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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2

흑마술의 여자 - 모리무라 세이이치 : 별점 2점

흑마술의 여자 - 4점 모리무라 세이이치 지음/동하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흑마술과 관련된 기묘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카미치 도키코는 다카네자와 다쿠야와 결혼하여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내던 중, 남편 친구 우나하라 살인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 되어 버렸다. 밀실인 그녀의 별장에서 우나하라의 시체가 발견된 탓이었다. 그녀는 또 다른 남편 친구 아리자와가 수상하다고 주장했지만, 아리자와마저 살해되어 버렸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당했던 미스기 게이코 사건과 이 사건이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냈고, 도키코를 추궁하여 결국 진상을 밝혀내게 되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책을 정리하다가 집어들게 된, 거의 30여년 전 구입했던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장편.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사회파 추리 소설'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잔혹한 범죄에서 시작되는 범죄 스릴러물, 그리고 몇 가지 트릭이 등장해서 비교적 정통 추리물 느낌을 전해줍니다. 특히 '유니트 하우스'라는 건물의 특징을 이용한 밀실 트릭 아이디어가 돋보였어요. 우나하라는 도키코의 별장이 아니라 바로 옆 아리자와 별장에서 살해당했고, 아리자와가 별장 이층 방을 통째로 떼어내 교체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수사 과정에서 도키코와 아리자와 별장의 이층 유니트가 바뀌어져 있다는게 드러나지요.
'이층 유니트를 통째로 바꾸는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층을 통째로 교체하느니 지붕이나 벽면 일부만 떼어내어 사체를 옮기는게 더 편했을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등 이어지는 수수께끼도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당연히 아리자와가 범행 후 유니트를 교체한건 아니었습니다. 진범은 도키코로 그녀는 우나하라를 별장에 먼저 초대한 뒤, 독이 든 위스키를 먹도록 유도하여 살해했던 겁니다. 유니트는 설치 당시 도키코가 자기 별장에 더 새 것처럼 보이는 유니트가 설치되도록 했던게 전부였습니다. 설치 공사는 명찰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명찰만 바꾸는 걸로 교체가 가능했었죠. 유니트 하우스이니 설치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요. 나중에 범행을 아리자와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 사실을 이용했던 겁니다.
경찰이 이를 증명하는 과정도 합리적입니다. 별장 해체 후 유니트 패널 조사를 통해, 우나하라 살해 사건 당시 별장 근처 아자마 산이 분화하여 화산재가 내렸는데, 패널에는 화산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건 당시 유니트는 분해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당시로서는 꽤 첨단이었을 유니트 하우스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비현실적인 교체가 아니라 누군가를 모함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다는 등 꽤 괜찮은 발상이 많이 보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작 밀실 살인에는 굉장히 간단한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유니트가 바뀌었던 이유가 '자기 것을 더 좋은 걸로 만들고 싶은' 보편적인 인간 심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현실적이라 좋았습니다.

그리고 3인조 성폭행범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보였던 미스기 게이코 사건이 우나하라, 그리고 아리자와 살인 사건과 이어지는 복잡한 과정이 경찰 수사를 통해 설득력있게, 그리고 흥미롭게 드러나는 전개도 볼 만 합니다. 우나하라가 3인조 성폭행범 일당 중 한 명으로 그들은 게이코를 살해하지 않았으며, 미스기 게이코와 동행했다가 함께 성폭행범에게 납치되었던 '환상의 여자'가 도키코라는건 초반에 독자에게 공유되는 덕분입니다. 독자도 게이코 살해의 진상과 우나하라를 죽인 범인이 도키코인지 아니면 게이코의 약혼자였던 아리자와인지를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지요.
경찰이 우나하라가 3인조 중 한 명이라고 추리하여 나머지 일당을 체포하고 아리자와 사건의 진상을 밝혀는 것도 그럴싸 했습니다. 우나하라가 살해된 뒤, 남은 2인조가 아리자와가 복수했다 여기고 그를 살해했던 겁니다. 여기서 아리자와 사건은 게이코 사건과 연결되지 않으니, 우나하라 사건과 게이코 사건이 연결되며 두 사건의 범인은 도키코라는 결론에 이르는 추리도 합리적이었습니다. 도키코가 우나하라를 살해한 이유는 협박받았기 때문일텐데, 그 이유는 우나하라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걸 폭로하겠다는 협박일리는 없습니다. 그 사실이 드러나면 잃을게 더 많은건 우나하라니까요. 결국 우나하라는 게이코를 죽인 진범이 도키코라는걸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환상의 여자'가 도키코임을 밝혀내고 결국 도키코를 체포하는 경찰의 집요하면서 끈질긴 수사 과정도 사회파 추리 소설 작가다운 디테일이 돋보였습니다. 고소우 경찰 부장 등 등장하는 경찰 캐릭터들도 생동감있게 잘 그려내고 있고요.

가장 마지막에 드러나는, 도키코가 게이코를 살해했던 이유는 정말 놀라왔습니다. 그녀는 선천적 기형으로 질결손 상태였는데, 성폭행범들 때문에 이 사실이 게이코에게 알려지자 그걸 숨기기 위해 살해했던 겁니다. 그 뒤 인공 질 성형술을 시술받아 결혼했고요. 좀 급작스러게 드러나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앞서 여러가지 복선으로 - 특히 다쿠야가 미국 출장을 간 사이, 도키코가 거리에서 만난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 이유처럼 - 설명되고 있어서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작품이 발표된 1974년이라는 시점에서는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신선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비슷한 아이디어가 1975년 작품인 나쓰키 시즈코의 <<흑백의 여로>>에서도 사용된 바 있는데, 아마 당시 일본에서 사회 문제가 되었던게 아니었다 싶기도 하네요.

이렇게 3인조 성폭행범의 범죄에서 촉발된 연쇄 살인극만 놓고 보면 꽤 괜찮은 작품입니다. 나름의 트릭도 잘 사용되어 있고, 수사 과정과 진상 모두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작가 인생 최전성기에 발표된 작품답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목에도 있는 '흑마술' 입니다. 이는 도키코의 남편 다쿠야가 흑마술과 집단 난교 등을 행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인 '신비학회'의 본부가 있는 미국 라스베가스까지 날아가 비밀 모임에 몰래 참석하는 등 뭔가 대단한 배경이 있는 것 처럼 장황하게 설명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본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끌기 위한 자극적인 소재에 불과해요.
추리적으로도 도키코가 아리자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리자와에게 알리바이가 있을 경우 대책이 없었다는 헛점이 크게 느껴집니다. 아리자와의 알리바이가 증명된 이후, 도키코는 빠져나갈 여지가 없어져 버렸으니까요. 아리자와가 운 좋게 (?) 살해당해서 시간을 벌었을 뿐입니다.
작가 특유의 성적 묘사도 지나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장점도 분명하지만 단점이 너무 커서 완성도 측면에서는 점수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흑마술과 성적 묘사 부분만 뺐더라도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구태여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어차피 절판되어서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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