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론도 -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월간추리 신인상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소설을 완성한 작가 지망생 야마모토 야스오는 친구의 실수로 원고를 잃어버리고, 친구마저 살해된다. 그러나 추리 신인상 발표에서 자신의 소설 "환상의 여인"과 동일한 작품이 '시라토리 쇼'라는 사람 이름으로 수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야마모토는 시라토리 쇼가 자신의 원고를 훔쳐가고, 친구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복수를 계획하게 되는데...
평이 워낙에 요란 뻑적지근한 오리하라 이치의 대표작이죠. 그동안 국내 출간을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출간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09년 역시 추리소설 리뷰로 시작하게 되는군요^^
일단 이 작품은 중간부분까지는 명성 그대로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시라토리와 야마모토 등 등장인물들과 "도작"이라는 설정이 상당히 괜찮았거든요. 얽혀있는 사건들을 밝혀나가는 과정 역시 재미있었고 전개 역시 탁월하기에 작가의 구성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유명세만큼의 멋진 서술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설정이나 전개가 아주 기발한 것도 아니라 딱히 높은 점수를 주기도 좀 힘드네요. 이른바 "서술 트릭"이라는 함정에 너무 빠져서인지 공정한 정보의 제공이나 명쾌한 설명이 없이 전개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은 솔직히 반칙으로 보입니다. 곳곳에 장치를 마련해 놓고 빠져나가는게, 너무 지나쳤거든요. 핵심적인 부분에서 몇군데만 쓰면 좋았을 것을...
또 마지막의 결말도 상당히 애매합니다. 뫼비우스의 띠 처럼 순환하는, 작품 속의 작가와 작품이 현실로 튀어나오는 전개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너무 멋을 부린 탓인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결국 결말부분까지 뭔가 속 시원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게 되어 버렸어요. 결말 자체도 잘 모르겠고 말이죠. 덧붙이자면 시라토리의 광기에 대한 묘사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보여지고, 자신의 작품을 되찾기 위한 야마모토의 복수극도 허무하기만 할 뿐이었고요. 그나저나 대체 결말이 뭐죠? 야마모토가 미친놈이라는 건가 아니라는건가요? 아니면 장자가 나비의 꿈을 꿨듯이 오리하라 이치가 야마모토의 꿈을 꾼건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좀 의문이 생길 정도로 답답한 작품이었습니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도, 서술 트릭물로 보기에도 수준이 좀 애매하기에 별점은 3점밖에는 못 주겠네요. 분명 재미는 있지만 명성만큼의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뭐 전설의 명작이라도 제 취향에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이른바 "도착" 시리즈 3부작 중 첫번째 작품이라는데 제 취향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한권 정도 더 읽어봐야 될 것 같긴 하네요.
PS : 아울러 "도작"에 관련된 작품이라면 아주 예전에 읽어보았던 장-자크 피슈테르의 "표절" 이라는 작품을 한수 위로 쳐주고 싶습니다. 표절을 뒤집어 씌우기 위한 범인의 장기간에 걸친 계획이 등장하는데 설득력이 제법이었다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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