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 셜리 잭슨 지음, 성문영 옮김/엘릭시르 |
블랙우드 가문은 육년전 윌리엄 삼촌과 콘스탄스, 매리캣 자매를 제외하고 일가족이 모두 독살당한 사건으로 마을에서 고립되었다. 요리를 했던 콘스탄스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리캣은 사고 후 미쳐버린 윌리엄 삼촌, 광장공포증으로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콘스탄스와 함께 어렵지만 단란하게 살아가는데 사촌 찰스가 방문한 다음부터 생활에 균열이 시작된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열한 번째 책. 고딕 호러의 대가라는 셜리 잭슨의 작품으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무섭다거나 섬뜩한건 아니고 불편하다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작가의 엄청나게 디테일한 묘사들 덕분입니다. 특히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집요한 광기로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 작품 속 사건 사고의 원흉인 화자 매리캣의 성격 묘사가 정말 압권입니다. 초반에 열덟살이라는 나이를 밝혀주지만, 내용 내내 초등학생 이상의 연령으로 생각되지 않는 순수하고 그만큼 완전히 미쳐버린 여자아이의 심리 묘사가 그야말로 극에 달해 있거든요. 이런 류의 캐릭터, 성격은 혐오감을 가질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파이 바닥의 달콤함>의 소악마 플라비아 들루스가 연상되었습니다.
또 시골 마을에서 고립된다는 설정은 <이끼>, 아니면 얼마전 보았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사자개 저택의 비밀>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흔하디 흔하지만, 고립된 자매의 묘사의 디테일과 깊이 모두 상당한 수준이라 대단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과연 누가 얼마나 미친 것일까? 이러한 광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라는게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마지막 화재 이후 벌어지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라 궁금즘을 더해줍니다.
그러나 고딕 "호러"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 무서운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독살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도 초반에 이미 짐작할 수 있어서 대단한 반전으로 생각되지도 않고요. 미쳐버린 노인과 범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언니를 제외하면 과연 누가 남을까요? 또 완벽하게 미쳐버린 매리캣 시점으로만 전개되어 광기나 범행의 이유 같은게 전혀 설명되지 않는데 굉장히 답답했습니다. 그게 뭐든, 최소한 태양이 너무 뜨거웠다 식으로라도 뭔가 설명이라도 해 줬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화형법정>이나 <어두운 거울 속에>와 같은 추리적인 재미요소를 기대했었는데, 그러한 기대에서는 완벽하게 빗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묘사는 압도적이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으며 '미스터리 책장'이라는 레이블로 출간될 작품은 아니었다 생각됩니다. 작가가 쓰고 싶었던 것은 작가가 경험했다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광기 뿐으로 생각되니까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선들 같은 약간 마음 불편한 순문학을 원하신다면 좋은 선택일테지만 정통파적인 추리, 혹은 공포를 원하신다면 추천드리기는 조금 어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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