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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1

더 마블 맨 - 밥 배철러 / 송근아 : 별점 2.5점

더 마블 맨 - 6점
밥 배철러 지음, 송근아 옮김/한국경제신문

안녕하세요! 202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년 첫 리뷰는 마블 슈퍼 히어로들을 탄생시킨, 슈퍼 히어로물의 아버지로 유명한 스탠 리의 전기입니다. 1922년 출생하여 2000년대 이후 마블 영화 카메오 출연까지 거의 전 생애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건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어야하는 상황이 그를 만화 작가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대공황의 여파로 '직장'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고, 집안을 지탱할 가장 역할 수행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첫 직장 타임리 코믹스에 취직하게 된 건, 삼촌이 꽂아 주었던 덕분이었고 만화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잡일을 도맡았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사장인 굿맨이 만화 사업이 돈이 된다는걸 깨닫고 영입했던 편집자 사이먼과 당대 최고의 작가였던 '잭 커비' 가 <<캡틴 아메리카>>를 탄생시켜서 큰 인기를 끌어 너무 바빠진 탓에, 스탠 리도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작가 데뷔를 할 수 있었다네요. 천재의 위대한 첫 발이 순전히 낙하산에 운이 결합된 결과였다니 재미있습니다. 세상 사 다 뜻대로 되는건 아니지만, 이런 우연도 참 갚지다 싶군요.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출판 업계의 거물이자 스탠 리의 보스였던 굿맨의 전략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인기 있는 유행에 편승해서 그 유행이 끝날 때 까지 융단폭격하는 방식으로, 거의 언제나 큰 성공을 거둔걸로 나옵니다. 결국 굿맨과 마블은 결국 업계의 제왕이었던 DC를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요. 삼성이 애플을 따라하는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인데, 역사가 증명하는 멋진 성공 사례인 셈입니다.

이후 굉장히 빠른 나이에 편집장이 되어 판타스틱 4,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 등 인기 작들을 쏟아내며 자신과 마블의 독특한 창작법을 확립해 가는 과정도 흥미로왔습니다. 지금도 인기 많은 히어로들 탄생을 다루었으니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스탠 리의 방식을 요약하자면, 우선 이야기 개요 이전에 캐릭터를 확실히 설정하는 것, 그리고 이야기 뼈대만 구성하여 만화가들에게 주고, 그림 작업이 완성되면 글과 대사를 적어넣는 방식이 특징으로 설명됩니다. 엄청난 작업량을 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네요.

그런데 이 방식을 따르면 만화가들의 역할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초창기 판타스틱 4를 비롯한 대부분 인기 작품들은 천재 작가 잭 커비가 기여한 바도 스탠 리 못지 않은걸로 묘사되지요. 그러나 스탠 리는 커비 계약 종료 후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마블에서 그를 쫓아내는데 힘을 보탠 것으로 보입니다. 잭 커비를 배제하고 자기 혼자 오롯이 각광받을 수 있도록 수를 쓴 거지요. 이 책에서는 둘의 결별은 오해와 판단 착오였을 뿐이며 잭 커비가 지나치게 돈을 욕심내었다는 식으로 스탠 리를 변호하지만, 그가 동료의 노고를 은근슬쩍 묻어버리고 혼자 영광을 독차지한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잭 커비를 쫓아낸 것 이외에도 스탠 리가 마블의 '더 맨' 이 되기 위해, 자신을 마블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기 위한 가열찬 노력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처음 출판사에 취직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결국 돈 때문이었다는 것도 씁쓸하고요. 회사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일자리를 보장받으려 했던 것이지요. 이는 군대에서 복무하면서도 타임리 코믹스 스토리 작업을 함께 해서 별도의 돈을 벌었던 등, 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강하게 보인 에피소드들로 설명됩니다. 어린 시절 경험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만약 스탠 리가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면, 잭 커비와 마블에서 더 많은 걸작을 쏟아낼 수도 있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노력의 일환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마블의 '더 맨'이 되는데 성공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뒤 '작가'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더 큰 성공을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은 모두 실패에 가깝다는게 이채롭더군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시도들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만화를 만든다'는게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거든요. 시도는 좋았지만 1960~70년대에 행하기에는 무리수였던 듯 합니다.
말년에 행했던 헐리우드 도전은 눈물없이는 보기 힘들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고요. 특히나 거대한 사기극이었던 SLM (Stanlee.net) 에 참여함으로서 거의 경력이 끝장날 뻔 했던 사건은 처음 알았네요. 그 외에도 실패하거나 사장된 기획은 수도 없고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성공하여 자리매김한건 어떻게보면 천운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한 장르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의 명암, 성공과 실패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그러나 스탠 리에 대한 지나치다 싶은 변명, 방어는 거슬렸습니다. 기대했던 캐릭터들의 창작 비화도 다른 콘텐츠에 소개된 내용과 다른 이야기가 별로 많지도 않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책 치고는 거의 없다시피한 도판은 분명한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탠 리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겠지만, 그렇게 지 않다면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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