔끔하고 단순하게 마무리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네요.

그래도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별점은 3.5점. 크리스마스에 걸맞는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여정>>
동방박사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온 이야기. 눈보라가 휘몰아쳐 도로가 통제되는 와중에서 자기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계시에 따라 예수를 찾아나선 목사 멜과 친구 BT, 그리고 여행 중 만난 여성 캐시 3인의 여정이 그려진 작품.

백인 목사, 흑인 과학자, 전직 영어교사인 여성 3인이라는 나름 완벽한 구성의 현대적 파티가 등장하는 일종의 로드 무비(?) 입니다.

그러나 여정에 대해 상세하게 그린다기 보다는 , 실제로 동방박사가 겪었음직한 고뇌 (이게 계시가 맞는지? 내가 미친건 아닌지? 와 같은) 가 더 비중있게 묘사됩니다. 그래서 드라마적 재미는 별로 없어요. 독백과 종교적 고뇌로 가득찬 작품이 애초에 재미있을 리가 없죠.
게다가 중간, 중간 계시와 유사한 카니발 조명과 예수일지도 모르는 카니발 운전사 등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그 정체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는 점도 답답했습니다.
차라리 알 수 없는 계시의 파편을 모아 그것을 토대로 여행의 목적지를 정하는, 일종의 추리 과정이라도 동반되었더라면 나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 비중이 너무 작아서 아쉬웠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결말이 모호하다는 점이에요. 결국 이 세 명이 카니발을 찾아가 예수(?)를 만나는지, 그들을 방해하는 헤롯왕의 수하들은 누구인지 등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마무리 되기 때문으로, 모험이 시작되자마자 이야기가 끝나는, <<반지의 제왕>> 1부와 같은 수준의 도입부일 뿐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이야기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완성된 이야기냐는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네요. 수록작 중 개인적으로는 최악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
책 뒤에 작가가 꼽은 크리스마스를 다룬 최고의 영화, 책, TV 시리즈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 중 최고는 <<러브 액츄얼리>>를 꼽고 있더군요.
이 작품은 작가가 나름대로 변주한 <<러브 액츄얼리>> 입니다. 가족 모임을 위해 오리를 구우려는 루크, 이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미구엘의 양육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파일러, 남편과 사별하고 멕시코로 여행온 베브, 아내 마진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는 워런, 크리스마스 이브 결혼식을 주장하는 친구 스테이시의 들러리로 여행 온 폴라,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대폭설을 연구하는 네이선 박사와 조수 진성 등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다양한 등장인물이 한 꼭지 씩 이야기를 선보이다가 마지막에 연결되는 결말인데 전개 방식이 똑같아요. 대부분 해피엔딩이며 감동적인 이야기와 적절한 코미디가 섞여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차이점이라면 이야기들 속 대 소동이 일어나는 원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 폭설" 이라는 SF적인 설정이라는 것이죠.

모두 재미있고 따뜻하며,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는 가정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도저히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어요! 거짓말을 하다가 파멸한 불륜남 워런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아주 속 시원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폭설의 원인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이 모여서 일어난 것이라는 어처구니없으면서도 크리스마스다운 발상이 아주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던, 반짝반짝한 작은 소품들이 모인 선물상자같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도 영화로 꼭 만나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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