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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2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 김태권 : 별점 3점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 6점
김태권 지음/한겨레출판

십자군 이야기 등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김태권이 지은, 육식에 대한 에세이 겸 식문화사 서적. 사람이 고기를 먹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왜 다른 생명을 빼앗아 가면서까지 고기를 끊지못하는지? 영양 때문에, 건강해지기 위해서라고 답하지만 사실은 맛이 좋다라는게 진짜 이유라는 작가의 말에는 저도 뜨끔하게 되더군요. 공장식 축산을 하지 않으면 고기값이 엄청나게 비싸져서 서민들은 고기를 거의 못 먹게 될 거라는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글들도 인상적이었고요.
이런 글들을 <<오디세이아>>, <<걸리버 여행기>>, <<단테의 신곡>>과 같은 서양 고전, <<수호전>>, <<청성잡기>>, <<구지필기>>, <<세설신어>>와 같은 동양 고전, 토르 등의 신화,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간, 거기에 피터 래빗,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과 최규석의 만화, 현대 시트콤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고 있어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글도 재미나게 쓰여져 있고요. 직접 구글 등을 뒤져서 뽑아낸 데이터들도 충실합니다.
또 이야기마다 함께 실려있는 일러스트는 정말 최고입니다. 주제를 잘 나타내면서도 묵직하니, 완성도 높은 그림들이라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주로 공작식 축산과 육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글들이 많지만, 이와는 별개로 고기를 주제로 식문화와 식재료에 대해 다룬 글들도 제법 많은 편입니다. 기독교도들은 사순절에는 고기를 먹을 수 없고 물고기만 먹을 수 있었는데, 17세기 교회가 비버도 물고기라고 이야기하여 캐나다 비버 수가 크게 줄었다는 이야기,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만들 때는 몇 개월동안 닭의 간만 먹었다는 이야기, 일본식 돈가스는 도톰한 돼지고기를 깊은 튀김 그릇에 담가 된 덴푸라처럼 튀겨 내지만, 한국 분식집 돈가스는 재료를 아끼기 위해 프라이팬에 얇은 고기를 튀겨낸게 양국의 차이라는 이야기 (증명된건 아닙니다), 고기국수와 돈코츠라멘의 차이, 곱창의 곱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등이 그러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코고가 무엇인지에 대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시지에 튀김옷과 깍둑썰기 한 감자를 둘러 튀겨낸 감자 핫도그를 이야기하는데, 코고로 불리게 된 이유는 캐나다의 유명한 콘도그 브랜드 이름이 포고이기 때문입니다. 코리안 포고, 즉 코고가 되는 거죠.

방대한 자료 범위 덕분에 좀비가 사람 고기를 먹는 설정과 같이 생각지도 못한 주제도 등장하곤 합니다. 좀비에게 풀린 주술을 푸는 방법이 소금을 먹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소금간을 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인데, 영화같은데에서 써 먹어 봄 직 해 보였습니다.
사료를 토대로 한 게 아니라,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미꾸라지와 두부를 끓는 물에 넣고 삶으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들어가 죽는다는 요리법이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처럼요. 우리나라는 베트남 포 (쌀국수)가 익숙하고, 베를린에서는 분짜가 널리 퍼진 이유가 냉전 때문이었다는 것도 경험 기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자가 베를린 유학 시절 분짜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경험에서 글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분짜는 북베트남 음식이었고 포는 남베트남 음식이었는데, 베트남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베트남 청년들이 동베를린으로 유학갔고, 독일 통일 후 그 학생들이 눌러앉아 북베트남 음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 외, 개인적으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24마리의 검은 티티새>> 관련된 글이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제가 썼던 책 속에도 소개되었던 작품이라서요. 저와는 다르게 검은 딸기 파이가 아니라 소스에 주목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제 책을 김태권 선생님께 한 권 보내 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졸문이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반성도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저를 민망하게 만든건 구글 검색 키워드 등을 추출하여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해서 결론을 내리는 글들이었습니다. 자료를 찾고, 인용할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자료를 만드는 노력과 열의가 저에게는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그 외에도 같은 책을 읽고 주제를 뽑아내었는데도 불구하고 글의 완성도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는건 변명의 여지도 없는 부끄러운 사실이고요.

하지만 공장식 축산과 육식에 대해서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연재물 1회 분량으로 동일 주제를 다루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텐데, 글들을 쪼개지 말고 묶어서, 큰 덩어리로 설득력있게 주장하는게 나았을거에요.
또 당연히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지만 인간이 자연을 잔인하게 대하는건 단지 '식육' 산업에 국한된건 아닙니다. 작게는 애완동물이나 동물원, 넓게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자연을 희생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니까요. 고기에만 집중해서 풀어나갈 필요도 없었고, 그러기에는 너무 비슷한 글들이 많았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글들과 멋진 그림이 함께 하는 좋은 책이지만, 이러한 이유로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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