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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7

네버 고 백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5점

네버 고 백 - 6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잭 리처는 전화 통화로 호감을 느낀 수잔 터너를 만나기 위해 110 특수부대를 찾았다. 110 특수부대는 과거 잭 리처가 부대장이었으며, 수잔 터너가 현재 부대장을 맡고 있는 부대였다. 그러나 잭 리처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16년 전 폭행 치사 사건과 친부 확인 소송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수잔 캐런은 반역죄 혐의로 수감되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 모든게 음모라는걸 깨달은 잭 리처는 수잔 터너와 함께 탈옥한 후,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나서는데...

잭 리처 시리즈는 최근 가장 인기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톰 크루즈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요. 그러나 딱히 끌리지 않아서 읽어보지 않다가, 마침 읽을 책이 없기에 집어 들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신작 영화의 원작인데, 영화화될 정도라면 시리즈 중에서도 재미와 인기가 최고 수준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잭 리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서 전작을 읽어가면서 배경 설명을 익힐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읽어보니 인기가 있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재미만 놓고 보면 어디 내 놓아도 꿀리지 않는 덕이 큽니다. 거대한 음모가 있고, 음모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 그 와중에 닥치는 여러 위기들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되고 있거든요. 하나 씩 단서가 밝혀지며 음모가 드러나는 전개도 괜찮습니다. 16년전 살인 사건과 문란한 생활이라는 누명으로 수감된 후, 수잔 터너와 함께 탈옥하여 이것이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관련된 음모라는 것을 알아내고, 단서를 변호인 설리번과 에드먼즈에게 정당하게 요청하여 하나씩 단서를 수집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결국 음모의 실체에 도달하는 과정이 꽤나 설득력있습니다.
음모의 핵심인 아편 밀수를 ''무기'를 밀거래한 것이 아니라면 미국의 병참부대원들을 데리고 무엇으로 어떻게 장사를 한 것일까?'라는 수수께끼와 함께 주어진 복선(예를 들어 에밀 자드란의 형들이 양귀비를 재배한다는)을 통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이 과정에서 시발점이 되는 탈옥에 대한 묘사도 훌륭합니다. 우연을 적절히 활용하여 당직 대위와 변호사 설리번을 감옥에 가둔 후, 변호사들의 신분증을 이용하여 탈옥하는 과정의 설득력이 높은 덕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작위적인 우연이 겹친 상황인데, 이를 잭 리처 시점에서 동전 던지기를 인용하며 최대한 가능성 있게 설명하는 것도 좋았어요.
음모와는 상관없이 단돈 30달러로 탈주를 이어갈 수 없어서 산속 오지 마약상 빌리 밥 재산 강탈 (ATM?) 설정을 집어 넣었는데 이 과정 역시 볼만합니다. 사만다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나름의 반전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아이 엄마를 알아보지 못함!-도 그럴듯하고요.

잭 리처 캐릭터도 나쁘지 않습니다. 쿨하고 냉소적인 한마리 고독한 늑대 해결사라는건 전형적이긴 합니다. 입담도 특별하지는 않고요. 그러나 엄청난 거구에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최강자라는 독특함을 그럴듯하게 , 생생하게 그려낸게 인기의 비결인 듯 합니다. 옷은 세탁을 하지 않고 버리고, 운전을 잘 못한다는 디테일도 묘하게 캐릭터에 실체감을 더해주는 요소였습니다. 워즈워스의 시를 알고 클럽 '도브 코티지''의 어원을 꿰뚫을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있다는건 좀 오버스러웠습니다만...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왜 처음에 잭 리처를 죽이지 않았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처음부터 해결사를 보낼 때 경고가 아니라 제거를 목표로 움직였어야 해요. 그들 말대로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인물을 뭐하러 경고까지 해 가면서 도망가게끔 유도하나요? 있지도 않은 가짜 사건을 억지로 만드느니 없애는게 깔끔한데 말이지요.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의 미군을 죽이는건 주저하지 않았기에 손을 더럽히기 싫었다라는 이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리처와 수잔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권력을 소유한 악당이 전투력 부족한 단 4명의 인력만으로 잭 리처를 추격한다는 점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리처 표현을 빌면 아마추어급인데 말이지요 . 구태여 LA로 가서 딸로 알려진 아이를 만나려는 설정도 이해하기 어려운건 마찬가지입니다. 본 음모와 하등의 상관도 없고요.

잭 리처의 먼치킨 설정도 조금 불만입니다.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지만 위기를 별로 어렵지 않게 뛰어넘어서 가면 갈 수록 긴장이 풀리고 말거든요. 그 중에서도 마지막, '결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쉬라고와의 일기토가 주먹 2방으로 끝나는 묘사는 허무할 정도입니다. 쉬라고가 왜 총을 꺼내지 않았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그리고 단점은 아니지만 같이 도망가는 남녀가 하루만에 눈이 맞아서 위기의 순간에 정사를 벌인다는 미국식 설정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킬링 타임용으로는 충분합니다. 다른 시리즈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2009/05/07

난파선 메리디어 호 - 하몬드 이네스 / 이태주 : 별점 3점

난파선 메리디어 호 - 6점
하몬드 이네스 지음, 이태주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태풍이 몰아치던 밤, 조난 사업을 막 시작한 존 샌스는 난파선 메리디어호의 구난을 위해 어렵게 탑승했지만 난파에 휩쓸렸다. 메리디어 호에 남아있던 유일한 승무원인 선장 기디언 패치와 함께 폭풍우를 뚫고 어렵게 생환한 그는, 메리디어호와 관련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 의심받는 기디언 패치 선장을 도와 다시 한 번 좌초된 메리디어호로의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서는데...

영국 작가 하몬드 이네스의 유명 고전 해양 모험 활극입니다. 이번 황금연휴 기간 동안 읽었습니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존 샌스가 난파선 메리디어 호 구조를 위해 탑승했다가 퇴선하지 못하고 조난당한 뒤, 배에 남아있던 선장 기디언 패치와 함께 메리디어호를 움직여 폭풍우를 빠져나와 생명을 건지게 되는게 1부입니다. 2부는 메리디어 호의 난파에 대한 법정 공방이고요. 그리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기디언 패치를 도와 존 샌스가 다시 메리디어호를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3부로 마무리됩니다.

배만 해도 거대한 화물선 메리디어호를 비롯하여 요트, 보트 등 엔진, 돛, 인력(노?)을 이용한 다양한 종류가 등장하고, 조난의 종류 역시 난파선, 무인도 등 폭풍우 속 가혹한 바다를 무대로 생각나는 모든 곳을 건드리니 그야말로 해상 조난물로는 종합선물세트라 할 수 있는데, 이에 걸맞게 바다와 항해, 폭풍우와 해난 사고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상세하며 박진감도 넘쳐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상세한 묘사는 특히 압권입니다. 저자가 정말 뱃사람 출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니까요. 그 중에서도 지독할 정도의 폭풍우 묘사는 정말이지 읽다가 멀미가 날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른바 메리디어호에 관련된 음모 역시 설득력 있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워낙 바다에 대한 묘사가 많은 탓에 좀 묻히기는 하지만, 한정된 지면 안에서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를 잘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해도 쉽고, 이 음모에 따른 주인공들의 절박한 행동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 특히 우직하고 말없으면서도 신념에 목숨을 거는 기디언 패치 선장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 등장하는 선장의 전형을 제시했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과묵하면서도 멋진 캐릭터입니다. 한마디로 바다 사나이 간지 가이~ 였습니다. 중간중간에 샌스에게 떼를 쓰는 장면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드라마는 좀 약한 편입니다. 법정 장면이 주로 펼쳐지는 2부를 제외한 1부와 3부는 패치 선장과 샌스, 2명 중심의 이야기로 흘러갈 정도로 인물 관계에서 발생하는 드라마는 거의 없거든요. 나머지는 전부 바다에서 벌어지는 사투뿐이니까요. 드라마적으로, 추리적으로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법정 장면에서도 이른바 "음모"라는 것이 단순하게 주인공들에 의해 독자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기 때문에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보다 긴박감 넘치게 음모를 숨겨가며 법정 드라마 식으로 처리해 나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아울러 2부에서 3부로 넘어가면서, 끝내 메리디어 호의 조난 위치를 숨기고 샌스에게 난파된 메리디어 호로 데려가 줄 것을 요구했던 패치 선장의 행동이 드라마의 큰 키인데 여러 명이 목숨을 걸만한 비밀로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살인은 무거운 범죄이지만, 12명이 넘는 사람이 죽은 대형 해난사고에 비하면 비약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만 제가 기대했던 만큼의 추리적 요소는 없어서 조금 감점합니다. 음모도 설득력 있고 주인공들의 행동도 타당하긴 한데 세련됨이 좀 떨어졌달까요? 그래도 해양 모험 활극이라는 주제와 권선징악적인 전개 등에서 알리스테어 맥클린 - 그 중에서도 꼽자면 "황금의 랑데뷰" - 의 작품이 연상될 정도로 경쾌하고 잘 쓰여진 작품으로 모험 활극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동서추리문고 치고는 번역도 괜찮은 편이고 가격도 착하니까요.

덧붙여, 영화에 참 잘 어울릴 것 같은 소재라 생각되어 잠깐 조사해보았더니 역시나더군요. "The Wreck of the Mary Deare (1959)"로 게리 쿠퍼와 찰턴 헤스톤을 투톱으로 내세운 작품인데, 이름값에 비해 평점은 별로네요. 대충 보니 원작보다 권선징악적 이야기를 더욱 강조하는 쪽으로 각색한 게 실수로 보입니다. 선장 캐릭터를 더 강화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2008/07/12

왓치맨 - 알란 무어 / 정지욱 : 별점 4점

왓치맨 Watchmen 2 - 8점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시공사

악당들과 싸우던 슈퍼 히어로들은 킨 법령에 의해 거의 대부분은 은퇴 수순을 밟는다. 그러던 어느 날 "코미디언"이란 히어로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예전 동료의 한명은 "로어샤크"는 예전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히어로들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서서히 간파하게 된다. 조사의 와중에 "로어샤크"는 경찰에 체포되나 그를 도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나이트 아울"은 그를 탈옥시키고 결국 모든 사건과 음모의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데...

휴고상을 수상하는 등 너무나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걸작이라는 평이 자자했던 왓치맨이 드디어 국내 정발되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단의 평 처럼 대단한 예술성을 느꼈다고 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재미있더군요. 단순한 권선징악적 이야기가 아닌 복잡한 음모가 이면에 펼쳐지며 절대적으로 선한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슈퍼 히어로물이라는 점에서 슈퍼 히어로물을 잘 아는 성인을 위한 만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의 지구 평화를 지키기위한 명목하에 벌어진 거대한 음모에 대한 히어로들의 암묵적인 동의, 그에 반발하는 로어샤크의 제거라는 극단적인 결말은 무척 인상적이었고요.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는 디스토피아적인 SF, 그리고 다른 차원의 지구와 세기말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겠지만 친숙한 슈퍼 히어로물에 이러한 세계관을 도입한 아이디어는 높이 사 줘야죠.

아울러 추리 애호가로서는 "추리적" 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왔습니다. 히어로 연쇄 살인사건이라 할 수 있는 중심 사건과 그것을 조사해 나가는 로어샤크의 모습은 하드보일드 물을 연상케 했거든요. 수사 과정 자체는 별거 없는 탐문수사에 그치지만 거대한 음모와 그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은 꽤 흥미진진하고 나름 하드보일드 전통에 충실하다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래픽 노블"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정도로 미국 만화 특유의 선을 살리면서도 정교하게 그려지며 화려한 채색이 덧붙여진 데이브 깁슨의 그림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세부적인 디테일 하나를 놓치지 않는 치밀함 역시 빛을 발하고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작품에 대한 방대한 정보와 해석이 넘쳐나는데 그러한 세부 정보가 없이 처음 접하더라도 작품의 수준은 평범 이상을 보여주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종합해 보았을 때 별 4개는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번에 영화화되어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스토리를 영화 하나로 압축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되긴 하지만 무척 기대됩니다.

2004/10/07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 아이라 레빈 / 김효설 : 별점 2.5점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 6점 아이라 레빈 지음, 김효설 옮김/시작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밀 회합을 가진 조직, 그들은 나치 잔당으로 나치의 재건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직 "카메라덴베르크"의 멤버들로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과학자이자 의사 "멩겔레 박사"를 주축으로 한 조직이다. 그들의 사명은 앞으로 2년 반 사이에 미국과 유럽에 흩어져 있는 94명의 60대 중반 노인들을 살해하는 것.
우연히 베리 퀠러라는 청년에게 녹음된 이 대화는 일부 내용만 저명한 유대인이자 나치 사냥꾼 야콥 리베르만에게 전달되고 리베르만은 이 음모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사고-살해로 죽은 60대 중반 노인의 자료를 모아 독자적인 조사를 벌인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이 없어 허위 신고로 판명되는 듯하여 조사를 중단하려는 마지막 순간에 리베르만은 우연찮게 피해자의 가족을 접하게 되며 충격적인 음모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는데... 

아이라 레빈의 장편소설. 충격적인 데뷰작이었다는 - 익히 알고 있던 명성 탓에 품었던 기대보다는 별로였지만 - "죽음의 키스"의 작가죠.
이 작품은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첩보 서스펜스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으로 2차 대전의 히틀러 최측근 중 하나인 "멩겔레 박사"가 악역으로 등장하여 나치 잔당을 척결하는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유대인 "리베르만"과의 한판 승부를 국제적인 거대한 음모와 함께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65세 가량의 공무원 및 비슷한 직업의 노인들을 살해한다는 음모가 일견 황당하지만, 멩겔레 박사의 치밀한 십수년에 걸친 치밀한 작전이라는 것이 설득력있고 스릴넘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본 발상이 상당히 기발한 편입니다. 아마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기발한 발상이며 충격을 가져다 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설정이 비슷한 스릴러 물이었던 "모레"를 먼저 읽었기에 충격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꽤 그럴듯하거든요.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리베르만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나가는 과정이 전부 우연에 기대고 있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우연히" 누군가의 전화로 음모를 알게되고 "우연히" 피해자의 가족을 접하게 되어서 진상을 알게되는 식인데 별로 매끄럽지도 않고 쉽게쉽게 간 느낌이에요. 막판의 멩겔레와 리베르만의 대결도 조금 밋밋해 보인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죠. 고수들의 대결 치고는 너무 시시했거든요. 둘의 대결에는 자비에르와 매그니토의 대결과도 같은 뭔가 "아우라"가 있어야 했습니다...
또 30년 전에 쓰여졌다는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클로닝"이라는 유전학적 기법에 대해 너무 과대 포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드네요. 물론 멩겔레 박사가 "쌍동이"라는 테마에 집착한 악마의 연구를 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 정도 가지고 이 소설에서처럼 완성도 높은 복제를 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보여지거든요. 뭐 소설이 현실에 크게 기반할 필요는 없겠지만.....
무엇보다 마지막의 "제 4제국"이 다가온다는 식의 엔딩은 석연치 않군요. "오멘"류의 엔딩을 집어 넣기는 했지만 그만큼의 임팩트도, 힘도 없는 결말이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있기는 했지만 비스무레한 설정의 후기작들을 먼저 접하고 읽은 탓에 저에게는 평작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죽음의 키스"나 "로즈메리의 아기"도 그랬고 이 작가는 항상 저에게 기대만큼의 재미는 가져다 주지 못하네요.
어마어마한 호화 캐스팅으로 무장한 영화 나 나중에 한번 봐야겠습니다.(링크를 따라가면 스포일러도 포함되어 있으니 조심을...) 쟝르 특성상 내용을 알고 보면 좀 재미가 떨어질려나요?

2019/05/11

모래톱의 수수께끼 - 어스킨 칠더스 / 사주영 : 별점 1.5점

모래톱의 수수께끼 2 - 4점
어스킨 칠더스 지음, 사주영 옮김/바른번역(왓북)

외무부 직원 커러더스는 옛 친구 데이비스의 초대로 늦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함부르크로 향했다. 젠틀맨에게 어울리는 우아한 요트 여행을 기대했는데, 데이비스의 요트 덜시벨라호는 선원 한 명 없는 작디 작은 요트였다.
독일 인근 북해 연안을 무모하게 누비는 몇일간의 요트 여행 후, 무엇을 위해서인지 커러더스가 궁금해하자 데이비스가 얼마 전 만났던 대형 요트 선장 돌만이 자신을 죽이려 했고 그는 독일의 스파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고백했다. 이유는 데이비스가 북해 인근 모래톱을 항해했기 때문으로, 데이비스는 모래톱의 수로는 초계정과 얼마전 들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어서 군사적 가치가 높다고 주장했다.
커러더스는 수로들을 조사하고 돌만의 음모를 박살내자는 데이비스의 부탁을 받아들이는데...

"블러디 머더"에서 스파이 소설의 원점이자 정점이라고 소개했던 작품입니다. 이렇게까지 소개하면 읽어 보지 않을 방법이 없죠. 셜록 홈즈를 읽어보지 않고 추리 소설을 논한다는게 말도 안되는 것과 같으니까요.

하지만 읽어보니 스파이 소설로는 합격점을 주기 힘듭니다. 우선 돌만이 '스파이' 이며 그의 음모는 이러저러하다! 는 두 청년의 확신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탓이 큽니다. 커러더스가 돌만과 폰 브뤼닝, 헤르 뵈메와 그림이 참석했던 회의를 몰래 염탐했을 때의 느낌처럼 그들은 정말 멤메르트 섬에서 오래전 난파선을 인양하려는 목적으로 뭉친 사람들일 수도 있어요. 진상은 결국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으니까요. 돌만이 과거 영국 해군 소속이었다는걸 숨겼다는게 과연 그리 대단한 비밀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설령 둘이 밝혀낸(것 처럼 보이는) 독일의 음모, 즉 독일이 자국 앞바다 수로를 영국과 최단거리로 이어지는 항로로 개척하여 병력을 태운 바지선을 영국 해안에 상륙시키려 한다는게 사실이라고 칩시다. 그러나 자국 앞바다에서 항로를 개척하는건 당연한 군사 훈련이자 작전입니다. 오히려 두 청년이 하는 짓이야말로 염탐이자 스파이 행위에요! 이러한 스파이 행위를 배신자 돌만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로 포장하는 행위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돌만이 배신자이건 아니건간에 둘의 스파이 행위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요?
게다가 이 음모도 둘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일 뿐 근거가 없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지만, 둘의 모험담에서도 잘 알 수 있듯 아주 날씨가 좋고 물 때가 맞아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으니까요. 주위에서 보는 사람도 많고요. 이래서야 효과가 있을리 없지요. 차라리 멤메르트 섬에서 인양 회사를 가장하여 잠수함 기지를 만들고 있다는 처음의 가설 쪽이 더 설득력이 높아 보입니다.

이렇게 스파이 소설로는 여러모로 함량미달이라면 다른 재미라도 주었어야 하는데 건질게 없는건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요트에 의지해서 위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라면 최소한 해양 모험 소설로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두 청년의 모험이 너무나 보잘 것 없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위험이라곤 데이비스가 좌초할 뻔 했던 무모한 항해 뿐이며, 이는 돌만의 입을 통해 안전할 줄 알았다는 식으로 부정됩니다. 그 외에는 안개 속에서 적의 본거지로 노를 저어 간다던가, 몰래 창 뒤에서 대화를 엿듣는게 전부에요. 스파이 소설에서 기대해 봄직한 서스펜스와 스릴은 커녕 모험 소설로 최소한의 액션도 등장하지 않아서 무척이나 지루합니다.

애송이에 불과한 두 청년이 활약을 해 봤자 이 정도에 불과할 거라는건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킹스맨" 등이 날아다니는 시대에 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따분했습니다. 항해와 배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도 지루함을 가중시킵니다. 디테일을 살리며 설득력을 높여주는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재미와는 영 거리가 멀더군요. 게다가 번역도 좋지 못해서 읽다가 졸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후 발표된 다양한 스파이, 모험 소설의 원조라는 점에서는 높은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읽어 볼 필요는 없습니다.

2017/10/28

엔드 오브 왓치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엔드 오브 왓치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 컴비 홀리와 함께 사설업체 "파인더스 키퍼스"를 운영하던 빌 호지스는 의사로부터 췌장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편,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드 하츠필드는 재핏이라는 게임기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이동하여 조종하는 능력을 손에 넣었고, 이 능력을 이용하여 세상과 빌 호지스에게 복수하려 했다. 
재핏 게임기와 관련된 기묘한 자살 사건, 특히 제롬의 여동생 바브라에게 닥친 자실 미수 등을 접하며 빌 호지스는 사건의 이면에 브래디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브래디는 담당 의사 배비노의 몸을 빼앗아 도주해 버렸다.
빌 호지스는 브래디의 음모를 막기 위해 생명을 걸고 마지막 승부에 나서는데...

스티븐 킹빌 호지스 3부작(요새 말로 트릴로지) 마지막 편입니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신비한 능력을 얹은 1편의 살인마 "미스터 메르세데스" 브래디 하츠필드가 재등장하여 빌 호지스와 숙명의 대결을 펼칩니다. 결말은 "끝"을 의미하는 제목 그대로고요. 시리즈는 정말 확실하게 끝납니다.

재미만큼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납니다. 그런데 다른 시리즈와 확실한 다른건, 이 작품은 추리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1편은 2015년 에드거상 수상작답게 분명 추리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습니다. 정교하지는 못했지만요. 2편은 빌 호지스 시리즈라고 부르기 민망할 뿐 범죄물로는 괜찮았고요. 허나 이번 편은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장르도 "싸이킥 호러 스릴러"라고 해야 합니다. 브래드가 손에 넣은 특별한 능력 - 염력과 재핏 게임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침투하여 그들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 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니까요.
물론 빌 호지스가 브래디의 능력을 알아내는 과정은 수사 비스무레한 절차를 거치기는 하지만, 브래디의 능력이 상식을 초월했다는 것만 문제지 그의 행방과 음모를 추적하는 과정은 너무 뻔하고 단순해서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합니다. 몇가지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브레디의 담당 의사가 수상하다! 녀석을 쫓아가자! 그냥 이게 전부거든요.

그래도 브래디의 능력은 설득력 있게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지 않은 것을 있음직하게 그려내는 스티븐 킹의 특기가 잘 발휘되어 있지요. 단지 능력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재핏 게임기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침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의 계획도 볼거리입니다.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후 게임기를 확산시켜 자살을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준다는 음모인데, 희대의 IT 전문가이자 정신병자 살인마인 브래디 캐릭터에도 잘 어울리는 설득력 높은 설정이었어요.

또 여러모로 열세였던 빌 호지스가 브레디의 최면 침투를 이겨내고 반격을 가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앞부분에 사용되었던 커다란 벨소리라는 복선이 적절하게 사용된 것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 명장면입니다! 너무나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 엔딩이지만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아,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냥 통증 때문에 침투에 걸리지 않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이를 위한 기지국 복선 역시 적절했고요.

다만 브래드의 음모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문제 투성이이기는 합니다. 왜 최면에 게임기를 반드시 써야 하는지가 가장 의문이에요. 그냥 화면을 들여다보고 탭하는 것으로 최면에 걸릴 수 있다면,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유도하는게 훨씬 빠르고 저렴한 방법이잖아요? 사이트 뿐 아니라 앱 형태로 뿌리면 갯수 제한이 있는 게임기보다 훨씬 넓게, 멀리 확산시킬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임기라는 특정 조건이 꼭 필요한 것으로 설명되지도 못한 탓도 큰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아울러 브레디의 자살 전염, 전파 계획은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좀 허무합니다. 대량 학살을 저지르려 했던 살인마가 개개의 사람들 마음 속 빈틈을 파고들어 자살을 유도 한다는게 너무 소박해 보였던 탓입니다. 피해자들이 주변인들을 죽이게끔 하는 장치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피해자가 고작 서너명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지요.

아울러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제롬의 비중이 등장이 적다는 것도 별로였어요. 이럴바에야 등장하지 않고 그냥 홀리와 빌 컴비의 활약만으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특히 이번 편에서 빌 캐릭터가 너무나 멋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고통도 참아가며, 심지어 마지막에 오줌까지 싸 가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친구와 선한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지금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하는 정말 멋진 올드 히어로거든요. 지금은 멸종해버린 서부영화 주인공인 셈으로, 죤 웨인이 늙어서 형사 역할을 맡는다면 이련 역할이 정말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여튼, 늙은 죤 웨인의 최후의 활약을 뒤로하고 젊고 잘생긴 신예가 마무리를 짓는 결말은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교하지도 않고, 추리물로써의 가치는 낮지만 스티븐 킹은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킬링타임용 책을 찾으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타임슬립이 무엇인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덧붙이자면, 빌 호지스 캐릭터가 정말로 멋지게 그려진 만큼 그의 젊은 시절 활약을 그린 프리퀄이 나와 주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06/04/25

루시퍼의 초대 (알라트리스테 시리즈 1)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김수진 : 별점 3점

루시퍼의 초대 - 6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시공사

마드리드에서 청부 검술사로 연명하는 백전노장 알라트리스테(Alatriste)는 친한 순찰대장 살다냐에게서 은밀한 의뢰를 받고 의뢰인을 찾아간다. 가면을 쓴 의뢰인은 영국에서 오는 2명의 여행객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들의 서류와 짐을 빼앗을 것을 요청하나 직후에 나타난 종교재판소의 최고 책임자 에밀리오 보카네그라 수사는 그 2명을 모두 죽일 것을 명령한다.

이탈리아인 칼잡이 괄테리오 말라테스타와 같이 그들을 습격하여 부상을 입히는데에 성공하는 알라트리스테, 하지만 영국인들의 용기에 감동한 그는 이탈리아인 칼잡이를 제지하여 그들을 살려주고 과거의 전우인 과달메디나 백작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며 그곳에서 두명의 영국인이 영국의 왕세자 찰스와 버킹엄 후작임을 알게 된다.


중대한 음모의 비밀을 알게된 알라트리스테는 곧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데....

몇권 읽긴 했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작가 레베르테의 시리즈 역사 활극 장편. 관심이 1피코그램도 없었지만 간만에 간 헌책방에서 새책이 눈에 띄길래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읽어보니 왠걸! 생각보다는 무척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선 주인공 알라트리스테 대위가 아주 돋보여요. 화자역의 이니고 발보아도 상당한 매력을 뽐내지만 알라트리스테에게 댈건 아니죠. 백전노장이자 현재는 마드리드에서 청부 검술사로 살아가는 퇴락한 군인이라는 설정은 진부할 수 있지만 (크리쉬?)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그러면서도 낭만적인 구시대의 유물스러운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쉽게 보기힘든 존재감을 보여주거든요. 레베르테의 글빨이 제대로 먹혔다고 할 수 있죠.
이러한 멋진 주인공 알라트리스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에 찰스왕세자, 버킹엄 후작, 펠리페 4세와 같은 역사속 실존인물들이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대하 서사극으로도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실존인물과 가공의 인물이 배치되어 펼쳐지는 활극이라면 "삼총사" 시리즈를 빼 놓을 수 없을테고, 이 작품 역시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히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은, 상당한 수준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대단해요. 작가 자신이 즐기면서 썼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전개가 빠르면서도 주인공들이 잘 살아있어서 독자를 매료시키는 것 같습니다.
또 이전 작품에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레베르테의 현학적인 장황한 묘사도 치밀한 자료조사가 덧붙여져 17세기 스페인 마드리드라는 배경에 잘 녹아들고 있기 때문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요소로 사용된 것도 마음에 들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거대한 국가적인 음모로 보여지던 계획이 별볼일 없는 결말을 맞고 흐지부지 끝나다는 점입니다. 좀 더 여러가지 장치를 덧붙였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음모가 그닥 복잡하거나 교묘하지 않아서 약간 실망스러웠거든요.
약간 독자에게 공부(?)를 요하게 하는 전개 역시 답답하긴 했어요. 이럴거라면 당시의 역사와 배경을 부록으로 실어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아쉽다기 보다는 문화적 차이랄까... 등장인물들 이름이 너무 길고 장황해서 기억하기가 무척 힘들었다는것도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캐릭터도 잘 살아있는, 충분히 다음편이 기대되는 작품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협지와 유사하구나 하는 느낌도 오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상당히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전부 5부작이라고는 하는데 한편 한편으로 따지면 분량도 그다지 많지 않으니 차분히 구해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반지의 제왕의 비고 모르텐슨 주연으로 곧 영화도 개봉하는 모양인데 예고편만 봐도 캐릭터가 상당히 근사하게 구현되어 보이는 만큼 영화도 무척 관심이 갑니다.(위의 사진이 포스터입니다)

2017/05/03

퍼스널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점

퍼스널 - 4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잭 리처는 우연히 주운 '아미타임즈' 광고를 보고 군에 출두한 뒤, 프랑스 대통령 암살 기도범에 대한 수사를 의뢰받았다. 1300미터 밖에서 저격이 가능한 저격수는 전 세계에 몇 명 없는데, 그 중 한 명이 16년전 잭이 잡아 넣은 존 콧트이며 그가 암살범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런던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서 저격이 시도될 수 있는 탓에 암살 계획은 러시아, 영국 정보원들까지 뛰어드는 국제적 스캔들로 비화했고, 잭 리처는 국무부 요원 케이시 나이스, 영국 SAS 요원 벤슨 등과 함께 그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는 존 콧트를 쫓게 되는데...

잭 리처 시리즈 19번 째 작품입니다.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읽고 나니 킬링 타임펄프 픽션으로는 딱이더군요. 대중적 인기가 이해가 갑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었어요. 

이유는 이야기가 굉장히 간단한 덕분입니다. 잭 리처가 누군가를 노리고, 그 누군가를 지키는 악당들과 한판 벌이고, 알고 보니 음모가 있었다는 식인데 복잡한 구석은 하나도 없습니다. 잭 리처부터가 별다른 생각 없이 사건에 뛰어들고, 위기가 닥칠만하면 본인의 격투 능력으로 쉽게 빠져나오기 때문에 정교하지도 않으며 별다른 드라마도 없어요.
이런 점에서는 흔해 빠진 무협지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한 마리 늑대와 같은 유랑 절대 고수 재구리차 (材究利嗟)는 어느날 과거 은인 수메이의 부름을 받았다. 정파 장문인들을 노리는 공전절후의 원거리 비도술 소유자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 한 명이 과거 리차가 뇌옥에 가두었던 조고두였다! 리차는 고두를 쫓아 정파 장문인들이 모두 모이는 태산 비무 대회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을 주름잡는 녹림방 무리와 손잡은 고두를 잡기 위해 녹림방 소굴로 뛰어드는데...'라는 식으로 그냥 번안만 해도 무협지가 될 정도에요.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오히려 생각 없이 쓴 티가 너무 많이 나서 실망스럽습니다. 이야기 앞뒤가 안 맞는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설정도 너무 많으며 여러모로 급조한 티가 많이 나니까요. 오죽하면 싸구려 무협지와 비교하겠습니까.
우선 음모의 핵심인 첫 암살 시도부터 허술합니다. '첫 한 발로 방탄 유리를 깨고, 두 번째 총알로 죽이려 했다'면 당연히 두방을 거의 동시에 쏴야합니다. 첫발로 방탄 유리가 깨지는 것을 확인하고 두번째 발을 쏜다? 1,300미터에서는 총알이 목표에 도착하려면 3초가 걸린다고 이미 설명됩니다. 그런데 작중에서 총알이 확인되고 경호원이 인의 장막을 치는데 걸린 시간은 2초입니다. 애초에 말이 안되는 암살 작전이에요. 이걸 애초에 간파하지 못한 정보 요원들은 모두 얼간이고요.

콧트가 숨어있는 리틀 조이의 집에서 벌어지는 활극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자국에 모인 G8 협상 멤버인 각국의 수뇌들 생명이 위험한데도, 동네 건달 조직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영국 정부의 모습부터가 웃음거리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우리나라에 회의 차 참석한 미국 대통령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암살범을 숨겨주고 있는 범서방파 중간보스를 손대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는건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러한 건달 조직간의 암투에 불필요한 시간을 소모하는 것도 모자라 총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나 되는데 2미터가 넘는 괴력의 네안네르탈인 리틀 조이와 육박전을 벌이는 클라이막스도 황당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잭 리처와 리틀 조이의 일기토를 드라마틱하게 그리려는 흥행 전략에 불과해요. 리틀 조이를 쏘면, 유탄이 동네 다른 주민들에게 맞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기는 하지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저 놈을 죽이지 못하면 모든게 끝나는데 걱정도 팔자지요. 저 같으면 탄창 하나 비울 때 까지 리틀 조이를 쏘고 또 쐈을겁니다.

리틀 조이의 거대한 인형의 집에 들어가서 콧트와 벌이는 밀땅도 어설픕니다. 우선 불구대천의 원수 잭 리처가 몇 백 미터 앞에서 격투를 벌이는데 콧트가 저격하지 않은 이유부터 불분명합니다.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작 중에서도 저격수가 무서운 점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계속 이야기되고, 심지어 파리에서는 천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저격을 시도하는데 왜 런던에서는 가만히 있는단 말입니까?
게다가 이렇게 유능한 저격수가 기껏 여자나 인질로 잡다가 잭 리처에게 총알 한 발로 사살되는 장면도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리틀 조이야 어설프게나마 일기토를 벌이기라도 했지, 진짜 끝판왕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무하고 한심했어요.

그나마 괜찮은 것은 오데이의 음모 정도입니다. 방탄 유리 시연회나 참석하는 신세로 전락한 오데이가 재기를 위해 방탄 유리와 저격범을 활용하려고 했다는 설정 자체는 꽤 그럴듯하니까요. 하지만 전 세계 정보기관이 힘을 모았는데 자금의 흐름 등 뒷 배경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영국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그려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또 이 음모는 잭 리처가 리틀 조이 일당을 몰살시키고 콧트를 죽이는 일련의 행동과는 무관합니다. 오데이가 왜 잭 리처를 불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동안 시간은 잘 가지만,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전형적인 펄프 픽션입니다. 차라리 헐리우드 액션 영화라면 그런대로 즐길만 했을텐데, 소설로 진득하게 읽기에는 좀 별로였어요.

2014/07/16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 - 앤소니 & 조 루소 : 별점 3.5점

[블루레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 8점
앤소니 & 조 루소 감독, 스칼렛 요한슨 외 출연/월트디즈니

쉴드의 비밀 계획 진행 중에 닉 퓨리가 암살자에 의해 저격당해 사망했고,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이 모든 것이 하이드라의 음모라는 것을 알게 된 캡틴과 일행은 음모를 저지하기 위한 마지막 싸움에 나섰지만, 캡틴의 앞을 옛 전우 버키가 "윈터솔져"라는 이름의 암살자로 돌아와 가로막는데...

출장 비행기에서 감상한 영화입니다. 마블 히어로 무비는 거의 전편을 빼놓지 않고 찾아볼 만큼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통 영화 볼 시간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요. "아이언맨3"는 아쉽게 보지 못했지만...

여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벤져스 예고편에 가까웠던 전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잘 만든 오락 영화입니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볼거리와 내용이 풍성했어요.

특히 단순히 선-악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조금 심도 깊은 음모가 펼쳐진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약간 스파이물 느낌도 날 정도로요. 또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배우가 선보인 알렉산더 피어스라는 인물 역시 1편의 레드 스컬보다 복잡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악역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사도우미를 쏴버리는 씬은 정말 압권이었네요.

아울러 "슈퍼 히어로"라고 부르기는 조금 미흡한 능력의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윈터솔져 버키와 팰콘의 활약이 적절하게 선보인다는 점도 돋보였어요. 캡틴의 방패를 활용한 액션도 전편보다 훨씬 멋지게 구현되어 있을 뿐더러, 블랙 위도우도 마지막 승부의 순간에서 보여주는 멋진 활약이 아주 인상적이었고 윈터솔져가 펼쳐 보이는 무쌍난무도 명불허전이었거든요. 무엇보다도 최고는 팰콘! 슈트가 원작과는 다른 군용 장비라는 설정인데, 굉장히 설득력 있으면서도 화려한 액션이 아주 놀라웠어요.

물론 세세한 부분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기는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팰콘이 갑자기 목숨을 건 모험에 뛰어든다는 것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목숨을 캡틴이 구해줬었다... 정도의 설정 정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또 피어스 역시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대배우가 맡은 역 치고는 결말이 너무 많이 시시했고, 윈터솔져를 하이드라가 정확하게 어떻게, 왜 활용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윈터솔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던 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약간 재미가 반감되는 측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허나 터미네이터에게서 감정 연기를 기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이런 영화에서 이런 세세한 부분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겠죠. 마블 히어로물의 팬이 아니더라도 즐길 거리가 풍성한, 충분히 잘 만든 액션 블록버스터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2008/06/10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 - 데이비드 리스 / 서현정 : 별점 3점

암스테르담의 커피 상인 - 6점
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대교북스캔(대교베텔스만주식회사)

암스테르담의 상인 미후엘 리엔조는 한번의 파산으로 동생 다니엘에게 얹혀 사는 신세지만, 전부터 알고 지냈던 네덜란드 여인 게이트라위드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커피 거래를 조작하자는 제안으로, 리엔조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상하여 3000길더나 되는 돈을 투자 받았다. 하지만 이전의 악연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암스테르담 유대인 조직 마아마드의 실력자 파리도의 견제 등으로 서서히 게이트라위드의 배후세력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고,. 결국 최후의 거래를 통해 파리도와 단판 승부를 벌일 결심을 굳힌 미후엘은 금기시 되어 있는 마지막 작전을 펼치는데...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들의 주인공인 유다의 사자 벤자민 위버가 등장하는 추리물인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위버의 조부뻘인 미후엘 리엔조가 등장하는, 추리적 요소는 별로 없는 역사 기업 소설입니다.
추리적 요소라면 커피를 대상으로 한 작전세력(?)의 진정한 흑막이 누군이냐에 대한 것인데, 작중에서 계속적으로 음모의 주체로 등장하는 미후엘의 라이벌 파리도가 결과적으로는 흑막이었고, 회고록 형태로 삽입된 고리대금업자 알페론다의 기록을 통해 배후의 암투가 상세히 드러나는 탓에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또 마지막 선물시장에서의 바람 장사 작전은 너무 쉽게 이루어져서 맥이 빠집니다. 과정은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잘 표현되어 있어 읽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작전 자체가 워낙에 시시하고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아심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여 국면을 전환시키는 약간의 반전은 있지만, 사기와도 같은 책략이라 엄청난 음모, 그리고 두뇌싸움의 결말 치고는 뒷맛이 씁쓸할 뿐입니다.

그러나 아주아주 재미있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습니다. 거래에 대한 불꽃 튀는 두뇌 게임과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 복잡한 음모가 아주 잘 묘사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당시 암스테르담과 유대인 사회에 대한 치밀한 고증 및 묘사는 역시나 최고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워낙 재미 측면에서 뛰어나기에 역사관련 팩션으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한줄로 감상을 평하자면 "유대인하고는 절대로 거래하지 마라."

2004/09/20

레드 스퀘어 - 마틴 크루즈 스미스 : 별점 3.5점

레드 스퀘어 - 8점
마틴 크루즈 스미스/영림카디널

러시아의 형사부장 아르카디 렌코는 검사와 상층부가 관련된 밀수 사건을 파헤치다가 숙청당해 시베리아 어선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던 중 러시아의 개혁, 개방 분위기와 함께 복직된다. 그리고 맡게 된 암시장 환전상 루디 로젠을 감시하는 임무 수행 중 루디가 눈 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경찰청 장군 페니야긴, 렌코의 부하 야크마저 살해되자 렌코는 사건에서 밀려나게 된다.
루디에게 발송된 "레드 스퀘어는 어디 있나요?"라는 수수께끼의 Fax 메시지가 독일에서 발송되었다는 점, 그리고 루디의 사업 파트너로 알려진 독일인 보리스 벤츠를 찾기 위해 뮌헨으로 날아간 아르카디 렌코는 옛 연인 이리나를 다시 만나게 되고 이리나를 통해 사업가 막스 알보프를 만난 뒤, 그는 이 모든 사건이 러시아 미술품을 밀반출 하려는 거대한 음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는데...

주의!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러시아 형사 아르카디 렌코 시리즈 3번째 작품. 1작인 "고리키 파크"와 2작 "북극성" 모두 재미있게 읽었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1작에서 검사가 관련된 사건을 다루며 결국 권력 상층의 밀수 사건을 적발해 내는 아르카디 렌코, 그는 원래 촉망받는 형사 반장으로 2차대전의 전쟁영웅 렌코 장군의 아들이라는 설정이죠. 허나 1작 사건 해결 후에는 사건의 핵심 인물이자 연인인 이리나의 미국 망명을 조건으로 혼자 소련에 남습니다. 당연히 숙청당해 시베리아 원양 어선 "북극성"호에서 일하게 되죠. 북극성호에서 발생한 여자 승무원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여 미국 어선과 얽힌 음모를 밝혀낸다는 것이 2작 "북극성"입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는 북극성 사건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다시 형사반장으로 복귀한 이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네요.

냉전이 한창이던, 그래서 "철의 장막"에 둘러 쌓여 있던 소련을 배경으로 한 1, 2작과는 확실히 다른 것은 해빙 무드가 본격적으로 무르익던 고르바쵸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러시아, 체첸 마피아들의 음모에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얽혀있다는 식으로 전작들보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훨씬 큽니다. 그러나 커진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핵심 이야기는 깔끔하게 전개되는 편이라 전작들보다도 오히려 읽기는 쉬웠으며, 첩보 스릴러물 비슷하게 여러 단체들의 암투와 그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하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주인공의 활약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번역이 가장 최신인 만큼 가장 잘 되었다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또한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인 "레드 스퀘어"라는 단어와 러시아 마피아의 관계에 대한 초, 중반부 수수께끼가 풀리는 반전이 굉장히 좋습니다. 유명한 장소인 "붉은 광장"이 아니라 러시아 현대 미술의 대작가 말레비치의 전설적인, 절대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는 반전인데, 이 반전을 통해 전반부의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과 사건, 그리고 복선이 연결고리를 찾게 되는 이야기 구성이 상당히 매끄럽기 때문이에요. 결과적으로 악역이 파멸하는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제 취향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역사의 큰 흐름이었던 "페레스트로이카" 당시를 배경으로 하여 러시아의 사회 실상을 치밀한 사전 연구 및 조사를 통해 르포 형식으로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실제 그 흐름에 휩쓸린 아르카디 렌코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격동의 역사 속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묘사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예를 들자면 고르바쵸프의 개방 정책에 불만을 품은 군부의 쿠데타라는 실재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와중에 마피아 보스 보리스 벤츠와 알보프를 상대로 마지막 승부를 펼치는 식이죠.
아주 약간의 문제라면 보리스 벤츠가 보리야 구벤코였다는 반전아닌 반전이 책 옆날개의 캐릭터 소개로 밝혀진다는 것 정도에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최근의 흐름이기도 한 역사와 추리를 섞은 작품들이 대부분 공상과 허구에 기반하는데 반해, 이 작품은 실제 시대 분위기를 잘 전해주는 실감나는 묘사로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매력이 넘칩니다. 말레비치의 실제 생애와 역사를 절묘하게 조합하면서도 러시아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디테일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사전 조사와 구성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더군다나 작가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에서 한번 더 놀라게 되네요.
전 3편에 달하는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읽기 편했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아마존을 뒤져봤더니 다른 시리즈도 있는 듯 하던데요, 냉소적이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아르카디 렌코의 팬인 만큼 후속 시리즈도 빨리 번역되길 소망합니다.

덧 : 말레비치에 대하여 - 카사미르 말레비치는 키예프 출신의 러시아 화가로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예술의 개척자이다. 처음에는 후기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으니 나중에 M.F.라리오노프 및 러이사 전위파 시인들과 친교를 맺고, 쉬프레타티즘을 주창하였다. 1911년에는 ‘다디아의 책’이라는 그룹에 참가하여 러이아의 입체파 운동을 추진하였으며 12년 파리 여행후 레제풍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발표하고 급속히 자기 방법을 발전히켜 12년 <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 원.십자가.삼각형을 추가하고, 그러한 기본형태에 의한 추상예술을 이론화하여 절대주의라 이름 짓고 15년 V.V 마야코프스키와 함꼐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형명직후 교수직에 임명되기도 했으니, 미술정책의 반동적 전환으로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자유를 잃은채 지냈다. 26년에 독일로 이주해 절대주의 선언을 상세히 설명한 <비구상의 세계>를 바우하우스를 통해 간행했다.

2015/01/13

아이언 맨 : 헌티드 - 크리스토스 게이지 외 / 이규원 : 별점 2점

아이언 맨 : 헌티드 - 4점
크리스토스 게이지 외 지음, 이규원 옮김, 카를로 파굴라얀 그림/시공사

"익스트리미스 바이러스"를 생체 실험한 죄로 감옥에 갇혔던 마야 한센은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치는 토니를 돕기 위해 풀려났고, 다시 토니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한편 중국 모처에 감금돼 있던 "만다린"을 찾아내 토니에게 복수하려던 "카림 마흐와시 나지브"는 도리어 만다린에게 살해당했고, 탈출한 만다린은 토니를 혼란에 빠뜨릴 음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흐와시의 실종 사건에 뭔가 수상함을 느낀 토니는 S.H.I.E.L.D. 인원을 대동하여 중국을 찾아 사망한 마흐와시를 발견했다. 시신을 수거하여 마야 한센과 살 교수에게 부검을 의뢰했지만, 이건 만다린 음모의 시작이었다. 부검 중 마흐와시의 몸에서 방출된 변형 바이러스가 살과 마야 한센을 공격하고 살은 처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때마침 구출에 나선 토니 덕분에 마야는 목숨을 건졌으나, 익스트리미스 연구를 계속했다면 변형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살을 구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토니를 원망하며 떠났다.

마야는 생명 기술 회사 "프로메테우스 젠테크"에 자리잡는데, 프로메테우스 젠테크의 CEO는 기업가로 위장한 채 토니를 철저히 파멸로 몰아가려는 만다린이었다. 그는 익스트리미스를 대량 생산하여 공기 중에 살포한다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거대 규모 테러를 계획했다. 익스트리미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살아남으면 초인적인 힘과 치유 능력을 얻을 수 있지만, 치사율이 97.5%에 이르러 엄청난 대참사가 예견되었다.

하지만 계속된 비극 탓에 정부는 토니를 정신이상자로 판정 내리고 활동을 중지시켰다. 스스로가 추진한 법에 발목이 묶여버린 토니. 그러나 등록법의 규정에 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는 지구가 멸망할 상황이라, 토니는 구형 아머들을 꺼내 입고 만다린을 상대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데...

권말에는 마담 히드라의 이야기가 담긴 "아이언 맨: S.H.I.E.L.D. 국장 애뉴얼"이 수록되어 있다. "알라딘 책 소개 인용"

"아이언맨 3"을 보고 탄력받아 읽은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핵심 소재였던 익스트리미스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영화에 등장했던 마야 한센 박사의 비중이 커서 재미있었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토니 스타크가 환각을 보는 등의 이유로 주위의 불신을 사게 되고, 그 와중에 만다린의 음모와 맞닥뜨린 뒤 어떻게 해결할지 긴장감을 자아내는 전개가 일품이었던 덕분입니다. 그 외에도 닥 샘슨과 같은 그간 보기 힘들었던 히어로의 등장, 메인 빌런 '오리지널 만다린'이 가공할 능력을 뽐내며 아이언맨과 숙적다운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 등 팬이라면 즐길 거리가 많습니다.

권말에 수록된, 마담 하이드라와의 승부를 그린 단편도 아주 유쾌하고 즐거웠습니다. 부자 플레이보이라는 토니 스타크의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잘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작화는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요.

그러나 고질적인 마블 시리즈의 문제점을 동일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작품만 읽으면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는게 불가능하다는 문제요. 이슈와 관련된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으면, 설명이 부족하거나 생략되어 넘어가는 게 너무 많습니다. 또 거대한 세계관의 일부라 다른 이슈, 시리즈나 캐릭터를 모른다면 역시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요.

때문에 이 작품 하나만으로 완성도를 평가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전체 이슈를 파악한다면 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이 책 한 권만의 별점은 도무지 높게 줄 수 없네요. 그래서 작품만의 단독 별점은 2점입니다.

덧 1: 익스트리미스 치사율이 무려 97.5%! 영화에서 페퍼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잘 모르겠군요.

덧 2: 상기의 이유로 영화에서 킬리언이 수하로 둔 익스트리미스 강화인간이 5명이라고 한다면 피실험자는 무려 200명. 195명은 어떻게 된 걸까요?

2010/04/20

귀등의 섬 1~4 : 산베 케이 : 별점은 2점. 앞부분은 4점짜리였지만...

귀등의 섬 1 - 4점 산베 케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코코로는 어머니를 잃고 눈에 장애가 있는 여동생 유메와 함께 귀등의 섬에 있는 고아원 학교 "귀등 학원"으로 전학왔다.  귀등학원은 아이들과 교사까지 전원 함께 사는 기숙학교로 교직원 4명, 학생은 6명이 전부였다...

주인공이 코코로와 유메인 데다가, 무대가 되는 학교 이름이 귀등 학원이라니 무슨 AV물 같기도 한데, 이 작품은 주인공 코코로를 비롯한 아이들이 섬과 학교에 대한 불편한 진실 - 학원이 아이들에게 걸려있는 보험금으로 운영된다는 것! - 을 눈치채게 된 뒤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면서 벌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다룬 정통 클로즈드 서클 스릴러 만화입니다.

고립된 섬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음모, 그것에 말려드는 주인공들을 다룬 소설은 많지만 일단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멤버들은 분명 독특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들 설정들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코코로는 곤충 박사, 유메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귀가 밝음, 슈우는 뛰어난 두뇌 보유했다는 식인데, 이런 특기들이 탈주 과정에서 선생들과 벌이는 추격전에서 잘 활용되어 위기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묘사도 아주 좋습니다. 변태 선생을 대표로 하는 "어른들"의 혐오스러운 분위기, 배후에 숨겨져 있는 음모를 서서히 보여주는 디테일들, 예를 들면 들어가면 안되는 방에 적혀있는 무서운 경고문구 -"살려줘, "살해당한다" 등 - 라던가 열리지 않는 책상 서랍안에 가득한 핏자국 등이 그러합니다. 아울러 이렇게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 역시 일품이고요. 한마디로 초반부에는 걸작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정말 두근두근하면서 읽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지막 권에서 모든걸 망쳐버립니다! 결국 죽은 사람이 거의 없고 악당은 지옥으로 간다는 어거지 해피엔딩도 별로지만, 실제적인 음모나 공포는 전무한 단순한 착각에 의한 사고였으며 진정한 악인은 변태 선생 하나였을 뿐 나머지는 다 오해였다라는, 앞부분의 스릴과 서스펜스를 전부 뒤집는 같잖은 결말은 제 인생 최악의 결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요. 아... 정말 이게 뭔가요. 차라리 진정한 흑막은 정기선을 운항하는 할아버지라고 하던가...

작가의 동글동글하면서 육덕진 그림체도 좋았고 빠른 전개와 긴장감을 자아내는 연출도 높이 평가할 만 한데 마지막 권이 모든걸 허사로 만들어 버려서 별점은 2점입니다. 1~3권까지는 4점은 충분한데 마지막권이 빵점 그 이하로 완전 말아 잡순 케이스죠. 혹시 마지막권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영원히 봉인해두시고 앞부분의 좋은 기억만 간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2005/04/02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 존 르 카레 / 강호걸 : 별점 2.5점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 4점 존 르 카레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동서 냉전이 극에 달해 있던 시대, 영국의 베를린 지역 정보원 총 책임자 리머스는 런던으로 귀환했다. 동독 지역의 정보 기관 총 책임자인 문트에 의해 최대의 스파이였던 카를 리메크가 살해당한 후 조직이 붕괴했기 때문이었다. 리머스는 케임브리지 서커스의 관리관과 문트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뒤, 몰락한 인생의 패배자로 위장하여 폐인같은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그 징후를 눈치챈 동독측 요원에 의해 포섭되어 동독으로 향한 리머스는 문트에 이은 제 2인자 피들러와의 회담과 제공한 정보로 문트를 서방세계의 스파이라는 제1급 반역죄로 고발당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리머스가 사랑했던 여인 리즈가 등장하여 모든 계획은 틀어졌고 리머스는 패배를 인정했지만, 그 순간 그 모든 계획의 진상을 깨닫게 되는데...

이른바 냉전 시대에 발표된 스파이물입니다. 존 르 카레의 출세작이기도 하고 영화화도 된 베스트셀러인데 워낙 이쪽 쟝르를 좋아하지 않아 이제서야 보게 되었네요.

작품의 최대 장점은 현실적인 스파이 세계를 그렸다는 겁니다. '007' 등으로 친숙한 슈퍼 히어로같은 스파이나 미인 여자 정보원 따위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스파이 소설로 정보와 정보의 교환에 따른 댓가와 음모만 있을 뿐입니다. 
특히 어학에 대한 재능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 중년 남자 리머스는 육체적인 능력도 별볼일 없으며, 주변 조직에 이용만당하는 존재로만 그려지는데 그간 스파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생각했던 인물들보다 무척 현실적이고 순진한 캐릭터라 왠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아마 이러한 현실적인 면 때문에 발표 당시 크게 어필했으리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마지막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는 "리즈"의 재판정 등장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영국 공산당 당원이라고는 해도 당시 동독에 그렇게 쉽게 갈 수는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결말도 억지스러웠고요.
무엇보다도 음모 자체가 책 뒷커버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 처럼 "사상 최대..." 어쩌구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현실적이기는 한데, 여러모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어요. 게다가 음모의 근거가 되는 여러 단서들도 별로 치밀하지 않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스파이물의 효시로 이 분야에 있어서는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고 읽을 가치는 충분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각종 상을 휩쓸고 시대를 대표했던 작품이긴 하지만 역시 너무 시대가 지난 탓이겠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04/10/14

생사결 - 정소동 : 별점 3점


중국과 일본의 무술시합이 열리며 중국의 대표는 소림사의 "검성" 보청운이, 일본측 대표로는 "신음류"의 미야모토가 선발된다. 하지만 이 시합의 이면에는 중국의 무술을 입수하여 중원 무림을 삼키려는 일본 장군(쇼군)의 음모가 얽혀 있다.

일본의 고웅대사는 시합을 주관하는 하후 산장의 장주와 결탁하여 음모를 진행시켜 나간다. 하지만 하후 장주의 딸인 하후승남의 죽음을 각오한 변심 (보청운에게 반한 듯 한...)으로 음모를 알아챈 보청운과 미야모토는 고웅대사를 처단하며, 소림사로 돌아가려는 보청운에게 미야모토가 시합을 청하여 결국 둘만의 시합을 마지막에 벌이게 되는데....

정소동 감독의 데뷰작으로, 요사이 볼만한 영화가 없어 고전 홍콩 영화를 구해서 보고 있는 와중에 건진(?) 작품입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감독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강력한 액션입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그다지 기교 없이 (닌자들이 몰려 나오는 장면을 제외한다면) 평이하게 진행되지만 (물론 멋지긴 합니다), 주요 캐릭터 하후승남이 죽은 후부터 후반 막판에 몰아치는 숨쉴틈 없는 액션은 데뷰작임에도 불구하고 정소동이라는 무협 장인의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합"역시 모자람이 없어 긴장감이 넘칩니다. 보청운과 대사의 대결 장면에서 고웅 대사의 목이 잘려 나가며 나무에 꽂힌다던가, 사람의 몸이 두동강 나며 잘려나가는 등의 하드고어적인 장면도 인상적이었고요.
무엇보다 바닷가 절벽이라는 천혜의 배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부산 태종대에서 촬영했다고 하는군요) 마지막 미야모토와 보청운의 대결!은 정말 끝장입니다! 땅을 가르고 하늘을 나르는 무공이 (비록 와이어가 너무 티나긴 하지만) 정말 멋지고 대단하게 펼쳐지거든요. 고수들끼리의 승부는 단 일격에 결정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라서 그런지 좀 오버한 감은 있습니다만. 여튼, 결국 두 명의 주인공이 결국 피떡이 되며 미야모토는 죽고 보청운은 거의 폐인이 되는 엔딩도 아주 괜찮았어요. 비장함과 더불어 허무함을 전해주기 때문이죠.

또한 특기할만한 점은 일본 신음류 최강 무사 (1000명중에 가려 뽑았다는)로 등장하는 미야모토의 카리스마입니다. 비쥬얼도 마음에 들지만 "시합은 생사를 가려야 한다!"라는 정신이나, 결투에서 보청운을 칼로 한번 찌르고 절벽에서 추락하지만 자신을 보청운이 구해주자 다시 결투를 재개하며 자신의 몸도 칼로 찌른다거나 결투에서 패한 후에 쓰러져 죽지 않기 위해 자신의 발등을 칼로 꿰고 죽어가는 장면에서의 카리스마(!)는 정말 최강이에요. 그야말로 역대급이랄까요. 제가 보았던 모든 영화 속 카리스마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단점도 없지는 않아요. 무협지에서 흔히 반복되는 소재라 할 수 있는 "비무대회"를 소재로 하여 그 뒤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그리고 있어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점, 미야모토가 단지 승부를 위해 장군의 명령을 우습게 여긴다던가 납치된 무림인들의 결말이 미흡하게 그려지는 등 이야기 전개가 어설픈 부분이 있다는 점 등이 그러합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마초 근성이 강하고 허술한 영화일 수도 있을테고 말이죠.

그래도 주인공 중 한명인 미야모토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색다른 액션 장면 덕에 무척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비록 어둠의 경로(?)를 통해 입수했지만 정식 DVD도 출시된 모양이니 한번 구해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PS : 주연배우 중 "서소강"은 요새도 왕성히 활약하는 꽤나 유명한 배우인 듯 한데 잘 모르니 패스. 단 요사이 무술 감독으로 더 유명한 한국 배우 "왕호"가 깜짝 출연합니다.^^

2008/05/11

종이의 음모 - 데이비드 리스 / 서현정 : 별점 4점

종이의 음모 1 - 8점
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대교베텔스만주식회사(베텔스만)

과거 "유다의 사자" 라는 별명의 권투 선수로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은퇴한 벤자민 위버는 "도둑잡이" 와 같은 일을 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윌리엄 벨포라는 인물로부터 한 사건의 조사 의뢰를 받았다. 자신의 아버지와 벤자민의 아버지가 살해당했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 달라는 의뢰였다. 벤자민 위버는 가문을 등진지 오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사건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조사가 진행될 수록 증권 매매업자로 일한 아버지의 죽음 배후에 거대한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전에 읽었던 "부패의 풍경" 시리즈 제일 첫 작품입니다. "부패의 풍경"과 마찬가지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한 분량이지만 한번에 읽어버릴 정도로요. 실제 벌어진 사건인 "남해회사"를 중심으로 한 영국 주식 거품 사건을 작품에 잘 녹여내는 것이 디테일하고 잘 짜여져 있으며, 복잡한 이야기를 복잡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정교하게 구성한 덕분입니다.
자료 조사나 고증, 인물 묘사 등 모든 것이 빼어나서 역사 소설로의 가치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의 전개가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로의 가치도 충분한 그야말로 "팩션" 의 모범 답안입니다.
제목 그대로 실제 가치가 있는 물품 대신 "종이 (여기서는 국채 내지 증권)"으로 가치가 이동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잘 묘사한 내용이 요즈음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 않아서 뜨끔하기도 했고요.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하고 복잡하게 꼬여 있지만 결국 하나의 결과로 귀결되며, 결과 역시 설득력 있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단서"를 추적하고 추리하는 정통 추리적인 요소는 없지만, 벤자민 위버의 "수사"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점과 수긍할 만한 범인이 등장하며, 다양한 사건과 사건의 연결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어 추리적인 부분에서도 만족감이 느껴지고요.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인 캐릭터인 벤자민 위버와 그의 친구 엘리아스 같은 인물들이 첫 등장하는 작품 답게 그들에 대한 배경 설명이 자세한 것도 좋았습니다. "부패의 풍경" 에서는 아무래도 캐릭터 설명은 좀 부족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정말 디테일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거든요. 엘리아스는 특히 원래 알고 있던 이미지와 아주 다른 부분이 많아서 좀 놀라기도 했고 말이죠. 아무래도 순서대로 읽을 걸.. 하는 후회가 조금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이른바 "마틴 로체스터"의 정체 하나로 귀결되는 것은 좋기는 한데 그것 때문에 세세한 부분을 조금 놓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예를 들자면 벤자민 위버의 아버지가 남긴 원고의 행방 및 다양한 살인 사건의 범행 방법이나 하수인 등 모두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는 부분이 약간 눈에 띕니다. 그런 것 까지 밝혀내기에는 아무래도 지면이 모자랐던 탓이겠지요.
그리고 벤자민 위버의 수많은 위법 행위와 그 판결도 조금 운에 맡기는 듯한 인상이 들긴 했고요.

그래도 정말이지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은 작품입니다. 에드가 상 수상작인데 탈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다음 작품인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도 꼭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15/01/13

녹스머신 - 노리즈키 린타로 / 박재현 : 별점 2.5점

녹스머신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반니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은 체계적인,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장르죠. 이 작품은 이러한 본격 추리소설의 규칙을 실제하는 물리학, 양자역학에 끼워넣은 독특한 SF인 "녹스 머신"과 "논리 증발",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메타 픽션 "들러리 클럽의 음모", 그리고 독특한 암호트릭 중심의 본격 SF "바벨의 감옥"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입니다.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온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부문 모두 1위) 작품으로 국내 번역이 언제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에서의 이벤트 당첨 덕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완독한 첫 느낌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것입니다.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해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도 광범위한 물리학, 양자역학 지식까지 어떻게든 충족시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라 작가의 노력, 탄탄한 지식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네요. 이런 점은 확실히 배워야겠죠. 추리 소설의 규칙을 과학 이론으로 만든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고, 작품의 난해한 정도가 지나친 탓입니다. 독자를 의식하고 쓰여진게 아니라 작가의 자기 만족, 취미 활동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에요. 독자를 의식했더라도 굉장히 특이한 독자를 대상으로 했을 겁니다.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처럼 이론에 대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소설로서는 더 맞는 방향이었어요.

게다가 "녹스 머신"에서 문헌수리해석, 물리학과 타임머신 관련 이론, 양자역학, 평행 세계 등에 대한 학술적 이론을 빼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중국인이 과거로 돌아가 녹스를 만나고, 그 탓에 녹스가 자신의 십계명을 수정한다'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기대했던 반전도 없고,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고민도 별 볼일 없이 해결되며, 예상했던 결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시해요. 솔직히 도라에몽의 타임머신 단편들이 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하게 타임 패러독스를 다뤘다 생각됩니다.

"바벨의 감옥" 역시 마찬가지. 일종의 격자화된 틀,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글자들을 이용한 암호 트릭이 전부입니다. 외계 종족과 일종의 텔레파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및 다른 내용은 이 트릭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읽으면서 졸 정도였어요. 트릭도 일본어 세로쓰기 구조를 이용한 것이라서, 일본 외에서는 애시당초 먹히기 힘들고요. 어떻게든 한글화를 시도한 번역자의 노고는 알겠지만 성공한 결과물도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들러리 클럽의 음모"와 "논리 증발" 두 편은 그래도 조금 더 쉽게 읽히며 재미 면에서 더 낫기는 합니다. 일단 메타 픽션인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다른 세 작품과는 다르게 SF는 아닙니다.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그리고 여러 추리소설 작가들과 그 주인공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창작물이죠. 추리소설의 화자 역할인 탐정의 파트너들이 소속된 '들러리 클럽'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10번째 인디언 인형"이 추리 소설에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으로,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그것도 본격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정말로 실존한 인물들처럼 묘사된 들러리 캐릭터들 — 특히 악역인 밴 다인 (반 다인), 꼰대가 되어버린 왓슨 — 묘사도 아주 좋으며, 실존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실종 사건을 들러리 클럽과 엮는 시도도 괜찮았습니다. 빅4 등의 다양한 패러디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 밴 다인의 독살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등 정작 추리적인 요소가 기대 이하라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요.

"논리 증발"도 "녹스 머신"보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내용이 풍성해서 완성도는 더 높은 작품입니다. 복잡한 이론을 걷어내더라도 전자화된 데이터에 발화를 일으키는 촉매재로 엘러리 퀸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독자에의 도전'이 삽입되어 있지 않은 "샴 쌍둥이의 비밀"이 이용된다는 추리소설 매니아만이 할 수 있는 발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전뇌 생명체가 된 유안이 메시지를 남긴다는 결말도 깔끔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평균 별점은 2.5점.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역량을 극한으로 발휘한, 지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덕분에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에게 사랑받을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추리, SF 양쪽 장르 모두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매니아"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쉽게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2024/05/18

무너진 세상에서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무너진 세상에서 - 6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리브 바이 나이트"로부터 10여년 뒤, 조는 탬파 일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여전히 조직 최상위 멤버였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조를 노렸던건 거짓말로 모든건 조직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고 했던 부하 리코의 음모였다. 리코는 소문을 통해 조를 조직 거점에서 떼어놓고, 보스 디온을 습격해 죽이려했다. 마지막 순간에 음모를 깨달은 조는 보스 디온을 구해내고, 위원회를 통해 리코마저도 없애버렸지만 디온이 조직원들을 FBI에 팔아먹고 있었던 사실을 알아채서 디온을 죽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 자신도 위원회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리브 바이 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10여년 뒤,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사업가로 보이지만 조직의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거물이 된 조가 누군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걸 알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약 한 달(?) 남짓 기간 동안 조는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파헤치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죽고 마는데, 깔끔하고 명확한 서사 덕분에 빚어진 장점은 명확합니다. 누가 조의 목숨을 노리는지? 조직의 배신자는 누구인지?의 수수께끼를 서로 죽고 죽이는 조직의 암투와 함께 긴장감있으면서도 '빠른(!)' 속도로 펼쳐주기 때문입니다. 암흑가 조직원이 정점에서 신뢰따위는 없는 지옥 구렁텅이로 떨어지면서 믿었던 친구에 자기 생명까지 모두 잃는 결말도 일품이었고요. 깡패가 성공하는 이야기는 필요없습니다. 조폭을 미화하는 작품들은 모두 불에 태워버려야 마땅해요!
또 "리브 바이 나이트"보다는 조의 두뇌를 이용한 활약이 많은 것도 장점이에요. 그 중에서도 '두뇌'를 써서 리코를 옭아매는건 무릎을 칠 만 했습니다. 죽어가는 디온과 함께 탈출하려면 한 시가 급한 상황에서 '위조 전문가'를 수배했는데, 그건 리코의 장부를 위조하기 위해서였던 것이었지요. 위원회와의 담판에서 위조 장부를 이용하여 리코를 없애는데 성공하고요. 과연 '두뇌파'라 부를만한 멋진 계획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별도로 쌓아올리면서 이런저런 곁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많지는 않지만 볼 만 했습니다. 조직의 의사 네드의 아내와 장인 관련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단편 한 편은 뚝딱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흑인 지역의 보수 먼투스 딕스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좋았고요. 프레디 패거리로부터 살아남는 장면도 멋드러지지만, 남자 대 남자로서 조와 면담을 나눈 뒤 이왕이면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경쟁자를 쓸어버리려고 완전무장한채 출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나이' 기운을 뿜어내거든요. 이런 멋진 사나이가 배신자 리코따위에게 폭탄으로 죽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그 설명이 리코의 몇 마디에 그친다는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요. 먼투스 딕스가 주인공인 외전이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는 다르게, 이 책 한 권만으로 충분히 완결이 된다는 점도 분명한 장점입니다. 다만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고 이 작품만 읽어보라고 권해 드리기 어렵긴 합니다. 디온과 조의 관계와 조가 성공한 이유, 작중 자주 언급되는 '학살의 밤' 등은 모두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즉, 두 권을 합쳐서 읽어야 온전한 감상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이 한 권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아울러 워낙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리브 바이 나이트"만큼의 드라마도 없다는 단점도 있고요.

그래도 단순명쾌한 범죄물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 합쳐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5/04

설계자들 - 김언수 : 별점 1.5점

설계자들 - 4점
김언수 지음/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아 출신 래생은 설계자들의 설계를 수행하는 암살을 업으로 삼고 있다. 래생이 속한 도서관이 신흥세력 한자에게 서서히 밀려나는 와중에, 설계자 중 한명인 미토를 만났다. 그녀는 과거 설계 탓에 부모님이 죽고 동생은 불구가 된 것에 대한 복수로 설계자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려고 비밀 장부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래생에게 한자와 도서관의 비밀 장부, 서류를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다...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이라는 목록을 소개해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 중 유일한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서 관심을 두고 있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래생'이라는 시적인 이름의 암살자가 암살 대상자인 '장군'과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 설계자의 명령을 어긴 동료 '추'와 술잔을 나누는 장면, 래생을 노린 흑막 미토 자매와 처음 만나는 장면, 최고의 암살자 '이발사'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 상대편 보스인 '한자'와 담판을 지으며 생명을 내 놓는 장면 등에서 선보이는 묘사, 분위기는 굉장히 멋드러집니다. 음모와 살인이 난무하는데도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게 인상적이에요. "잭 리처" 시리즈와 같은 미국식 범죄 스릴러는 '화끈함'을 강조하는 선명한 색채의 팝 아트라면, 이 작품은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흑백 수묵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독특함 때문에 타임지에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나 싶네요.
애완동물 화장장에서 암살한 사체를 태워 은닉한다는 설정에 대한 묘사도 좋았어요. 화장장 주인 털보가 세 딸의 아버지로 생활고를 겪고 있으며, 사체를 태우기 전에 나름의 제사를 진행한다는 기묘한 현실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위기 외에 건질건 별로 없습니다. 기본 설정이 굉장히 유치하고, 내용이라고 부를만한게 없기 때문입니다.
기본 설정은 기본적으로 '설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완벽한 설계를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설계대로 암살을 실행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래생이 속한 '도서관'의 관장이 '설계자들'의 사주를 받아 암살을 자행하는 조직의 우두머리였고, 그 자리는 지금 관장의 후계자였던 한자가 세운 회사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유치하지요? 차라리 대 놓고 이건 현실이 아니다, 만화와 다를게 없다는 식으로 독자를 설득시키는게 차라리 나았을텐데, 앞서 설명드린대로 묵직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잡으니 굉장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협 영화의 탈을 쓴 예술 영화였던 왕가위의 "동사서독"이 떠오르네요.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고아 출신으로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다는 시니컬하고 허무주의적인 암살자 '래생', 설계자들에게 희생된 가족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설계일을 하면서 음모를 꾸미는 '미토' 등의 캐릭터도 비현실적이며 모두 다른 작품에서 너무 많이 봐서 신선한 맛도 없습니다. 대표적인게 반시연의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입니다. 해결사 출신 호우는 래생과 아주아주 흡사하고, 건방지고 무신경한 여성 캐릭터들 성격도 판박이였어요. 친구 추가 대상자 창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살려주었다가 표적이 된다는건 "장미빛 인생"이고요. 고아들에게 살인 기술을 가르쳐 킬러로 키운다는 '시티 헌터' 류의 설정은 이젠 지겹습니다.

내용도 별다른게 없습니다. 대단한 실력자로 보였던 미토가 하는게 없는 탓이 큽니다. 그녀는 설계자 중 한 명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설계의 세계를 없애버리겠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하지만 래생의 힘을 빌어 조직의 비밀 장부를 손에 넣는 것 밖에는 하는게 없습니다. 그것도 치밀한 설계가 아니라, 단순하게 정면으로 조직 금고가 있는 곳에 쳐들어가서 빼앗아올 뿐이며, 활용하는 방법도 일반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게 한다는게 전부입니다. 즉, '설계자'라는 명칭에 걸맞는 계획이나 설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400페이지 분량에서 래생과 세계관에 대한 설명에 절반 이상을 할애하고, 실제 미토의 계획이 진행되는 분량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뭔가를 풀어낼 분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요.
래생이 죽음을 택하는 이유도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죽는다고 미토 일당이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미토의 계획대로 법이 나서서 조직을 수사하고 심판받게 하려면, 그녀의 음모와 존재는 조직에게 발견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한자의 숨통이라도 확실히 끊은 것도 아니고.... 죽기 전에 새 옷을 사고 단장하는 등으로 분위기는 한껏 끌어올리지만, 이건 그냥 개죽음입니다. 작가가 분위기에 취해서 그냥 써내려간 느낌이랄까요.
시대에 뒤처진 도서관이 한자의 세력에 의해 몰락해 간다는 것도 너무 뻔한 이야기라 식상했습니다. 시대 흐름을 타지 못한 깡패들이 신흥 세력에게 무너져버린다는건 "영웅본색" 이후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었죠.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서구권에서는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우리 시각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독특함을 불러 일으킨 요소를 걷어내면 뻔한 설정과 이야기에요.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10/11/14

위험한 호기심 - 알렉스 보즈 / 김명주 : 별점 4점

 

위험한 호기심 - 8점
알렉스 보즈 지음, 김명주 옮김/한겨레출판

그동안 진행된 여러 심리 실험 중 흥미롭고 의미 있는 것들만을 짧게 요약하고 정리한 책입니다. 심리 실험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와 비슷하지만, 실험의 의미나 후일담까지 자세히 분석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례를 최대한 많이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진지한 실험뿐만 아니라 가십성 실험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되도록 짧고 재미있게 요약해 놓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충실한데, 이것이 단점은 아닙니다. 충분히 재미있었고, 예상보다 유익한 내용도 많아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너무나 유명한 '스키너의 상자', 홀로코스트의 이유를 탐구한 '충격적인 복종 실험', 영화 "익스페리먼트"의 원형이 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키티 제노비스 살인 사건에서 착안한 '구경만 하는 구경꾼' 등 이미 알고 있던 실험들이 많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고 인상적인 실험'을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죠.

내용의 깊이는 부족하지만, 흥미롭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만큼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유형의 심리학 실험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책에 실린 실험 중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페스팅거의 실험"

지구 종말을 예언한 도로시 마틴과 그의 추종자 집단에 잠입하여, 예언이 실패로 끝난 뒤의 상황을 기록한 실험입니다.

사이비 종교를 통해 집단의 믿음을 탐구했으며, 결론적으로 믿음은 끈질기고, 오히려 오류를 먹고 더욱 강해진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다미선교회의 '휴거 사건'이 떠오르더군요.

"지상 최후의 생존자는?"

핵전쟁 이후 바퀴벌레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SF적 주장을 실험을 통해 뒤집었습니다. 바퀴벌레에게 방사능을 쬐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바퀴벌레는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지 못하며, 오히려 벌의 한 종류인 '기생봉'이 방사능에 가장 강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와인 / 콜라 시음 맛 대결"

와인이든 콜라든, 사람이 '시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뇌는 혀로 느끼는 정보보다 시각 자료를 더 신뢰한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와인의 경우, 병을 먼저 보여주면 아무리 전문가라도 화이트 와인에 색소를 탄 것을 전형적인 레드 와인으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또한, 순수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펩시와 코카콜라의 맛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맛'은 혀보다 광고나 시각적 요소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콜라 브랜드들이 광고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는 이유가 이해되네요.

"모차르트 이펙트"

음악이 성인의 시공간 능력을 일시적으로 향상시킬 수는 있어도, 아이들의 지능이나 학습 성취도를 높인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즉, 모차르트 음악을 이용한 아동 교육 사업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입니다.

"코끼리 기억 실험"

'코끼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서양 속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특정 무늬를 선택하면 먹이를 주는 방식으로 학습을 시킨 후, 1년 뒤 같은 실험을 진행했더니 코끼리는 67%의 확률로 정답을 맞혔다고 합니다. 기억력이 상당히 뛰어난 동물임이 입증된 셈이죠.

"기억 전이"

뇌를 먹으면 기억이 옮겨진다는 가설을 검증하려 한 실험입니다. 성공적으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잠깐이나마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을 보며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한 에피소드("오메가의 성찬")가 떠올랐습니다... 웩!

"수면 학습 효과"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수면 학습은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구리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주는 메시지를 들려주었더니 개구리 점프 대회에서 늘 우승했다는 실험 결과도 있었다고 하네요. 저도 자기 전에 영어 회화 파일이라도 틀어봐야겠습니다.

"검은 가방 사나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복면의 사나이를 통해 인간 심리를 분석한 실험입니다.

개인이 익명의 존재가 되면 반사회적인 행동을 더 쉽게 하며, 주변 사람들 역시 익명의 존재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쉬워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익명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면 강한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특성도 있다고 하네요.

이 실험을 보니 '슈퍼히어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껴집니다.

"물에 빠진 주인을 구하라"

'명견 래시'에서 착안한 실험으로, 주인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연출하고 개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결과는… 멍멍이는 주인의 생명을 구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결과일까요?

"타인의 물건"

미국 CSI 등에서 흔히 등장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몸에서 타인의 음모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검증한 실험입니다.

과학수사국 직원들이 자신의 배우자와 관계를 맺은 후, 음모를 수거하여 분석한 결과, 타인의 음모가 발견된 확률은 17.3%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달되는 경우보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두 배 더 많았다고 하네요. 다소 애매한 수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