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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2

공허의 상자와 제로의 마리아 1 - 미카게 에이지 / 제이노블 : 별점 2점

공허의 상자와 제로의 마리아 1권 - 4점
EIJI MIKAGE/테츠오/제이노블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호시노 카즈키)는 엄청난 미모를 갖춘 전학생 오토나시 아야를 보자마자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아야는 '오늘 모기 카스미의 팬티 색깔은 하늘색이야'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종례를 앞두고, 아야는 반 친구들에게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어디서 나온지도 모를 '마리아'라는 이름을 써 주었고, 아야는 그런 나를 붙잡고 자신이 끝없이 3월 2일을 반복하고 있다는걸 알려주는데...

라이트 노벨로, 원제는 『空ろの箱と零のマリア』입니다. 일본에서는 2009년 전격문고를 통해 발매되었으며, 국내에는 대원씨아이에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총 7권으로 완간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는데 최근 e-book으로 재출간되었더군요. 라이트 노벨은 평소 전혀 읽지 않지만, '걸작 시간 미스터리'물로 선정된 적이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시간 미스터리'답게, 의도하지 않게 특정 시간을 반복한다는 타임 루프물입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로 대표되는 설정이지요. 소설로도 "일곱 번 죽은 남자" 등에서 활용되었고요. 다른 작품들처럼 무한 시간 반복을 없애려면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특징도 분명합니다. 우선, 시간을 반복하는건 화자이자 주인공 호시노가 아닙니다. 호시노는 이 사실을 전학생 오토나시 아야에 의해서 나중에야 깨닫게 되거든요. 

그리고 작 중 '거절하는 교실'의 시간 반복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 소원을 빈 '상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찾아야 한다는게 조건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일종의 '후더닛' 류의 추리물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이를 밝히는 추리도 합리적이에요. 상자의 주인인 모기 카스미는 시간을 수없이 반복한 탓에, 자기 자신을 꾸밀 이유가 없어져서 화장품을 가지고 다니지만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걸 통해 알아채거든요. 호시노 카즈키의 친구 하루아키가 상자의 주인 제로였다는 걸 알아채는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모기 카스미가 상자에 갇힌 뒤, 다시 시간 반복이 일어났는데 모기를 아이가 대체했다는 상황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루아키는 '모기가 굉장히 예뻐졌다'는 식으로 이걸 알아챈 말을 했기 때문에 정체가 발각되고 말지요. 독자에게 주는 단서로도 공정한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모기가 상자의 주인이 되어 빈 소원이 지극히 청춘 연애물스러운 동기였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모기는 카즈키를 좋아해서, 고백이 거절당한 뒤 고백한 날을 반복했습니다. 수만번의 반복 끝에 카즈키가 고백을 받아주는건 물론, 카즈키가 되려 고백을 하게끔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매 번 새로운 날이 또 시작되었고 카즈키는 고백했다는걸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거지요. 사춘기 소녀라면 할 법한 귀여운 생각이었는데, 그 단순한 소망을 상자가 뒤틀린 형태로 이루어주었다는게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소원을 이루어 주지만 그걸 치명적인 방식으로 왜곡한다는건 고전 걸작 "원숭이 손"을 비롯해서, "펫샵 오브 호러즈" 등에서 자주 보아온 장치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소망 자체가 귀여운 만큼, 반전의 잔혹성이 더 크게 다가왔어요.

하지만 유치한 인물 설정과 대사, 그리고 라이트 노벨 특유의 감정 과잉 묘사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대사로 모든걸 표현하려고 해서, 소설보다는 만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설정 면에서도 몇몇 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모기가 상자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시간이 반복될수록 상자에서 거절당한(모기가 죽인)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모기만 남게 되니까요. 즉, 대단한 추리 없이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오토나시 아야는 이미 이전에 상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어 모기와 대결한 적이 있었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다시 시간이 반복되자 이를 잊어버렸다는건, 설정 붕괴처럼 느껴집니다. 카즈키에 대해서는 기억이 남아있었으니까요. 물론 상자의 주인 제로나 상자의 능력이 개입하여  아야의 기억을 조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상자의 주인은 결국 반복 속에서 당연히 드러날 터라 구태여 조작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또, 모기가 죽어서 상자에 갇힌 상황에서도 시간의 반복이 깨지지 않았다는 설정 역시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 조금 답답했고요.

물론 이런 설정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제가 읽은 1권 외, 전 7권에 이르는 나머지 분량에서 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읽을 의욕이 생기지 않는군요. 재미가 없는건 아니고, 설정도 매력적인 부분이 있지만, 캐릭터성과 연출 방식이 라이트 노벨 특유의 유치함에 갇혀 있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앞으로는 무슨무슨 리스트에서 추천하는 작품이라고 무조건적으로 읽는건 지양해야 겠습니다.

2009/10/24

타임 리프 1, 2 - 타카하타 쿄이치로 / 키누타니 유 : 별점 3점

타임 리프 1 - 6점
타카하타 쿄이치로 지음, 키누타니 유 그림/대원씨아이(단행본)

평범한 여고생 카시마 쇼우카는 어느날 잠에서 깬 뒤 분명 "월요일" 이어야 하는데 그날이 "화요일" 이라는 사실을 알고 당혹해한다. 그런 그녀가 찾은 것은 자신의 일기장. 기억에 없는 "월요일"에 쓴 일기는 지시한다. 이 일에 대해 같은 반 동급생 와카마츠 카즈히코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일본 플레이보이지 선정 "미스테리 - 철야본을 찾아라!"
위 포스트에서 언급한 일본 미스테리 올타임 베스트 100에 무려 18위! 라는 순위로 올라와 있는 작품. 국내에서는 라이트노벨 대표 브랜드인 NT 노벨을 통해 2004년도에 발간되었습니다. 이 리스트를 통해 알지 못했더라면 절대 구입할 일이 없었겠지만, 이런 리스트에 워낙 잘 낚이는터라 혹해서 구입하게 되었네요. 
그런데 감상문에 앞서 구입 과정을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정말 드라마틱했거든요. 국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아낸 뒤 인터넷을 여러날 뒤졌지만 구하는 사람은 많은데 책 자체는 도저히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과 5년밖에 안 지난 책을 이렇게 구하기 힘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절판본 구하는데는 상당히 유능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루트를 총 동원한 끝에 내린 결론은 "포기"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난 주말 방문한 북오프 신촌점 판타지소설 서가에 이 책이 두질이나 떡하니 꽂혀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거 참 황당하기도 하고 좀 어처구니도 없고 기쁘기도 하고... 그야말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이겠죠.
책도 어렵게 구한만큼 상당히 재미있게 읽어서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생각했던대로 본격 미스터리의 요소가 많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몸은 그대로 있고 정신만 시공을 넘나드는 "타임리프"라는 설정 자체도 독특했고, 이러한 공상과학같은 이야기가 지구와 우주가 걸려있는 거창한 세계관이 아닌 실제 있음직한 고등학교를 무대로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설득력있는 소품이라는 것, 그리고 "타임리프의 원인"과 "잊혀진 일요일에 벌어진 사건의 진상" 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진진했기 때문이죠.
특히 이 책을 광의의 미스터리의 영역에 위치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 이 타임리프로 시공간을 오가는 이야기가 일요일에서 토요일까지의 딱 6일간으로 깔끔하게 정리되고 있으며 모든 이야기들이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지도록, 퍼즐처럼 씨줄과 날줄같이 잘 짜여져 있는 등 치밀함이 돋보이는 것이 한층 재미를 더합니다. 전개과정에서도 복선과 여러 단서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것은 물론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수학시험이나 편지, 호신술 같은 장치도 이야기의 설득력을 더하며 재미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거창한 이름의 리스트 상위권에, 무려 18위에 위치하는 만큼의 재미는 보장하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간 저 역시 라이트노벨이라는 쟝르를 무시해 온 경향이 없잖아 있는데 반성해야 겠더군요. 어렵고 무겁고 진지하게 쓴다고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죠. 쉽고 재미있게 쓰면서도 쟝르 자체의 재미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책입니다.

단, 어디서 본듯한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 (시간을 달리는 소녀 부터 시작해서...) 과 너무 어린 취향의 책 디자인과 삽화는 마음에 들지 않은 탓에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점. 그래도 재미는 있었던 만큼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있다는데 꼭 구해봐야겠습니다. 역시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겠죠.^^

2017/10/09

허구추리 - 시로다이라 쿄 / 박춘상 : 별점 2점

허구추리 - 4점
시로다이라 쿄 지음, 박춘상 옮김/디앤씨북스(D&CBooks)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머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고 알려진 아이돌 나나세 카린의 유령이 마쿠라자카 시에 나타났다. 큰 가슴에 미니 드레스, 리본을 달고 손에는 큰 철골을 든 모습이라서 사람들은 그녀를 "강철 인간 나나세"라고 불렀다. 유령은 사람들을 습격하다가 결국 경찰마저 살해해 버렸고, 사건에 관련된 교통과 순경 사키는 우연히 만난 소녀 이와나가 코토코, 그리고 전 애인 쿠로와 함께 강철 인간을 없애기 위한 승부에 나섰다... 

일본작가 시로다이라 쿄의 장편 소설입니다. 추리 만화 "스파이럴" 등의 원작으로 알려진 작가이지요. 본 작도 만화적인 설정이 가득찬 라이트 노벨이기는 한데,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진짜 진상이 아니라 정말로 있어보이는 가설을 연달아 내 놓는다는,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이런저런 가설, 추리가 선보이는 작품은 그 중에서 "진상"을 찾아내는게 보통 이야기의 핵심인데, 이 작품은 "허구(사실에 없는 일을 사실처럼 꾸며 만든) 추리"를 진짜라고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게 목적이거든요. 이 아이디어 덕분에 '12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같은 이유로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애호가 모임인 "하우미스터리"에서도 추천하는 분들이 제법 계셨을 테고요. 저도 "하우미스터리"에서 관련 정보를 접하고 관심을 가지던 차에, 기나긴 추석 연휴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집어들었습니다.

일단 라이트 노벨답게 쑥쑥 읽힙니다. 만화 원작을 많이 쓴 작가답게 캐릭터와 장면을 시각적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묘사, 재치넘치는 대사도 괜찮아요. 주인공인 일안일족 아가씨 이와나가 코토코도 마음에 듭니다. 귀한 집 아가씨이지만 상스러운 말도 서슴없이 내뱉고, 남자친구 사쿠라가와 쿠로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개성적이면서도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새 말로 '갭모에'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외하면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우선 "허구 추리", 즉 이와나가가 '강철 인간 나나세 종합 사이트'에 올리는 네 가지의 추리 모두 조금만 뒤집어보면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바로 반박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될 정도로요.
그리고 네 번째 추리를 설득력있게 포장하기 위해 앞의 세 가지 추리를 내 놓는다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테라다 형사가 혼자서 수사에 나섰다", "나나세 카린의 아버지가 악의를 가지고 수기를 남겼다.", "나나세 하츠미가 매스컴에 수기를 흘렸다."라는건 구태여 이렇게 가설까지 만들어가며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니까요. 네 번째 추리의 핵심이 이 세가지 요소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첫 번째 테라다 형사 이야기를 제외하면 결국 나나세 카린은 "궁지에 몰리고", "죽고 싶었다."라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기에 외려 드러내면 안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냥 네 번째 가설로 정면 승부를 하면 될텐데, 구태여 앞에 장황한 설명을 덧붙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또 네 번째 "허구 추리"의 핵심인, 나나세 카린이 실제로 살아있다는 시체 바뀌치기 트릭은 조금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았지만 솔직히 현대 경찰을 우습게 본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만화적인 설정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특히 인어 고기와 쿠단의 고기를 함께 먹은 사쿠라가와 쿠로에 대한 설정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쿠단의 "미래 결정 능력"에 불사의 능력이 결합되어 죽지 않고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사건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 탓입니다. 단지 강철 인간과 호각으로 맞붙기 위한, 액션용 소품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입니다. 능력이 있다고만 묘사되지 딱히 어떻게 발휘되는지 묘사가 없으니 독자는 알 도리가 없지요. 그냥 이와나가가 올린 글로 사건이 해결되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이 점은 쿠로의 사촌 누나이자 동일한 힘을 가졌으며, 강철 인간 나나세를 만들어낸 최대의 적 릿카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럴 바에야 이와나가는 귀신과 소통할 수 있으며 쿠로는 일종의 호위 무사라는 정도로 끝내는게 깔끔했을 겁니다. 아니면 "미래 결정 능력"을 좀 더 시각화하던가요("그래 결심했어!"와 함께 두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다던가...).

이렇게 독특함 외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조금 연령대가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구태여 구해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화로도 발표되었는데 만화가 훨씬 괜찮을 것 같네요.

2023/06/10

유리탑의 살인 - 치넨 미키토 / 김은모 : 별점 2점

유리탑의 살인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물 전달 시스템 트라이던트를 개발하여 엄청난 부를 거머쥔 코즈시마 타로는 자신의 저택 '유리관'에 조촐한 행사를 위해 여러 손님 - 유명 추리 소설가 쿠루마 코신, 편집자 사쿄 코스케, 영능력자 유메요미 스이쇼, 형사 카가미 츠요시, 그리고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 - 을 초대했다. 유리관에는 손님 외에 집사 오이타 신조, 메이드 토모에 마도카, 요리사 사카이즈미 타이키와 코즈시마 타로의 주치의 이치조 유마가 함께 있었다.
행사 직전, 이치조 유마는 코즈시마 타로를 독살했다. 코즈시마가 동생의 난치병 치료를 특허 분쟁으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사로 위장할 계획은 즉사하지 않은 코즈시마가 전화를 건 탓에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뒤이어 집사 오이타, 메이드 마도카가 연달아 밀실에서 살해당한채 발견되자, 유마는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의 조수, 왓슨 역을 자처하여 컴비를 이루게 되었다. 두 사건의 범인에게 코즈시마 살해까지 떠넘기기 위해서였다.


발표 당시, 미스터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 대부호가 만든 기묘한 저택이라는 무대
  • 저택이 고립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3건의 연쇄 살인 사건
  • 모든 사건들은 일종의 밀실 상황
  • 사건은 명탐정이 해결
는 점에서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이 중 한 사건은 화자인 이치조 유마가 이미 저지른 도서 추리물이기도 하고요. 미스터리 애호가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는 모두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또 사건의 이런 저런 상황이 여러 미스터리 명작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애호가들을 자극하는 요소입니다.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유리관의 살인>>이라고 부르고, 코즈시마가 남긴 다이잉 메시지는 <<비뚤어진 집>>, <<Y의 비극>>, <<독 초콜릿 사건>>을 의미한다던가, 마도카 사건에서 남겨져 있던 메시지는 '관 시리즈'와 관련이 있으며, 결국 이 모든 진상은 '관 시리즈'와 연결된다는 식입니다.
트릭도 모두 유명 작품에서 따 왔습니다. 오이타 신조 사건에서 특정 시간에 자동 발화시킨 트릭은, 의도적으로 창문이 아침 햇빛을 집중시키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과 유사합니다. 토모에 마도카의 시체를 밀실 안으로 집어넣는 트릭은 작 중에서도 언급되듯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가 떠오르고요. 만화 <<외천루>>에서는 아래와 같이 아예 동일하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미스터리 애호가들이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온갖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후기 퀸 문제 - 작품 속 해결이 진짜 해결인지를 작품 속에서는 증명할 길이 없다 - 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던가, 비밀 통로와 암호, 심지어 '독자에게의 도전장'까지 삽입된건 그야말로 미스터리 애호가의 피를 끓게 만들지요.

무엇보다도 '작위적인 상황들은 알고보니 저택 주인 코즈시마 타로가 꾸민 연극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반전은 신선했습니다. '작위적'인게 당연한 상황을 설득력있게 만드는데 이보다 나은 아이디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았어요. 엄청난 부자인 코즈시마 타로는 미스터리에 푹 빠진 나머지, 스스로 위대한 걸작을 쓰고 싶어서 트릭을 고안한 뒤, 추리와 관련된 이런 저런 손님들 - 명탐정, 추리 소설 작가, 편집자, 영매 - 을 초대하여 실제로 추리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연극이니 당연히 코즈시마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죽지 않았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등산 조난자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게 들통나서 살해당했다는 유치한 동기 역시 가짜였고요.
코즈시마가 연극을 위해 '유리탑' 안에 이중 나선 구조와 같은 비밀 나선 계단을 설치했다는 진상도 적절하게 써먹고 있습니다 (이 진상이 <<미로관>>과 유사하다는 점도 과연 코즈시마 타로답더군요). 영능력자 유메요미, 그리고 화자 유마까지 알 수 없는 인기척을 계속 느꼈다는 식으로 비밀 계단과 통로에 대한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고요.
트릭도 다른 작품에서 따 온게 많다고는 했지만, 그런대로 볼만했습니다. 특히 오이타 사건에서 식당을 밀실로 만든 트릭은 괜찮았어요. 각설탕을 회전 빗장에 꽂아 넣고 화재를 일으키면, 스프링쿨러가 작동하여 각설탕이 녹아서 빗장이 걸린다는 것인데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체에 등유를 끼얹어 화재를 일으킨 원인도 위장하는 등 디테일도 꼼꼼했고요.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가 괜찮았다고 말할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미스터리 애호가를 위한 장치와 반전 외에는 과연 그렇게까지 절찬을 받을만한 작품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우선 본인이 명탐정임을 주장하는 아오이 츠키요는 작위적인걸 넘어서는, 그야말로 현실과는 백만광년은 떨어진 듯한 만화같은 캐릭터라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래서야 "모든게 '연극' 이라서 작위적이었다"는 아이디어는 빛이 바랩니다. 그래봤자, 핵심 등장인물이 가짜보다 더 한 만화라서 영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서는 보다 진지한, 현실적인 탐정으로 묘사되는게 바람직했습니다.
아오이 츠키요의 비현실성은 진상 부분에서 극에 달합니다. 그녀는 연쇄 살인이 연극임을 초반에 간파하고 실제로 피해자들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졸작 <<유리관의 살인>>을 납득할 수 없어서 본인이 범인이 되는 걸작 메타 미스터리로 만들기 위해서라고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살인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이러한 '메타' 방식 설정은 일본 일부 작품에서 가끔 보곤 했는데, 적절히 잘 사용된 경우는 생각나지 않네요.
명탐정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명탐정을 부르기 위해 불가능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는 아오이 츠키요의 또다른 배경 설정도 한심하기 그지 없었어요. 시로다이라 쿄의 <<명탐정에게 장미를>>에도 등장했던 설정인데, 그 때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리뷰를 남겼었지요.
그리고 악당 - 명탐정 대신 명범인 - 이 되기로 결심하고 살인을 저질렀다면, 초지일관 그렇게 나갔어야죠. 마지막 순간에 유마를 구해주고 키스까지 한 다음 사라지는건 최악이었습니다. 캐릭터만 희미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만화나 라이트 노벨 세계관이라면 모를까, 정통 본격물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코즈시마 타로의 추리 소설이 엉망이라는건 츠키요가 이미 언급했지만, 실제로도 트릭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소설에서 진범은 카가미였습니다. 딸이 코즈시마 일당 - 코즈시마와 집사 오이타, 메이드 마도카 - 에게 납치되어 생체 실험을 받다가 죽었다는걸 알고 복수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는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난 뒤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다며 자살합니다. 그렇다면, 복수를 마치고 죽을 결심을 한 범인이 밀실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건데, 이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경찰이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면, 카가미의 동기가 밝혀지는건 시간 문제였습니다. 어차피 빠져나갈 방법도 없으니 트릭을 사용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없지요. 손님들이 초대되었을 때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당연히 없습니다. 카가미는 이전에도 코즈시마를 방문해서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음에도 혼자 찾아와 모두를 죽이는게 더 쉬운 복수였을거에요. 관 시리즈, 특히 <<십각관의 살인>>이 걸작인 이유 중 하나는 범인이 트릭을 만든데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처럼 아무런 설득력없이 수수께끼를 만들기 위해 트릭을 사용한게 아니고요.
또 딸의 복수를 위해서였다면, 조가타케산 사건을 언급하는 것도 이상했고 - 딸은 조가타케산 사건의 피해자라기 보다는, 최근 사건의 실종자이므로 -, 코즈시마 일당의 범행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면 돌려 말할 까닭도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복수의 이유를 쓰면 되지요. 나카무라 세이지를 죽이라면서 비밀 통로를 은근히 알려주는건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코즈시마가 유마가 자신을 독살하게끔 유도하여 연기했다는 설정도 어처구니를 상실케 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원래는 모든게 연극이었다는 발상을 제외하고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쉽게 읽히는 라이트 노벨스러운 작풍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네요. 진지한 본격 추리물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전 <<데드 트릭>>리뷰 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프로레슬링과 비슷하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했었는데, 프로레슬링도 형편없고 장난스러운 각본은 욕을 먹기 마련입니다. 제가 나이가 있는 탓에 요새 트렌드와 거리가 있어서 이런 작품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건 사실이겠지만, 살인을 장난스럽게 다루는 작품은 진심으로 없었으면 합니다. 

2014/10/21

엣지 오브 투모로우 (2014) - 더그 라이먼 : 별점 3점

가까운 미래, '미믹'이라 불리는 외계 종족의 침략으로 인류는 멸망 위기를 맞이했다. 인류는 이에 맞서 전 세계 군대가 연합한 연합방위군(United Defence Force, UDF)을 창설했다. 그러나 방위군은 정훈장교였던 육군 소령 빌 케이지(톰 크루즈 분)는 장군의 명령으로, 훈련이나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자살 작전이나 다름없는 전투에 투입되었다. 결국 미믹의 함정으로 인해 군대는 전멸하고 케이지 역시 전사했지만, 죽기 직전 자신이 죽인 미믹의 피를 뒤집어쓴 그는 작전 시작 직전으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출장 중 비행기에서 꽤 많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며칠간은 영화 리뷰가 쭉 이어질 것 같네요. 첫 번째작품은 가장 먼저 본 "엣지 오브 투모로우"입니다. 

 이 영화는 널리 알려진 대로 일본 라이트노벨 "All You Need Is Kill"을 원작으로 한 할리우드 SF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동일한 삶을 반복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사랑의 블랙홀"과도 유사  타임 루프물입니다. 차이점이라면 "사랑의 블랙홀"은 잠들거나 하루가 지나면 리셋되는 반면, 이 작품은 죽음에 의해 리셋되는 구조이고, 나름 과학적인 설명도 덧붙여졌다는 점입니다. 물론 설득력이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이렇게 삶이 리셋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더불어, 전투 장면의 육중함과 리얼함도 돋보입니다. 죽음을 반복하면서 점점 자신을 단련시키는 과정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 덕분입니다.
절망적인 전투 외에 도망이라는 선택지를 탐색해가는 과정의 짜임새도 좋아요. 여러가지 디테일들 덕분인데, 대표적인 예는 여주인공 리타와 함께 헬기가 있는 곳에 도착한 장면에서 "설탕은 세 개 넣지?"라는 대사를 통해 루프의 누적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실감케 만드는 장면을 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메가의 피를 뒤집어쓴 케이지가 더 과거의 시점으로 점프하여 여주인공과 다시 만나게 되는 해피엔딩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톰 크루즈의 상큼한 미소도 오랜만에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오메가라는 존재는 다소 유치하게 느껴졌고, 마지막 작전의 전개는 비약이 심했습니다. 오메가의 위치를 파악한 시점에서는 더 이상 도망칠 이유가 없었고, 리타가 오메가를 쏘는 편이 더 합리적이었을 테니까요. 게다가 오메가를 죽인 뒤 다시 리셋되었을 때,   이미 오메가가 죽은 세계가 펼쳐진다는 결말은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이전의 규칙대로라면 리셋은 되더라도 오메가가 죽은 시점이 유지되는 건 말이 안 되고, 만약 그렇게 바뀌었다면 케이지가 깨어나는 지점도 변경되어야 했겠지요.

이렇게 불만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웰메이드 SF 활극임은 분명합니다. 톰 크루즈라는 이름은 이제 톰 행크스나 브래드 피트처럼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된 것 같네요. 물론 가끔 실패는 하지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08/09/24

도쿄겐지 이야기 - 아기 타다시 : 별점 2점

도쿄겐지 이야기 - 4점
아기타다시 지음/서울문화사

Act 1 나비의 장송 :
어렸을때부터 친구와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등 주위에 죽음을 몰고다니는 겐지 (별명). 그녀는 자신의 메일 친구인 아게하의 남자친구로부터 그녀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Act 2 사신의 키스 :
친구 린과 함께 인기 그룹 "기요틴"의 라이브를 찾아간 겐지는 "기요틴"의 보컬 토우야의 목소리에서 묘한 기지감 (旣知感)을 느끼게 된다. 토우야의 초대로 자리를 함께 하지만 먼저 자리를 뜬 겐지는 토우야를 제외한 기요틴 멤버들에게 연락을 받고 린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Act 3 장미의 낙인 :
메일 친구 유리의 연락을 받고 그녀를 만난 겐지는 그녀에게서 자신의 언니가 연쇄 살인범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Act 4 냉혈의 론도 :
연쇄 강도 살인사건이 발생하던 와중의 어느날, 겐지는 후배 쥰을 우연히 만나고 그가 자신의 애인을 소개해 주는 자리에 따라가게 된다.

Act 5 만화경의 개미 :
후배 쥰이 주워온 만화경을 보던 겐지는 갑작스럽게 과거의 사실을 알게되고, 과거 친구의 살인사건의 조사를 위해 고향을 찾아간다.


40여일만의 추리 소설 관련 포스팅입니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차에 이글루스 렛츠 리뷰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네요. 리뷰에 앞서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신 이글루스와 서울 문화사에 감사 드립니다.

이 책은 "신의 물방울" 로 국내에서의 지명도를 크게 높인 만화 원작가 아기 타다시(필명)의 소설입니다. 추리 애호가들에게는 김전일의 원작가 "아마기 세이마루 (필명)" 으로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죠. 총 5편의 단편이지만 서로 이어지는 일종의 연작 소설집으로 심리 서스펜스와 추리물이 뒤섞여 있습니다.

일단 만화 원작가로서의 작가의 경력을 읽으면서 계속 느낄 수 있었는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쉽고 빠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이겠죠. 1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독파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머리속으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음직한 묘사 방법도 괜찮았습니다. 주인공 겐지의 왜곡된 기억에 관련된 이야기는 얼마전 읽었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에 접했던 내용이라 왠지 반갑기도 했고요.

그러나 단점 역시 존재합니다. 인물 설정부터 굉장히 만화적인데 주인공 겐지의 독특한 분위기 감지 능력, 그녀의 "사신" 인 파트너 토우야가 초미소년에 천재 음악가이자 격투의 달인이라는 등의 설정이 그러하고 피해자나 용의자들의 설정 또한 설득력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더군요. 그리고 트릭들이 왠지 "그림" 에 더욱 어울릴 것 같은 것들도 많았다는 것과 그다지 참신한 트릭이나 이야기가 없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예를 들자면 그나마 트릭이 등장하는 "Act 2 사신의 키스" 는 경찰의 첫 현장 수사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미흡했을 뿐더러 현대의 과학수사로 충분히 범행 증거를 밝혀낼 수 있는 사건으로 생각되거든요. 3번째 단편 "장미의 낙인"과 4번째 단편 "냉혈의 론도" 는 일종의 서술 트릭물로 볼 수 있긴 합니다면 별로 새로운 것도 없고, 서술트릭에 사용하기에는 서술이 부족할 정도로 짤막한 단편이라 설명 부분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라이트 노벨과 추리물의 경계선상에 있어보이는 쉽게 읽히고 나름 자극적인 묘사가 담긴 추리 성향의 캐릭터물로, 본격물로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심리 스릴러로 보기에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는 알맹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겐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괜찮았는데 관련된 내용만 장편화했더라면, 아니면 차라리 만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작 단편 소설로서 자립할 만한 가치를 느끼기 어렵더군요. 고어 요소를 덜어낸 "GOTH"라고 생각할 수 있는 책인데 단점 역시 비슷하네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만큼 평가가 많이 나뉠 것이라 생각되는데 저에게는 단점 쪽이 더 눈에 들어온 책이었습니다. 비록 좋은 기회를 통해 공짜로 얻어 읽게 된 책이지만 리뷰는 냉정해야죠....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7/30

이런 설정은 있을리 없다! 트릭이 변화하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오랫만에 소개드리네요. 국내 소개된 작품은 3편입니다. 이 중 '사쿠라다 리셋 3부작'은 라이트 노벨 같은데, 이미 절판되었고 중고 시세는 사악하네요. 구해 읽기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만,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겠지요.
그나저나 지나치게 일본 작품 위주라는건 좀 거슬립니다. 이런 류라면 '다아시 경 시리즈'를 빼 놓을 수 없었을텐데 말이죠


특수 설정 미스터리란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처음부터 설정으로 포함되어 있는 미스터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현실과 다른 물리법칙, 심령현상이나 초능력, 판타지나 공상과학과 같은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스터리의 트릭과 추리 논리에 특수한 설정으로 인한 구속력이 더해지는 것이 매력이다.

"마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 가모우 다츠야
19세기 영국을 연상시키는,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총 6편의 연작 미스터리. 이 세계의 마법에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며, 결코 무법천지가 아니다. 마법이 개입된 세계의 법칙에 따라 왕립 마법원 수사관인 데이븐포트가 논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앨리스 죽이기" - 고바야시 마스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의 주민이 된 꿈을 꾸는 주인공들. 꿈속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현실 세계에서도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들은 꿈속의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꿈과 현실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은 파격적이지만, 세계관은 매우 논리적이다.

"일곱 번 죽은 남자" - 니시자와 야스히코
주인공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같은 하루를 9번 반복하는 특이한 체질을 가진 소년. 그에게는 가끔씩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루프에 빠진 두 번째 바퀴에서, 첫 바퀴에서는 무사했던 할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말았기 때문. 주인공은 루프의 법칙에 따라 할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혀낸다.

"명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아쓰카와 다쓰미
탐정이 경찰 아래 움직이는 조직이 되어버린 세상. 증거를 조작해 죄를 면했다는 의혹으로 명탐정의 탄핵 재판이 열리는데........ 이 책의 특수 설정은 탐정 조직의 존재 뿐 아니라, 특수한 조건에서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환생한다는 것. 환생자도 참여하는 탄핵 재판의 행방과 사건의 진실이 복잡하게 펼쳐진다.

"고양이와 유령과 일요일의 혁명 (사쿠라다 리셋 3부작)" - 코노 유타카
주민의 절반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 '사쿠라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 주인공은 기억을 완전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그리고 여주인공은 세상을 3일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초능력자들로 가득한 마을에서 두 사람이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능력끼리 조합하는 퍼즐 같은 논리성이 매력적.

2014/05/16

육화의 용사 - 야마카타 이시오 / 김동욱 : 별점 2점

육화의 용사 1 - 4점
야마가타 이시오 지음, 김동욱 옮김, 미야기 그림/학산문화사(만화)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신을 쓰러뜨렸던 성자가 '마신은 돌아오지만 자신의 힘을 이어받은 여섯 용사가 나타나 마신을 다시 쓰러트릴 것'이라 예언했다. 여섯 용사의 증거인 몸 어딘가에 떠오르는 꽃잎 여섯 개의 문장때문에 그들은 '육화의 용사'라 불리게 되었다. 그 뒤 마신이 두 번 깨어나지만 예언대로 여섯 용사에 의해 다시 봉인되었다.

다시 마신의 깨어날 조짐이 있는 시기, 자칭 "지상 최강의 사나이" 아들렛은 육화의 용사로 선택받아 다른 용사들과 함께 마신의 근거지 마곡령으로 항했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용사는 일곱 명이었다. 가짜는 누구인가?

한국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의 이벤트에서 어떤 분이 추천하였기에 읽게 된 작품.

마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용사들이 힘을 합친다는 전형적인 판타지 서사에서, 마신을 쓰러트리기 전 파티가 규합될 때 일어나는 일종의 해프닝에 집중한게 독특합니다. 정해진 숫자의 파티 인원을 초과한 상황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위기가 닥친다는 설정은 "11인이 있다!"와 동일한데, 진상을 밝히는 과정이 추리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는 차이가 있고요.

그런데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가 모두 이런가요? 저하고는 전혀 맞지 않더군요. 제가 읽기에는 너무 유치한 설정과 묘사가 많았습니다. "타임 리프"는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는데 말이지요.
우선, 등장인물 설정부터 익숙해지기 어려웠습니다. 육화의 용사 모두가 만화 등에서 수없이 접해왔던 전형적인 인물들의 향연인 탓입니다. 여러 가지 도구를 이용하고 두뇌로 싸워나가는 허세남, 타고날 때부터 천재, 그 외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들, 공주, 기사, 마족과의 혼혈아, 로리로리…… 죄다 어디선가 보아왔던 설정들입니다. 그나마 생동감있게 표현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모두 평면적인데다가 묘사도 지루했습니다. 개중 별다른 능력 없이 근성과 노력, 장비와 잔재주로 버티는 아들렛만 약간 인상적이지만, 아들렛 역시 결국은 모든 면에서(심지어 트라우마까지도) 배트맨과 다를 바 없어 식상함을 이겨내지 못하더군요.
대사도 유치합니다. 예를 들어 믿음에 대해 프레미와 아들렛이 나누는 대화는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어요.

게다가 등장인물들 이름은 모두 서양식인데, 지명이라던가 별호는 대부분 한자식인 것도 거슬렸습니다. 비유하자면 "무당파 장문인 톰 크루즈와 마교 교주 매튜 매커너히가 마신을 상대하기 위해 미들랜드 왕국의 고모령으로 향한다"와 같은 식이에요. 만화로 보았다면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소설로만 읽으니 그냥 웃기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육화의 용사들이 갇히게 된 결계의 비밀을 다루는 트릭 하나만큼은 괜찮기는 합니다. 아들렛이 결계를 동작시키는 밀실에 처음 들어가게 되어 가짜로 몰리게 된 사건 해결을 위한 밀실 트릭이지요. "결계를 동작시키는 방법으로 알려진 초반의 증언이 사실은 가짜였고, 진짜 결계 동작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결계가 동작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든 안개를 대량으로 갑자기 발생시킨 것이다"라는, 과학과 마법을 잘 조화시켰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판타지라는 장르에 잘 어울리는 트릭이라 생각되네요. 독자에게 마곡령 근처의 기온이라던가 "태양의 성자"에 대해 알려주는 등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점도 좋았고요. 추리 동호인의 추천을 받을 만 했어요.

허나 트릭 외의 추리적인 부분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먼저, 이렇게 복잡하게 작전을 꾸미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결계에 가두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발생했을테고 최소한 프레미를 없애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용사가 죽으면 육화 문장의 꽃잎이 떨어진다는 설정으로 가짜로 몰아 죽이는 것도 결국 한계가 있으리라는 점 등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셰타니아가 아들렛이 무죄라고 믿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에요. 가짜, 즉 일곱 번째가 나셰타니아였다면 처음부터 가짜로 몰아 죽이면 되지 이런 불필요한 과정이 왜 필요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추리적인 모든 요소는 결계에 대한 것, 즉 밀실 트릭을 푸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지도 못하고, 범인의 정체가 너무나 뜬금없어 설득력을 전혀 가지지 못한다는 단점 역시 큽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판타지 추리 소설로는 다아시경 시리즈, 그리고 "부러진 용골"과 같은 작품과 차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입니다. 감히 비교한다면 "장미빛 인생"조차도 '소설'로는 더 낫지 싶군요. 괜찮았던 트릭을 잘 살린 추리물로 접근하였더라면 훨씬 좋은 점수를 주었을 텐데, 아쉽게도 제 취향은 전혀 아니었어요. 다음 권을 더 읽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16/03/11

마루타마치 르부아 - 마도이 반 / 김예진 : 별점 2점

마루타마치 르부아 - 4점 마도이 반 지음, 김예진 옮김, 쿠마오리 준 그림/파우스트박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서에서 저명한 의사 가문 시로사키가의 손자 론고는 3년 전, 자택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여인 루주와 의도치 않게 시간을 보낸 뒤 그녀에게 푹 빠졌다. 그러나 론고가 수면제에 취한 틈에 그녀는 사라졌고, 할아버지 지온의 심장 페이스메이커가 정지하여 사망했다.

루주와의 약속으로 사실을 함구한 탓에 할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처벌받은 론고는 3년 후, 가문의 지시를 거부하고 의대에 진학하여 명문가의 사설 법정인 "쌍룡회"에 피고인 "어속"으로 호출되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론고를 위해 저명한 용사인 타츠키 가문의 황룡사 야마토와 대결할 청룡사로 선택된 것은 교토대생 미카가 미츠루와 조수 타츠야였다. 그리고 이윽고 벌어진 쌍룡회에서 3년 전 사건의 진실과 루주의 정체가 차례로 밝혀지는데...

마도이 반의 데뷔작으로 추리 애호가들의 커뮤니티인 하우미에서의 반응이 좋아 구입하였습니다. 사실 구입한 건 꽤 오래전인데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작품의 핵심은 '론고는 무죄이며 진범은 루주라는 정체불명의 여자다'라는걸 밝혀내는 과정입니다. 이게 "쌍룡회"라는 일종의 법정에서 검사인 황룡사와 변호사인 청룡사의 논리 배틀을 통해 진행된다는게 특징이고요. 이러한 전개는 법정물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압도적으로 불리한 론고와 청룡사 측이 처음 생각했던 작전 — 재판관의 손녀인 카나리가 루주일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흘려 주도권을 잡으려는 — 이나, 청룡사와 황룡사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공격과 그 와중에 놀라운 진상이 연이어 드러나는 전개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추리 애호가분들이 입을 모아 칭찬할 만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쌍룡회"부터가 만화적인 설정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교토의 오래된 명문가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귀족들의 여흥이라는 쌍룡회와 젊은 미남미녀들로 구성된 등장인물들은 "오란고교 호스트부" 와 다를게 없으니까요. 하는 행동들도 비슷하고요. 법정에서 암검살이니 낙화 되돌리기니 하는 필살기를 펼쳐 보이는 묘사와 과장된 연출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작품이 코미디가 아니라 완전히 진지한 법정물이라는 겁니다. 

물론 작품이 라이트 노벨이니 그냥 만화와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쌍룡회가 억지의 연속으로 이루어진건 확실히 문제입니다. 3년 전 벌어진 사건의 범인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용의자가 "사실은 그때 다른 여자랑 같이 있었는데 그녀가 범인이다"라고 주장하며, 그녀가 있었다는 증거로 선물받았다는 키스 마크가 찍힌 손수건을 조작해 들이민다는 것부터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제가 검사, 즉 황룡사라면 다른 건 둘째치고라도 그 손수건이 그때 받은 것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를 물었을 겁니다. 쌍룡회가 어느 순간부터 '루주는 확실히 존재했다, 그런데 그녀의 정체는 OO다'는 식으로 흘러갈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첫 번째 증거로 내민 찻잔은 검사인 황룡사가 바꿔치기를 하는 등 정상적인 법정으로 보기 불가능한, 비합법적이고 비합리적인 요소와 설정이 난무한다는 점도 감점 요인입니다. 논하는 사건 자체가 피고의 증언에만 기반하는데다가, 변호사와 검사는 서로 사기만 치는걸 좋은 법정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추리적으로도 별로입니다. 커피가 홍차로 바뀐 것으로 루주의 정체를 밝히는건 논리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결정적 증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애초에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피고이기 때문입니다. 증언의 신빙성을 보장할 수 없어요. 찻잔을 바꿔치기한 것으로 도청 사실을 눈치채는 장면 역시 그럴듯해 보이지만, 똑같은 디자인과 색깔의 찻잔을 준비했다는건 억지입니다. 찻잔의 모양이 목소리로 전달될 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에 놀라운 사실이 속속 밝혀지는 부분도 과했습니다. 루주의 정체야 그렇다 쳐도, 미츠루는 여자였고 야마토는 나데시코였다는 서술 트릭은 불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논리 배틀의 탈을 쓰고 있지만 불합리한 요소와 억지가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와 닿지 않는 만화적인 설정과 읽기 힘들게 만드는 장황한 대화 역시 감점 요인입니다. 후속작이 있나 본데 도저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차라리 만화였다면 조금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2/01/16

작가 형사 부스지마 - 나카야마 시치리 / 김윤수 : 별점 2점

작가 형사 부스지마 - 4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북로드

제목처럼 전직 형사이지만 은퇴 후 작가로 데뷰해 인기를 얻으면서, 형사 지도원으로 복귀한 부스지마가 신참 형사 아스카와 함께 작가들이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이런 저런 작품들로 많이 접해 보았었던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지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극히 만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나가는 작가로 문학계에 정통하며 온갖 냉소와 비난을 사정없이 날리는 작가 형사 부스지마의 설정부터가 만화적이니까요. "부호 형사"와 별다를게 없는 과장된 설정입니다. 등장하는 편집자와 작가들에 대한 설정들도 억지가 느껴질만큼 과장되어 있다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사회파에 가까운, 묵직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작가답게 마냥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출판계, 특히 작가들에 대해서 부스지마의 입을 빌어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건 나름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좀 부족했고, 이야기 구성이 대체로 한가지 패턴이라는 단점은 큽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간당간당한)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트릭과 진상, 범인을 모두 까발리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라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워너비의 심리 테스트" 소설 스메라기 신인상 1차 심사위원이었던 도메키가 자루없는 날카로운 알루미늄 송곳에 꿰뚫려 살해당했다. 용의자는 도메키가 심사평을 험하게 썼던 신인상 출품 작가들 3명 - 다다노 구스오, 오우미 히데오, 아이카와 시오리 - 이었다. 그러나 작가들의 심문에 넌더리가 났던 아소 반장과 이누카이 형사는 신참 아스카에게 형사 지도원 부스지마의 도움을 받아 수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사건 설명을 들은 부스지마는 3명을 각각 만나, 그들 면전에서 더욱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데....

주요 설정과 등장인물들이 소개되는 시리즈 제 1작. 이 시리즈가 어떤 작품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스지마가 얼척도 없이 자기 작품에 대해 자신감만 가득차 있는 신인 작가들을 통렬하게 깨부시는 장면이 가장 핵심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추리적으로 빈약하다는 특징도 두드러집니다. "자루가 없는 알루미늄 송곳"이 화살인건 너무 명백하니까요. 이를 초반에 알아채서 이야기하지 않는게 더 이상했습니다. 부스지마가 용의자들을 도발해서 재차 범행을 시도하도록 만드는데, 범인이 이에 넘어가 부스지마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도 다소 유치했고요. 오우미 히데오가 기계 공작 회사를 다니다가 정년 퇴직했다는 정보를 이용하여 흉기를 추리해 낸 뒤, 가택 수사로 증거를 잡는게 더 추리물다왔을겁니다. 부스지마가 직접 표적이 되어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한다는 과장된 추리쇼는 불필요했을 뿐더러, 억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을 입었다고 한 들, 화살을 머리에 맞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신인 작가들에 대한 비난도 나름 새겨들을 부분은 있지만, 대상자인 3인이 안 좋은 신인 작가의 단점만 극대화하여 합쳐놓은 인물들이라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일관한다는 점에서, 만화적인 느낌을 부각시킬 뿐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편집자(編集者)는 편집자(偏執者)" 

편집자 마다라메 아키라에게 신인 작가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하고로모 사야는 데뷰 전 동인 작품의 출간을 막고자, 그리고 그녀 원고 속 트릭 아이디어를 반강제로 중견 작가에게 넘긴걸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덴도 구이치로 역시 항의가 목적이었다. 데뷰작에서 사용하라고 마다라메가 전해 준 트릭과 반전이 인기작가 아야메 작품을 베낀 것이어서, 덴도는 표절 작가로 낙인찍혀 작가 인생을 망쳤기 때문이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출판, 문학계를 통렬히 비판합니다. 신인 작가들 약점을 쥐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폭언을 내뱉는 악덕 편집자 마다라메, 그리고 제대로 된 작가도 아니면서 자기 작품과 소설가라는 직업에 헛된 신념을 품은 신인 작가를 통해서요. 문단에서 라이트노벨 작가는 일회용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등의 업계인스러운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카야마 시치리 시선을 보자면, 편집자보다는 작가 문제가 훨씬 큰 것으로 그려져 이채롭더군요. 편집자가 작가와 이인삼각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가면 좋지만, 수익을 중시하는 편집자도 당연히 필요하다는게 나카야마 시치리의 논리거든요. 출판도 시장이니까요. 마다라메도 문제는 있지만,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는 측면으로는 우수한 직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작가들은 일반인의 상식도 갖추지 못한, 자의식에만 쩌든 괴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덴도 구이치로는 아예 동정도 가지 않을 정도에요. 소설가라는 놈이 편집자가 제공한 트릭과 반전으로 글을 썼다면, 이건 작가가 아니라 그냥 대필 기계일 뿐이니까요. 이런 주제에 자기가 창작자다 뭐다 운운하며 뭔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욕을 먹어도 쌉니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하고로모 사야도 마찬가지에요. 또 이런 작가들이 단순한 비지니스 파트너에 불과한 편집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도 통렬하게 꼬집습니다.

다행히 이 작품은 비판 외에도 추리물로도 볼 만했습니다. 사용된 알리바이 트릭이 꽤 괜찮았거든요. 우선 하고로모가 흉기를 준비하고, 범행 현장인 호텔 지하 주차장까지 마다라메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범행 시각에는 너무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던 덴도가 화장실을 가는 척 잠깐 자리를 비운 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트렁크 안에 가두었던 마다라메를 찔러 죽이고 바로 돌아온 겁니다. 나중에 하고로모가 차를 회수하면서, 시체도 유기했고요. 꽤 그럴듯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호텔은 CCTV가 완벽하게 존재하는 곳이라는 거지요. 지하로 향하는 모든 입구, 엘리베이터와 주차장 CCTV만 조사해도 트릭이 드러나는건 순식간이었을 겁니다. 덴도가 호텔 바에 있었다는걸 검증하기 위해 경찰이 철저하게 수사했을테니 빠져나가기는 힘들었을테고요. 그런 점에서 정교한 계획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는 수사의 문제일 뿐, 트릭을 폄하하기는 힘들고 독자가 추리하기 위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는 만큼 별점은 2.5점 주겠습니다.

"상을 받긴 했지만" 

신인상 수상작가들에게 쓴 소리를 하던 노 작가가 살해된 사건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쓴 소리를 들은 작가들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의식 과잉으로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애송이들에 불과하고요. 부스지마가 풋내기들 정신 교육을 시킨다는 전개도 앞서 이야기들과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원 패턴으로 일관하는 자기 복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최악이에요. 트릭이나 단서, 증거같은건 등장하지도 않거든요. 부스지마의 정신 공격(?)에 무너진 범인이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는게 전부니까요. 작가들을 쓴 소리로 비판하면서, 본인은 이런 작품을 버젓이 발표하는건 무슨 정신머리인지 모르겠네요. 최악 중 최악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애독자" 

작가 다카모리 교헤이 토크쇼 간담회에 3명의 독자가 참석했다. 한 명은 인터넷에 혹독한 비판만 올리며 즐거워하는 일종의 악플러인 구와에 도모미. 한 명은 다카모리 교헤이에게 강하게 연심을 품은 정신병자 스토커 마키시마 히나코. 마지막 한 명은 다카모리 교헤이에게 어떻게든 자기 작품을 보여주려고 발악하는 작가 지망생 가노 이쿠였다. 그리고 간담회 직후 다카모리 교헤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여러모로 앞서의 시리즈 다른 작품들과는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작가가 아니라 작가에게 비틀린 애정을 품은 독자들이 주요 용의자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부스지마가 이 독자들에게는 독설을 날리지 않는다는 점이고요. 마지막 세 번째는, 범인이 따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카모리 교헤이는 여자 관계가 복잡해서, 아내가 그를 살해했던게 진상이었습니다. 최신간 속지 부분을 뜯어내어 현장에 두었던건, 사인을 받았을 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것이고요. 이 페이지만 뜯어진 채 시체 밑에 책이 놓여져 있던 것, 사인이 번지는걸 막기 위함인 간지가 현장에 없었던 것, 그리고 현장에 있던 책은 2쇄본이었는데, 2쇄본이 작가 서재에 없었던 걸로 보아 서재에서 꺼내온 책이라는 결정적 증거 등으로 진상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습니다. 이 중 간지가 현장에 없었던게 증거가 되기는 힘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외 내용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원 패턴이었던 전개를 탈피했다는데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스포일러 가득한 악담을 리뷰랍시고 올리는 구와에 도모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등장하는데, 살짝 찔리더군요. 저도 거의 모든 리뷰에 스포일러를 가득 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리뷰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다는걸 더 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원작과 드라마 사이에는 깊고 어두운 강이 있다" 

부스지마의 트리콜로 시리즈의 드라마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듀서 소네는 원작의 인지도만 원했기에, 주인공도 여자로 바꾸고 없던 러브라인, 해피엔딩을 추가했으며 핵심인 보험금 살인도 스폰서 눈치를 보느라 치정 살인으로 바꾸고 말았다. 결국 부스지마와 편집자 신보는 방송사 관계자와 담판을 짓는 자리를 갖고, 부스지마는 언제나의 말투로 이 모든걸 소설이나 기사 형태로 폭로하겠다며 관계자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 소네는 살해당했고 부스지마도 용의자로 떠올랐다.

작가 지망생들보다는 TV 드라마 관계자들을 비웃고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비판할 악당의 악행을 먼저 묘사해서 독자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킨 뒤, 부스지마가 면전에서 한 방 먹이는 방식은 전작들과 거의 같습니다. 한마디로 원 패턴이라 식상했어요. 

추리적으로도 건질게 별로 없습니다. 부스지마가 시나리오 작가 후세가 소네를 공격한 방법을 과거 드라마에서 찾아내는 등의 활약은 하지만, 후세와 신보의 발자욱을 현장에서 입수했기 때문에 추리로 범인을 밝혀낼 여지는 전무하니까요. 후세는 단순 폭행이었고, 실제로 질식사하게 만든건 편집자 신보였다는 추리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보가 자백하지 않았다면, 범행을 증명하기 쉽지 않았을겁니다. 기절한 사람을 돌려 놓으면 질식사 할 수 있다는 책을 함께 작업했다는 것 정도가 증거가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2인 3각으로 작품을 만든 신보를 직접 고발하는 부스지마가 자기는 작가 이전에 형사였다는 멋진 말을 한 직후, 이를 소재로 작품 하나를 쓸 수 있겠다고 하는 장면은 부스지마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드러내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별로 자연스럽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4/04/28

2024년 교토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 신입회원 추천 도서

출처는 하우미스터리.

'교토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는 아야츠지 유키토, 노리즈키 린타로, 시마다 소지 등 일본 추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다수 배출한 명가지요.
신입생들에게 첫 모임 때까지 읽고 오라고 골라준 책 같은데, 고전 황금기의 본격 미스터리부터 일본 고전, 스릴러, 신본격 및 라이트 노벨에 가까운 최신작까지 폭넓게 선정한게 돋보입니다. 이 중 각자 자신에게 잘 맞는 취향을 골라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동호회에 가입할 정도라면 이미 다 읽어 보았을 작품들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국내 미출간 작품 외에는 저도 다 읽었는데 저는 "용의자 X의 헌신"과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평균 이상은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24/12/27

전생 귀족, 감정 스킬로 성공하다 - season 1 (2024) : 별점 1.5점

미래인 A의 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이세계 전생물과 전략 시뮬레이션의 특징을 결합한 작품입니다. 총 12화 구성입니다.

약소 영주의 아들이자 주인공인 아르스가 사람들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스킬을 활용하여 인재를 발굴하고, 자신의 영지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중, 약혼녀 리시아의 야망이 높아 경계했지만, 그녀의 야망은 "훌륭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는 설정은 독특했습니다. 기존 이세계물에서 흔히 다루지 않는 감정과 야망의 조화가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약소 영지에서 점차 세력을 키워가는 과정도 꽤 몰입감이 있는 편이고요. 아르스가 '감정' 말고는 능력이 없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단점이 더 큽니다. 우선 아르스가 전생에 샐러리맨으로 살며 게임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왜 그 능력이 이세계에서 감정 스킬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때문에 설정에 몰입하기 어렵습니다. "신만이 아는 세계"처럼 미연시 마스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샐러리맨 시절 즐겼던 게임과 실력에 대해서는 선보였어야 이야기가 더 실감났을겁니다.

타인의 능력을 게임처럼 확인할 수 있다는 설정도 너무 흔하고 전형적입니다. 게다가 능력을 숫자나 명칭으로 단순하게 나누고, 이게 곧바로 실적으로 연결된다는건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사람이 그렇게 명확히 분류될 수 없으니까요. 이런게 가능하다면 대기업 입사에서도 MBTI를 측정해서 사람을 분류하여 배치하겠지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리 없잖아요?

아르스의 영지를 위해 모이는 주변 가신들 이야기도 진부합니다. 주인공의 이상에 공감하고 따르는 과정이 지나치게 평범하며, "삼국지" 등 고전 군웅물과의 차별점을 찾기 어려운 탓입니다. 가신 개개인의 서사도 비중이 들쭉날쭉하고요. 특히 로젤과 밀레이유부터는 능력조차 제대로 표현되지 못합니다. 솔직히 로젤은 왜 나오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능력은 밀레이유와 겹칠 뿐더러, 10살도 안된 아이를 전장에 군사로 투입하는게 말이나 됩니까?

연출과 음악도 별볼일 없어서 화려하거나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 거의 없으며,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엔 부족합니다. 딱 한 가지, 밀레이유와 리츠의 시합에서 추격씬은 조금 웃기기는 했습니다만... 그저 그 뿐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흔해빠진 이세계 전생물의 하나입니다. 구태여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더 볼 생각은 없네요.

2024/02/11

놀라운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들 - 북오프 칼럼

가끔 소개해드리는 이러저런 미스터리, 추리소설 추천 정보. 이번에는 북오프 온라인 칼럼 하나를 찾아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의역이 많은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촘촘히 짜여진 수많은 복선, 상상할 수 없는 전개, 충격적인 결말 ...... 소름이 돋는 오싹함을 찾아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그 중 '반전'이 뛰어난 미스터리 작품들을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들과 유명 작가들로 나눠 소개해 드립니다.
꼭 한번, 그 '반전'에 감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반전'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
"가면병동" 치넨 미키토
"If의 비극" 우라가 가즈히로 (국내 미출간)
"신의 숨겨진 얼굴" 후지사키 쇼
"출판금지" 나가에 토시카즈 (국내 미출간)

유명 작가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 이치
"살인귀" 아야츠지 유키토

"가면 병동"
강도로 인해 밀실로 변한 병원, 숨 막히는 심리전의 막이 오른다!
요양병원에 강도가 침입해 자신이 쏜 여자의 치료를 요구한다. 사건에 휘말린 외과의사 하야미즈 슈고는 여자를 치료하고 탈출을 시도하던 중 병원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폐쇄된 병원에서 펼쳐지는 궁극의 심리전.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현직 의사가 그리는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본격 미스터리×메디컬 서스펜스'. 저자 첫 문고판 장편소설!

인기 시리즈 제1탄.
의료 소설이라고 하면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알기 쉽고, 읽기 쉽습니다. 라이트 노벨 같은 경쾌한 터치로 독자를 쏙쏙 끌어당깁니다.
게다가 치넨 씨는 현직 내과 의사로 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문적 견해를 바탕으로 집필되어 있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점도 매력적인 점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속편인 '시한부 병동'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If의 비극"
소설가 가노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자살을 의심한다. 결국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오쿠츠의 불륜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오쿠츠를 불러내어 살해한다. 하지만 위장공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노가 운전하는 차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A는 남자를 치어 죽인 경우, B는 아슬아슬하게 남자를 치지 않은 경우. 두 개의 평행세계가 하나로 연결될 때,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식인 작가(사람을 잡아먹는 소설을 많이 써서)로 알려져 '미스터리계의 기인'으로 불리는 우라가 카즈히로 씨의 작품. 경력이 거의 공개되지 않아 그 수수께끼 같은 부분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다고 합니다.
"절대 속지 않는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이 작품이지만, 절대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 반전에 역시나 격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의 숨겨진 얼굴"
신과 같은 청렴결백한 교사, 츠보이 세이조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통곡의 밤은 슬픔에 휩싸여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신'을 추모하는 가운데, 엄청난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 츠보이가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었을까...? 츠보이의 아름다운 딸, 후배 교사, 제자인 중년 남성과 요즘 여자, 이웃집 주부와 개그맨. 두 번, 세 번 뒤집어지는 그들의 추리는? 반전이 있는 결말이 화제!!!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대상' 수상작. 아리스카와 아리스, 온다 리쿠, 구로카와 히로유키, 미치오 슈스케라는 쟁쟁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받았다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절묘한 유머 감각이 있고, 서비스 정신이 넘친다 (온다 씨)', '개그맨으로 활동한 경험 때문인지, 말투가 매우 유쾌하고 유머 감각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미치오 씨)'라는 심사평에서 알 수 있듯이, 어쨌든 유머가 넘치는 작품입니다. 반전도 훌륭하고요.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출판금지"
작가인 나가에 씨가 손에 쥔 것은 "카뮈의 자객"이라는 소문난 원고였다. 저자는 작가 와카바시 고세이. 내용은 유명 다큐멘터리 작가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신도우 나나오와의 단독 인터뷰였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산장, 동반 자살의 모든 것을 기록한 영상. 불륜의 끝에서 벌어진 비극인가? 왜 여자만 살아남은 것일까? 숨막히는 전개, 무서운 반전. 기형적인 걸작 미스터리.
작가인 나가에 씨는 원래 호러와 서스펜스를 전문으로 하는 TV 감독이었습니다.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프로그램 '방송금지'(후지TV)의 기획, 각본, 감독도 담당했다고 하네요. 이 책은 그런 경력을 가진 나가에 씨가 가상의 사건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읽다 보면 마치 논픽션처럼 느껴져서, 도중에 공포에 질려서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는, 스릴 있고 무서운 작품이라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어느 도시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시신은 아파트 13층에서 갈고리에 매달린 알몸의 여성이었다. 그런 시체 근처에는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히라가나로만 쓰여진 조악한 범행 진술서가 있었다. 이후 제2, 제3의 엽기 살인이 일어난다. 한 기자는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는 범인에게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
이 작품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입니다. 기괴한 살인을 다룬 서스펜스 넘치는 미스터리지요.
마지막 반전에 이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반전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해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범인의 책임능력을 묻는 형법 제39조가 강하게 개입된 사회파 미스터리의 면모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미스터리로서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미로관의 살인"
추리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에 의해 신예 작가 4명이 '미로관'이라는 기괴한 관에 모였다. 미야가키의 비서는 미야가키가 자살했다며 카세트 테이프를 대신 건네 주었다. 테이프에는 '미로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달라', '가장 좋은 작품을 쓴 사람에게 유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도리없이 네 사람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관 시리즈'는 "십각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등 반전과 의외의 결말이 있는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다.
곳곳에 깔려있던 복선이 회수되고 여러 가지 장치가 차례로 밝혀지는 후반부 전개가 특히 압권입니다. 이 작품은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걸작이에요.
참고로 이 작품은 시리즈 작품이지만, 이 작품만으로 독립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 권부터 읽어도 무방합니다.

"어둠 속의 기다림"
살인 혐의로 경찰에 쫓기던 아키히로는 눈이 보이지 않는 미치루라는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숨어들었다. 미치루는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있다'며 아키히로의 기척을 느꼈지만 계속 모른척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맹인 여자와 살인 용의자인 남자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는데...
여자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살인 용의자인 남자가 무단으로 여자의 집에 숨어든다 - 이런 줄거리를 보면 앞으로 도대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점차 유대감 같은 것이 싹트기 시작하거든요.
마지막에는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살인귀"
'TC멤버스'는 중학생부터 성인까지가 소속된 친목 단체다. 그런 TC멤버스 일행이 후타바산으로 캠핑을 떠난다. 하지만 즐거워야 할 캠프는 후타바산 살인마에 의해 피비린내 나는 참극으로 변해가고, 한 명, 또 한 명씩 살해당하는데............
이 작품은 스플래터 호러 소설입니다. 그 모습을 극명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상당히 그로테스크해서 이런 작품을 싫어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전부는 아닙니다. 후반부에는 아야쓰지 유키토다운 깜짝 놀랄만한 장치가 준비되어 있으며, 거기서 그려지는 반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에 면역이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2017/12/03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미카미 엔, 구라타 히데유키 / 남궁가윤 : 별점 2.5점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6점
미카미 엔.구라타 히데유키 지음, 남궁가윤 옮김/북스피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작가 미카미 엔과 "R.O.D"의 작가 쿠라타 히데유키가 여러가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한 대담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얼마 전에도 읽었던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한 권이지요.
자연스러운 일상생활 속 대화같은 대담이 인상적입니다. '술집 옆자리에서 두 남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더니 꽤 재미있더라'는 책 뒤 소갯글 그대로의 내용이에요. 구라타 스스로도 북 가이드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시시콜콜한 대담까지 책으로 출간되는 일본 출판 시장이 부럽기도 하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 정도로 소모되고 끝날 내용이거든요. 좋게 말하자면 읽기 쉽고 나름 재미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그다지 깊이가 있거나 진지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래도 독서광 작가들이 모여 수다를 떤 내용이라서, 독서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에 있어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되는 저로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순서대로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모던 호러가 주제인 수다에는 스티븐 킹, 딘 쿤츠, 클라이브 바커 등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다만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아요. 모던 호러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이야기할만한 내용이었거든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롱 워크"를 극찬하는 등 저와 취향이 다른 탓도 크고요. 하지만 잭 케첨 소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구라타 히데유키 말에 따르면 "이웃집 소녀"는 구입한 그 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을 정도라니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마침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소니빈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뷔작 "비수기" 와 후일담 "더 우먼"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 두 작품은 아쉽게도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네요.

요코미조 세이시에도가와 란포, 야마다 후타로를 소개하는 챕터는 너무 뻔하더군요.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그래도 딱 한 가지, 일본 초등학생이 읽기 힘들어했다는 토로는 색달랐지만요. 구라타 왈,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번역을 잘 한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역사와 과거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일본 초등학생보다는 제가 이해력이 좋기 때문인걸까요?
그래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 작품들이 대체로 저 역시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 만 빼고 말이죠. 그 외 작품으로는 읽어본 적 없는 식인 테마 작품인 "어둠에 꿈틀거리다"가 궁금했습니다. 국내 출간되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그런데 갑자기 야마다 후타로와 "마계전생" 이야기로 넘어가는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야마다 후타로의 대표작이라는 "인법첩" 시리즈도 영화, 만화로 접한게 전부라 딱히 수다에 공감하거나 이해할 내용도 별로 없었고요.

영화화된 작품 원작에 대한 수다는 가도카와 하루키가 이끌던 가도카와 문고와 영화 전성 시대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작가 시점에서 아카가와 지로를 나름 극찬하는 - 쉽게 대사를 쓴, 일종의 라이트 노벨 선구자라는 등 - 정도만 눈에 뜨일 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듯한 아카가와 지로가 쓴 크리쳐 호러 소설 "밤"이 그나마 궁금하지만, 최고 걸작이라는 "마리오네트의 덫" 수준을 미루어 본다면 구태여 읽어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좌절본은 읽다가 포기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아예 그 생각이 없었던 작품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챕터로 보통은 어려운 책 - 커트 보니컷의 "제 5 도살장"이나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 등 - 이거나 너무 길어 포기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100권이 넘는 "구인사가", 미완으로 끝났다는 일본의 시대소설 "대보살고개" 등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제 5 도살장" 이 어렵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고 "삼국지" 나 "삼총사" 같이 재미도 있고, 읽기도 쉬운 작품이 좌절본에 포함되어 있는 등 제 생각과는 조금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미카미보다는 구라타 취향이 특히 그런데, 뭐 이런 것이야 말로 개인 취향이겠지요. 허나 오래전 작품이라 요새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반지의 제왕" 은 좌절본이다!라는 의견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런 류의 독서광들 수다라면 빼 놓을 수 없는 진귀한 책, 기이한 책이 이야기도 물론 들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희귀 도서들보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책들 소개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아와사카 쓰마오의 "산 자와 죽은 자 - 명탐정 요기 간지의 투시술" 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페이지가 16 페이지 단위로 봉해져 있어서 그대로 읽으면 25페이지 짜리 단편이지만, 다 읽고 봉한걸 풀면 새로운 장편 소설이 된다는 책으로 여러모로 신기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다 만 게모노기 야세이의 만화 "Palm"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려 30년간 이어진 연재의 설정을 초기에 확립하여 그대로 끌고갔다니 대단해요. 미카미 엔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국내에는 절판되어 말 그대로 진귀한 책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구해보고 싶어 지네요.

추억 속에 깊게 남은 인상적이었던 책도 언급하는데, 구라타를 독서가로 이끈 책은 "투명인간", "우주전쟁" 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SF에 빠졌다가 미스터리로 관심이 이동한 전형적인 장르 애호가 루트를 밟았더군요. 또 다른 추억의 책은 폴란드 아동문학인 "크레크스 선생님의 학교"를 꼽았고요.
미카미 엔은 "마더 구스", 히노 히데시의 만화 "죠로쿠의 기묘한 병"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들은 국내 소개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미카미 엔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집 "에렌디라" 속 수록작인 "단순한 에렌디라 와 무정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 정도만 국내 출간되었을 뿐입니다. 마르케스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일정한 틀의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뭔가를 소설에서 배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미카미의 말이 마음에 들기에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만화 이야기도 하는데, "블랙잭" 이야기에서는 확실히 두 사람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더군요. 미카미 엔이야 블랙잭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한 편에서도 소개되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에 뒤지지 않는 구라타가 참 대단했습니다.
후지코 후지오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더 반가왔어요. "Utopia"도 아마 "비블리아 고서당" 에서 소개되었었죠?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길" 에서 접했기에 더욱 반가왔고요. 어차피 지금은 복간되어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기는 하지만요. "모쟈코"와 "에스퍼 마미"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언급되는게 기뻤습니다. 또 "유혈귀" 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의 내용을 상당히 길게 언급하는데 결말이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으로 만들어서 구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흡혈귀는 신인류고, 구인류는 선량한 신인류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유혈귀였으며 결국 주인공도 신인류?가 되어 즐겁게 살아간다는,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호러물이더군요. "만화의 길" 에서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 다른 거장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누가뭐래도 후지코 후지오 역시 뒤지지 않는 천재임에는 분명해요. 

그리고 소설가로 계속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처음 안 사실은 계속 하는게 정말 어렵다는 점이라는군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쌓아두었던 것을 토해내면 첫 번째 책은 어떻게든 모양은 갖출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뒤로 세 번째, 네 번째 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프로로서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전해줍니다. 데뷰작이 가장 좋은 작가들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지요.

책을 사랑해서 벌어진 에피소드들도 이야기하는데, 주로 재미있는 책을 읽었을 때의 경험들에 대한 수다입니다. 미카미 엔이 코니 윌리스의 "항로" 라는 소설을 읽을 때, 절묘한 부분에서 상권이 끝났지만 한밤중이라 문을 연 서점이 없었다는 이야기처럼요. 저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습니다. "용오"의 복제 예수 에피소드 다음 권을 사기 위해 업무 중 홍대 앞 한양 문고로 뛰어갔던 적도 있고, "불멸의 용병" 이라는 해적판으로 접한 "베르세르크" 의 그리피스 편 다음을 읽기 위해 한 밤중에 도서대여점을 돌아다닌 적도 있으니까요.
페이지를 접거나 메모하는 행동에 대한 대화도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같아 좋았습니다. 저는 둘 다 안합니다만. 책 때문에 담배를 끊고 심지어 하루에 라면 한 개로 버틴다는 이야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의 베스트셀러는 왠지 꺼린다는 미카미와 구라타의 말도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좀 청개구리과라서, 인기가 있다고 하면 그냥 좀 싫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책에 대한 수다가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재미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러나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리뷰에서 적었듯이, 수다 중 언급되는 작품들 중 국내 출간된 작품 정도는 조사하여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하루도 안 걸렸을 것 같은데,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네요.

2017/03/18

도서관의 살인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점

도서관의 살인 - 4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제가오카 고등학교 기말 고사 기간 중에, 요코하마 시립 가제가오카 도서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이었던 피해자 시로미네 교스케는, 가제가오카 고등학교 도서위원장 시로미네 아리사의 사촌오빠였다. 사건 현장에서 다이잉 메시지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고, "아노하나" 블루레이를 사기 위해 우라조메 덴마는 경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건에 협력하게 되는데...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가 등장하는 '관' 시리즈 제 3권입니다. 이번에는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이 무대인 이유는 잘 설명됩니다. 아리사가 쓴 "자물쇠의 별나라"를 몰래 도서관 책처럼 꾸며놓고 반응을 지켜봤다는, 자그마한 장난 때문으로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덕분에 문이 잠긴 도서관에 피해자 및 다른 인물들이 각자의 목적으로 잠입한다는 전개도 설득력 있고요.

그리고 트릭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차이를 보입니다. 주어진 정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하는 후더닛 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안경은 묘사 자체가 아예 노골적으로 "이건 정보야!"라고 알려주는 수준이에요.

라이트 노벨스러운 만화적인 캐릭터들도 여전히 볼거리입니다. 우라조메의 재수없음은 한결같고, 유노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은 유쾌합니다. 유노의 오빠 하카마다 유사쿠의 한결같은 오해, 우라조메를 타도하기 위한 야쓰하시 지즈루의 작전과 기말고사를 둘러싼 경쟁 등 소소한 이벤트도 즐거웠고요. 개인적으로는 유노의 팬티 엿보기 관련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여러모로 이전 작품에 비해 시시하며 완성도도 낮습니다. 트릭이 없는 탓도 크지만, 우라조메의 추리 역시 약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다이잉 메시지가 조작되었을 거라는 추리입니다. 다이잉 메시지를 쓰기 위해서 손을 불빛으로 비추고 있어야 했다는 전제부터 납득하기 어려워요. 일본어 "구"와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불빛이 왜 필요할까요? 그리고 "구"가 아니라 숫자 7과 0을 쓴 것이라면 애초에 불빛은 필요도 없습니다. 소설 표지 등장인물에 동그라미가 쳐진 것은 우연일 수도 있는데 이 정도 추리로 조작이라고 단언하는건 잘못입니다. 이를 지적하지 못하는 경찰은 바보고요.

범인을 특정하는 중요한 단서인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추리 역시 문제입니다. 머리카락에 피가 묻었다고 그 자리에서 잘라낼 생각을 한다는 것 부터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걸어서 몇 분 안되는 거리에 집이 있는데, 구태여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머리카락을 현장에서 자른다? 게다가 범인이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는데 광적으로 집착했는데도 불구하고? 말도 안됩니다. 대충 물로 씻고 집에 가서 정리하는게 당연합니다. 피묻은 머리카락이 "무선조종 형사"에 흔적을 남긴 정도로 끝냈어야 했는데, 머리카락임을 강조하기 위해 지나치게 억지를 부렸어요.

무엇보다도 동기는 최악입니다. 아니, 동기가 없습니다. 아들이 걱정되어 도서관에 따라간 어머니가 아들을 때려 죽인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잖아요. 현지에서도 동기 때문에 말이 많았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전작 "수족관의 살인" 리뷰에서 단점으로 어처구니없는 동기를 지적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동기가 없는 후속작을 발표한걸 보면 작가에게 동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네요. 아무리 다른 부분이 논리적이고 잘 쓰여졌다 하더라도 이 점 때문에 본격물로서 합격점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고전 본격물에 흔해빠진 유산 상속복수라는 동기가 반복되는건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동기도 본격물에서는 용의자를 특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니, 흔해빠져도 설득력있다면 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아울러 모든 추리는 범인이 남긴 흔적을 통해 진행됩니다. 즉,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범인이 밝혀졌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단서가 나오지 않고 사건에 미궁에 빠진다는건, 여러모로 현실적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우라조메 덴마의 과거를 캐기 위해 유노가 나선다는 이야기도 별다른 흥미를 자아내지 못합니다. 솔직히 관심도 없어요. 그래봤자 중학생 때 있었던 사건, 뭐 그리 대단한게 있겠습니까. 설령 그럴듯하다고 해도 오타쿠라는 설정 외에 또 다른 설정을 추가하는건 반대입니다. 외려 오타쿠라는 캐릭터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게 문제로 보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유쾌하고 즐겁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계속 읽을 자신이 없네요. 이대로라면 구태여 더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14/12/31

맥주별장의 모험 - 니시자와 야스히코 / 이연승 : 별점 1.5점

맥주별장의 모험 - 4점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행 중 불의의 사고로 헤매게 된 닷쿠 일행 4명은 발견한 별장에 불법으로 침입하고 말았다. 더위와 피로로 넋이 나간 탓이었다. 별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다만 1층에는 싱글 베드 침대 한 개 뿐이고, 2층 붙박이장 속 숨겨진 냉장고에는 다량의 맥주가 보관되어 있었다. 일행은 피로와 배고픔이 극에 달했기에 긴급피난이라는 핑계로 별장의 맥주를 마시며, 별장의 특이한 상황에 대해 각자 추리한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닷쿠 & 타카치" 시리즈 장편입니다. 시리즈는 오하시 카오루의 만화로 먼저 접했었지요. 전작이 있는데 깜빡하고 두 번째 작품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캐릭터 관련 소개가 약간 부실하지만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제가 읽었던 만화책에 수록된 단편 원작인가 싶었는데 아니더군요. 

보안 선배, 타쿠, 타카치, 우사코 4명이 특이한 상황에 대한 추리를 내놓는다는 설정은 추리 동호인들의 수수께끼 풀이 수다를 소설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사실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추리를 피력한다는 설정은 "독 초콜릿 사건"이나 "바보의 엔드크레디트", 얼마 전 읽은 "탐정 영화" 등 많은 작품에서 선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각자가 정리된 추리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수다 레벨의 추리를 펼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도 술자리 수다라서 터무니없거나 허점 투성이인 추리가 속출합니다. 때문에 추리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작가도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좀 쉽게 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엉터리 추리를 마구 끼워넣어 분량을 늘릴 수 있으니까요.

물론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수다를 펼치더라도, 그럴듯한 진상만 잘 뽑아낸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다른 유사한 작품들도 말도 안 되는 추리가 등장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진상도 터무니없고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납치한 뒤 그가 혼자 맥주를 먹으며 잠들기를 기다린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납치된 사람이었다면 일단 나갈 생각부터 했을 거에요. 납치당한 판국에 맥주는 무슨 맥주.
게다가 범인들이 범행을 일으킨 이유는 결국 명확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장치를 꾸밀 노력과 돈이면 보다 효율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한 것일까요? 모종의 범행을 뒤집어씌우려고? 하이고... 차라리 사람을 고용해서 묻어버리는 게 낫죠. 진상보다는 영화 세트장일 것이라는 초반의 추리가 더 현실적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캐릭터 설정이 진부하기 그지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라이트 노벨이나 만화를 보는 듯 천편일률적인 무채색 캐릭터들이었어요. 술 좋아하고 허술하지만 사람도 많이 따르는 리더 보안 선배, 키 크고 차갑지만 머리 회전이 빠른 츤데레 미녀 타카치, 키 작고 딱히 남자답지 않지만 의외로 꼼꼼하고 추리력 좋은 타쿠, 이런 파티 구성에 빠질 수 없는 마스코트 캐릭터 우사코로 구성된 4인 파티인데 정말 많이 본 설정이죠.

그래도 아주 건질 게 없지는 않습니다. 산사태가 났다는 도로 표지판이 조작이었을 것이다, 퍼스트·세컨드(별장)의 위치는 어느 쪽 길을 향했어도 무방하게끔 배치된 것이다 등 추리가 번뜩이는 부분이 있기는 했고, 두 번째 별장과 같은 의외의 포인트는 읽는 재미를 주기는 했습니다.
수다라는 분위기도 떠들썩하니 나쁘지는 않았어요. 술자리 마다하지 않고 술만 있다면 끝까지 달렸던 제 대학 생활 때가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죠.

하지만 내용에서 추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추리 소설에서, 그 추리가 억지와 비약으로 점철되었고 진상 자체가 전혀 설득력이 없는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1점을 주려 했지만 약간의 건질 만한 포인트에 0.5점을 더합니다.
만화책 쪽이 7만 배는 더 좋았는데, 차라리 만화 번역본이 출간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21/10/15

미스테리아 34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4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아는 주제가 흥미로울때만 가끔 읽곤 합니다. 34호는 일본 본격 추리 소설이 특집이라서 읽게 되었습니다. 나름 고전 본격물의 팬을 자부하고 있으니까요.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요. "니가 범인이야!" 라는 느낌이니까요. 강렬합니다.

특집은 일본 본격물의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본격과 변격이라는 말의 유래, 그리고 본격이라는 말의 정의, 최초의 본격물에서 신본격, 그리고 근래 라이트 노벨류까지 이어지는 역사와 대표작, 대표 작가들이 소개되지요. 큰 흐름으로는 본격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고가 사부로에서 시작하여 에도가와 란포"D언덕의 살인사건", 하마오 시로의 "그 남자가 죽였을까", 요코미조 세이시"혼진 살인사건",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사회파 미스터리의 대 유행에 이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아야쓰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니시자와 야스히코"일곱 번 죽은 남자", 모리 히로시"모든 것이 F가 된다"신본격 전국 시대를 넘어 우타노 쇼고"벛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식입니다. 

뒤로는 본격물이 일본에 받아들여진 당시 일본 추리 문단에 대한 상세 설명, 여러가지 유명 작품 속 트릭에 대한 소개, 점점 캐쥬얼화 되어가는 신본격 장르물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자료 조사도 탄탄하고, 담고 있는 내용도 풍성한 편이었어요.

두 번째 특집 기사 '체인질링'은 인간의 아이와 바꿔치기된 요정 아이에 관련된 민담을 분석하는데, 중세 유럽에서 왜 아이가 바뀐 것에 대한 전설이 만들어졌는지를 당시 역사적 배경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기형일 수도 있고, 아이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던 탓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관련된 다른 전설, 우리 나라의 예도 들어서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홍한별 번역가와 곽재식 작가의 옛 사건 탐구도 흥미로왔어요. 특히 명동 한복판에 일제 강점기 시절 빼돌리지 못했던 보물이 묻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도 손색없어 보였습니다. 레이철 쿠시너의 "마스 룸" 속 등장하는 요리들을 소개한 컬럼은 '추리 소설과 요리'에 대한 글을 써 온 저로서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요. 요리들도 아주 신기하더군요.

그런데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본격물 관련 특집은, 이미 대충 알고 있던 내용들로 새로운 건 없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저도 쓸 수 있었을 기사였달까요? 물론 캐쥬얼화 되어가는 최근의 흐름은 잘 몰랐던 내용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쪽 작품들 찾아 읽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아서 몰랐던거에요.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가 있었던 기사는 아니었습니다. 

유성호 법의학자의 아동 학대 흔적에 대한 컬럼, 이은의 변호사의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속 법적 대응 방법 등 다른 기사, 컬럼들은 볼륨이 대체로 빈약합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와 별다를게 없는 수준이에요. 반대로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포제서" 평론은 볼륭은 풍성했지만 글의 가독성이 너무 낮아서 지루했고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평론만 봐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가독성이 낮은 글은 이외에도 많아서, 쉽게 읽히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짤막한 리뷰들 하나하나까지 모두요.

마지막에 수록된 3편의 단편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관심있는 특집이더라도 더 이상은 구매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은지, 홍한별, 곽재식의 컬럼과 논픽션 기사나 추후 단행본이 출간되면 구입해 볼 생각입니다.

수록 단편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리뷰를 마칩니다.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콩알이를 지켜라!" 

자신이 창조해 낸 인기 동화책 콩알이가 인생의 전부인 일러스트레이터 지혜정의 남편 김진석 교수가 살해되었다. 범인은 제자 최은비였다. 진석이 그녀를 강간하려 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혜정은 은비를 꼬드겨 시체를 강원도 의천에 있는 별장에 유기하러 출발했다. 콩알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별장에는 진석의 변태 친구 한동철이 머무르고 있었고, 혜정은 동철마저 살해한 뒤 시체 두 구를 함께 유기해 버렸다.

듀나범죄 스릴러 단편인데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졸작입니다. 

우선 범죄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 낮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쓰레기였다 한들, 피해자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살인자와 함께 시체 유기를 한다는걸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한 탓입니다. '콩알이'의 존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부족해서, 그다지 절박한 이유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혜정이 처음부터 한동철을 죽이려 했고, 이를 위해 앞서 시체 유기를 일부러 훤히 드러나게 시도했다는 식으로 범죄 계획을 정교하게 세우기라도 했다면, 범죄물로 볼 만한 여지가 있었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전개도 혼란스럽습니다. 진석이 제자의 고백을 녹화하여 한동철과 공유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삼았다는 진상이 드러나는건 뜬금없었고, 이 때문에 한동철을 죽였다는 것도 급작스러워서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애초에 진석은 여태 은비의 고백을 녹화해서 잘 쓰다가, 왜 갑자기 강간을 저지르려고 한걸까요? 문학하는 남자들을 모두 성범죄자로 단정짓는 설정도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듀나의 특기이자 장점인 기발한 설정이 빠져버리니, 뭐 하나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웃는 탐정" 

초월탐정 김재건과 미소년 조수 마곤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집주인 여사와 김재건 사이에 택배로 인해 발생한 트러블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망진창이에요. 마곤이 초능력자로 일종의 투명 인간이 되어 집주인 여사가 가지고 있던 김재건의 택배를 훔쳐내는게 이야기의 거의 전부인데, 마곤이 이 택배를 왜 훔쳐내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월탐정 어쩌구하는 김재건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경박하고 유치찬란한 김재건 묘사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초월 탐정' 이 뭘 뜻하는 별명인지 감도 오지 않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는군요. 서두의 시점을 가지고 독자와 장난치는 부분은, '메타 미스터리' 운운했던 앤솔로지 "Y의 비극"에서 니카이도 레이토가 썼던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도 엄청난 졸작이었지요.

마곤이 할머니와 김재건 사이에 있었던 일을 추리하는 일상계 추리스러운 부분은 괜찮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저 그랬어요.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세트장" 

배우 잭 하터가 영화 촬영용 세트장에서 살해당했다. 사건 당시 21번 방음 세트장 안에는 현장 제작자 조 캐츠키와 감독 샘 매스터퍼드 등 모두 열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1930년대를 무대로 하고 있는 단편인데 옛스러운 영화 촬영장 분위기를 상세하게 그려낸 묘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잭 하터와 마리 플레밍, 두 주연 배우 간에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는 마지막 촬영 장면 묘사가 특히 그럴싸 했어요. 이 부분은 여배우를 연모하고 있었던 감독 샘의 살인 동기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기도 했는데, 잘 그려냈습니다.

'스크립터'가 탐정역을 소화한다는 설정도, 과연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썼구나! 싶더군요. 스크립터는 씬마다 있는 오류를 잡아내기 위한 사람으로, 당연히 관찰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관찰력을 바탕으로, 일종의 닫힌 공간인 촬영 스튜디오에서 소거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 과정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거의 대부분 목격 증언으로 소거되는 덕분이에요. 결국 조 캐츠키와 샘 매스터퍼드만 남는데, 발소리를 듣지 못해서 샘이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조 캐츠키의 발소리는 독특했고, 샘은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서가 별다르게 제공되는건 없어서 본격물로 보기 힘들며, 추리도 일사천리라 의외성은 없습니다. 사실 샘이 범인이라는 스크립터의 추리는 증거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어서, 경찰 수사가 추가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생각되네요. 그래도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최소한 읽을만한 수준의 추리물이기는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10/22

다양한 각도로 맛보는, 서로 다른 느낌의 걸작 시간 미스터리 소개

* 이전 소개드렸던 honto의 북트리 서비스에서 추천하는 시간 미스터리 소설들

시간 여행, 루프 등 SF의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물'. 거기에 미스터리를 더한 '시간 미스터리'. 시간 미스터리라고 해도 유머러스하거나, 감동적이거나 서스펜스가 넘치는 등 소설별로 그 느낌은 천차만별입니다. 다양한 시간 미스터리 중 각각의 느낌별로 걸작들을 소개해드립니다. SF나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한때 잡화점이었던 폐가. 그곳에 과거로부터의 고민 상담 편지가 도착한다. 폐가에서 하룻밤을 지새게 된 3인조 빈집털이범이 그 편지에 답장을 쓰면서 현재와 과거가 연결되고, 마침내 훈훈한 결말을 맞이한다. '시간 미스터리 x 감동물' 걸작.

<<리피트>> 이누이 구루미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 주인공 모리는 여러 동행자와 함께 과거로 돌아간다. 미래를 아는 것으로 약속되었을 성공. 그러나 동행자들이 차례대로 죽어가고, 그 죽음은 시간이 갈수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왜 그들은 죽었는가? 다음에는 내 차례가 아닐까? '시간 미스터리×서스펜스'의 걸작.

<<일곱번 죽은 남자>> 니시자와 야스히코
드물게 하루를 7회 반복해 버리는 체질을 가지는 나, 그리고 반복한 그 날 돌아가시는 할아버지. 원래의 하루에서는 죽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셨을까? 죽음을 다루면서도 코믹하고, 피식 웃을 수 있는 소설. '시간 미스터리×유머' 걸작.

<<삭제 보이스 0326>> 가타바미 다이시 (국내 미출간)
과거의 일을 없던 일로 만드는 장치 KMD. 주인공 소년은 가장 친한 친구의 사고, 형의 자살을 막기 위해 그 장치를 사용한다. 그러나 불화가 점차 생겨나고 소년은 그에 맞선다. 그리고 이야기는 씁쓸하면서도 상쾌한 결말을 맞이한다. 읽은 후 애틋한 여운이 남는 이 책은 '시간 미스터리X청춘'의 걸작이다.

<<공허의 상자와 제로의 마리아>>
1만 번 이상 같은 때를 반복하고 있는 소녀와 시간이 루프라는 것을 깨닫는 '나'. 고등학생인 '나'와 전학온 그 소녀가 시간 루프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무릎을 치는 전개, 치밀한 설정, 정교한 구성이 결합된 '시간 미스터리×라이트 노벨'의 걸작.

2009/01/09

판타지 추리 소설계열의 신작을 완성했지만...

출간해줄 출판사를 찾을 수가 없네요.

학산 출판사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현재 다른 출판사를 찾고 있습니다. "경성탐정록"이 잘 나가준다면 출판사를 직접 차릴 생각도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거 같고요. 특히 올해는 세계적 불황이라니 더더욱 엄두가 나질 않네요.

어쨌건... 신작의 제목은 "장미빛 인생"으로 최근 유행하는 츤데레, 집사, 그리고 마법이 전면에 등장하는, 맘먹고 노리고 (뭘?) 창작한 작품으로 역시나 아이디어는 제가, 쓰기는 저희 형이 쓴 작품입니다. 저희 형제의 창작물답게 장르문학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추리"를 베이스로 깔고 있다는 것이 다른 작품들과 좀 차별화 되는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마법"이 기초가 되는 트릭물이기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좀 어렵지만, 그래도 추리물로서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자부합니다.

일단 장편이라는 점과 가볍고 유쾌하며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라이트 노벨"의 지향점과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여러권 짜리 장편은 아니고 배틀물도 아니니 좀 미묘하군요.
출판 의향이 있으신 분들께는 시놉과 원고를 보내드리고 있사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ps : 덧붙여, 공모전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원래는 생각이 있었는데, 관련한 안좋은 뒷 이야기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열정이 식어버렸네요.

2018/05/04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2 - 반시연 : 별점 3점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2 - 6점
반시연 지음, 김경환 그림/영상출판미디어(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시연 작가의 라이트 노벨 미스터리 두 번째 권입니다. 이전 권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걱정 반, 기대 반이라 읽어야 되나 망설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기 잘 했네요. 우려했던 만화적인 설정은 캐릭터 설명이 필요했던 이전 권에 비하면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는 편이며, 보다 현실 밀착형의 일상계 추리물로서 기본은 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만화 속 해결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셔터 시절의 이야기는 호우가 셔터가 되는, 아동 성폭행범을 찾아 나서는 토막토막난 일부 전개와 셔터를(아마도) 그만 둔 계기가 된 동생 백설과의 트러블 정도만 등장할 뿐이고요.

이야기는 크게 4개의 단락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완결되는 이야기들이 구유 시인과 시집 "밤벚꽃" 에 대해 다루는 긴 호흡의 이야기로 묶여 있습니다. "호접 "Bad Guy"" 는 과거 호우가 셔터로 인정받기 위한 퀘스트인 아동 성폭행범을 찾는 추론,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사야가 응모하려는 추리 게임 이벤트에 대한 추론이 중심인 이야기입니다. 구유 시인과 시집 "밤 벚꽃" 도 구유 본인이 "해브닝" 에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추리적으로는 과거 셔터 시절 추론은 단편적이라 평가하기 어렵지만 추리 게임 이벤트는 상당히 그럴싸했습니다. 추론 및 이벤트에 대한 견해 모두 말이죠. 서두를 장식할 만 이야기에요.

"추억 "04:59"" 는 호우의 몸에 이상이 생겨 혹시나 금단증상이 아닐까 싶어 찾아간 금연 클리닉 선생님에 대한 추론, 그리고 기묘한 레미제라블을 사러 온 손님 예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핵심은 스트레스로 정신병에 걸린 예지에 대한 이야기로 탄탄한 묘사 덕분에 설득력도 높고 재미있었어요. 예지의 집 구조와 예지가 이야기한 회사 자리에 대한 설명이 일치하는 장면은 그 중 백미였고요. 호우의 추론이 아니더라도 드러난 단서만으로 예지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좋은 에피소드임에는 분명합니다.

"버디 무비 "Bright lights"" 는 고지의 부탁으로 호우와 고지가 하루를 함께 하는, 말 그대로 버디 무비같은 이야기로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묘사가 대부분입니다. 브로맨스를 굉장히 강조하는게 눈에 띕니다. 호우가 있어야 할 장소에 대해 고민하자 분노하는 고지의 모습처럼요. 반면 추리적으로는 부족합니다. 고지의 단골 목욕탕 수아탕에 대한 추론과 상가 거리 여관집 아들 영조의 여자친구 소미가 들었던 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추론 정도만이 짤막하게 등장할 뿐입니다. 하지만 일상계 추리물로는 평균 이상 수준의 재미를 선사해주며, 목욕탕에서 만난 만물박사의 시집 관련 묘사도 구유 시인 이야기의 중요 복선이기 때문에 빼 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에요.

"미싱 링크 "Someone to love you"" 는 여고생 가영과 혜윤이 가져온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호우가 동네 해결사로 나서는 설정도 이질적이고 내용도 딱히 특별할 건 없습니다. 진상인 '노는 척 하는 건 연기일 뿐이다' 는 이십여년 전 "시험의 제왕" 에 이미 등장했던 소재라 식상하고요. 무엇보다도 가영이 혜윤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더라면 모든 게 해결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권의 워스트, 구유 시인 관련 묘사를 제외하면 구태여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반대로 마지막 수록작 "데드맨 워킹 "Break the Wall"" 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하나 둘 씩 선보인 여러가지 단서들을 통해 여관 주인 만조, 구유 시인과 상점가 만물박사에 얽힌 진상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데, 설득력도 높고 만물박사를 응징하는 호우의 모습은 권선징악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으로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거든요.

이렇게 수록작들 대부분 재미도 있고 가치도 있지만 단점이 없는건 아닙니다. 가장 큰 단점은 전편을 관통하는 주요 등장 인물인 구유 시인에 대한 설정입니다. 절망의 시집 "밤벚꽃" 을 희망 가득한 찬가로 광고한 출판사와 편집자에게 실망하여 절필 선언, 잠적에 이어 자살까지 결심한다는 건 여러모로 납득하기 힘들었어요.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스트셀러 시인이 그 정도의 자기 표현도 하지 못한다는 건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지죠.
게다가 만물박사 홍기욱 설정은 더 별로에요. 그가 허세 가득한 거짓말장이라는 것 외에는 여러모로 '최종 보스' 로 보기에는 허술한 탓입니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었으며, 특히 구유 시인이 그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다는 건 그다지 설득력있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구유 시인과 만물박사 모두 이야기를 길게 끌고 나갈만한 캐릭터와 설정은 아니었어요. 이렇게 구유 시인의 "밤 벚꽃" 이라는 시집에 관련된 긴 이야기를 축으로 연작 형태로 구성하기 보다는 그냥 주인공 일행과 '해브닝' 손님들 사이에서 일어난 소소한 추론만으로 끌고 가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니면 긴 연작이 아니라 하나의 단편 에피소드로 처리하던가요.

불필요한 묘사도 많습니다. 호우 시점에서의 독백, 완결되지 않는 과거사, 또 호우가 금단 현상인지 다른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는 등의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전후 일본 추리 소설에 봄직한 구태의연하면서도 불필요한 묘사들이었습니다. 아울러 호우가 넘버원 셔터와 해브닝의 셔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설정과 묘사도 캐릭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사족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비교적 읽을만한 추리물이라는데 이견은 없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조금 독특한, 그리고 읽기 편한 가벼운 일상계 추리물을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단, 앞서 말씀드린대로 묘사와 설정은 상당히 취향을 탈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