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대기 -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샘터사 |
SF계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으로, 화성인 시점에서 지구인이 아직 화성에 오기 이전부터 지구인 탐험대가 수 차례에 걸쳐 도착하고, 이후 지구인의 이주와 화성인의 멸망, 이주민들의 귀환... 순으로 이어지는 여러 단편이 수록된 연작 단편집입니다.
연대순 배치는 제목처럼 "연대기"라는 느낌을 전해 주는 데 크게 기여하지만, 수록된 작품들이 하나로 통일된 구성은 아닙니다. 본격 하드 SF는 물론 서정적인 동화, 블랙 코미디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거든요. 그래서 몇몇 작품은 다른 작가가 쓴 느낌마저 들 정도입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처럼 아예 대놓고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었더라면 더 나았을텐데, "화성 연대기"라는 속성의 작품만 모아 놓다 보니 송곳처럼 확 튀어나오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은 조금 아쉽더군요.
그래도 한 페이지짜리를 포함한 스무 편이 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볼륨 덕분에 괜찮은 작품도 제법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 반전물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구에서 온 탐험대가 화성인들에게 정신병자로 오해받는다는 "지구인"은 이런 류의 농담물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지적 논리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고, 아담과 이브가 되었는데 이브가 너무 못생겨서 도망쳐버린 사나이 이야기인 "적막에 휩싸인 도시들"은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지만 주인공 월터의 심리 묘사가 대단해서 감정이입이 절로 되었습니다.
이런 블랙 코미디 외에도 화성인의 텔레파시 능력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이야기인 "3차 탐험대"나 "화성인"도 좋은 작품이며, 화성이라는 곳을 망치는 침략자로서의 지구인을 묘사한 "달은 지금도 환히 빛나건만"은 분명한 걸작입니다. 화성인이 멸망한 것이 지구인의 '수두'라는 전염병 때문이라니요!
하지만 환상을 다룬 설정이 반복되고, 작가 특유의 '기묘한 맛'을 느끼기 어려웠던 점 등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또 낡은 소재들이 있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티드 맨"과 같이 지금 시점에 먹히기에는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좋은 작품인 것은 분명한데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났네요. 이 작품을 실시간으로 접했던 당대 독자들이 부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거장다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만큼 장르문학 팬들에게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허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도 조금 묵직한 편이니, 만약 브래드버리 입문자이시라면 다른 단편집을 먼저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덧 : 책의 디자인과 장정은 아주 예뻐서 소장 가치가 충분한데, 출판사가 "샘터"라는 것이 신기하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장르 소설을 출간해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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