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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2

호저의 축제(湖底のまつり) - 아와사카 쓰마오 : 별점 1.5점

湖底のまつ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4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리코는 시시코 협곡에서 급류에 휩쓸렸다가 하니다 코지에게 구조된 뒤,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날, 코지가 참석할 예정이라는 '오마케상 축제'에 따라갔지만, 끝내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코지가 한 달 전 이미 독살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편, 코지 독살 사건을 담당한 칸자키 형사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여학생 오기 쇼코를 주목한다. 쇼코의 일기에는 그녀가 'P'라고 부른 누군가에게 실연당한 뒤, 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황상 'P'는 코지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칸자키 형사가 마을을 찾은 뒤 쇼코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사건 수사는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마을과 사건 현장은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고 만다. 그러나 댐은 붕괴되었고, 덕분에 칸자키 형사는 쥬키치 바위 밑에서 실종되었던 쇼코의 시체를 끝내 발견하는데...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 작가 아와사카 쓰마오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얼마전 읽었던 "11장의 트럼프"도 재미있었고, 아야츠지 유키토가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하기도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댐 건설로 수몰을 앞둔 일본 마을을 배경으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지방의 댐 건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회파 추리 소설을 연상시집니다. 전통 축제인 '오마케상'에 대한 자세하게 설명은 재미를 더해주고요.
무엇보다도 아와사카 쓰마오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사회파 치정 미스터리물이라는 엄청난 특징이 돋보입니다. 수준도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쓴게 아닐까?하는 느낌을 줄 만큼 강렬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한 달 전에 살해된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수수께끼도 단순한 서스펜스를 넘어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당기며, 댐 건설과 지방 마을의 수몰이라는 사회적인 주제도 신선한 편이에요.

그러나 솔직히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점이 너무 많은 탓입니다. 우선 성애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노골적입니다. 불편함을 줄 정도로요.
사건의 진상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합니다. 노리코가 만난 남자가 사실은 하니다 코지가 아니라 그의 아내 히사에였다는건데, 충격을 준다기보다는 헛웃음을 자아냅니다. 일단 히사에가 자신을 코지라고 위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상당한 미인으로 묘사되는 히사에가 남자 옷을 입고 남자 흉내를 냈다고 노리코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 역시 무리라 생각됩니다. 남자로 착각하는데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성행위 시 사용한 도구(일종의 딜도?)는 그야말로 어이를 상실케했고요. 이건 뭐 포르노도 아니고... 이런 설정(남자인줄 알았는데 여자였다! 또는 그 반대)을 트릭에 이용할거였다면 나쓰키 시즈코의 "흑백의 여로"에서의 성전환 수술같은 설득력있는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딜도보다는 말이지요.
히사에가 축제 현장에서 사라질 수 있었던건 여성인 '오마케상'으로 등장했기 때문인데, 이 역시 설득력이 낮습니다. 노리코가 오마케상을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봤다면 아무리 화장을 했다 한들, 오마케상이 코지(히사에)라는걸 충분히 알아챘어야 합니다. 

독살 사건에서 히사에가 쇼코와 코지와 함께 독을 마셨으나, 독을 토해낸 히사에만 살아남았다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편의적인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요. 상식적으로 보다 건장했을 남자 코지가 여러모로 더 살아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작위적인 요소도 너무 많습니다. 1년 전 물에 빠진 히사에를 구한 코지와의 관계가, 1년 후 노리코와 히사에 사이에 그대로 재현된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작품에서 사용된 'P'와 'N'이라는 별명이 "베니스의 상인"의 '포샤'와 '네리샤'에서 유래했다는 점 등도 그리 와 닿지 않았고요.

결말도 억지스럽습니다. 댐이 붕괴되며 쇼코의 사체가 발견된 덕에 사건이 종결되는데, 상황도 과장되어 있지만 쇼코의 자살로 충분히 설명되는 상황에서 히사에가 굳이 의심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건 말이 안됩니다. 설령 의심을 받는다 해도 독약을 구한 증거는 쇼코의 일기로 확인되므로, 사건은 그냥 마무리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 칸자키 형사와 히사에가 갑자기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고 하다가, 히사에가 다시 만난 노리코와 연결된다는 마지막 장면은 혼란의 극치에요.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서사를 흐트러뜨리기만 합니다.

캐릭터들도 시시합니다. 히사에에 집착하는 쇼코는 흔해빠진 스토커 캐릭터 스테레오 타입에 그칩니다. 댐 건설 이권에 대한 유착에 관련된 시모스지 의원, 이누이시 촌장, 코지의 동창 카나미 등은 그냥 지나가는 인물에 불과하고요. 중요한 인물로 보였던 칸자키 형사의 딸 아구리는 한술 더 뜹니다. 비중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하는게 없는 탓입니다. 아빠가 벽에 부딪힌 사건을 추리해내는 진짜 명탐정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카라즈카' 팬이라는 설정을 통해 사건이 남장 여자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은근슬쩍 드러내는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모리무라 세이이치로 대표되는, 당대 추리물의 탈을 쓴 치정극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 쓴 졸작입니다. 읽으면서 "흑마술의 여자"가 떠올랐는데, 문제는 그 정도 수준도 안된다는 것이지요. 아야츠지 유키토의 극찬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네요. 번역하면서 읽은 시간만 아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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