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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

끝없는 바닥 - 이케이도 준 / 심정명 : 별점 2점

끝없는 바닥 - 4점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소미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토 은행의 융자 담당 대리 이기 하루카는 어느날 동료이자 친구 사카모토가 알레르기로 쇼크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카모토는 사망 전, 이기를 만났을 때 “너, 나한테 빚진 거다?”라는 묘한 말을 남겼었다. 
사카모토의 업무를 인계받은 이기는 남겨진 자료에서 과거 도쿄 실리콘의 야나기바 사장이 관련된 수상한 입금 내역을 발견했다. 기타가와 부지점장의 방해에도 조사를 진행하던 이기의 앞에 누군가 나타나 흉기를 휘둘렀고, 융자과장 후루카와가 대신 칼에 맞아 쓰러졌다. 그 뒤 기타가와도 술에 취한 채 물에 빠져 죽어버렸다.
이기는 모든 사건이 도쿄 실리콘과 신에쓰 머터리얼간의 자금 흐름, 그리고 텐나인이라는 벤처 업체의 등장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흑막은 니토 상사에서 신에쓰 머터리얼로 파견되었던 재무담당 이사 야마자키였다.


이케이도 준의 데뷰작.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입니다. "한자와 나오키" 등 작가의 이름은 전부터 들어 왔는데, 작품을 읽어보는건 처음이네요.

재미는 있습니다. 사카모토의 죽음에서 시작되어, 거대한 음모가 드러나는 과정이 치밀한 덕분입니다. 특히 자금의 흐름을 이용한 야마자키의 계획이 아주 볼만 했습니다. 신에쓰 머터리얼은 반도체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지만, 무리한 투자로 자금난에 몰렸습니다. 그 탓에 니토 상사에서 신에쓰 머터리얼 투자를 주도했던 야마자키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요. 그래서 야마자키는 신에쓰 머터리얼의 하청업체이자 운명 공동체 도쿄 실리콘에게 신에쓰 머터리얼을 살리기 위함이라며 거액의 뒷돈을 받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 반도체 업체로의 진출을 위한 로비 자금이라는 핑계로요. 그러나 야마자키는 이 돈을 착복하고 신에쓰 머터리얼을 부도낸 뒤, 새로운 회사 텐 나인을 설립하고 신에쓰의 핵심 기술자들을 모두 빼돌렸습니다. 텐 나인과 함께 니토 상사로 금의환향할 생각이었지요. 사카모토는 이 뒷돈의 흐름을 알아낸 탓에 살해당했고요.
이렇게 자금의 흐름을 밝혀내는 과정의 디테일은 물론 은행 내부의 파벌 다툼, 여러가지 시스템에 대한 설명과 같은 실무자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상세하여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이케이도 준이 은행원 출신이라고 하는데, 그 덕분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자금 흐름에 관련된 음모를 제외하고, 이야기는 엉성합니다. 첫 번째로, 사카모토에게 뒤집어 씌운 횡령은 사카모토가 아직 살아있던 한달 전 수차례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범인들이 사카모토를 어느 시점에 제거할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카모토가 언제 눈치챌지도 모르기 때문에 한달이나 되는 시간을 둔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두 번째로, 사카모토 살인은 알레르기를 이용한거라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기타가와 사건도 일단은 술에 취한 탓으로 처리되었고요. 하지만 융자과장 후루카와를 찌르고, 차를 빌려 고속도로에서 이기를 죽이려다가 휘말린 일반인을 죽게 만든 범죄는 차원이 다릅니다. 엄연한 강력 사건이라서 경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게다가 이렇게 사건을 키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도쿄 실리콘의 수상한 자금 입금은 불법이 아니라고 작중에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설령 문제가 되었더라도 기타가와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면 끝났을테고요. 
그러나 이런 강력범죄를 저지른 탓에 결국 청부업자 리 료헤이가 범행을 저질렀다는게 경찰에게 밝혀져서 야마자키도 빠져나가는게 불가능해져 버렸습니다. 자금의 흐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살인 청부건으로 엮어 결국 체포되었겠죠.
이 억지스러운 강력 범죄 흐름 마지막에 야마자키가 니시나 사와코의 집에서 이기를 죽이려한건 비현실의 끝판왕 격입니다. 니시나 사와코는 공범도 아니었고, 사건 후에 입을 다물거라는 보장도 없는 탓입니다.
데뷰작답게 다소 정리가 되지않은 부분들도 눈에 뜨입니다. 나오, 요코와 같은 여성 캐릭터들이 대표적입니다. 없어도 되고, 매력도 느끼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사소한 사건이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상황에 휩쓸린 전문 직업인이라는 점에서 "스쳐 지나간 거리"와 비슷한데, 완성도는 그만 못합니다. "스쳐 지나간 거리"를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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