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 유키 쇼지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
"나"는 사이공으로 파견된 니치난 무역 사원이다. 나는 직무와 함께 도쿄 복귀 예정이었던 전임자 가토리의 실종 사건에 대한 진상을 알아낼 의무까지 지니게 된다.
나는 가토리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훈과 임시로 머무는 거처 양양관의 수상쩍은 이웃들인 득, 토 등과 얽히며 복잡한 베트남의 정치적 세력들의 암투가 벌어지는 싸움의 한 복판으로 휘말려 들어가는데....
일본 추리 문학사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스파이 소설의 고전.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에서 무려 19위로 선정되어 있을 정도죠.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포인트는 분명합니다. 베트남 전쟁 직전의 남베트남을 무대로 하여 평범한 일본의 파견 주재원인 주인공이 목숨이 위태로운 첩보전의 세계에 휘말려 들어가는 과정을 꽤나 설득력있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스파이 소설에서 기대해 봄직한 정교한 작전 역시 등장하지 않아요. 주인공은 모리가키의 덫에 걸린 것에 불과하거든요. 우연이기는 하지만 사택을 빠져나와 양양관에 머물게 된 시점부터 말이죠. 주인공이 한 일이라곤 모리가키의 부탁으로 옆방 토에게 서류를 전해준게 전부고요.
물론 주인공이 우편배달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토리를 찾기 위한 나름의 노력, 행동을 보이는 과정에서 두 세력, 응오딘지엠 응오딘지엠 정부 전복을 노리는 세력과 베트콩 세력 양쪽 모두에게 쫓기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죠. 제목이기도 한 "고메스의 이름은..." 이라는 말을 살해당한 "초"로부터 들은 이후 숨쉴틈 없이 여러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아울러 베트남 전쟁 직전의 베트남에 대한 묘사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작가 후기에서 밝히듯 당시 베트남을 방문하지 못하고 한정된 자료로 썼다는데 그런 것 치고는 사이공과 여러 유명 장소에 대한 묘사 모두 괜찮았어요. 뭐 저도 가보지도 못하고 당시를 살아보지 못했으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럴듯 하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명 식당과 클럽, 주인공이 휘말린 양대 조직과 조직원들의 묘사 모두 말이죠.
특히나 잔류 일본군을 소재의 하나로 사용한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고메스를 자칭한 전화를 일본어로 한 이유는 베트남어와 프랑스어로 주인공과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약간의 트릭같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작품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외려 이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에요.
하지만 과연 이게 스파이 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주인공은 스파이가 아니고 별다른 작전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스파이의 사전적 의미는 "수단을 써서 적이나 또는 경쟁 상대의 정보를 탐지하여 자기편에 통보하는 사람" 인데 주인공은 그냥 봉투 전해주는 운반책일 뿐입니다. 그것도 끝까지요. 이런 류의 소설에서는 아무리 일반인이라도 결국 특정 조직을 위해 싸워나가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요소는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주인공과 가토리를 진짜 스파이 모리가키가 끌어들인 이유 역시 불분명합니다. 몰래 봉투를 전해주기 위한 의도였다면 양양관에 거주하게만 해도 충분했을 거에요. 같은 일본인이라 반가운 마음에 자주 방문한다, 정도의 핑계를 대고 방문한 후 돌아갈때 직접 옆집 문 앞에 봉투를 던져 놓는 정도로도 가능했을 일이니깐요.
한마디로 주인공 입장에서는 모험물이나 재난물(?)일 수는 있지만 스파이 소설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어요.
게다가 결말이 시시하다는 것도 감점요소입니다. 무엇보다도 고메스가 누구였는지 중요치 않다는건 정말 문제에요. 고메스는 그냥 고메스로 어차피 주인공과는 별 관계없는 베트콩 조직내 암호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이게 뭔가 싶더군요. 최소한 <부머랭 살인사건>에서의 "왜 그들은 에반스를 부르지 않았을까?" 라던가 <39계단>의 "39계단" 정도의 의미와 용도는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 말을 들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는 식으로요. 허나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수사와 미행을 통해 사건에 개입하고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 말은 하등의 상관이 없어요. 이렇게 소재를 낭비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그나마 조직에서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만큼은 긴박감이 넘치지만 이 역시 모리가키의 변덕에 불과할 뿐더러 운이 많이 좌우하기에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묘사도 매력적이고 내용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위의 단점도 있기에 감점합니다. 고전으로 일상계 스파이물이라는 독특함은 있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슈퍼 스파이들이 난무하는 지금 시점에 먹힐만한 이야기도 아니에요. 딱히 고전을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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