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의 세계사, 그림으로 읽다 - 이소부치 다케시 지음, 강승희 옮김/글항아리 |
제목대로 "차" 자체의 역사보다는 "홍차"의 역사에 관련 정보들을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소개하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 홍차를 중심으로 차의 기원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제목에 걸맞게 차를 마실 때 사용했던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각종 도구, 다기들, 차와 관련된 그림과 사진, 지도 등 다양한 사료와 함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책은 유럽에 최초로 소개된 차는 녹차였는데 이것이 왜 홍차로 바뀌었는지 설명해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영국의 수질이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경도가 높은 물이라 여기에 녹차를 우리면 차의 떫은 맛의 요소인 탄닌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데 녹차 대비 탄닌 함유량이 높은 발효차는 중국에서야 떫지만 런던의 경수에서는 순하게 우려져 좋은 맛이 된다고 하네요.
원래 홍차가 실패한 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반발효차를 만들지 못해 완전발효차가 되었고 차를 만드는 공장에서 찻잎을 건조시키는 땔감으로 쓴 소나무의 연기가 찻잎에 착향된 것이 미묘한 향이 난다는 보-히차, 정산소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원산지인 우이산의 보-히차가 영국의 소비량을 따라기지 못하고 격동기의 중국에서 차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가짜 보-히차가 범람하고 더욱 강한 맛과 향을 착향시키기 위해 강제로 훈연한 랍상소종이 지금은 영국의 전통적인 차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니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것이에요.
또 차의 기원을 찾아 이런 저런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가지 차에 대해 소개해 주기도 하는데 홍차 관련된 장소에 대한 기행문이라는 점에서는 <커피견문록>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지노족이라는 소수민족의 량반차가 인상적이었어요. 왜냐하면 반찬처럼 먹는 차이기 때문이에요. 차의 생엽을 유념하여 생강, 마늘, 고추, 소금과 함께 섞어 뜨거운 물을 부은 뒤 먹는다고 합니다. 꽤 맛있을 것 같죠? 비슷한 반찬처럼 먹는 차가 미얀마에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약간 발효한 절인 음식처럼 먹는다는군요.
그리고는 여러가지 차에 관련된 중요한 역사의 흐름을 짤막하게 알려줍니다. 물론 "보스턴 티 파티"가 빠질 수 없죠. 아편전쟁도 어떻게 보면 차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관점도 새로왔고요.
홍차 관련 주요 인물들의 소개와 어떤 활약(?)을 했는지도 상세히 소개됩니다. 얼 그레이 홍차를 만든 그레이 백작 이야기라던가 영국인들이 중국에서 차 수입이 어려워지자 인도의 아삼이나 스리랑카의 실론 등의 식민지를 차 생산지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지금도 그 이름을 강하게 남기고 있는 홍차의 왕 "립턴"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다른 사람들은 정말 홍차를 재배하고 널리 퍼트리는데 노력한 사람이라면 립턴은 순수한 사업가로 생산과 판매에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여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거대 기업을 세운 것이니까요.
참고로 얼 그레이는 유명한 홍차상회 트와이닝에서 정산소종의 훈연향이 랍상소종만큼 강하지 않자 다른 향기에 주목하여 베르가못의 향을 첨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차가 전래되면서 미국인의 실용적인 관점으로 새롭게 등장한 티백, 아이스티, 레몬티 등이 소개되고 마지막은 맛있는 홍차를 만드는 방법으로 끝맺는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읽었던 조지 오웰의 수필을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더 반갑더군요. 내용의 핵심은 "우유를 먼저 붓느냐, 차를 먼저 붓느냐"였는데 조지 오웰의 주장은 우유의 양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우유를 나중에 부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MIF, MIA 논란은 계속 이어졌는데 왕립화학학회까지 나서서 내린 결론은 "우유가 먼저 (MIF)"입니다. 우유를 나중에 넣으면 우유 속의 단백질이 고온의 차에 의해 변성되어 차의 맛과 향이 나빠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과학이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아주 좋은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는 물론 자료적 가치도 충분한만큼 차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의 장정, 디자인도 아주 예쁘고 실려있는 도판들도 컬러로 제대로 수록되어 있는 등 책의 완성도도 높은 편입니다.
2014.11.06 수정 ) 댓글을 읽어보니 오류 정도가 아닌것 같기에 별점은 미정으로 최종 수정합니다.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만 리뷰를 남길 수는 당연히 없습니다. "독서"가 자신의 교양을 쌓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데 목적이 있기도 하니까요. 잘못된 정보를 주는 책을 잘 모르는 독자가 읽었을 때의 폐해의 대표적인 경우라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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