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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1

싫은 소설 - 교고쿠 나쓰히코 / 김소연 : 별점 2.5점

싫은 소설 - 6점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손안의책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담과 추리의 결합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교고쿠 나츠히코의 괴담 호러 단편집. <<싫은 아이>>, <<싫은 노인>>, <<싫은 문>>, <<싫은 조상>>, <<싫은 여자친구>>, <<싫은 집>>, <<싫은 소설>>의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야말로 '싫은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입니다. 읽고 나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점에서는 '이야미스' 쟝르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후카타니'라는 인물이 모든 작품에 관여하고 있는 연작 속성이 있다는 것도 특징이고요. 윤회루프물이 많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수록작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괴담물입니다.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구조가 아니고, 괴현상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이야기들을 의미하지요. <<싫은 아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머리가 크고 시체같은 아이의 정체, <<싫은 노인>>에서 구보타 가에서 돌보는 노인의 정체와 폭주의 이유, 살인 사건이 일어난 이유, <<싫은 조상>>에서 불단 속에 모셔진 시체도 아니고, 유령도 아닌 괴물체의 정체는 모두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점은 아닙니다. 설명이 없는 부분은 일종의 여백처럼 독자의 머릿 속에 여러가지 상상을 떠오르게 만들거든요. 그 덕분에 더 무서우면서도, 이래서야 사람이 미치는게 당연하겠구나 싶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들게 해 줍니다. 괴상한 아이에게 화자인 다카베의 아내는 강간당하고 다카베는 발광해 버리는다는 <<싫은 아이>>의 급작스럽고 뻔한 결말은 별로이긴 했지만요.

두 번째 단편물은 괴담물과는 다르게 나름 기승전결로 각자 완결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는 <<싫은 문>>과 <<싫은 여자친구>>, <<싫은 집>>입니다. <<싫은 집>>은 일종의 윤회물로 '싫어하는 느낌'이 반복되는 집이라는 소재는 괴담물스럽기는 하지만, '저주받았다'고 해석한다면 나름 합리적(?)인, 완성된 이야기로 보입니다.
<<싫은 여자친구>>는 '싫어하는 느낌'을 극대화한, 수록작 중 최고의 '이야미스' 물입니다. 고리야마가 싫어하는 행동만 극대화하여 반복하는 여자친구 행동에 대한 묘사가 정말 압권으로, 사람을 정말 말려죽이는 공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단순한 스플래터 고어 호러보다, 이런 일상적이면서도 단순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저주같은 공포가 더 무섭네요. 이건 정말 영상화해야만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수록작 중 최고였습니다. 싫은 느낌, 완성도, 공포라는 모든 측면에서요.
<<싫은 문>>은 불행한 남자 기자키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호텔방에 초대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그 방에서 기다리다가 들어오는 사람을 산탄총으로 쏴 죽이고,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챙겨 도망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기자키는 들어온 사람을 죽이고, 천만엔을 챙겨 달아난 뒤 이어지는 행운으로 성공합니다. 여기까지는 흥미로왔는데, 기자키가 1년 후 그 호텔방을 찾아가 스스로를 스스로에게 죽게 만든다는 결말은 좀 뻔했습니다. 영미권의 판타지 호러스러운 느낌이었어요. <<바벨의 도서관>> 수록작 <<병 속의 악마>>와 설정과 전개, 결말 모두 비슷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수록작들 중에서 싫은 느낌이 가장 덜하기도 합니다. 기자키는 스스로 선택해서 사람을 죽였고, 그 덕에 행운을 손에 넣게 됩니다. 싫은 느낌을 받을 이유가 없지요. 루프는 일종의 문이 1년 전으로 시간 이동하는 느낌이라 죽는다는 기분을 가져가지도 않고요. 알고보면 영원히 죽는 잔혹한 상황이지만 기자키가 그걸 알 방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부분은 설정 구멍같았어요. 기자키에게 방의 루프를 넘겨준 노인은 누군가 기자키가 다음에 오면 나가야 하는게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그 역시 그 말을 하고 루프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복귀하고요. 하지만 설정 상 현재의 기자키가 루프되는 걸 알 수가 없으니, 이 루프를 기자키가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행운을 얻기는 후, 루프가 된다는걸 알아내야 다른 사람을 찾을텐데 그건 설정상 불가능하니까요.

이렇게 괴담물과 단편물은 각각 세 작품 씩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대미를 장식하는건 단편집 전체를 완결하는 표제작 <<싫은 소설>>입니다. 앞서 모든 작품에서 상담역 등으로 등장했던 후카타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상사 가메이와 출장가다가, 그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고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후카타니가 읽는 소설이 앞서 여섯 편의 이야기이며, 마지막 소설은 계속 반복된다는 일종의 루프물이지요. 후카타니가 폭주하여 루프는 끝나지만, 결국 후카타니도 '싫은'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이고요.
그런데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치고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후카타니는 좋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빚 잔치 끝에 자살한 동창 기자키의 처자식 장례식을 도맡아 진행해주고, 회사 선후배 상담역을 맡을 정도니까요. 고리야마가 입원했을 때는 병문안도 가 주고, 도노무라 본부장의 '싫은 집'은 휴가를 내어 함께 찾아가는 등 노력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주위 친구들을 모두 '싫은 상황'으로 잃고 본인도 싫은 상황에 빠진다는 결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능한 꼰대인데다가, 게다가 성희롱도 남발하는 가메이같은 상사가 멀쩡히 살아남는다는건 더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차라리 후카타니가 결국 폭발하고 루프가 끝난다면 시원하게 가메이의 목을 졸라 죽인다는 결말로 풀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물론 이런 이야기였다면 '싫은 소설'은 될 수 없었겠지만요.

별점 4점은 충분한 걸작 <<싫은 여자친구>>와 평작 수준 이상인 <<싫은 노인>>, <<싫은 조상>>, <<싫은 집>>, 그리고 기타 평균 이하 작품들의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기 힘든 흡입력은 있는데, 취향을 많이 탈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뜻 추천드리기는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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