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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7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 도로시 길먼 / 송섬별 : 별점 2.5점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 6점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북로드

평범한 노부인 폴리팩스 부인은 뻔하고 지루한 삶으로 자살 충동까지 느끼자, 어린 시절 꿈이었던 스파이가 되기 위해 워싱턴의 CIA를 방문했다. 한편 중요한 작전 때문에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은 요원을 찾던 카스테어스가 마침 부인을 만난 뒤 그녀를 작전에 투입하는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건 없지. - 폴리팩스 부인, 18페이지.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스파이가 되기를 결심하며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작품을 지배하는 핵심 재미 요소가 바로 주인공 폴리팩스 부인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캐릭터 중심의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사실 이 작품처럼 '의외의 인물이 오해나 착각으로 스파이로 활약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F학점 첩보원"이라던가 톰 행크스의 "사랑의 스파이" 등등이 있죠. 그러나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의외성 면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합니다. 60대 할머니라는 설정 덕분입니다. 스파이로 발탁된 이유부터가 누가 봐도 관광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친근한 외모 덕분이니까요.

아울러 할머니의 '특수 능력'은 외모 뿐만이 아닙니다. 친화력, 그리고 쌓아온 '경험치'도 발군입니다. 슈퍼 히어로물답게 능력이 작품 내에서 적절히 활용되는데, 룰라쉬와 친해져 알바니아의 지도가 실린 책을 빌린다거나, 바소빅 소령을 안마해 주며 인간관계를 쌓는 등 입니다. 이를 통해 탈출에 필요한 준비물을 하나둘 갖춰 나가게 됩니다.

캐릭터 묘사도 뛰어납니다. 정말 친근하고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할머니를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폴리팩스 부인과 패럴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둘 사이의 묘한 케미도 큰 재미 요소고요. 전형적인 전개지만 유쾌하고 찰진 대사 덕분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알바니아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한다는 당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설정은 설득력 있었습니다. 알바니아라는 특수한 무대도 매력적이었고, 러시아 요원이 탈출을 돕는 이유로도 충분했습니다. 드가메즈가 부인에게 선물한 트럼프 카드에 모종의 장치가 있었다는 결말도 무난했습니다. 다만 쉽게 예상 가능해 대단한 반전이라 보긴 어렵지만요.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야기예요. 앞서 캐릭터가 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긴 했지만, 무려 400페이지 분량치고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권태에 빠진 폴리팩스 부인이 CIA에 가서 임무를 받고, 드가메즈의 죽음 후 패럴과 함께 사로잡히는 1부. 알바니아로 끌려간 뒤 탈출을 준비하는 2부. 그리고 본격적인 탈출이 그려지는 3부입니다. 그러나 1부는 동화에 가까운 허술한 내용으로 실망스러웠고, 2부의 탈출 준비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2부 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 즉 알바니아 비밀경찰 넥스뎃 대령이 사실 러시아 정보원으로서 몰래 탈출을 돕는다는 전개는 설득력을 주었고, 3부의 탈출 과정은 하드한 모험물답게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연과 운에 의존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억지도 많습니다. 지니의 정체가 죽은 줄 알았던 천재 중국인 과학자 하웰 박사라는 설정은 과했습니다. 단순히 지니 없이 부인과 패럴이 탈출에 성공하고 트럼프 카드 속 필름을 발견하는 정도로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죠. 드가메즈의 죽음부터 탈출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심지어 폴리팩스 부인이 직접 사살까지 하는데, 그 후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결말은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캐릭터의 매력은 뛰어나지만 이야기의 허점과 억지가 많아 감점했습니다. 전통적인 슈퍼 히어로물에 가까운 유쾌한 작품으로 영화로 본다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덧: 찾아보니 영상화도 두 번이나 되었더군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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