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4/11/03

쿠드랴프카의 차례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3점

쿠드랴프카의 차례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가미야마 고등학교 축제에 참가한 고전부는 문집 "빙과"를 달랑 30부만 인쇄하려 했는데, 마야카의 실수로 200부가 인쇄되어 배달되었다. 고전부는 3일간의 축제 기간 중 200부 판매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던 중, 축제에 참가한 단체를 대상으로 장난같은 물건을 훔치는 "십문자" 괴도 사건과 얽히게 되는데...

요네자와 호노부고전부 시리즈 세 번째 작품. 학교 축제를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등장인물별로 1인칭 시점의 묘사가 이어지는 전개가 독특합니다. 덕분에 탐정역의 호타로는 "에너지 절약"이라는 신조에 맞는 여전한 삶과 모습이지만, 다른 고전부원들에 대한 비중과 묘사가 상당히 커지고 캐릭터별로 명확한 역할이 부여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주변인에 머무르는 듯했던 후쿠베입니다. 이른바 데이터베이스라는 역할에 충실한데 퀴즈 경연대회에서 준우승, 요리 대회에서 팀을 이끌어 우승하는 등의 활약으로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주위에 강하게 어필하며, 본인 스스로도 호타로에게 자극받아 사건 해결에 뛰어들 결심을 하는 등 확실히 "성장했다"는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큰 주제 중 하나인 ‘기대’라는 말에 가장 부합하는 고전부원인 셈이지요.
‘기대라는 것은 체념에서 나오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 괴로움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부담감보다 크다’는 문장은 후쿠베–오레키는 물론 안죠 하루나와 코치 아야코, 구가야마와 다나베 지로의 관계에도 대입되는 개념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기대’라는 말로 포장해봤자 결국 ‘질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마야카도 단순한 잔소리꾼이 아니며, 만연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선배에 대항하는 강한 자기 주장과 요리 대회에서의 활약이 인상적으로 그려집니다. 

반면 치탄다의 비중은 조금 애매했습니다. 그녀도 나름대로 부탁과 협상 등의 노력으로 성장한 것은 물론, 요리 대회에서의 활약상(기세두부)은 눈부시지만 실제로 고전부의 문제 해결이나 십문자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영화 상영하는 곳에서의 합동 판매는 실력자 이리스 선배와 안면이 있었던 덕분일 뿐이며, 그 외에는 벽신문부와의 교섭 등에서 실패만 거듭했으니까요. 십문자 사건이 불거진 후에는 그녀의 노력은 사실상 불필요했지요.

이러한 고전부원들의 활약에 더하여 추리물로도 괜찮습니다. "십문자" 사건이 일본어 50음도와 엮인 암호라는 설정은 딱히 새로울건 없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이 나쁘지 않았을 뿐더러 디테일한 소재와 복선을 잘 활용한 전개가 요네자와 호노부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특히 앞부분에서 언급된 동인 만화 "저녁에는 송장이"가 주요 단서로 활용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호타로의 추리뿐 아니라 그림을 그린 것이 누군지를 찾아내는 치탄다와 마야카의 활약, 필명인 안신인 타쿠하가 "아지무"라는 것을 밝히는 데이터베이스 후쿠베의 활약 등 고전부원들의 힘이 합쳐지는 모습도 인상적으로 그려지고요. 오랜만에 ‘4위일체’ 활약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몇몇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가장 아쉬웠던건 범행의 목적입니다. 십문자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까지의 추리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범행 목적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와닿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인물이 노력하지 않는 천재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는 동기야 이해가 되지만, 반쯤은 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취해가며 알릴 내용은 아니니까요. 또한 "쿠" 순서를 건너뛴 것이 이미 잃어버린 것이라는 식의 연결도 논리적으로 무리라 생각됩니다. 해당 작품의 원작 줄거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구가야마는 이해했을 수 있으나, 독자에게는 극도로 제한적인 정보에 불과했으니까요. 공정한 정보 제공 측면에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는 핵심 증거인 학원제 가이드 설명 페이지를 마지막에 공개한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들은 앞부분에 소개된 가이드만을 기준으로 추리를 진행했는데, 실제로는 다른 구성을 가진 페이지가 있었다는 건 반칙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고전부의 위기처럼 묘사되는 문집 200권도 판매가격 기준으로만 보면 약 4만 엔, 부원 1인당 부담은 1만 엔 수준으로, 큰돈이긴 해도 엄청난 위기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어른이라면 한 번의 술값 정도라서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물이라는 청춘 드라마적 전개에 더해, 일상계 추리물로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여러모로 다소 아쉬움은 있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뭐니뭐니해도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고전부원들의 시각으로 그려지는 학원제의 디테일, ‘빨간 클립 작전’을 연상시키는 "볏짚 프로토콜", 요리 시합에서의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승부 같은 잔재미도 풍부하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