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타마치 르부아 - 마도이 반 지음, 김예진 옮김, 쿠마오리 준 그림/파우스트박스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서에서 저명한 의사 가문 시로사키가의 손자 론고는 3년전, 자택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여인 루주와 의도치 않게 시간을 보낸 뒤 그녀에게 매료된다. 그러나 론고가 수면제에 취한 틈에 그녀는 사라지고, 할아버지 지온의 심장 페이스메이커가 정지하여 사망한다.
루주와의 약속으로 사실을 함구한 탓에 론고는 할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처벌받지만 3년 후, 론고는 가문의 지시를 거부하고 의대에 진학한 탓에 명문가의 사설 법정이라 할 수 있는 "쌍룡회"에 피고인 "어속"으로 호출된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론고를 위해 저명한 용사인 타츠키 가문의 황룡사 야마토와 대결할 청룡사로 선택된 것은 교토대생 미카가 미츠루와 조수 타츠야. 그리고 이윽고 벌어진 쌍룡회에서 3년전 사건의 진실과 루쥬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는데...
안녕하세요. 그간 격조했습니다. 3월 들어서는 통 책을 읽지 못했어요. 핑계이긴 하지만 이런 저런 일이 많았습니다.
오랫만에 읽게 된 이 작품은 마도이 반의 데뷰작으로 추리 애호가들의 커뮤니티인 하우미에서의 반응이 좋았기에 구입한 것입니다. 사실 구입한건 상당히 오래 전인데 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론고는 무죄이며 진범은 루주라는 정체불명의 여자이다' 라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 과정이 "쌍룡회"라는 일종의 법정에서 검사인 황룡사와 변호사인 청룡사의 논리 배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이점이죠.
이러한 전개는 법정물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압도적으로 불리한 론고와 청룡사 측이 처음 생각했던 작전 - 재판관의 손녀인 카나리가 루주일 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흘려 주도권을 잡으려는 - 이라던가, 청룡사와 황룡사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공격과 그 와중에 놀라운 진상이 연이어 드러나는 내용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추리 애호가분들이 입을 모아 칭찬할만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선 "쌍룡회"부터가 만화적인 설정이라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교토의 오래된 명문가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귀족들의 여흥이라는 쌍룡회와 젊은 미남미녀들로 구성된 등장인물들의 설정은 <오란고교 호스트부> 수준이죠. 하는 행동들도 비슷하고요. 문제는 이 작품이 코미디가 아니라 완전 진지한 법정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법정에서 암검살이니 낙화 되돌리기니 뭐니 하는 필살기를 펼쳐보이는 묘사와 과장되고 현란한 묘사가 결합되어 도무지 와 닿지 않았어요.
물론 이건 작품이 라이트 노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단점으로 지적하기는 어렵긴 합니다. 그냥 만화라고 생각하면 뭐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허나 쌍룡회가 억지의 연속으로 이루어 진 것은 확실히 문제에요. 3년전 벌어진 사건의 범인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용의자가 "사실은 그 때 다른 여자랑 같이 있었는데 그녀가 범인이다." 라고 주장하며 그녀가 있었다는 증거로 그녀에게 선물받았다는 키스마크가 찍힌 손수건을 조작하여 들이민다는 것 부터가 설득력이 떨어지죠. 제가 검사, 즉 황룡사라면 다른건 둘째치고라도 그 때 받은 손수건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를 물었을겁니다. 쌍룡회가 어느 순간부터 루주는 확실히 존재했다, 그런데 그녀의 정체는 OO이다는 식으로 흘러갈 하등의 이유가 없잖아요?
게다가 첫번째 증거로 내민 찻잔은 검사인 황룡사가 바꿔치기를 하는 등 정상적인 법정으로 보기 불가능한 비합리적인 요소가 난무하는 것도 감점 요인이고요.
즉, 논하는 사건 자체가 피고의 증언으로만 기반하고 있고 변호사와 검사는 서로 사기만 치는 법정물이 좋은 법정물일 수는 없겠죠.
추리적으로도 점수를 줄만한 부분은 별로 없습니다. 커피가 홍차로 바뀐 것으로 루주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결정적 증거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애초에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피고라 증언의 신빙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찻잔을 바꿔치기한 것으로 도청 사실을 눈치채는 장면 역시 그럴듯해 보이지만 마찬가지로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색깔의 찻잔을 준비했다는 것은 억지죠. 찻잔의 생김새가 목소리로 전달될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놀라운 사실이 속속 밝혀지는 부분도 좀 과하다 싶더군요. 루주의 정체야 그렇다쳐도, 미츠루는 여자였고 야마토는 나데시코였다는 서술트릭은 과했을 뿐더러 작품에 딱히 필요했다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논리 배틀의 탈을 쓰고 있지만 불합리한 요소와 억지가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와 닿지 않는 만화적인 설정과 읽기 힘들게 만드는 장황하고 지루한 대화 역시 감점 요소고요. 후속작이 있나본데 도저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차라리 만화였다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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