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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1

얼굴 - 요코야마 히데오 / 민경욱 : 별점 2.5점

얼굴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작품들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집. 몽타쥬를 그리는 여경 미즈호를 주인공으로 한 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미즈호가 마음의 상처로 휴직하고, 타 부서로 전출된 후 다시 몽타쥬를 그리고 싶다는 열정을 품는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그려집니다. 일종의 연작 단편집이지요.

일단 미즈호에 대한 설정 – 몽타쥬를 그리는 전문가로, 휴직 후 타 부서로 잦은 이동이 있었다 – 이 특이하더군요. 덕분에 일상계에서 강력 사건까지 이동하는 부서에 어울리는 사건들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단편 한 편 한 편의 완성도도 추리적인 요소를 포함해서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괜찮은 수준입니다. 미즈호의 실패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주인공 미즈호에게는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건 문제네요. 몽타쥬로 범인을 잡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범인과 전혀 달라서, 보도용으로 비슷한 몽타쥬를 다시 그릴 것을 지시받아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정이 특히 그러해요. 범인을 잘못 잡은 것도 아니고, 제대로 잡은 것이라면 대체 뭐가 문제인걸까요? 여경이 주인공인 작품마다 반복되는 듯한 지위와 권리에 대한 판에 박힌 설교조 이야기, 여경들의 고민을 그리는 심리 묘사도 지루했습니다. 수록작 일부는 비약이 심하고 우연이 많이 개입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고요.

또, 작품이 쓰여진 당시의 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몽타쥬를 그리는 것은 분명 전문가의 일인데 경찰 중에서 차출해서 시킨다는 것도 이해불가였습니다. 미대 출신인 저조차도 몽타쥬나 캐리커처는 못 그리는데, 일반 여경이 미술학원을 다녀 몽타쥬를 그린다? 이건 아니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나쁘지는 않은데 아주 좋지도 않은, 그야말로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밝고 착실한 여경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고 갔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왜 일본 추리물 속 여경들은 뭐 이렇게 고민들이 많고 트라우마들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덧붙이자면 나카마 유키에, 오다기리 죠 주연의 드라마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드라마는 못 봤지만 제가 아는 나카마 유키에는 발랄한 이미지가 강합니다. 작품 속 미즈호와는 전혀 딴판이라 어울리는 캐스팅은 아닌 듯 한데 어떨지 궁금합니다. 주요 남자 배역은 하나도 없는 원작에서 오다기리 죠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궁금하고요. 물론 구태여 찾아볼 생각은 없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마녀사냥"

J일보의 연이은 특종. 이것은 경찰 내부 정보원 덕분이었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 누가 몰래 정보를 제공하는걸까?

소재는 조직 내 기밀 유출이라는 묵직한 것이지만, 추리적으로는 일상계에 가깝다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여자화장실의 위치라든가, 사건과는 관계없어 보였던 여기자 후유미의 정보원 이야기 등을 통해 진상을 추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통 본격물인데, 독자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진상이 놀랍지만 이치에 맞기 때문에 추리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결별의 봄"

연쇄방화사건이 벌어지는 와중에 경찰 내 상담 전화를 맡게 된 미즈호는 방화사건의 표적이 될 것을 걱정하는 시오리의 전화를 받았다...

과거 방화로 부모님을 잃은 시오리에게 벌어졌던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 연쇄방화까지 끌어들인 심각하고 무거운 전개지만, 실상은 단순한 치정극이라 좀 허무했습니다. 시오리가 왜 전화를 한 것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요. 중반까지는 흥미진진한데 힘이 좀 달린 느낌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의혹의 데생"

미즈호의 후임으로 몽타쥬를 그리게 된 미우라의 몽타쥬에 대한 이야기. 미우라의 그림 솜씨가 워낙 별로라 "이 뛰어난 몽타쥬는 그녀가 그렸을 리 없어!"에서 시작되죠.

그러나 시작부터가 사실 미즈호의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괜히 자기처럼 상처받지 말라고 배려하는 척 그려지지만, 제가 봤을 때에는 쓸데없는 정의감과 오지랖에 불과했거든요. 애초부터 용의자를 지문으로 알아내었다면 작위적인 몽타쥬가 뭐 그리 큰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요.

진짜로 미우라가 그린 그림이 맞고, 그녀가 범인과 알고 있던 사이라 잘 그릴 수 있었다는 진상 역시도 우연이 지나쳐 석연치 않았습니다. 이 단편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단점이 도드라진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공범자"

방범 훈련 와중에 벌어진 진짜 은행강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미즈호의 얼굴 그림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드러납니다. 특히 지나가던 여성 행인의 얼굴 특징을 기억해서 그녀를 추적해가는 과정 같은 게 아주 괜찮았어요. 그녀의 정체가 베이비시터였다는 디테일도 좋았고요.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진상과 범행 동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너무 벌린 느낌이에요. 별점은 2점입니다.

"마음의 총구"

강력계로 배속되어 총기를 다루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런데 핵심 설정인 경찰 매니아의 총기 탈취 이야기는 다른 작품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오오시마 야스이치의 만화였던 것 같네요. 그래도 설정을 한 번 꼬아 놓은 부분이 있기에 그다지 진부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권총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미즈호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쏜 총으로 무고하게 죽은 아이 어쩌구 하는 이유도 없고 그냥 겁만 날 뿐이라니, 이건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로서 심각한 결격사유가 아닌가 싶더군요. 지루하고 짜증날 정도였어요.

또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상도 좀 뜬금없었습니다. 중반 초등학생의 영약한 경찰 활용 하나만큼은 꽤 그럴듯하고 의외성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얼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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