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생님을 죽였다 - 사쿠라이 미나 지음, 박선영 옮김/시옷북스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사이카 고등학교에서 인기 교사 오쿠사와가 학생들 앞에서 자살했다. 오쿠사와는 이상한 동영상이 SNS로 퍼져, 성범죄자 교사로 낙인찍힌 상황이었다. 오쿠사와가 담임이었던 반 칠판에는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여러 학생들 시점에서 자살 전 상황을 되돌아보니, 오쿠사와의 죽음에는 다른 동기가 있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발적인 제목에 흥미가 생겨 읽어본 작품입니다. 장점이라면 빠른 전개와 사건의 구조적 완성도입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오쿠사와 선생이 정말로 파렴치한 성범죄자였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학교의 입시 비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결말까지 이어지거든요. "내가 선생님을 죽였다"라는 고백이 실제로는 오쿠사와 선생이 나가쓰카 선생을 죽였다는 반전이었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도 꽤 신선했고요.
또한, 돈을 받고 성적을 조작해 부정하게 대학에 추천 입학시키는 비리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 점도 좋았습니다. 오쿠사와가 사명감을 갖고 비리를 파헤치려 했지만, 결국 자신이 이 부정의 첫 시작점 —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요청으로 나가쓰카가 추천 입학하게 도와주었음 — 이라서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리고 말았다는 설정도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오쿠사와에게 닥친 비극성을 강화하며, 자살이라는 선택의 설득력을 더해주니까요.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시각 전환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각 인물의 시점이 서로 보완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치밀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불필요한 내용도 많습니다. 도입부라 할 수 있는 도베 시점 이야기는 사건 전개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구로다와 고미나토의 이야기는 추천 입학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점에서 서로 겹치는 이야기입니다. 구로다와 동영상 피해자인 모모세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서술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모모세가 진실을 고백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부족합니다. 오쿠사와가 자숙을 핑계로 그동안 이루어졌던 학교의 성적 조작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입막음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오쿠사와에 대한 애정으로 바닥이었던 영어 성적을 학년 톱으로 끌어올린 모모세의 성격과 행동을 고려할 때 순순히 입을 닫고 있었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에필로그에서 큰 사건 이후 학생들과 남은 선생들이 우정과 용기를 이야기하는 결말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이야기의 무게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오쿠사와의 죽음과 학생들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빠른 전개와 일종의 반전, 학교 내 입시 비리 문제를 다루며 긴장감과 흥미를 선사하지만 시점 전환의 효과가 미흡하고, 여러 설정이 설득력을 잃은 점, 지나치게 낙관적인 결말 등으로 감점합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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