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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4

당일치기 조선여행 - 트래블레이블 : 별점 3점

당일치기 조선여행 - 6점
트래블레이블 지음, 이도남 감수/노트앤노트
딸과 함께 종로 투어를 할 때 도움이 될까 싶어 읽어본 책.
실제 가이드가 투어를 하듯이, 코스를 짜고 그 코스 안의 여러가지 사적지들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록된 코스는 모두 14개인데 크게는 조선 코스 6개, 일제 강점기 코스 8개로 구분됩니다.

경복궁 코스는 광화문 - 홍례문 - 영제교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순입니다. 실제 궁궐에 들어가는 순서이지요. 광화문의 '광화'는 빛으로 세상을 교화시키다는 의미로 세종이 지은 이름입니다. 즉, 왕이 백성들에게 한 약속이지요. 홍례문은 '예를 널리 편다'는 의미로 대궐 문을 들어선 관료들에게 일러주는 말이고요. 홍례문을 지나 삼도를 거쳐 영제교를 건넙니다. 다리의 이름은 원래는 '금천교'였습니다. 왕이 있는 곳이라 건너가는 것을 금하는 의미로요. 하지만 세종은 영원히 건널 수 있다는 뜻의 '영제교'로 바꿨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왕의 공간입니다. 근정문과 근정전은 공식적인 행사를 치루는 곳입니다. 회사로 따지면 행사장, 회관같은 곳이겠지요?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고요. 사정전은 실제 업무를 보던 곳으로 한 마디로 사무실입니다. 이름도 그런 뜻이겠지요. 그리고 뒤의 강녕전, 교태전은 왕과 왕비의 침전과 사적 공간입니다.
창덕궁 코스는 돈화문 - 금천교 - 인정문 - 인정전 - 선정전입니다. 창덕궁은 태종 이방원이 만든 궁이라 강한 왕권이 유지되었기 때문인지 금천교가 그대로 있는게 특이합니다. 말 그대로 왕과 신하를 구분한 것이지요.
창경궁 코스는 홍화문 - 옥천교 - 명정문, 명정전 - 문정전 - 경춘전 - 환경전이며, 뒤에 춘당지 - 대온실 로 이어집니다. 홍화문은 '천지를 밝히고 적의 조화를 넓혀 보살핀다'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과거 홍화문 앞은 넓은 마당으로 백성과 왕실이 서로 어울리는 공간이기도 했고요. 다른 궁궐들처럼 궐내 다리인 옥천교를 건너면 왕의 공간으로, 명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입니다. 공식적인 의례와 행사를 진행한 곳이지요. 창경궁은 왕의 주거 공간 목적으로 지은 궐이라 다른 궐보다 규모가 작다는게 특징입니다. 다른 궐은 모두 삼문 원칙으로 3개의 문을 통과해야 정전에 도달할 수 있지만, 정전까지의 문도 2개만 지나게 됩니다. 문정전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경춘전은 정조가 태어난 곳, 환경전은 소현세자가 죽음을 맞이한 곳입니다. 주거 공간 목적답게 이런 역사가 많네요. 춘당지와 대온실은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며 위락시설로 전락시킨 산 증거입니다. 궁궐을 일반 대중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만든 것이지요.
경희궁 코스는 홍화문 - 서울고등학교 터 비석 - 방공호 - 서암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희궁 자체가 고종 때 경복궁 증건을 위해 헐려 빈 터만 남은 탓에 내용이 적습니다. 이 중 '서암'이라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로왔습니다. 숙종이 강한 왕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조선 시대 왕 중 딱 7명만 가진 '적장자' 타이틀 덕분이었는데 이건 인조 반정이 성공해서 얻은 타이틀입니다. 인조가 정당한 왕이라는걸 증명하기 위해 원래부터 집에 왕기가 서려있었다!며 평범한 바위에 '왕의 기운이 어렸다'고 숙종이 직접 '서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타이틀이라는게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왕들에게는 정말로 어마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코스는 서암말고는 딱히 볼 건 없어보였습니다.
종묘 코스는 정문인 외대문을 지나 종묘의 부속된 건물들을 차례대로 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부속 건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보다는 종묘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 위주이고요.

덕수궁 코스는 황궁우 - 대한문 - 중화문 - 중화전 - 석조전 - 중명전, 돈덕전 - 함녕전 순입니다. 이 코스는 '대한제국'과 '황제'라는 지위를 알리는 건물들 중심이에요. 덕수궁은 대한제국 때 고종이 법궁으로 선택하여 큰 발전을 이룬 궐이니까요. 우선 황궁우는 고종이 황제가 된 걸 알리는 건물이고, '대한문'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우며 한양이 넓고 크게 뻗어나가기를 기원하며 지은 이름입니다. 중화전도 '황제'의 국가를 증명하기 위해 황금색과 황제의 상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석조전은 황제가 된 고종이 새로운 근대 궁전을 만들려고 돌로 지은 건물이고요. 이 뒤의 건물들은 일제강점기를 나타냅니다. 석조전 서관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일제가 궁의 격을 낮춰 아무나 드나들 수 있게 미술관으로 만들었던 건물이며, 그 옆의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 돈덕전은 고종이 강제 폐위되고 순종이 즉위한 곳이거든요.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으로 급작스럽게 승하한 곳입니다. 고종과 대한제국의 짧았던 운명을 잘 느낄 수 있는 코스입니다.
정동은 궁궐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속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 미국공사관 - 구 프랑스공사관 - 구 러시아공사관 - 구 영국공사관 - 광혜원 - 배재학당 - 이화학당 - 언더우드 사택 -  정동제일교회 - 손탁 호텔을 둘러보게 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남아있는 건물은 몇 개 없네요. 그나마 주한 영국대사관이 1890년대 영국이 만들었던 구 영국 공사관 건물 그대로라는데, 한 번 가 봐야겠습니다.
서울역, 서대문 형무소는 건물만의 코스입니다. 서울역은 많이 가 보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장소는 기억에 없군요. 다음 기회에 한 번 둘러볼 생각입니다.
성북동은 혜화문 - 한양 도성 해화동 전시 안내 센터 - 최순우 고택 - 간송미술관 - 수연산방 - 심우장 순서입니다.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간성미술관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서, 시간을 내어 둘러보기는 다소 어려운 코스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3대 전통 정원이자 의친왕 이강이 죽기 전까지 머물던 것으로 유명한 성복동 별서는 한 번 가 보고 싶지만요.

이렇게 재미있는 여행 코스들과 정보들이 가득한데, 몇몇 코스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고궁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같이 특정 장소만을 중심으로 안내하는 코스가 특히 그러합니다. 종묘와 서울역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요. 
또 여러 명의 가이드가 글을 쓴 것 같은데, 사람에 따라 내용이 들쭉날쭉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어떤 코스는 구태여 시간을 내어 둘러보기는 애매해 보였기 때문에 코스들도 선별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무엇보다도 여행 코스라면 둘러보는데 얼마나 걸리는지에 대한 정보는 꼭 들어갔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조선 궁궐에 대한 책은 몇 권 읽어 보았는데, 그 책과는 다르게 돌아볼 수 있는 코스 중심으로 설명하여 실제로 관람 시 도움이 됨직한 책이라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궁궐의 구성도 코스 중심이라 더 잘 알 수 있었고요.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번 둘러보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당한 그런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더 관심이 생기면 그때 본격적으로 궁궐 관련 책을 읽는 순서로 읽어 나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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