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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3

글록 - 폴 배럿 / 오세영 : 별점 3점

글록 - 6점 폴 배럿 지음, 오세영 옮김, 강준환 감수/레드리버

오스트리아의 자영업자 가스통 글록이 국방부 납품을 위한 새로운 권총을 1년 만에 만들어 납품에 성공한 뒤, 전 세계 권총 신업 패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관련되었던 다양한 인물들과 여러가지 사건들을 설명하고 있는 논픽션.

권총 글록이 아니라, 회사 글록의 성공담인데 성공한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성공을 꿈꾸는(많이 늦었지만) 직장인인 탓이지요.
책에 따르면 글록의 성공 요인은 독창적인 구조로 새롭게 발명되었던 총으로 사격과 관리가 용이했다는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특히 총에는 문외한이었던 글록이 1년 만에 권총을 만들어 오스트리아 국방부 납품 경쟁에서 승리했던 비법은 "그는 처음 만들어 봤기 때문에 제대로 해냈다. 기존의 제조업체들은 NIH 증후군 때문에 새로운 디자인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들에겐 기존 권총을 변형하면 되는데 굳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고집이 있었다." (Not invented Here :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닌 기술이나 제품을 배격하는 배타적인 조직문화)"백지에서 시작했다. 그는 고객인 군 전문가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고객이 요청하는 대로 수정해서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적시에 해냈다."라는 건데, UX 디자이너로서 새겨들을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암요, 고객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지요.

하지만 뛰어난 발명품이라도 반드시 성공하는건 아닙니다. 성능면에서 앞섰던 베타가 VHS에게 졌던 역사처럼요. 심지어 글록은 플라스틱 사출물 구성품이 많고, 디자인이 별로였다는 약점도 있었습니다. 정말 못생기기는 했으니까요.

여기서 마케팅의 귀재 발터가 글록이 합류한게 대박의 시작이었던 걸로 설명됩니다. 경찰이 무장한 범인에게 다수 사망한 1986년 마이애미 총격 사건 이후 미국 경찰 전체를 대상으로 권총 교체 바람이 불었는데, 발터의 활약으로 글록 채택이 급증하게 되었거든요. 외부 안전장치가 없는 리볼버와 동일한 시스템을 채용했다는 구조적인 장점도 있었지만, 발터가 사격 교관들을 채용하여 글록에 대한 좋은 소문을 널리 퍼트렸던 덕분이지요. 글록을 구입하면 회사가 현장으로 교관을 파견하여 훈련을 도와주고, 다양한 보상 판매 정책을 실행한 것 역시 주효했었고요.
헐리우드 진출도 빼 놓을 수 없어요. TV 시리즈 <<이퀄라이저>>에 첫 등장했는데, 이퀄라이저는 발터 PPK를 쓰다가 글록으로 바꿨다는 설정이었다네요. 발터는 <<더티해리>>로 대박을 친 S&W와 같은 역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아니면 제임스 본드의 발터 PPK) 다른 경쟁 총기업체와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경쟁업체는 영화 관계자에게 정가를 청구했고, 악당이 사용하는걸 거부했지만 글록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처음 등장하게 된 영화가 <<다이하드 2>>입니다. 용병 테러리스트의 무기로 글록이 등장하지요. 여기서 브루스 윌리스가 내뱉는 대사 - "저놈들 내게 글록7을 쐈어요! 뭔지 모르죠? 독일에서 만든 세라믹 권총이라고요. 엑스레이 기계에 걸리지도 않고 당신 한 달 월급을 줘도 못 산다고요!" - 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총기 마니아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슈퍼 권총을 의미하는 저 대사 내용은 모두 엉터리였지만요. 이후 승승장구한 글록은 대중 문화 영역에서 독보적 입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로우 앤 오더>>는 장편 글록 광고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요. 우리나라에서도 원빈이 <<아저씨>>에서 사용했었지요.


이후 글록은 권총을 언급할 때의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글록은 권총계의 구글로 현대의 권총을 처음으로 정의한 브랜드이며, 가스통 글록은 20세기의 콜트인 겁니다!

발터의 신박한(?) 마케팅은 끝이 없었습니다. 1989년, 미국 총기와 탄약 산업 주요 컨퍼런스 SHOT에서 신형 글록 20을 공개하면서, 스트리퍼 샤론 딜런이 직접 홍보하도록 만든 광고가 대표적입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광고입니다. "10점 만점의 인기 절정 (이 번역이 맞나요? 이 도시에서 가장 핫한 10! 이 맞지 않나....) SHOT 쇼에서 글록의 신형 10mm를 만나보세요." 라는 건데, 권총과 섹스를 결합한 전략은 잘 먹혀들었다고 합니다. 단순 홍보 뿐 아니라 실제 구매 대상자를 상대로 한 접대에서도요.


물론 글록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1992년, 빌 클린턴 당선 이후 정부가 NRA와 대립하며, 여러가지 총기 규제 법안들이 발효되었던게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규제 법안 발효 직전, 앞으로 총을 못 살 수도 있다는 공포 심리에 의했던 총기 수요 폭증 효과도 보았고, 규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신제품 출시로 오히려 글록의 매출은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담당자 쿠오모와 총기 업체와의 협상에서 S&W는 굴복하고 말았지만, 버텼던 글록은 NRA의 S&W 불매 운동의 수혜를 보았고요. 쿠오모는 글록이 합의하지 않으면 정부기관 매출 30%를 잃게될거라 협박했지만 글록은 굴복하지 않았고, 심지어 쿠오모 부처 감찰관실 감찰관도 글록을 구입했다니 애초에 이기는 게임이었던 겁니다. 부시 정권으로 넘어가서는 이런 규제는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러가지 주변 상황을 고려했던, 경영진의 현명했던 판단이 빛납니다. 여러가지 소송을 쏙쏙 빠져나갔던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볼거리였고요.

이렇게 마케팅과 경영진의 협상과 판단에 따른 위기 탈출 등은 전형적인 기업 성공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NRA라는, 주요 소비자가 정치적 이익 단체이기도 한 비교적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요. 제가 어렸을 때 유행했었던, 도요타 등 일본 회사의 성공담을 그렸던 반쯤은 논픽션에 가까왔던 소설들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러나 뒤이어 이런저런 막장 드라마가 불거지며, 글록의 성공담은 <<시마 과장>>으로 돌변해 버립니다. 이를 대표하는게 1999년, 가스통 글록의 암살 미수 사건입니다. 70세라는 나이 치고는 건장했던 글록이 암살범을 제압해서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이는 글록이 세금 탈루를 위해 고용했던 에베르트의 청부였다는게 밝혀지고, 이런저런 복잡한 돈의 흐름이 얽혀있는 영화같은 사건이었지요. 결국 글록은 구속된 에베르트는 물론이고, 글록의 성공을 위해 함께 했던 모든 직원들을 버리게 됩니다. 마케팅 귀재였던 발터는 진작에 회사를 떠났고, 미 정부의 규제에 맞서 현명한 판단을 했던 야누초 등 핵심 임원들 모두를요. 이 때의 동료들은 모두 말로가 좋지 못했다네요. 허나 가스통 글록은 82세 때 31살의 여성과 재혼했고, 여전히 거액의 재산을 누리며 잘 살았다고 합니다. 가스통 글록은 20세기의 콜트가 아니라, 현실 버젼의 시마 과장인 셈입니다. 시마 코사쿠보다 더 비열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입니다만.

글록의 성공담도 볼 만 했지만, <<시마 과장>> 스러웠던 막장 이야기들도 모두 흥미로왔던 책입니다. 한 편의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문제는 '글록'이 이야기의 핵심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도판이나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글록의 시대별 변천 과정과 히트 모델, 경쟁사 모델 등을 도판으로 소개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해도 쉬웠을테고요. 그래서 약간 감점하여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총기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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