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4/10/01

지구의 마지막 날 - 필립 와일리 : 별점 3점

지구를 향해 두 개의 별이 다가오는게 발견되었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 "브론슨 알파"와 "브론슨 베타"라고 불리게 된 두 별의 접근으로 지구는 파괴될 위기에 놓였다. 헨드론 박사의 지휘로 과학자들이 모여 지구 파괴 후 지구 궤도에 안착하여 또 다른 지구가 될 "브론슨 베타"로 이주하기 위한 "노아의 방주" 계획이 시작되는데...

필립 와일리의 고전 SF. 바로 직전에 읽은 "하늘의 공포"와 같이 "직지 프로젝트" 결과물입니다. 구글북스를 통해 무료로 읽은 점, 아동용에 가까운 결과물이라는 점도 동일합니다. 때문에 상당 부분 축약이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문어체 형식이 많은 등, 번역의 질도 낮고요.

허나 축약과 번역 문제를 무시한다면, 작품 자체는 지구 멸망을 다룬 고전 SF의 걸작으로 널리 읽힐 만한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1930년대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시대를 앞서간 측면도 분명 있고요. 특히나 외계 운석이 격돌하여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두 개의 별"이 다가오고, 그중 한 개가 지구 궤도에 안착할거라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실제로 "브론슨 베타"가 지구 궤도에 안착하였다고 해서 과연 사람, 아니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일까?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는 수천억 분의 일의 우연이라도 있을 수 있으니 수긍할 만합니다. 첫 번째 접근 이후 지구가 황폐해진 묘사는 "매드맥스"나 "북두의 권"과 같은 세기말, 문명 멸망 이후의 세계를 그린 작품들의 설정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흥미롭기도 하고요. 아울러 냉전 이전이라 소련이나 핵의 위험과 같은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작품 내에 몇 가지 의문점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첫 번째는 헨드론 박사가 우주선을 제조하기 위해 거대한 공장 및 집단 거주 단지를 건설하는데, 이러한 계획의 비용과 장비를 누가 후원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 버전의 줄거리를 보면 시드니 스탠턴이라는 부호가 원조를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책에서는 전혀 그런 이야기가 없거든요.
그리고 처음에 거의 2년에 걸쳐 100명 정도만 탑승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다가, 고작 몇 개월 사이에 남은 인원이 모두 탈 수 있는 두 번째 우주선을 만든다고 하는 설정 파괴도 이해할 수 없는 전개였습니다.

아울러 헨드론 박사를 중심으로 1,000여 명이나 되는 인력이 똘똘 뭉쳐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단결력을 보여주는 과정은 일종의 종교적 광기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들 때문에라도 정식 번역본, 아니면 평가가 좋은 영화 버전을 한번 보고 싶어지네요.

그래도 아동용 번역본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 80여 년이 흘렀지만 읽을 가치는 충분한 좋은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리고 함께 수록된 베리야에프의 단편 "열려라 참깨"가 의외의 재미를 선사해 준 것도 아주 좋았어요. 괴팍한 노인과 충직한 하인 앞에 기술자가 나타나서 로봇을 판다는 이야기에서 갑자기 잘 짜인 범죄물로 마무리되는 의외성이 돋보였거든요. 자동문을 음성인식으로 열 때 목소리 톤에 따라 문이 열리지 않고, 개를 짖게 하면 안 된다는 복선도 잘 녹아들어 있는 등 짜임새도 괜찮았고요. 특히 음성인식 자동문은 제가 음성인식을 이용한 제품 개발에 참여해 보았기 때문에 더 와 닿았습니다.
SF보다는 코믹 범죄물로 봐야겠지만 분명한 수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만큼은 추리-범죄물 애호가시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합성 인간"은 기이한 SF였던 기억이 나는데, 이런 작품을 발표했다니 상당히 놀랍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