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모던타임스 - 박윤석 지음/문학동네 |
수없이 읽어온 경성 관련 서적입니다. 특징이라면 픽션이라는 점입니다. 1920년대 경성을 "한림"이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 경성에 대한 상세한 정보 제공이 주 목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당대 묘사와 소개에 주력합니다. 특히, 1920년대 경성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압권입니다. 이 책만 읽어도 경성 시내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질 정도니까요. 어디를 지나 어디를 어떻게 가고, 어디가 어떻게 변했고 등등등 실제 당시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함직한 대사와 상황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장소적인 디테일 외에도 심훈이나 김기진, 한규설 등 당대 주요 인물들도 자세하게 설명되며, 고종의 장례와 만세운동과 같은 중요했던 사건도 짚어줍니다. 손병희가 이완용을 만세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만났다는 일화 등 재미있는 내용이 많은데, 개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독립운동 단체 내부의 내분 이야기입니다. 노론과 소론 등의 당파싸움이 독립이라는 큰 대의 앞에서도 우왕좌왕 파벌 만들기에만 급급하고, 해방 후에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편가르기하여 나라마저 쪼개놓는걸 보면 이게 정말 국민성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고종 승하 후 장례식에 대해 한국식도, 일본식도, 서양식도 아닌 기이한 형태의 장례식이었다고 묘사하는 것도 기억에 남고요.
이런 점들을 비추어 볼 때, 한마디로 픽션의 탈을 쓴 미시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어딘가의 연재물을 모아 놓은 탓에, 하나의 이어지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한림이라는 인물도 뜨문뜨문 등장하고 그와 얽히는 것 같았던 여급 하나코 역시 단순한 주변인물일 뿐이라 별다른 이야기도 없다면 구태여 이들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때문에 반 쯤 픽션에 걸친 형식보다는, 정말 각잡고 주요 인물들 시점으로 나누어 논픽션처럼 쓰는 게 훨씬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픽션으로서의 가치는 한없이 낮고 딱히 재미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우나, 자료적인 가치 하나만큼은 굉장합니다.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단순한 연구서들보다는 쉽게 읽히는 것도 분명하고요. 이 시대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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