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원숭이 -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들녘 |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청 전문 탐정 미나시는 다니구치 악기가 의뢰한, 구로이 악기가 디자인을 표절하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살인 사건 순간을 엿듣게 되었다.
미나시는 피해자 무로이가 만나기로 했었던 여성 '다바타'가 파트너 후유에이며, 후유에가 7년 전 지인 아키에 자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걸 알게 되는데....
미치오 슈스케의 장편. '트릭이 굉장하다!'는 랭킹에 선정되어 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워낙 고전 스타일,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 탓에 트릭이 굉장하다니 도저히 안 읽어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읽어보니 '트릭이 굉장하다!'라는 말은 어폐가 좀 있더군요. 일단 이야기의 핵심인 무로이 살인 사건은 별로 볼게 없습니다. 범인은 다니구치 악기의 간부이자 미나시를 고용했던 가리타였습니다. 거액을 횡령한걸 악덕 탐정사 요쓰비시 에이젼시에게 들켜서 협박을 당하다가, 요쓰비시 에이젼시의 클라이언트인 구로이 악기의 무로이를 살해하고 죄를 요쓰비시 에이젼시 탐정 다바타 후유에에게 뒤집어 씌울 계획을 짜 냈던게 진상이지요.
동기는 말이 되는데, 아쉽게도 별다른 트릭은 없습니다. 거짓 정보를 미나시에게 주고 범행 시간에 도청하게 만든게 유일하다시피 합니다. 그리고 '귀'로만 도청하고 있던 미나시에게 범인이 여자인걸 알리기 위해 ,가리타가 하이힐을 신고 구로이 악기 건물에 침입해 살해했던 정도에요. 변장 트릭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눈' 대신 '귀'가 사용되었다는게 독특했고 나름대로 현실적이라는 점에서는 마음에 듭니다만, 기발하거나 새로운 맛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가리타가 범인이라는걸 입증할 증거가 전무하다는 겁니다. 흉기가 들어가 있던 봉투에는 후유에 지문이 묻어 있었고, 미나시의 지시로 후유에가 구로이 악기 사무실에 잠입했던 탓에 그녀 지문이 현장에서 발견되는 등 후유에가 범인이라는 증거만 넘쳐납니다. 증거도 없이 추리쇼를 펼친 미나시에게 가리타가 진상을 줄줄 털어놓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미나시가 이를 몰래 녹음했는건 더 억지스러웠고요. 가리타의 불륜 상대였던 마키노가 이 때 미나시를 살해하려 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체를 대체 어쩔 셈이었을까요? 이렇듯 이 사건만 놓고 보면 별점 2점도 과하다 싶을 정도에요.
이런 점을 놓고 본다면, 아무래도 '트릭이 굉장하다!'는건 작품 전체에 사용된 일종의 서술 트릭을 이야기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그 정도로 서술 트릭만큼은 일품이었거든요. 비현실적인 여러가지 설정, 그 중에서도 미나시와 그가 거주하는 맨션 로즈 플랫 주민들에 대한 설정 - 귀에 특이한 문제가 있는 '천리귀' 미나시, 눈에 문제가 있어서 항상 선글라스를 끼지만 먼 곳을 볼 수 있는 듯한 '천리안' 후유에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발음을 하지 못하는 미나시의 스승이었던 전(前) 탐정 노하라, 샴 쌍동이같이 행동하는 도우미, 마이미 자매, 뇌에 문제가 생겨 언어 능력을 잃은 대신 트럼프로 예언을 할 수 있게 된 도헤이 등 - 이 현실이라는게 밝혀지는 반전에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제목의 '외눈박이 원숭이' 처럼 뭔가 결여되어 보였던건 진짜!였다는건데 억지스럽지 않게 잘 짜여져 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노하라 할아버지 발음 문제는 그가 과거 매독에 걸려서 '코'를 잃었기 때문이었고, 둘이서 게임 패드 하나로 게임을 하는 쌍동이 자매는 알고보니 각각 왼손, 오른손을 사고로 잃은 아이였다는게 밝혀지는 식입니다. 진상을 중반부에 도헤이의 카드 예언으로 드러내는 전개도 본격 추리물의 '독자에의 도전' 같아서 좋았습니다.
미나시의 도청은 귀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게 아니라, 단순히 도청기를 통한 것이었다는 진상도 현실적이며, 어린 시절 눈에 파묻혔던 사고로 귓볼이 떨어져 나갔다는 이유도 작 중에서 여러번 이야기하는 경험이 바탕이라는 것도 구성과 복선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는걸 의미하지요.
서술 트릭은 7년 전에 자살했던 아키에 사건 이야기에서도 잘 써먹고 있습니다. 악덕 탐정 사무소 요쓰비시 에이젼시는 자신들이 손에 넣은 불륜과 같은 범죄 정보를 이용하여 당사자들을 협박하는게 주요 영업 수단이었는데, 그들이 7년 전 여자 화장실 몰카로 아키에가 남자였다는걸 알아내어 협박했던게 자살의 원인으로, 아키에가 남자라는걸 진상이 드러날 때 공개해서 독자를 놀라게 만들거든요.
또 이 진상을 통해 그녀가 자살했을 때 긴 머리를 대충 짧게 자르고 새 것인 운동복을 입고 있었던 이유, 가방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가 깔끔하게 설명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자신이 여장을 하고 지냈다는걸 부모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는건 충분히 말이 되니까요.
초반에 후유에가 지하철에서 혼자 큭큭 웃고, 심지어 먼 곳의 비행기 추락을 본 '천리안' 같다는 설정의 진상에 대한 추리처럼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도 제법 있어요. 작 중에 계속 반복되는, 미나시가 자주 듣는 아침 방송과 후유에도 좋아한다는 이탈리아 호러물이 단서가 된다는게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공정함' 측면에서는 더할나위 없는 셈이지요.
참고로 진상은 그녀는 라디오를 들으며 웃었고, '오치루 (떨어지다)' 는 라디오 퀴즈를 위해 이탈리아 감독 '루치오 폴치'의 이름을 거꾸로 읽었다는 것으로,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약간 모험물, 액션물 성격도 있습니다. 요쓰비시 에이젼시를 그만두려는 후유에를 구하기 위해 로즈 플랫 거주자들이 총 출동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화끈하고, 달릴 때 달려주는 미덕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기대했던 것 만큼 트릭이 대단한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서술 트릭과 소소한 디테일에서 재미 요소가 많으므로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덧붙이자면, 독특한 인물들과 비현실적인 설정, 세계관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이 모든게 '현실' 이라는게 드러나면서 의외의 진상, 반전이 드러난다는건 작가의 다른 작품인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해바라기가 피는 여름>> 쪽에 더 점수를 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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