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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역사를 바꾼 총 AK47 - 마쓰모토 진이치 / 이정환 : 별점 2점

역사를 바꾼 총 AK47 - 4점
마쓰모토 진이치 지음, 이정환 옮김/민음인

일본 르포라이터 마쓰모토 진이치의 르포입니다. 

책에 대해 전혀 모른 상태에서 AK 47의 등장과 주요 전장, 활약을 다룬 글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소말리아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정부가 기능하지 않는 무법 천지에서 총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고발하고 알려주는 르포이기 때문입니다.

시에라리온이나 소말리아와 같은 위험 지역의 현재 상황을 직접 발로 뛴 정보를 통해 알려준다는 점은 좋습니다. 세계의 위험지역을 누비며 취재하는, "용오"와 같은 일본 만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그런 르포라이터가 실재로 존재한다는게 조금 신기하기도 했고요.
 또 아직 살아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영국 작가 프레더릭 포사이스와 직접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이런저런 새로운 사실도 몇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전쟁의 개들"이 실제로 진행되었던 용병을 고용한 국가 전복 작전을 토대로 창작된 이야기로, 이 작전에 포사이스가 출자(?) 했다는 소문이 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역시, 진짜같은 픽션을 쓰려면 이 정도의 깊숙한 개입은 필요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AK 47의 신뢰성 높은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 AK 47에 대한 정보도 괜찮은 편이고요.

하지만 비참한 상황을 고발하는 인터뷰와 현지 취재를 제외하면, 결론은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 쉽게 요약됩니다. 실패한 국가는 경찰, 병사, 교사의 급료를 지불하지 않는 국가라는 것입니다. 경찰과 병사는 국민의 안전한 생활을 지키는, 최소한의 의무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교사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업의 핵심이기 때문이지요. 이래서야 누구나 아는 이야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너무 긴 분량을 할애한 셈입니다.
또 AK 47이 특유의 단순함, 신뢰성으로 이러한 무법 천지에서 사랑받는다는건 잘 알겠지만, 제목처럼 AK 47이 역사를 바꾸었다는건 어폐가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서는 AK 47이 아니라 M16이건, K-2이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이 정도라면 제목 사기라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그나마 "각료들 절반 이상이 자제를 유럽이나 미국의 학교에 보낸다거나 자신의 가족은 국외에서 생활하게 하고 있는 나라, 그런 나라 역시 실패한 국가"라는 멋진 말이 마지막에 등장해서 최악은 면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동의하는 바에요. 부득이한 이유 - 예를 들어 해당 국가에서 태어났다거나, 해당 국가 국민과 결혼 등으로 국적을 취득했다던가, 정말로 그 국가에서만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기 위해 유학을 갔다던가 등 - 을 제외한다면,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녀들은 모두 국내에서 거주하며 생활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찬가지 이유로 국내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자식을 둔 인물을 주요 공직에 임명하는 것도 불가한 일입니다.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에게 국가를 맡긴다는건 가당치도 않죠.
그 뒤 안정된 국가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하는 소말리랜드의 상황을 현지 취재로 알려주며, 제대로 된 국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으며 책이 마무리 되는 구성도 괜찮아요. 앞서의 비참한 다른 국가들의 상황과 대비되어 더 잘 와 닿더라고요. 고위 공직자들의 양심적이면서 성실한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와 예상과는 백만년 정도 떨어져 있지만 주장하는 메세지 중 일부는 공감할 만 했습니다. 그러나 총기 AK 47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저 역시 딱히 읽어볼 필요는 없었던 책이라는 뜻이지요...

2019/12/25

도해 고대 병기 - 미즈노 히로키 / 이재경 : 별점 2점

도해 고대병기 - 4점
미즈노 히로키 지음, 이재경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얼마전 "세계의 전투 식량을 먹어보다"가 꽤 괜찮았기에 찾아본 AK 트리비아 북 중 하나입니다. 100개의 꼭지별로 각각 소개 1페이지, 그림 1페이지의 구성으로 여러가지 고대 병기와 병기가 사용된 전쟁 등 '트리바아'라는 말에 걸맞는 여러가지 잡학스러운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 중에서 '도해' 라는 단어가 붙은 시리즈는 모두 동일 시리즈가 원전이라 생각됩니다. 표지, 내지의 디자인과 책의 구성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라면 이 '도해' 시리즈는 영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이유는 책마다 조금 다른데, 우선은 '도해', 즉 정교한 그림으로 설명되는 여러가지 정보를 기대하고 읽었지만 정작 도해 자체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도해 전국무장"이 딱 그런 경우였어요. 제 리뷰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여기 수록된 '도해'는 제대로 된 일러스트나 그림이 아니라 파워포인트 보고 자료 같은 도식화된 그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바로 이 책의 경우로 도해라는 말에 어울리게, 소개하는 고대 병기에 대한 일러스트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정말로 정리되지 않은, '트리비아'라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 잡학적인 지식 전달에만 치중할 뿐이라는 거지요. 일단 고대 병기가 무슨 기준으로 선정되어 소개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분류도 엉망이라서 전차와 공성 병기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그리고 성에 장치하는 뾰족한 나뭇가지인 세르부스나, 성 외곽에 설치한 함정인 리리움을 '병기'라고 소개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러한 기준이라면 '해자'도 병기인 셈이니까요. 에우리알로스와 마사다가 소개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그냥 '요새' 그 자체인데 말이죠. 하긴, '트로이 목마'까지 병기라고 소개되고 있는 판이니 요새가 병기인 것도 당연한 걸까요?
또 문명의 수준에 있어 '고대 병기'를 논하기 어려울 일본의 투석기와 배가 소개되는 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중국의 수, 당나라 시기의 무기라니 다른 기원전 무기들과는 시기 자체도 맞지 않고요. 구태여 소개할 필요없는 사족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료를 먼저 조사하고, 재미있을 법한 내용을 뽑아내어 대충 '고대 병기'라는 제목으로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물론 살라미스 해전의 전법이라던가, 3단 갤리선과 5단 갤리선의 구분 등 도해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투석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적 진보였다는 인장 스프링과 토션 스프링의 차이는 이 책처럼 그림으로 설명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테고요. 글로는 이해하기 힘들었을테니까요. 또 체계적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더라도 한 개, 한 개의 이야기는 읽을만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앞서의 이유로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약간 속았다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거든요. 내용을 세분화하여 '고대 무기', '고대의 공성전' 등으로 보다 상세하게 분류하여 책을 발매하는게 맞았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9/12/14

세계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다 - 키쿠즈키 토시유키 / 오광웅 : 별점 3점

세계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다 - 6점
키쿠즈키 토시유키 지음, 오광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굉장히 특이한 주제를 깊숙이 파고드는 AK Trivia book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제목 그대로 세계의 전투 식량과 그 역사, 기타 관련된 정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반에 등장하는 여러 국가들의 현용 전투 식량에 대한 소개부터가 엄청난 수준입니다. 레이션 별 칼로리까지 소개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왠만한 쇼핑몰에서 다양한 국가의 전투 식량을 구입할 수 있어서 특별한 내용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허나 하루의 3끼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등 이 책에서 제공하는 상세 정보를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나름의 가치는 확실합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전투 식량에는 치킨 누들, 즉 라면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전투 식량은 그 맛이 빼어나서 과연 프랑스답다, 스위스 전투 식량은 그냥 민간 시장용 시판물을 패키징한 것에 불과하다는 등의 재미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개된 국가들 전투 식량 중에서는 러시아 것이 가장 탐나네요. 

이러한 현용 전투 식량 소개 외에도 미국 독립전쟁에서부터 다루고 있는 병영식의 역사 등 관련 자료도 풍부합니다. 미국 남북 전쟁부터 통조림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심지어 당시 깡통 통조림을 생산했던 밴 캠프사와 언더우드사는 현재도 건재하며, 당시와 똑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니 한 번 구해서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뒤로는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과 현대의 병영식이 소개되는데 역시나 흥미롭습니다. 병영식, 전투 식량의 발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일람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 전투 식량이 별 차이가 없는게 좀 의외였습니다. 2차 대전 때 어느정도 전투 식량의 형태가 완성된 탓이겠지요?
그리고 병영식은 기본적인 주식 외에도 초콜릿이나 잼, 사탕류와 기타 국가별 특이한 음식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이 외에도 레이션을 구성하는 가열제와 액세서리 백으로 제공되는 각종 액세서리 및 커틀러리와 식기, 조리 도구 등 관련된 아이템들 소개도 빼 놓지 않습니다. 

전투 식량 속 단골 아이템을 꼽아서 언제부터 전투 식량에 포함되어 제공되었으며, 국가별로 어떤 차이를 보내는지를 알려주는 챕터도 흥미로우며, 맨 마지막에 '오래전 야전식을 재현하자!'는 취지로 소개하는 미국 독립전쟁, 남북전쟁과 구 일본 육군 야전식 레시피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딱히 해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요.

아울러 이 모든 내용이 방대한 도판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확실히 일본인들이 뭔가 집요할 정도로 파고 드는건 잘하네요.

그러나 일본인이 쓴 책이라 일본 자위대,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구 일본 육군의 전투 식량과 병영식에 관련된 정보가 많다는 건 아쉽습니다. 자위대 전투 식량은 전 메뉴를 소개하고 있기까지 하거든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래도 대한민국 육군의 전투 식량도 소개되고 있다는게 위안거리겠지요.
그리고 전투 식량 소개와 역사 및 기타 정보가 이른바 선진국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단점입니다. 제 3국이나 아프리카 등의 전투 식량 소개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저처럼 '잡학다식' 쪽 분야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다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책이거든요. 전투 식량도 좀 사 먹어 봐야 겠군요. 러시아, 없다면 프랑스 것이라도요. 또 AK Trivia book 시리즈도 몇 권 더 구입해 보아야겠습니다.

2023/09/21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1~3 - 토마토수프 : 별점 2.5점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1 - 6점
토마토수프 지음, 문기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2 - 6점
토마토수프 지음, 문기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3 - 6점
토마토수프 지음, 문기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대항해 시대, 세계일주를 3번이나 하고, 다양한 연구 자료를 가지고 돌아와 출판했다는 실존인물이었던 사략선 선원 댐피어의 탐험과 모험을 그린 만화. 댐피어가 사략선을 타고 스페인 상선을 노리는 항해를 떠나 태평양, 카리브 해를 떠돌며 겪는 모험 이야기 중간중간에 댐피어의 과거가 곁들여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댐피어가 남해의 여러가지 새로운 문물 소개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제목처럼 식재료에 대한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에 대해 탐구심을 불태우는 댐피어의 성격을, 처음 접하는 식재료로 만든 요리도 거침없이 도전하는 모습으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 탐구심은 갖추지 않은 옥스퍼드 출신 항해사 카울리와 비교됩니다. 카울리는 자주 새로운 식재료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역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거든요. 불법 사략선을 조사하는 왕의 밀명을 받은 요원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카울리가 댐피어에 감화되어 새로운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후에는 카울리도 새로운 식재료를 먹고 맛있어 하는 모습을 선보이고요. 카울리의 연구는 갈라파고스 제도 해도라는 실질적인 결과물로도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대항해시대 버젼의 <<던전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구한, 어떻게 보면 괴물과도 같은 새로운 식재료를 요리해 먹는데 탐구심을 불태운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거든요.
하지만 실제 있었던 이야기이고, 갈라파고스 섬의 이구아나가 특별히 맛있다는 등 실존하는 식재료와 요리에 대한 소개가 많다는건 장점입니다. 야자나무 심 요리라던가, 바나나와 비슷한 플랜틴, 맘미 애플 등의 식재료 묘사는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습니다. 쉽게 구해 먹을 수는 없어도 실존한다는 점에서 판타지 식재로보다는 훨씬 큰 동경심을 품게 만드네요.
아래와 같이 지금 가정에서도 재현 가능한 조개 요리같은건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대항해 시대 당시의 사회상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묘사라던가, 사략선 면허 등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정보들은 충실하게 알려줍니다. 이런 정보들을 아래와 같이 학습만화처럼 소개해 주는 것도 좋았고요.
하지만 선뜻 추천드리기는 애매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작화입니다 동글동글, 귀염귀염한 작화 자체는 매력적인데 작품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항해 시대 해적 행위, 전쟁, 살인 등의 묘사가 팬시 인형같은 캐릭터로 보여지니 영 와닿지 않더라고요. 배경도 디테일과 깊이감이 부족하고, 고증도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던전밥>> 수준의 작화였다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게다가 이런 작화 탓에, 댐피어의 라이벌(?)인 링로즈와의 관계는 보이즈러브 물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링로즈 덕분에 댐피어는 탐구심을 불태우고, 링로즈도 댐피어의 적극성에 감화되어 성장해 나가는 관계인데 말이지요. 작가의 의도일 수는 있겠지만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또 엄연한 범죄자인 사략선의 해적질을 미화하고 있다는 문제도 큽니다. 작중에서도 사략선 면허를 조작하여 해적질을 하고 있다고 설명되니, 엄연한 범죄자들입니다. 이들의 행동에 뭔가 정당성이 부여되고 있는 듯한 전개는 영 아니다 싶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계속 구입해 볼 예정이지만, 담고 있는 사상은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다소 학습만화 성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 딸에게 권해주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2019/05/18

지적 생산의 기술 - 우메사오 다다오 / 김욱 : 별점 2점

지적 생산의 기술 - 4점
우메사오 다다오 지음, 김욱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의 이와나미 문고 시리즈 제 23권. 1920년 태어난 노 학자가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어떻게 잘 정리하여 체계화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대한 비법을 전수해 주는 책입니다. 

몇 가지 비법이 기억에 남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발견의 수첩"

  • 수첩이나 노트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기록할 때에도 제대로 된 문장으로 적었다.
  • 발견은 갑자기 찾아오므로 그 자리에서 포착하고 즉시 기록하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기록의 장치인 수첩은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 한 페이지에 한 항목만 기록한다.
  • 한 권을 다 쓰게 되면 반드시 색인을 붙인다.

"노트에서 카드로"

  • 카드의 크기는 커야 한다. B6 정도가 괜찮다.
  • 활용을 위해 어느 정도 두께가 있고 튼튼해야 한다. 
  • 늘 가지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
  • 카드를 활용하는 까닭은 쓰고 잊어버리기 위함임을 명심하자.
  • 1장에 1 항목, 그리고 날짜를 반드시 적고 이어지는 내용은 일련 번호를 정해야 한다.
  • 카드는 지적 생산의 도구일 뿐 분류를 위함은 아니다. 카드 시스템의 핵심은 지식과 지식 사이의 재구성이다. 분류에 집착하지 말자.

"독서"

  • 정독은 필수, 한 번 읽고 나서는 얼마 뒤 밑줄 친 부분 중심으로 다시 읽어보자.
  • 중요한 부분에 밑줄 치기야말로 저자 입장에서 책을 읽는 독서법이다. 
  • 저자의 의도와 내가 흥미를 느낀 부분을 구분하여, 이중으로 읽어보자.
  • 독서 노트는 나에게 흥미로왔던 부분 중심으로 적어야 한다.

"문장" 

  • 문장을 쓰기 전 생각을 정리하는 단계가 더 중요하다. 

단편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문장을 구축하는 방법 : 

  1. B8판 정도 사이즈의 종이 준비 : 여기에 지금 생각하는 주제와 관련이 있는 단어, 구절 또는 짧은 문장 등을 한 장에 한 항목 씩 적는다.
  2. 늘어놓은 종이를 한 장씩 주우면서 관련된 종이가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면 묶음으로 포갠다. (분류가 아님!) 
  3. 논리적으로 연관성 있다고 생각된 종이 묶음이 완성되면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는 순서로 묶음을 재 배열한다.
  4. 묶음들 간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논리적 연관성이 있는 묶음들끼리 다시 묶거나, 해체하고 재결합한다. 
  5. 논리적으로 정리된 한 무리의 묶음이 만들어지면 제목을 붙이고 전체적인 구성을 생각해본다.
  6. 묶음 배열대로 문장을 써 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현 시점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들이라는 겁니다. 특히 정보를 정리하여 체계화하는 방법을 다룬 앞 부분 내용이 그러합니다. 노트던 카드건 요새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디바이스의 어플리케이션으로 바로 작성하고, 클라우드를 통해 모든 단말에서 동기화하고, 이를 서로 묶거나 태그를 추가하여 이후 검색 등으로 활용하는게 기본 상식이니까요. 종이 뭉치를 들고다닐 이유도, 특별히 종이 뭉치를 관리하거나 입력하는 방법을 익힐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마 뒷부분, 독서의 방법이나 문장을 쓰는 기술 정도는 읽을만 했습니다. 독서 방법론은 확실히 지금 시점에도 충분히 통용될 이야기였거든요. 저자가 글을 쓴 의도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던가, 정독은 필수이며 밑줄도 잘 쳐야한다는 등의 이야기에서는 저 역시 많이 반성하게 되었고요.

아울러 문장을 쓰는 방법론 소개 자체는 아주 새롭거나 신선하지는 않았는데, 방법론 자체가 현재 UX 등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포스트 잇을 이용한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방법론과 동일하다는게 좀 놀라왔습니다. 저자 스스로 자신의 방법론보다 도쿄 공과대학 교수 가와키다 지로의 KJ 법이 더 수준이 높은 방법이라고 소개하는데, 가와키다 지로가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의 창시자이니 비슷한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하여튼,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으로 한 권의 책을 쓰도록 정보를 체계화하고 연결하는게 가능하다는건 생각도 못했네요. UX 전문가(?) 로서 좀 창피한데, 다음에 저도 한 번 시도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건질게 없지는 않지만 지금 시점에서 읽기에는 시대에 많이 뒤쳐진건 사실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2/11

닌자의 세계 - 야마키타 아쓰시 / 송명규 : 별점 2.5점

닌자의 세계 - 6점
야마키타 아쓰시 지음, 송명규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제목 그대로 닌자에 대한 모든걸 정리하여 알려주는 책. 구성은 몇 권 읽어보았던 다른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와 동일합니다. 한 개의 주제에 한페이지 설명과 한 페이지 도표, 도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은 닌자의 역사에 대해 통사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닌자가 정말로 존재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거든요. 전국시대 당시 첩보를 하는 인간들은 분명 존재했다고 설명해 줍니다. 이들을 모두 '시노비'라고 부르게 되었던건 도쿠가와 막부가 고용했던 이가 사람들이 시노비였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닌자라는 말은 2차대전 이후 야마다 후타로가 쓴 인법장 시리즈 등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답니다. 당연히 만화 등에 나오는 화려한 인법보다는 첩보, 정찰 업무가 주였고, 인술비전서 최고의 인술로도 '모략'이 소개되고 있다는군요. 원래도 대단치않은 기술을 보유했었고, 전국 통일 후에는 대부분 평범한 하급 무사가 되었버려서 그나마의 인술도 잊혀졌지만, 이가에서만 이가를 맡았던 다카토라에 의해 기술을 발전시킬 '무족인' 제도가 도입되어 기술이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막부 말기 이른바 최후의 닌자로 이가의 무족인이었던 '사와무라 진자부로' 가 페리 함대에 잠입해서 조사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고요. 뭐, 이것도 인술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첩보 활동이었다고는 하지만요. 이가만큼이나 유명했던 코가 닌자는 무족인과 같은 특권을 받지 못해 결국 멸망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에도시대에 예능이 성행하면서 시노비의 기술이 기예로 인기를 끌어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즉, 현재의 닌자 캐릭터는 일종의 광대극 캐릭터인 셈입니다.
이 뒤에는 닌자의 기원에 대한 이론, 유명한 이가와 코가 닌자의 유래와 그 관계, 핫토리 한조와 그 후계자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막부 시대 밀정은 닌자는 아닙니다만, 후계자라면 후계자라면 할 수 있겠지요. 에도 시대 호조 가문의 시노비였던 후마 코타로가 도적이 되었고, 그를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카이의 시노비 코사카 진나이도 결국 잡혀 죽었다는건 역사적 사실로 보여 흥미로왔습니다.

닌자의 도구, 기술 설명 부분도 흥미로왔습니다. 닌자의 옷이 검은색으로 알려진건 에도 시대 무대 공연 때문일 뿐, 실제로는 저렴하게 물들일 수 있는 감즙색 옷이 많았다는 사실에 기반한 정보들도 좋았고, 시노비 두건 쓰는 법, 닌자의 속옷, 수리검이라고 불린 차검의 다양한 형태와 봉수리검과의 차이, 항아리 뗏목, 소형톱 시코로 등위 도구와 자사구리, 츠리가타나, 사게오칠술 등의 인술처럼 도판이 효과를 발휘하는 항목도 많아서 마음에 들았습니다.
닌자는 가난하다는 기본 상식을 가지고 도구 이야기를 풀어내니 얼마나 창작물이 허구인지도 잘 알 수 있었어요. 한번 쓰고 버릴 수리검에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지요. 줄에 가로대를 달고 끝에 갈고리를 붙여 올라가는 사다리 카기시바고는 잘 알려져 있기는 한데, 걸 때 소리가 나서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았을 거라는 설명도 좋았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겠지요. 이렇게 실제로는 무의미했을 창작품은 그 외에도 물 위를 걷는 신발 미즈구모(실제로는 두께가30cm이상 되었어야 함) 등이 있다네요.
인술비전서도 당연히 후대의 창작품이지만 그 중 <<만천집해>>는 그래도 상당한 연구가 겻들여진 수작이라는걸 알려줍니다. 도판도 곁들여져 있다하니까요.

인술이 나름 효과있는 술법이라는 주장도 그럴듯했습니다. 급박한 전투에서는 간단하고 실용적이며 빠르게 쓸 수 있는 술법이 사용된게 당연하지요. 한 번 성공하면 상대를 죽일 수 있으니 비밀도 지켜지고요. 이런건 후대 닌자 만화 설정과 비슷하네요. 당연한 일을 좀처럼 할 수 없는게 인간이라 일부러 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해석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으로 보이지만요. 물론 설명되는 인술은 무슨무슨술....처럼 이름은 거창하지만 뻔하고 어이없는 것들도 많기는 했습니다. 그나마 고양이 눈으로 시간을 확인한다는 찰천술은 기억에 남네요. 죽은 시체의 동공으로 시간을 확인했다는 클락성 살인사건의 추리가 떠올랐거든요. 정원 한복판에서 등을 둥글게하고 머리를 숨기며 가만히 있는 메추라기 은신술도 나름대로 그럴듯했고요.
참고로 여우 은신술은 물 속에 숨는 술법인데 만화에서처럼 대나무로 호흡하지는 않았다네요. 굵은 나무가 튀어나와 있으면 이상하니까요. 원래는 얼굴에 나뭇잎 등을 붙이고 얼굴째 내밀어 호흡했다고 합니다. 삼베 뛰어넘기 훈련법은 삼베가 아니라 모시풀이었을거라는 추정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은 창작물 속 닌자들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타츠카와 문고의 사루토비 사스케, 야마다 후타로의 인법첩 시리즈 특징과 주요 대결구도, 시라토 산페이의 닌자 만화 시리즈 소개, 지라이야 소개 등. 시라토 산페이의 만화에서 인술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는건 신선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닌자의 체술이 바탕이 되었다고는 해도, 아예 마법같은 것 보아야 현실적인 느낌을 가져다 주었겠지요. 그러나 이 부분은 설명 도판이 아쉬웠습니다. 인술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는 부분을 실제 만화 이미지로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거에요.
지라이야의 유래가 중국 소설에 등장하는 도적으로, 도둑질 한 곳에 아래야라는 메모를 담겨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마지막 100번째 항목은 실존하는 무술 Ninjutsu입니다. 해외에서는 유명하지요. UFC 초창기(시즌 2)에 닌쥬츠 고수가 나왔던 시합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닌자 역사에 대한 설명 중 야규 일족, 마미야 린조 등 암살, 밀정 활동을 한 실존 인물을 닌자처럼 설명하는건 와 닿지 않았고, 사이고 다카모리까지 언급하는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이시카와 고에몬도 닌자였을 수 있다는건 좀 억지스러웠습니다. 비슷한 기술을 지니고 있있으니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둑이 된 닌자가 많았을거라는건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마츠오 바쇼 닌자설도 마찬가지, 많이 걸었다는 것과 여비를 누구도 주었는지로 닌자일 수 있다는건 억지입니다.
다른 트리비아북 시리즈에는 파워포인트스러운 도표가 대부분인 책도 있었는데, 이 책은 그래도 일러스트를 통한 설명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그리 깊이있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할 수 없고 가성비도 좋나고 보기 어려우나 실제 역사와 근거에 기반한 설명과 시리즈 취지에 걸맞는 잡다한 정보가 많은건 분명한 장점입니다. 닌자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2020/04/19

중세 유럽의 레시피 - 코스트마리 사무국 / 김효진 : 별점 1점

중세 유럽의 레시피 - 2점
코스트마리 사무국 지음,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주제에 대해 깊숙히 파고들어, 일반 상식 이상의 정보를 전해준다는 취지의 AK Trivia books 시리즈의 한 권입니다. 제목 그대로 중세 유럽 요리의 레시피 43개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시피 외에 중세 요리 및 저자의 중세 축제 체험기를 다룬 컬럼 몇 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특징이라면 중세 유럽의 레시피를 현대의 재료로 재현하는걸 중요한 포인트로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제인 "손쉽게 만들어 즐겁게 맛보는 중세 요리'에 충실한 셈이죠. 그래서 수록된 대부분의 레시피들이 실제로 현재, 그리고 가정 내에서 구현 가능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맛이 짐작 가능해서 딱히 신선한 레시피는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쿠민 수프'는 향신료 쿠민이 들어갈 뿐, 현재도 우리가 즐겨먹는 '달걀국'과 같아요. 버섯 수프 '펑거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닭 육수에 다듬은 버섯들과 파, 시나몬, 클로브, 후추를 넣고 끓이는 레시피와 결과물 사진을 보면, 닭 육수를 쓰기는 하지만 멸치 다시마 육수를 써서 만드는 버섯국과 별로 맛이 다를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새의 무덤' 이라는, 중세풍 이름의 요리도 그 정체는 다진 마늘, 소금, 후추와 버무린 닭다리살을 볶은 뒤 타임, 로즈마리를 넣고 레드 와인과 물에 조리는 와인 닭찜입니다. 이 정도라면, 우리가 흔히 먹는 닭가슴살 간장 조림에서 간장만 와인으로 대체하면 되는 수준이라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먹을 수 있겠죠.
또 현대에 재현하기 위해 재료를 나름 응용한다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중세의 허니 토스트를 재현하기 위해 '식빵'을 쓰는 식으로요.

물론 현대에 중세 요리를 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나쁠건 없습니다. 문제는 내용의 깊이와 전문성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지요. 레시피 하나하나의 분량은 많아야 2페이지 정도에 머물 뿐으로, 정말 '레시피' 이외의 다른 정보가 거의 소개되지 않을 뿐더러, 레시피들의 출처들도 소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저자의 마음 속에서 그럴듯하게 꾸며낸 중세 유럽의 요리인지, 아니면 실존했지만 이를 현대에도 맛볼 수 있게 어레인지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전문성 측면에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수록되어 있는 컬럼들도 중세 유럽의 장미, 백합, 제비꽃에 대해 알려주는 정도만이 괜찮았을 뿐 그 외에는 별볼일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쓸데 없는 저자의 중세 축제 체험기나 일본 내 중세 유럽 관련 행사에 대한 정보에 대한 사진과 비중이 높다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풀 컬러지만 재현한 음식들 한 컷씩만 실려있는 수준의 도판도 딱히 대단하지 않으며 책의 완성도도 그냥저냥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중세 유럽의 레시피를 현대에 재현한다는 취지 외에 건질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17,000원이라는 가격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고요. 이쪽 분야에 관심이 지극히 많으시더라도,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1/02/16

에키벤 철도 도시락 여행기 - 하야세 준 / 채다인 : 별점 3점

에키벤 1 : 큐슈 - 6점
하야세 준 지음, 채다인 옮김, 사쿠라이 칸 감수/에이케이(AK)

에키벤 4 : 홋카이도편 - 6점
하야세 준 지음, 채다인 옮김, 사쿠라이 칸 감수/에이케이(AK)

블로그 이웃이시기도 한 채다인 님이 번역하신 철도 - 에키벤 소개 만화. 요리 만화를 좋아하는 저이기에 주저 없이 1권을 구입하여 읽었고 2, 3권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는데, 채다인 님의 도움으로 4권을 먼저 증정받아 읽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내용은 도시락집을 운영하는 주인공 다이스케가 일본 전국 철도 일주를 하면서 각 지방역의 맛있는 에키벤을 찾아 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한마디로 지극히 심플하죠. Channel J에서 방영했었던 "ekiben 일본 기차 도시락"이라는 여행 프로그램과 거의 동일한 구성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심플한 구성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리나 와인 하나로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는 식의 요리 만화보다 훨씬 현실적이잖아요? 세밀하고 정교한 그림 역시 철도 여행과 에키벤을 간접 체험하는 데 부족함이 없고, 여행 과정과 방법을 소개하는 부분의 디테일도 대단하기에 일본 철도 여행 가이드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러나 정보 전달 요소 중심이라 내용에 별다른 드라마가 없다는 점은 큰 약점이라 호불호는 갈릴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묘사와 정보량에서 단순한 재미 이상의 것을 전달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정보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읽으면서 다른 만화도 많이 떠올랐는데, 누구나 사 먹을 수 있는 에키벤이 소재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소박함과 일상성은 "고독의 구루메"가, 철도와 에키벤이 50:50 비율로 섞여 있어서 에키벤 만화이기도 하지만 "철덕"들을 위한 만화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는 "월관의 살인"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에키벤" 만화라는 점에서 떠오른 만화는 바로 이겁니다.


신장개업 3 - 4점
츠치야마 시게루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요리 만화의 숨은 실력자 츠치야마 시게루의 작품 "신장개업" 3권! 하코다테의 레스토랑 '오릉곽정'의 요리장 토시죠가 전국을 돌며 망해가는 가게를 업그레이드해 준다는 만화로, 3권에는 쇠락해가는 관광지의 에키벤인 "혼마루 도시락"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업그레이드 방법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무하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껍데기만 바꾸는 것입니다) 에키벤 팬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에키벤을 먹기 위해 철도 정차역을 변경시킨다!"라는 꿈이 담겨 있어 비교하며 읽게 되더군요. 어처구니없는 과장과 오버로 점철된 전형적인 성장 - 배틀형 요리 만화이기는 하나, 에키벤을 좋아하신다면 이 작품 역시 한번쯤 찾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5/10/26

도해 전국무장 - 이케가미 료타 / 에이케이 : 별점 2점

도해 전국무장 - 4점
이케가미 료타 지음/에이케이(AK)

출판사 AK의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제목만 보고 전국 무장의 갑주나 무구 등에 대한 도해가 실려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책이더군요. 전국시대 전체를 114개의 주요 주제별로 분류한 뒤, 주제 하나당 한 페이지로 요약 정리하고 다른 한 페이지에서는 해당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래서야 "도해 전국무장"이 아니라 "도해 전국시대"잖아요! 실제 전국 무장은 개별적으로는 거의 소개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제목 사기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또 그동안 "도해"가 일러스트의 한자어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의 도해는 그야말로 사전적 의미 ― 글의 내용을 그림으로 풀이한 것 ― 그대로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러스트라기보다는 파워포인트 보고서에 가까운 결과물입니다.

물론 주제 자체가 재미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국시대 무장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 뭘 먹었는지, 뭐하고 놀았는지, 뭘 배웠는지, 어떻게 수련했는지 등 ― 에 대한 내용이나 전국시대 실제 전투에 관련된 정보들 ― 전투를 어떻게 했고, 비용이 얼마나 들었으며 어떻게 조달했는지 등 ― 은 꽤 흥미로왔습니다. 전국시대 실제 역사의 흐름도 알기 쉽게 요약해 정리해주고요.

허나 실제 있었던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치중하고 있는 내용과 이러한 "도해"를 볼 때, 이건 재미로 보는 책이 아니라 그냥 참고서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장점이 없지는 않으나 기대와 전혀 달랐기에 감점합니다. '전국시대' 대해 관심이 있다면 괜찮은 참고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와 같은 무장과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오타가 상당히 많아서 꽤 거슬리더군요. 이래서야 참고서로 쓰기에도 좀 애매하네요.

2025/03/30

전쟁과 군복의 역사 - 쓰지모토 요시후미 / 김효진 : 별점 3점

전쟁과 군복의 역사 - 6점
쓰지모토 요시후미 지음, 쓰지모토 레이코 그림,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입니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군사사 전문가인 쓰지모토 요시후미가 집필한 책으로, 전쟁과 군복이 어떻게 함께 진화해왔는지를 방대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조명합니다. 인류 최초로 군복 개념이 등장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기를 시작으로, 각 시대와 지역에 따라 군복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시대별, 지역별 군복의 변화를 다루면서도, 단순한 복식사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초로 근대적인 군대를 창설했다는 스웨덴의 구스타브 아돌프와 독일의 효웅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의 격돌, 오스만 제국과 기독교 제국의 결전에서 대활약했던 폴란드 왕 얀 3세의 유익 기병대 '후사리아(윙드 후사르)' 이야기, 군인왕 프리드리히의 생애 등 군복과 불가분한 주요 전사 및 영웅들의 활약상을 병행해 설명해 주는 덕분입니다. 

당연히 복식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폴란드 중장기병 후사리아의 복장 묘사처럼요. 등에 장착한 거대한 스크시드워(천사의 날개 모양 장식)부터, 장창 코피아, 휘어진 군도 사블라, 2미터 장검 콘체슈, 권총 반돌레트, 동양풍 투구 시샤크, 어깨에 걸친 표범 가죽까지 장비 일체를 착용 이유와 이후 발전 상황 등까지 모두 알려줍니다. 아래와 같이 도판도 함께 제시되고요.

복식으로서의 군복에 대한 정보도 흥미롭습니다. 군복이 화려한 원색으로 구성되었던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화약은 짙은 연기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전장의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총기의 명중률도 낮아 병사들이 적의 사격을 피하는 것보다 아군의 위치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원색과 금·은 자수, 매듭 장식이 선호되었다고 하네요. 또, 화려한 군복은 군대의 상징이자 국가 권위의 표상으로 기능해서 루이 14세와 나폴레옹이 이를 의도적으로 장려했다는 설명은 군복이 단순한 실용품이 아닌 국가 전략의 일부였음을 보여주고요. 또한 병사들에게 눈에 띄는 군복을 입히면 탈영을 어렵게 만든다는 설명도 그럴듯한 해석이었습니다.

프랑스 총사대의 복장, 이른바 '타바드'에 대한 고증 또한 세밀합니다. 대부분 대중매체에서 보아온 파란색 상의는 실은 루이 14세 시대의 것이며, 루이 13세나 리슐리외 추기경 시대에는 다른 복장이었다고 하네요. '늑골복'이라 불린 헝가리계 경기병의 복장이 오스만 제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그 외에도 1848년 무렵, 재인도 영국군의 선도 군단(Corps of Guides)을 이끈 해리 버넷 럼스덴 중위(후에 중장. 1821~1896 년)가 고안한 진흙으로 염색한 군복을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우르두어에 카키 (Khaki, 진흙 색)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카키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처음으로 전장에서의 위장 효과를 의식한 군복이라던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 세계 최강의 패권국은 대영제국으로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영국 육군이 전 세계에 유행시킨 세 가지 아이템은 승마 바지와 승마 부츠의 조합, 어깨에 두르는 샘 브라운 벨트, 오늘날 일반 신사복으로 널리 정착한 '트렌치코트' 이고, 세계 최초의 위장복은 2차대전 독일 친위대가 도입했다는 등의 재미난 정보가 가득합니다.

다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다소 산만하고 두서없이 전개되는 감이 있기는 합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천 년의 역사를 다루고는 있지만, 주로 근대 유럽에 치우쳤다는 비중 문제도 있고요. 또한 소개된 내용들의 출처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학술적 깊이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복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전사(戰史)'와 함께 입체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전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책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25/02/02

방어구의 역사 - 다카하라 나루미 / 남지연 : 별점 2.5점

방어구의 역사 - 6점
다카히라 나루미 지음, 남지연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AK Trivia Book 58번째 책. 제목처럼 '방어구'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방어구의 시작부터 통사적으로 정리하여 모두 105개 항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페이지는 설명, 한 페이지는 도해로 이루어진 구성은 다른 시리즈들과 마찬가지고요.

통사적으로 방패와 갑옷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고, 왜 이렇게 발달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초창기에는 방패와 갑옷이 고르게 발달했지만, 크로스보우와 장궁 같은 무기가 도입되면서 전신 판금 갑옷이 도입되었고, 이 탓에 방패는 사라지고 양손으로 힘을 주어 타격하는 무기가 나타나는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거든요. 일본과 중국, 인도와 중동, 심지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의 갑주까지 보여주는 등 다루고 있는 범위도 넓고요.

각종 방패와 갑옷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도 좋았습니다. 이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핵심 용어는 '스케일 아머'와 '라멜라'입니다. 스케일 아머의 기원은 기원전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다수의 물고기 비늘 모양 조각을 천이나 가죽 등 안감에 꿰매 붙여 형성한 방어구입니다. 라멜라도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된 고대부터 존재했던 갑옷으로 스케일과 동일하게 비늘 조각이나 가죽, 금속 재질의 사각형 소찰로 이루어져 있으나, 안감은 없습니다. 조각과 소찰들을 엮어서 만든 갑옷이지요. 스케일이 보다 더 원시적이고 옷처럼 유연성이 있는 반면, 라멜라의 몸통 부분은 혼자 설 수 있을 만큼 단단합니다. 라멜라가 스케일보다 제작에 손이 많이 가는 고급품이고요.

플레이트 아머의 가격에 대한 설명도 기억에 남습니다. 잔 다르크(1412~1431년)를 위해 급조된 이탈리아제 갑옷은 100리브르로서, 금화 백 닢에 해당됩니다. 이 시대의 금화 한 닢은 120만 원으로 환산할 수 있으므로, 잔 다르크의 갑옷은 1억 2,000만 원인 셈이지요. 다만 영웅을 위한 특제품, 게다가 특별히 서둘러서 만들었기 때문에 예외적이고, 그보다 50년 전의 기록에 나오는 판금 갑옷은 25리브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기준으로는 약 3,000만 원입니다. 자동차 한 대 값 정도인데, 기사 전용 장비로 상위 계급의 필수품 중 하나였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네요.

당대 세계 최선진국이었던 중국의 갑옷 설명도 흥미로웠습니다. '보인갑'은 중국의 보병용 중장 갑옷의 총칭으로 10세기 송나라의 보인갑은 철제 갑엽을 엮은 라멜라였습니다. 금나라의 중장기병에 맞서는 송나라 중장 보병대를 위한 장비로, 최전선용 보인갑은 갑찰 1825장으로 전신을 감싸서 무게가 35kg이나 나갔습니다. 양산 체제도 갖춰져서, 직인 한 사람이 만들면 보인갑 한 벌을 완성하는 데 70~140일이 걸렸지만, 실제로는 분업화되어 이틀에 한 벌씩 생산이 가능했다네요. 당대 최고 장비 중 하나를 이 정도 속도로 생산했다는건 송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좋은 증거입니다.

이외에도 무기를 들지 않은 오른손으로 바이저를 올려 상대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동작이 기사의 인사 = 군대의 경례의 기원이 되었다는 등 재미있는 정보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일본 갑주의 비중이 높다는 건 아쉬웠습니다. 일본 갑주에 대한 통사적 설명까지는 볼 만 했고, 아래처럼 "세인트 세이야"의 성궤 상자는 일본 갑주를 담는 상자의 형태와 비슷했다는 등의 정보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갑주 제작 공정 중에는 갑옷의 강도를 확인하는 시험도 흔히 이루어졌고, 오요로이가 주류이던 가마쿠라 시대에는 이를 '다메시요로이'라 부르며, 후세다케노유미라는 강력한 복합궁을 쏘아 시험했는데 16~17세기에는 화승총으로 도세이구소쿠를 쏘는 '다메시구소쿠'로 변화했다는 등의 정보는 과하다 싶었어요. 이렇게까지 설명할 내용은 아니었다 생각되는데 말이지요. 

도판도 나쁘지 않으나, 한 페이지로는 내용에 소개되는 모든 도판을 담지 못한다는 단점이 큽니다. 아래 난반도구소쿠는 뭔지 보여주지도 않더군요. 

도판 크기도 작습니다. 오래전에 구입했던 DK 무기 백과사전을 일부 참조하며 읽었는데, 이 정도 사이즈는 되어야 명확하게 세부까지 확인이 가능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제목이 주는 기대에는 충분히 값하고, 재미도 있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런 류의 서적과 정보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5/05/16

초콜릿어 사전 - Dolcerica 가가와 리카코 / 이지은 : 별점 1.5점

초콜릿어 사전 - 4점
Dolcerica 가가와 리카코 지음, 이지은 옮김, 센주 마리코 감수/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초콜릿에 얽힌 다양한 단어와 정보를 감각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는 그림 사전 형식의 책입니다. ‘미식 관련 도감’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가끔 눈에 뜨이면 집어드는 AK Trivia Book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초콜릿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거나 혹은 연상되는 단어들을 수집하여 ㄱㄴ순으로 보여주는데, 각 단어에 대한 짧은 설명과 간결한 일러스트가 함께 실려 있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함께 전해줍니다.

170여개에 달하는 단어를 설명해 주고 있어서 처음 접했던 정보가 많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단무지(다쿠앙)에 초콜릿을 씌워 만들었다는 ‘다쿠앙 초코’라는 기상천외한 조합(괴식일 줄 알았는데 다행히 진짜 단무지는 아니고 '설탕에 절인 무"를 사용했다고 하네요), "두 도시 이야기" 속에서 초콜릿을 대접하는 데 하인 네 명이 필요하다 - 한 명은 초콜릿을 따를 기구를 가지고 오고, 한 명은 초콜릿을 섞으며, 세 번째는 냅킨을 내밀고, 네번째는 초콜릿을 따른 사람 - 는 대사 등이 그러합니다. ‘페레로 로쉐’의 ‘로쉐’가 바위라는 뜻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정보였으며, 판 초콜릿이 뚝뚝 부러지는 모습에서 커터 나이프가 발명되었다는 이야기도 신선했어요.

하지만 대부분 단편적인 정보들로 구성되어 있어 맥락 없는 지식의 나열에 그칩니다. 일본 현지 중심의 소재가 많아 국내 독자에게는 와닿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무엇보다도 수록 단어의 기준이 모호하다는게 가장 큰 단점입니다. ‘리큐르’와 같이 단순히 함께 마시면 좋다는 식으로 설명하는게 대표적입니다. 왜 함께 마시면 좋은지 설명을 해 주어야죠. 이렇게 아무런 근거없이 마음대로라면, 초콜릿과 잘 어울리는 과자, 와인, 자동차 등 끝도 없이 소재를 댈 수 있으니까요. '선물', '의리초코'는 수록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단어와 내용이었고요.

일본 여성 교육 선구자로 1871년 미국과 유럽 각국을 돌았던 쓰다 유메코가 일본 소녀로는 최초로 해외에서 초콜릿을 먹어 보았을거라는 근거없는 추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에 수록되려면, 오쿠보 도시미치나 이와쿠라 도모미처럼 해외에서 먹었던 근거가 명확했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이 이 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립니다. 

도판, 그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일러스트도 제 취향은 아닌데다가, 대부분의 도판이 작아서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하는게 어려운 탓입니다. 유명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가 1962년 일본 후지야의 루크 초콜릿 로고와 패키지를 디자인했다는 정보는 제법 관심이 갔는데, 도판이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엉뚱하고 흥미로운 정보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방향성과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많아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2026/01/30

세계사 만물 사전 - 헤이본샤 편집부 / 남지연 : 별점 1.5점

AK Trivia Book 시리즈의 한 권입니다. 도감형 사전이지요. 제목 그대로 세계사와 관련된 각종 사물과 개념을 짧은 설명과 도판으로 소개해 줍니다. 

하나의 주제를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매우 짧은 항목들이 이어지는 구성이라 부담 없이 넘겨보기 좋습니다. 한 항목이 대개 도판 하나와 그에 덧붙여진 설명 정도로 끝나는 덕분입니다.
다른 사전이나 도감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소재들이 제법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특히 바다와 선박 관련 정보가 비교적 풍부한 편으로, 범선의 구조를 보여주는 도판이나 돛을 포함한 요트의 상세한 구성 설명은 꽤 볼만했습니다. 이런 부분은 만화 “해왕기”를 볼 때 참고삼아 보아도 좋겠더라고요.
말과 수레, 썰매에 대한 설명도 충실합니다. 특히 썰매를 도판과 함께 체계적으로 소개한게 눈에 띕니다. 여기에 더해 자물쇠와 열쇠, 촛대, 샹들리에처럼 일상적인 소품들의 상세한 설명도 좋고요. 특정 시기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 유용한 정보일 테지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깊이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항목이 도판 하나에 짧은 설명으로 끝나며, 배경이나 역사적 맥락 없이 현상만 나열하는 경우가 많은 탓입니다. 무엇을 왜 그렇게 쓰게 되었는지, 어떤 흐름 속에서 발전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차 구성도 아쉽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분류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국가와 전쟁에서 바다, 범선, 기선으로 이어지고, 다시 기구와 항공기, 말과 수레, 썰매로의 흐름은 그나마 이해가 되는데 이후에 등장하는 농업과 농민, 의상, 민족, 속옷, 우산, 신발 등은 맥락도 불분명하고 주제 간 레벨 차이도 큽니다. 한 책 안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보고 있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건축과 유적, 신화와 신을 다룬 부분은 도판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고, 설명 역시 관련 전문 서적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단순해서 실망스럽습니다. 굳이 이 책에서 다뤄야 했을 영역이 아니에요. 무기들도 마찬가지고요. 

도판도 수가 많고 성의가 느껴지며 하나의 일관된 일러스트로 제공된다는건 좋은데, 인쇄 문제인지 전체적으로 품질이 썩 좋지 못합니다. 이는 도감이라는 책의 정체성을 미루어 볼 때, 최악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AK Trivia Book 중에서도 최악 중 하나에요. 추천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2018/07/07

사건이랑께! 1,2 - 야스다 코스케 / 김진아 : 별점 2.5, 2점

사건이랑께! 1 - 6점
야스다 코스케 지음, 김진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사건이랑께! 2 - 4점
야스다 코스케 지음, 김진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 추리소설, 미스터리 매니아이자 학교 최고의 미녀인 시로가네 유리코 선배와 그녀를 흠모해 미스터리 연구 동호회에 가입한 토이리를 중심으로 벌어자는 일상계 학원 개그물입니다.

설정답게 유리코 선배가 거창하게 준비한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풀게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소소한 개그들이 볼거리고요. 대놓고 개그 만화라는 점을 뺀다면 "Q.E.D"의 에나리와 멀더, 홈즈 패거리가 바로 떠오르는데, 심지어 유리코 선배가 사다 놓은 딸기 찹쌀떡이 어디로 갔나? 라는 에피소드는 "Q.E.D"에서도 굉장히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했던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단순한 개그물은 아니고, 나름대로 추리 소재나 추리 관련된 이야기를 잘 녹여낸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1권에 특히 많은데 히마와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남자 아이인줄 알았는데 사실 토이리를 좋아하는 여자아이였다는 결말을 서술 트릭이라고 설명한다던가, 콜드 리딩을 축구에 접목시켜 설명해주는 발상은 아주 좋았습니다. 이해가 아주 쉬웠으니까요.
또 눈이 나쁜 스미레가 안경을 벗은 이유를 여럿이서 추리하는 이야기는 정말로 일상계 추리물 같았습니다. 유리코와 토이리는 그녀가 안경을 벗은건 수학 시간이라는 점에 착안해 그녀는 앞을 보기 싫을 정도로 수학 선생을 싫어했다는 식의 얼토당토 않는 추리를 늘어놓지만, 히마와리가 수학 선생님한테 예뻐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는 소녀다운 추리로 마무리하는데 설득력 높은 좋은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2권은 좀 아쉽습니다. 1권과 같은 추리 관련 소재나 설정을 써 먹는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다룬, "BL 팬픽과 셜로키언이 유사하다"는 발상은 신선했지만 그 뿐이에요. 특히 유리코의 쌍동이 자매 노바라 등장 에피소드가 많다는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서 흔히 보아 왔던, 생긴건 같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쌍둥이 자매 개그의 반복일 뿐인 탓입니다. 떨어지는 작화와 만화적인 구성도 감점 요소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권은 2.5점, 2권은 2점입니다. 계속 읽어 볼 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리를 좋아하시고, 개그를 좋아하신다면 1권은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2020/05/16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야마모토 요시타카 / 서의동 : 별점 4점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8점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과학기술이 주요 축의 하나였던 일본근대화 150여년에 대한 역사서입니다. 메이지 초기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뒤 전쟁을 거쳐 현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이르기까지 일본 내에서의 과학 기술의 역할과 '총력전' 이라는 형태의 방식에 대해 7장, 4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조망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유익했던 독서였습니다.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여러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었고, 잘 몰랐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은 물론, 일본의 현재 모습이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요.

궁금했었던 의문이 해결된 것 중 가장 대표적인건 "일본은 고작 몇 년 정도 앞서 개항한 걸로 어떻게 20세기 초중반,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는지?" 입니다. 그 해답은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는 것이네요. 서구에서도 물리학에서 신학적 내용과 같은 불필요한 내용이 추방되고, 수학도 정리되어 세련되어 갔으며, 과학 연구와 연구자 양성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 학문의 습득이 쉽고 체계적이 된 19세기 후반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덕분인겁니다. 여기서 조금만 빨랐어도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테고, 50년만 늦었어도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이 태동한 뒤라 습득 장벽이 높아서 서구 물리학과 관련 학문을 쫓아가는건 굉장히 어려웠을거라는군요.

그리고 흔히 이야기하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의 유래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과학은 순수한 학문적 영역이었으니 두 단어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19세기에는 여러가지 과학 분야의 연구가 실제 기술 개발에 적용되는 사례가 부각되었기 때문에, 일본은 두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쳐서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보면 '과학' 보다 그 결과물인 '기술' 분야에 집중했고, 과학이라는 학문 영역도 '기술'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보다 촛점을 맞추었고요. 한마디로 과학은 기술을 위한 보조학인 셈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일본의 과학 교육은 세계관, 자연관 함양보다는 실용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고요. 덕분에 일본이 근대화에 빨리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는 일본 근대화의 바닥이 얕은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사농공상' 대신 학력에 의한 질서 형성을 추진하는, 이른바 '사민평등'의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아니었습니다. 서구 과학기술 수입의 핵심기관인 공부성이 주도한 방침 자체가, 재래의 직인층을 독려해 종래 기술을 개량하고 발전시키는게 아니었던 탓입니다. 사족 중 유능한 자를 기술관료로 육성한 뒤 서구 과학기술을 그대로 도입하는게 핵심이었거든요. 그래서 상급학교에 진학한건 거의 사족의 자제였고, 메이지 시대 기술자의 태반이 사족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사족은 직인, 상인의 일을 경멸했던 터라 이런 계급적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술을 지배층만의 것으로 권위를 부여하고, 이들을 엘리트로 재래의 직인과 차별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던거지요.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강렬한 엘리트 의식을 함양시켰다고 합니다. 국가와 나라를 위해 일하는걸 당연히 여겼고요.
이 탓에 상급 기술자들은 엘리트 의식 과잉에 배타적 성격을 지니나, 반면 관료적이고 조직과 국가에 순종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학제, 시스템을 식민지 시절 도입당한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는 이야기라 여러모로 와 닿네요.

책에서 소개하는 근대화와 함께 한 과학기술 진흥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면, 메이지 초기 해외 사절단 등을 통해 일본 지배층은 상공업의 발전이 선진국의 필수 조건이며, 특히 과학이 기술에 직결되고 산업 발전과 군사력 강화의 불가결한 요소일 뿐 아니라 국가가 과학과 기술의 진흥과 혁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막말 연달아 일어난 대지진으로 지배층의 권위 실추와 새로운 사정, 문물의 유입이 이루어지던 시기라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던 민중에게 합리적이면서 과학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궁리窮理학'이 대 유행하게 되고요. 이를 통해 서양과학기술 계몽서가 유행하는데, '궁리'라는 라쿠고까지 나왔다니 그 유행을 미루어 짐작할 만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제목의 '총력전' 이 소개됩니다. 메이지 유신 후 국가 주도 개혁에서 군부 독재에 의한 제국 주의가 심화되며 국가가 통제하는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무척이나 상세해요. 전쟁에 대비하여 총력을 다해 이를 준비한다는 '총력전' 체제로 모든 산업, 경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일부는 우리나라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보이더군요. 군부 독재에 의한 것이지만 미국의 뉴딜 정책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시각도 흥미로왔고요. 또 이러한 '통제'는 좌, 우익 모두 찬성했다는데, 우익이야 그렇다쳐도 좌익은 좀 의외였습니다만 그 이유도 책에서의 설명으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좌익은 자본의 이윤 추구를 억제한다는 그 자체에 무조건 찬성한거라네요. 제목처럼 총력전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는 내용도 잘 알려줍니다. 군부 주도의, 군사 목적의 발전이면 기술 개발이 빠질 수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덕분에 과학기술 분야에 엄청난 연구비가 투입되고, 여러가지 혜택도 많았다고 하고요. 전후 과학자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시가 가장 연구 환경이 좋았다고 할 정도로요.

또 총력전을 통해 결국 빈부 격차가 줄어들게 되었다는 의외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징병제 때문에 농촌의 인구와 생활 수준을 유지시켜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의료 보험 등 복지에 대한 여러가지 제도가 만들어지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러나 총력전 이전, 근대화 과정에서 있었던 일반 민중들의 희생도 잊으면 안 될 역사입니다. 이 책에서는 '기계화'가 생각했던대로 인간의 노동을 경감시킨게 아니라 오히려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야간 근무가 도입되고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져서 민중은 그만큼 희생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성공과 기적은 운이 좋았던 덕분인데다가, 효과적인 교육제도가 형성된 등의 이유도 크지만, 농촌 노동력의 가혹한 수탈과 농촌 공동체의 무참한 파괴가 불가결의 요인이었던거죠. 제국주의가 되면서 이러한 수탈, 파괴는 식민지로 옮겨지고, 우리나라는 그러한 수탈과 파괴, 희생의 직격탄을 맞있다는 점에서 더욱 뼈저린 역사입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의 이야기도 새롭습니다. 대표적인게 일본의 패배를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보지 않는다는 시각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군부 독재 시기에 총력전 체제에 의한 사회의 구조적 변경과 재편성이 이루어졌는데, 이 구조가 전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저자의 시각으로는 지금도 일본은 '전시 체제'인 셈입니다! 아직도 소수의 관료, 선택받은 엘리트들이 국가 주도의 정책을 세우고 이를 모든 사회에 강요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제대로 된 민주화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인거지요. 최근 드러나는 일본 정치의 후진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덕분에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수의 관료, 엘리트들이 새로운 일본의 재건에 나서는데, 이 역시 총력전 체제와 다름이 없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또 여기에서도 일본은 운이 대단히 좋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전쟁 당시 추진해서 만들어놓은 생산 설비가 비교적 온존되어 있었고, 전시하에서 급성장하고 축적된 기술과 기술자층이 많아서 고도 성장의 주역이 되었으며, 은행과 군수 기업은 망하지 않은게 다시금 총력전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네요. 식민지 시절 수탈과 희생을 발판삼아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로 다시 고도 성장을 한 것이죠. 또 고도 성장의 핵심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한 시장의 급성장 덕분이었다니, 이 정도면 천운을 타고났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러한 고도 성장도 전전의 '총력전' 처럼 약자의 생활과 생명 경시를 동반한게 오늘날의 '후쿠시마'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니,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에요. 이러한 고도 성장 과정에서 여러가지 환경 문제나 사고가 일어났지만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의 거짓말,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지식인들과 기술자들이 기업편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며 언론 역시 이에 동조하여 거짓 기사를 써 낸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의 과거가 겹쳐지기도 해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예를 보아도 "무슨무슨 5개년 계획" 등으로 국가 주도로 산업을 일으켰지만, 그 과실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은건 재벌과 권력자라는걸 부인하기는 어렵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의 문제점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이어지는데, 이는 그냥 좌시하기 힘든 내용이었어요. 바로 원자력이 핵심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정치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성장'에 모든걸 걸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전시에서의 발상으로, 지금 시점에 맞는 방향은 절대 아닙니다. 기술 혁신만으로 인구 감소에 따른 시장 축소를 감당할 여지는 많지 않으니까요. 결국 일본은 가격이 유지되는 시장인 군수 산업에 올인해서 전쟁 유발을 획책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으며, 이를 위해 일본이 집중한게 바로 원자력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과거 평화적 이용이라는 환상을 과대 포장하여 원자력 개발을 진행하였으나, 1980년대에 이르르면 이미 전력 수요는 넘어서는 원전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원전 비즈니스를 위해 원자력 개발을 하고 원전을 지은 것에 불과한거죠. 국가 주도의 총력전이 지금은 원자력에 집중되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나 원자력은 수백년 사용하면 수십만년 보관해야 하는 폐기물 문제가 더 큰, 무한한 미래를 희생하여 당장의 현재를 사는 굉장한 낭비에 불과하다는걸 통렬하게 알려줍니다. 원전 자체가 불완전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원전에 큰 투자를 감행했던 도시바의 몰락은 일본식 총력전을 무력하게 만들어, 조만간 '일본 주식 회사'의 실패를 불러올거라고 하니 무서울 정도네요. 우리나라 모 회사가 어려워진게 국가에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분들께 이 책을 한 번 권해드리고 싶네요. 원자력은 현재라고 하기 어렵고, 미래는 더더욱 아닙니다. 후쿠시마의 예를 꼭 들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친환경,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더욱 시급한 시점이 맞습니다. 그리고 일본처럼 국가 주도의 비즈니스 드라이브를 걸다가 나라가 망해가는건 그 누구도 원치 않으실거라 믿고요.

결론과 후기를 통해 저자는 앞으로는 총력전 체제에 따른 경제 성장 자체가 불필요할 것이라 합니다. 경제가 성장해봤자 국민 개인은 성장하지 않는다는게 이미 증명되었으니까요. 때문에 글로벌 교류를 통한 전쟁없으며 연대를 이루는 시민 사회의 성장, 이를 통한 실업없는 제로 성장 사회로 연착륙 하는게 맞는 방향이고, 여기에 과학적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이 생각에 100% 동의합니다. 문제는 최근의 코로나 사태가 시민 사회의 교류와 국가간 교류를 단절시켰다는 점이지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상이 바뀔거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이제야 조금 와 닿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굉장히 얻은게 많은 독서였습니다. 물론 저자 혼자만의 주장이 담겨있어서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본 전시 체제를 뒷받침한 가장 중요한 동력인 식민지 수탈을 너무 짧게 짚고 넘어간 것도 적절치 못하고, 일본 원자력 산업도 정확한 파악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자료가 필요해 보이고요. 과연 공평한 논리와 시각인지도 깊이 고민해 봐야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평가하고 검증해야 하는건 오롯이 독자의 몫일 겁니다. 새로운 시각만으로도 무척 반가왔으며, 현재의 일본과 우리를 알기 위해서는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네요. 심지어 가격까지 저렴한 편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17/04/29

초초패미컴 - 타네 키요시 외 / 문성호 : 별점 2.5점

초초패미컴 - 6점
타네 키요시 외 지음, 문성호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이전 읽었던 "초 패미컴"의 후속작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패미컴'으로 발매되었던 여러가지 게임들 중, 특기 할 만한 것들을 소개하는 것이 중심입니다.

많은 게임이 소개되는데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던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당대 유행과 트렌드를 알려주는 작품들입니다. 혼다의 인기 소형차 '시티'가 주인공인 "시티 커넥션", 그리고 "북두의 권"과 "매드맥스"에서 영향을 받은 세기말 황야를 무대로 한 레이싱 게임 "마하 라이더" 등이 대표적입니다.
다양한 당시 컨텐츠를 원작으로 한 게임들도 같은 류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또 물건이 많네요. "스타워즈" 게임에 등장하는 '전갈 베이더', '갸오스 베이더', '크라도스 베이더', '완파 베이더' 등의 악당은 그야말로 대폭소에요. "맛의 달인" 게임의 후짐과 억지스러움도 아주 인상적이고요.
유명인들과 관련된 작품들도 눈에 띕니다. "명탐정 산마"와 같이 당시 유명인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유명 크리에이터들의 활약도 돋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공각기동대" 3인방인 오시이 마모루, 이토 가즈노리, 카와이 켄지가 손잡고 만든 RPG "산사라 나가"는 어떤 게임이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심거리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 내세워 새로운 흐름을 만든 작품들이었습니다. 비키니 여성 전사가 주인공인 "몽환전설 바리스", "아테나"라던가 전투 미소녀 안드로이드 밀리아가 등장하는 "가딕 외전", 소노다 겐이치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던 "갈포스" 등이 대표적인데, 전부 아는 작품들로 옛 추억이 소록소록 떠올라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네요.

조금 자세하게 들여다보자면, "바리스"의 유코는 이 바닥에서 전설같은 존재로 어린 시절 상당히 호감을 가졌던 누님입니다. 그런데 여기 소개되는 패미콤 버젼은 흑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엉망으로 이식되었다고 합니다. '쿠소게'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죠. 

SNK의 아테나는 "아테나"라는 게임으로 첫 등장한 듯 한데 접해보지는 못햇습니다. 하지만 "킹오파" 시리즈로는 잘 알고 있죠. SNK 간판걸로 아직 쌩쌩한 현역이기도 하고요. 패미콤 버젼은 아케이드판을 이식한 것인데 '비키니'가 방어구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방어력 '0'의 물건이라는 합리적(?) 설정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방어력이 중요한 디자인은 아니겠지만요.

"갈포스". 소노다 겐이치의 이름을 알린 작품이죠. 당시 우리나라 잡지 소개 자료에서 보았던 게임도 무척이나 하고 싶었었는데 결국 손대지 못하고 애니메이션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 

"가딕 외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컴파일의 슈팅 게임인데, 비행형으로 변신 가능한 미소녀 휴머노이드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특이하네요. 본편보다 외전이 유명해진 이유는 주인공 밀리아의 존재가 컸던 것 같습니다. 오리지널 "가딕"은 밀리아는 단지 설정 문장에만 존재했는데 "가딕 외전"에서는 도트 그래픽으로 게임 본편에 화려하게 등장한다고 하니까요. 참고로 아래의 밀리아 일러스트는 가토 나오유키 (스튜지오 누에)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렇게 재미난 정보가 많이 있지만 아쉽게도 게임을 잘 모르면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든데, 전작에 비하면 유명한 게임이 별로 없다는 단점도 큽니다. 그나마 아는 게임도 흔해빠진 아케이드 이식작인 "팩맨"이나 "봄버맨", "마계촌", "이카리" 정도거든요. 때문에 재미는 전작보다 못합니다. 

도판도 전작처럼 부실합니다. 제가 앞서 소개해드린 것 같은 특징적인 주인공이나 메카닉 도판 정도는 충분히 소개해줄 만 한데, 글로만 떼우는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었을까요?
아울러 뒷부분에 수록된 "패미컴 헌터, 난부선을 가다!"와 같은 리포트는 오시키리 렌스케가 동참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용과 큰 상관이 없는 단순 추억담에 불과해서 분량 낭비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게임의 역사, 혹은 패미컴 게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거나, 굉장한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즐기기가 어려운 서브컬쳐 분석 자료입니다. 여러모로 추천드리기는 좀 애매하네요. 가격도 비싼 편이고요. 컬러 등으로 도판을 보강하고 보다 멀티미디어 측면을 강화한 e-book 버젼이라면 모를까, 구태여 구입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