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건 죽음 - 앤서니 호로위츠 지음, 이은선 옮김/열린책들 |
유명 이혼 전문 변호사 리처드 프라이스가 와인병에 맞아 살해된 채 발견되었고, 현장에는 초록색 페인트로 '182'라는 숫자가 남겨져 있었다. 탐정 호손은 사건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계약한 작가 호로위츠와 함께 수사에 나섰다.
리처드 프라이스는 직전 맡았던 록우드 이혼 사건으로 록우드의 전처 안노에게 미움을 사고 있었고, 6년 전 동굴 탐험에서 사고사했던 친구 사건도 사건과 관계가 있는게 아닐까 의심되었다.
호로위츠는 사건을 분석하다가 범인은 록우드라고 확신하고 이를 경찰에 제보했지만, 호손은 전혀 다른 사람이 진범이라고 말했다...
"숨겨진 건 죽음"은 앤서니 호로위츠의 전직 형사 호손과 작가 호로위츠 콤비가 등장하는 시리즈입니다. "맥파이 살인사건"이 참 좋았기에 집어들었는데, 두 번째 작품이더군요.
"맥파이 살인사건"처럼 현대를 무대로 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과학 수사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본격 추리 소설의 전통적 요소를 훌륭히 구현하여 독자에게 치밀하게 구성된 스토리와 탄탄한 추리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특히, 이야기 초반부에 제공되는 단서들이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피해자의 이웃 노인이 본 '손전등을 든 남자', 집 앞에 남은 기묘한 흔적, 피해자가 남긴 마지막 말, 그리고 사건 현장에 있던 두 개의 콜라 같은 단서들은 모두 범인을 지목하는 열쇠가 됩니다. 손전등과 흔적은 '자전거'를, 피해자의 말과 콜라는 '미성년자'를 연상하게 하여 범인이 등장인물 중 유일한 소년인 콜린이라는걸 드러내거든요.
마지막에 데이비나가 진범인지, 콜린이 진범인지를 풀어내는 호손의 추리도 참으로 명추리였습니다.
물론 이를 곧바로 밝히지 않고 호로위츠와 함께 독자도 잘 속입니다. 여러 용의자가 각기 그럴듯한 동기와 함께 등장하는 덕분이지요. 록우드, 안노, 데이비나 등 모두가 사건과 얽힌 비밀을 품고 있어 흥미를 더합니다. 록우드가 수백만 파운드의 와인 컬렉션을 숨겼던 것, 안노는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작가지만 사실 남성 판타지를 자극하는 포르노적 소설로 대박이 났다는 비밀이 있다는 것, 6년 전 동굴 탐험 사고에 대한 진상 등은 모두 사람 한 명은 충분히 죽일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비밀들이기도 하고요.
독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 데이비나가 벌인 연극도 좋았어요. 콜린의 행동에 대해 갑자기 말을 바꾼다던가, 세탁기 앞을 가린 등의 사소한 디테일들인데, 이게 다 이유가 있었다는게 놀랍기도 했고요.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도 눈에 띕니다. 피해자 집 벽에 적힌 '182'는 "주홍색 연구"의 'RACHE'를 연상시키고, 그 외 사건 중 등장하는 여러 설정이 셜록 홈즈의 모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본적으로 '런던을 무대로 작가인 조수와 함께 활약하는 명탐정'이라는 설정과 호손이 사소한걸 토대로 일상 속 진상을 짤막하게 추리해내는 요소 - 대표적인건 서두에 호로위츠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걸 추리해내는 장면 - 도 셜록 홈즈와도 똑같지요. 이는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에게는 더욱 특별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작가 앤서니 호로위츠 본인이 왓슨으로 등장해서 호손에게 농락당하고, 수사에 이리저리 치이는 묘사도 큰 재미 요소였고요.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존재합니다. 우선, 범인 콜린이 남긴 메시지 '182'가 젊은 세대의 표현인 '너를 미워해(I Hate You)'에서 온 것이라는 점은 한국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해석하기는 어렵기에 추리의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또 독자를 속이기 위한 억지 전개가 과한 편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처음 경찰 심문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작가 안노와 편집자 돈이 사건 당시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피해자의 남자 애인이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했다는건 지나치게 부자연스럽습니다. 캐릭터들도 대체로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적이지 못했고요. 근육위축증에 걸린 소년 비벡이 호로위츠의 폰을 해킹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런 불필요한 설정들은 분량 늘리기에 불과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결말도 급작스러운 편이며, 주요 용의자가 몇 명 안되는데 경찰 수사로 이를 밝혀내지 못한 것도 이해하기는 어려운 점입니다. 콜린이 현장에서 그렇게 완벽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울 수 있었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뛰어나고, 유쾌하면서도 흥미로운 전개는 큰 만족감을 줍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시리즈 1편도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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