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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1

마루타마치 르부아 - 마도이 반 / 김예진 : 별점 2점

마루타마치 르부아 - 4점 마도이 반 지음, 김예진 옮김, 쿠마오리 준 그림/파우스트박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서에서 저명한 의사 가문 시로사키가의 손자 론고는 3년 전, 자택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여인 루주와 의도치 않게 시간을 보낸 뒤 그녀에게 푹 빠졌다. 그러나 론고가 수면제에 취한 틈에 그녀는 사라졌고, 할아버지 지온의 심장 페이스메이커가 정지하여 사망했다.

루주와의 약속으로 사실을 함구한 탓에 할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처벌받은 론고는 3년 후, 가문의 지시를 거부하고 의대에 진학하여 명문가의 사설 법정인 "쌍룡회"에 피고인 "어속"으로 호출되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론고를 위해 저명한 용사인 타츠키 가문의 황룡사 야마토와 대결할 청룡사로 선택된 것은 교토대생 미카가 미츠루와 조수 타츠야였다. 그리고 이윽고 벌어진 쌍룡회에서 3년 전 사건의 진실과 루주의 정체가 차례로 밝혀지는데...

마도이 반의 데뷔작으로 추리 애호가들의 커뮤니티인 하우미에서의 반응이 좋아 구입하였습니다. 사실 구입한 건 꽤 오래전인데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작품의 핵심은 '론고는 무죄이며 진범은 루주라는 정체불명의 여자다'라는걸 밝혀내는 과정입니다. 이게 "쌍룡회"라는 일종의 법정에서 검사인 황룡사와 변호사인 청룡사의 논리 배틀을 통해 진행된다는게 특징이고요. 이러한 전개는 법정물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압도적으로 불리한 론고와 청룡사 측이 처음 생각했던 작전 — 재판관의 손녀인 카나리가 루주일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흘려 주도권을 잡으려는 — 이나, 청룡사와 황룡사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공격과 그 와중에 놀라운 진상이 연이어 드러나는 전개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추리 애호가분들이 입을 모아 칭찬할 만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쌍룡회"부터가 만화적인 설정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교토의 오래된 명문가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귀족들의 여흥이라는 쌍룡회와 젊은 미남미녀들로 구성된 등장인물들은 "오란고교 호스트부" 와 다를게 없으니까요. 하는 행동들도 비슷하고요. 법정에서 암검살이니 낙화 되돌리기니 하는 필살기를 펼쳐 보이는 묘사와 과장된 연출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작품이 코미디가 아니라 완전히 진지한 법정물이라는 겁니다. 

물론 작품이 라이트 노벨이니 그냥 만화와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쌍룡회가 억지의 연속으로 이루어진건 확실히 문제입니다. 3년 전 벌어진 사건의 범인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용의자가 "사실은 그때 다른 여자랑 같이 있었는데 그녀가 범인이다"라고 주장하며, 그녀가 있었다는 증거로 선물받았다는 키스 마크가 찍힌 손수건을 조작해 들이민다는 것부터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제가 검사, 즉 황룡사라면 다른 건 둘째치고라도 그 손수건이 그때 받은 것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를 물었을 겁니다. 쌍룡회가 어느 순간부터 '루주는 확실히 존재했다, 그런데 그녀의 정체는 OO다'는 식으로 흘러갈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첫 번째 증거로 내민 찻잔은 검사인 황룡사가 바꿔치기를 하는 등 정상적인 법정으로 보기 불가능한, 비합법적이고 비합리적인 요소와 설정이 난무한다는 점도 감점 요인입니다. 논하는 사건 자체가 피고의 증언에만 기반하는데다가, 변호사와 검사는 서로 사기만 치는걸 좋은 법정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추리적으로도 별로입니다. 커피가 홍차로 바뀐 것으로 루주의 정체를 밝히는건 논리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결정적 증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애초에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피고이기 때문입니다. 증언의 신빙성을 보장할 수 없어요. 찻잔을 바꿔치기한 것으로 도청 사실을 눈치채는 장면 역시 그럴듯해 보이지만, 똑같은 디자인과 색깔의 찻잔을 준비했다는건 억지입니다. 찻잔의 모양이 목소리로 전달될 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에 놀라운 사실이 속속 밝혀지는 부분도 과했습니다. 루주의 정체야 그렇다 쳐도, 미츠루는 여자였고 야마토는 나데시코였다는 서술 트릭은 불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논리 배틀의 탈을 쓰고 있지만 불합리한 요소와 억지가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와 닿지 않는 만화적인 설정과 읽기 힘들게 만드는 장황한 대화 역시 감점 요인입니다. 후속작이 있나 본데 도저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차라리 만화였다면 조금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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