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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8

거울 속 외딴 성 - 츠지무라 미즈키 / 서혜영 : 별점 2점

거울 속 외딴 성 - 4점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코로는 중학교 입학 직후, 반 친구의 왕따 때문에 등교 거부를 하다가 방의 거울을 통해 기묘한 외딴 성으로 갈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 곳에 모인 일곱 명의 아이들 앞에 늑대 머리 탈을 쓴 소녀가 나타나 오늘부터 내년3월까지, 성 안에서 소원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상은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 준다는 것. 다만 매일 성이 열리는건 일본 시간으로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뿐이며. 그 이후까지 성에 누군가 남아있으면 그날 성에 왔던 다른 아이들 모두가 늑대에게 잡아 먹히는 무서운 벌칙을 받게 된다는 조건이었다.
중학교 1학년 ~ 3학년 사이의 아이들은 서로 친해지면서 그들 대부분이 똑같은 중학교 학생이며, 등교 거부를 하고 있다는 등 서로의 비밀을 하나 씩 알게 되는데....


신간을 취급하는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을 꼽는 '서점 대상'이라는 상이 있습니다. 다른 상들보다는 '재미'가 어느정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비교적 일반적이고 공정한 시각의 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작품은 2018년 서점 대상 1위를 2위와 300점 넘는 차이를 보이며 수상했다는 점에서, 2018년 출간 소설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고,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소개해드렸던 모 랭킹에서 최고의 초보자용 미스터리 중 한 권으로 추천하기도 했었고요. 츠지무라 미즈키는 과거 한 권 밖에 읽어보지 않았었고 평가도 딱히 높지 않았지만 다른 여러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연휴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특별한 곳으로 이동하여 미션을 수행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많습니다. 왕따를 겪던 아이가 모험을 통해 성장한다는 성장기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아이들 캐릭터가 잘 묘사되어 있고, 약간의 추리적이면서도 의외의 요소들이 설정에 녹아들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리온이 알고보니 하와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 처럼요. 이들 각자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로왔고요.
아울러 고코로에게 닥쳤던 왕따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딸 아이 아빠로서 감정 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모자 미오리, 담임 이다 선생의 뻔뻔하고 무책임한 언행에 대해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이에 대한 기타지마 선생님의 이야기도 새겨 들을 만 하더군요. 그 중에서도 왕따 가해자 미오리가 고코로에게 뜬금없이 편지를 보낸 뒤, 그 편지에 대한 답을 받지 못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분개하던 고코로에게 '미오리의 생각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고코로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무리도 멋졌습니다. 누구나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전학생 리온이 고코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장면인데, 서두에서부터 수미쌍관 식으로 이어지는 멋진 마무리였어요. 애니메이션이 발표된다고 하는데, 이 장면만큼은 기대가 크네요. <<너의 이름은>>의 마지막 장면 느낌이 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냐?면 그렇지는 못합니다. 여러 명이 폐쇄된 장소에서 특정 미션을 수행하고 1등은 그에 따른 보상을 얻는다는 전형적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물 설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내용과 전개는 그런 장르적 속성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탓에, 추리 소설이나 이쪽 장르물로 보기는 힘든 탓입니다.
우선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긴장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거울 속 외딴 성에 오고 가는건 순전히 개인의 자유이며, 미션을 성공하지 못해도 아무런 벌칙이 없는 탓입니다. '열쇠'와 '소원의 방'을 찾아야 한다는 미션 자체도 그렇게 비중있게 언급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를 찾는 묘사는 아이들의 말 뿐, 극중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을 정도에요. 그렇게 절박하게 찾는 아이들도 딱히 없고요. 오히려 아이들은 성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기만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은 안하고 서로 대기만 하다가 이야기가 끝나는 셈이에요. 갇힌 것도 아니고, 미션에 실패해도 죽는게 아니니 긴장감이 생길 턱이 없지요.

미션 자체의 흥미도 떨어집니다. '열쇠'와 '소원의 방'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별 볼일 없기 때문입니다. 아키가 돌아가지 않아서 늑대에게 잡아 먹히게 된 리온이 마지막으로 고코로에게 했던 '빨간 모자가 아니야' 라는 말 하나로 해결될 정도로 말이죠. 이 성은 <<늑대와 일곱 마리 어린 양>> 이라는 동화의 세계였고, 그래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린 양이 숨었던 벽시계속에 열쇠, 그리고 소원의 방 입구가 있었다는게 전부거든요. 뭔가 고민하거나,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이 동화 자체가 너무나 직접적인 해답입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쉬워요. 이렇게 동화를 소재로 삼을 경우, 복잡한 설정을 간단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그에 더한 고민은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벽시계 안에 있는게 전부라면, 사실 동화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도 됩니다. 그냥 성 내부를 샅샅이 뒤지기만 했어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을테니까요. 이를 열심히 찾아보았다는 아키 등이 발견하지 못한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동화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리온이 진작에 찾아내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고요.
외딴 성의 정체가 리온의 누나 미오가 만들어낸 공간이라는 진상도 뜬금없었습니다. 유이한 단서는 전기만 들어오는 인형의 집과 7의 배수로 소환된 아이들 사이에 빠져있던 미오의 나이가 전부입니다. 추리의 여지가 없으며, 미오가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어서 작가가 마지막에 대충 추가한 설정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어요.

그나마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만했던건 약간의 서술 트릭스러운 구성입니다만, 이 역시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아이들 대화를 통해 서로가 사는 세계가 미묘하게 다르다는건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스바루가 듣는 워크맨, 마사무네가 가지고 노는 차세대 게임기, 기타지마 선생님에 대한 시각이 미묘하게 다른 등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요. 게다가 서로 같은 중학교에 다녀서 모두 근처에 살 텐데 서로 본 적이 없다면? 아이들이 사는 시대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건 너무 뻔하지요. 주어진 정보를 시각화하기 어려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모를까, 명백하게 다른 사물들을 직접 보고 느꼈을 작품 속 아이들이 진상을 빨리 깨닫지 못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울러 아이들이 학교, 그리고 기타지마 선생님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기타지마 선생님이 미래의 '아키'일 것이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고코로가 여러가지 아픔이 있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왕따를 극복해 나가는 성장기로 보기에도 조금 애매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타인의 언행에 신경쓰며 소심한 탓에 읽는 내내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고코로의 행동이야 왕따를 당했던 경험때문에 그렇다 쳐도, 정작 왕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외딴 성과 친구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극복의 핵심은 모에가 해 주었던 '그래봤자 학교'라는 말이었으니까요. 즉, 고코로가 왕따를 극복하는데에는 기타지마 선생님과 친구 모에만 있었다면 충분했습니다. 외딴 성과 친구들은 필요가 없었어요. 오히려 아키가 기타지마 선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외딴 성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는 측면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왕따와 등교 거부에 대한 과거도 대체로 전형적이라 딱히 새로울게 없었고요. 특별히 재능이 우위에 있지 않은데도 엄마가 사력을 다해 피아노를 치게 한 후카 이야기 정도만이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허나 기대했던 추리물로의 가치는 전무하기에 감점합니다. 이쪽 장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점수를 준다면 더 줄 수도 있겠지만, 왕따 소녀의 성장기에 청춘 모험물을 더한 이야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곧 개봉할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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