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키메 -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
<<아래 리뷰에는 괴이 현상의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는 괴담을 수집하다가 '노조키메'라는 괴이의 존재에 대해 알게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민속학자 아이자와 소이치가 오래전 겪었던 경험을 기록했던 노트를 입수했고, 그 내용이 자신이 이미 수집해서 "엿보는 저택의 괴이"라고 이름붙였던 괴담과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장소에 일어났던 일이라는걸 깨달았다. 이를 "종말 저택의 흉사"라고 이름붙인 뒤, 두 편의 이야기를 함께 발표했다. 그리고 미쓰다 신조는 괴이 현상에 나름의 추리를 덧붙이는데....
미쓰다 신조의 호러 추리물. 작가 미쓰다 신조가 입수한 두 개의 괴담을 엮어 선보이고, 괴담에 대한 진상을 추리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괴담의 테이프>>와 비교적 유사한 형태이지요.
첫 번째 괴담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이야기를 전해 준 시게루의 대학생 시절 체험담입니다. 당시 시게루는 사이코, 카즈요, 유타로와 함께 여름 방학 동안 산골 마을 별장 관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 관리인이었던 미노베는 절대 가면 안된다는 산책길이 있고, 순례자가 나타나면 자기에게 꼭 알리라는 당부와 경고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순례자 모녀를 만나서 산길을 걸었다는 카즈요의 제안으로 네 명은 가면 안되는 산길을 걷다가 폐허가 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언가에 씌워지게 되었지요.
미쓰다 신조 특유의 집요한 묘사가 돋보이는 폐허가 된 마을 묘사, 그리고 이 곳에서 '괴이'에 씌워진 뒤 모든 틈새에서 시선을 느끼게 되는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대단했습니다. 방 안에 처박혀 모든 틈새를 막고, 눈까지 막아버린 카즈요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게루가 귀가한 뒤, 찬장 안에서 시선을 느끼고 그 문을 열자 비좁은 찬장 안에 몸을 웅크려 시게루를 응시하고 있던 이와노보리 카즈요의 모습을 본다는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네요. '무언가 쳐다보는 느낌'을 이만큼 글로 잘 표현한 작품은 또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유타로와 사이코는 지나치게 씌워졌던 탓에 죽고, 영험한 기도사의 기도로 시게루와 카즈요는 살아남았다는 결말은 설명이 부족하고 급작스러웠습니다. 물론 괴담은 이렇게 설명이 부족한게 더 현실적이기는 하겠지요. 미쓰다 신조 스스로가 작 중에서 괴담과 기담에 완결을 원하는건 뭘 모르는 행동이며, 오히려 이야기 도중에서 뚝 하고 끊어지는게 더 무섭다고도 하니까요.
카즈요가 시게루를 몰래 엿보는 버릇이 생겨 둘의 관계가 끝장났다는 후일담도 오싹하기는 했던만큼, 이 정도면 괜찮은 호러, 괴담 단편으로는 충분했던 수작이었다 생각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 <<종말 저택의 흉사>>에서는, 전편 괴담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폐허가 된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엿보는 괴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민속학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 아이자와 소이치가 비명횡사해 버린 친우 사야오토시 소이치의 고향 마을 토노무라에 명복을 빈다는 핑계로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사야오토시 가문은 마을에서 배척받는 존재였고, 그 이유는 조상 중 한 명이 순례자 모녀를 참살했던 뒤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문은 저주를 풀기 위해, 원령에 씌워지는 '시즈메'라는 역할을 하는 소녀를 데려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시즈메들도 역할을 하다가 미쳐버려 여러 사건을 일으켰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 역할을 할 소녀가 없어서 이미 4년 전에 명맥이 끊겼습니다.
마침 아이자와 소이치가 도착했을 때 사야오토시 가문은 할머니 코노에의 죽음으로 장례 절차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를 엿본 소이치 앞에, 사야오토시 가족을 엿보는 꼬마 여자 아이가 소이치에게만 보이는 등 여러가지 괴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야오토시 가문 당주 기이치, 아내 노리코, 조린 주지, 그리고 그 외 사야오토시 일족 모두가 차례로 죽고 말았습니다. 소이치는 홀로 살아남아 원래 참살당했던 모녀 공양 목적의 순령당 옆에 지어진, 비밀스러운 사당 문을 열어본 뒤 사건의 진상을 깨닫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는 걸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재미, 공포보다는 지루함을 더 많이 느낀 작품입니다. 전편 괴담은 분량도 짧고, 일행의 모험(?)과 공포 체험이 1회성에 그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이자와 소이치가 토노무라 마을에서 겪는 괴이 체험이 계속 1인칭 시점으로 반복되는 탓에 금새 식상해질 수 밖에 없었거든요. 괴이 체험도 실체가 있는 공포라기 보다는 착각과 기분 탓에 불과한게 많아서 섬찟함을 전해주기는 부족했어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자기를 쏘아보는 시선을 느꼈다"는건, 솔직히 이런 시골 마을에 외지인이 찾아가면 누구나 겪을 당연한 경험이잖아요?
묘사도 너무 장황합니다. 소이치가 직접 '노트'에 적었다는 일종의 수기가 이렇게 길고 상세한 묘사로 쓰여졌을리 없다는 점에서는 현실성도 떨어지고요.
더 큰 문제는, 아이자와 소이치가 지나칠 정도로 민폐를 끼치고 다녀서 영 호감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고뭉치에요. 이를 호기심, 용기라고 포장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가 겪는 공포 체험은 모두 본인 탓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고, 그만큼 캐릭터가 비호감이라 몰입하기도 힘들었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대학생 호러물에서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철부지 대학생이 주인공인 작품이었달까요? 문제는 대학생 호러물에서는 이 철부지들은 초반에 끔살당해 나름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끝까지 혼자 살아남는다는 점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고구마스러운 답답함은 다행히 마지막 종장에서 해결됩니다. 미쓰다 신조는 부조리한 존재인 '노조키메'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석한, 나름대로 시원한 동치미스러운 결과를 내어 놓거든요. 이 결과를 내 놓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물과 다를게 없고, 심지어 그가 수기에서 숨겨져 있는, 알아내야 하는 항목 8개를 목록으로 소개하는 부분은 '독자에의 도전'과 유사합니다!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 아이자와와 대화 중 사야오토시가 '어떤 사람이 조린 주지라고 이야기하는걸 주저한 이유
- 조린 주지에게 환대받으면서도 아이자와는 그가 자기를 쫓아내고 싶어한다고 느꼈던 이유
- 사야오토시 가에 시즈메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노조키메가 나타나서 앙화가 내린다는걸 알면서도 4년간 방치한 이유
- 열 살 무렵의 사야오토시 소이치와 자기 아이 쇼이치를 겹쳐보고 토키코가 어두운 얼굴을 한 이유
- 순령당에 신찬을 바치는 역할이 노리코가 아니라 토키코에게 인계된 이유
- 토키코가 맡은 일을 할 때 무섭고 괴롭다고 한 이유
- 노조키메가 된 순례자 모녀 공양 목적으로 세워진게 순령당인데, 그렇다면 순령당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 옆에 사당이 새로 지어진 이유와 사당에 모셔진게 무엇인지?
- 사야오토시가의 종말 저택이 지사이 저택이라고도 불린 이유
미쓰다 신조의 추리는, 사야오토시 가에서는 시즈메 대신에 '지사이'를 이용했다는 겁니다. 4년 전 순례자 모녀가 찾아왔을 때 딸은 시즈메 역할에 부적합했지만, 주술에 정통했던 조린 주지가 딸을 '지사이', 즉 액맞이 역할로 삼은 것이지요. 딸은 병약한 모친을 순령당에서 모시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하고, 순령당 옆에 새로 세운 사당에서 살았습니다. 이 주술을 강화하기 위해 조린 주지는 의식주를 챙겨주는 것 외에, 소녀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도록 했었고요. 그러나 소녀의 어머니는 죽자 사야오토시가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척 꾸몄습니다. 처음에는 연기에 능했던 코노에가 어머니 역할을 맡았고, 코노에가 증손자의 사고사로 몸져 누운 뒤로는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토키코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지요.
그러나 결국 이 사실을 알아낸 소녀가 사야오토시 가문을 멸족시켰고, 손님이었던 아이자와만 살려준게 진상이었습니다. 이 추리는 모두 합리적이며, 덕분에 여러가지 괴현상들도 모두 설명 가능해집니다. 소녀가 아이자와 눈에만 보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르는 척 했기 때문이지요. 코노에 화장 시 시체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던건, 아래 쪽에 죽은 순례자 모친을 함께 화장했기 때문이고요. 사고가 일어날 수 없었던 벌목 현장에서 기이치가 사고로 죽었던건, 소녀가 마을 지리와 상황에 정통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그러고보면 표지가 스포일러인 셈이군요....
아울러 코노에 할머니가 과거 극단 출신으로 연기에 능했다는 등의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단서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한 편의 잘 짜인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없다 생각되네요. 아이자와의 부인이 이 소녀였을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앞의 이야기는 괴담으로는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두 번째 이야기는 비록 지루했지만 종장에서의 놀라운 추리가 단점을 상쇄해 줍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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