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4/10/05

그림자 없는 남자 - 대실 해밋 / 구세희 : 별점 2점

그림자 없는 남자 - 4점
대실 해밋 지음, 구세희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유한 아내의 사업체를 관리하며 유유자적하는 닉은 원래 전직 탐정이었다. 그에게 그가 몇 년 전 다루었던 사건의 의뢰인 와이넌트의 딸 도로시가 찾아왔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와이넌트의 비서 줄리아가 살해당한채 발견되었고, 와이넌트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였다. 닉은 옛 인연으로 도로시를 도우며 사건의 범인을 찾아 나서는데....

대실 해밋 전집 다섯 번째 작품. 전직 탐정 닉과 노라 부부가 우연찮게 만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전직 탐정이자 지금은 처가 사업체를 관리하는 사업가인 주인공 닉입니다. 전통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의 스타일을 보여주면서도, 결혼한 남자답게 어느 정도 매너와 배려를 선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에 성공했겠지요. 닉이 아내를 잘 만나 상류층이 된 덕분에 미국 상류층들의 시끌벅적, 흥청망청 분위기 한 가운데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보통의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이런 분위기의 주변인물들이었는데, 정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진상을 드러내는 추리쇼도 괜찮았습니다. 닉의 추리로는, 와이넌트 작업실에서 발견된 시체는 와이넌트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4개월 동안 와이넌트를 만났다고 한 건 그의 변호사 맥컬리밖에 없습니다. 작업실에서 일하던 기계공들이 해고되고, 작업실의 문을 닫은 다음 작업실 임대 기간을 연장하고 계속 비워 놓은 것도 이상하고요. 줄리아는 공범이었는데 그녀가 겁에 질려했거나, 혹은 입막음을 위해 살해했습니다. 넌하임은 줄리아 살해 당시 맥컬리를 목격했었기 때문에 없앴고요. 이후 와이넌트의 채권을 미미에게 준 것도 맥컬리지요. 와이넌트를 만나 받은거라고 시킨 겁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들도 모두 사전에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와이넌트 행방이 4개월 동안 묘연하다는 것, 그와의 연락은 전보나 전화 등으로만 이루어졌다는 것, 미미가 돈에 환장했다는 것, 와이넌트 작업실의 존재 등 모든 것들이 말이지요.

하지만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하드보일드'라고 보기 어려운 탓입니다.  이 작품과 정통파 하드보일드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일일외출록 반장" 정도로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하드보일드 특유의 끔찍한 인간 관계, 잔혹한 현실 등은 전혀 그려지지 않습니다. 범행 동기도 그냥 돈 문제였을 뿐입니다. 닉도 밑바닥 탐정이 아니라 상류층 인물이고, 호화롭고 흥청망청한 생활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어서 사람이 세 명이나 - 와이넌트, 줄리아, 넌하임 - 살해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닉은 탐정이 아니라서 정식으로 의뢰를 받지도 않았고, 닉 본인이 관련된 사건도 아니라서 닉에게 별 위험이 닥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대실 해밋이 쓴 크리스티의 "부부 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추리 역시 후더닛 측면에서 보면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줄리아를 살해할 등기가 있었던 건 와이넌트 밖에는 없습니다. 그녀에게 거액을 사기당했으니까요. 그런데 와이넌트의 동기도 줄리아가 사기친 금액이 고작 4천 달러라는 점에서 애매해집니다. 와이넌트는 1년에 수만 달러의 특허료를 받는 부자이기 때문이지요. 또 다른 유력한 용의자는 와이넌트 부인 미미인데, 그녀가 줄리아를 살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같이 살고 있으니 질투라는 동기는 말이 안되고, 돈이 목적이라면 줄리아가 아니라 와이넌트를 살해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4개월 전에 누군가가 와이넌트를 죽이고 살아 있는 걸로 위장한 뒤, 줄리아를 살해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비서였던 줄리아가 입을 맞추지 않으면 와이넌트가 살아 있다고 속일 수도, 그의 재산을 빼돌릴 수도 없었으니 그녀는 공범이었고요. 그렇다면 와이넌트와 줄리아를 죽인건 동일인물이고,  와이넌트와 그동안 연락을 했다라고 주장하는 건 변호사 맥컬리밖에 없으니 범인은 그밖에 없습니다. 경찰이 진작에 맥컬리를 체포하지 않은 이유를 떠올리기는 힘듭니다.
전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여러 등장인물이 나와 서로 얽히며 여러 사건을 동시에 진행해 나가는게 하드보일드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여러 증인의 입으로 풀어내는게 전부라서 잘 짜여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증인들이 이곳저곳에서 두서없이 등장하여 혼란스럽고, 도로시의 동생 길버트의 기묘한 행동 등 불필요한 이야기도 너무 많고요. 읽으면서 졸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하드보일드 답지 않다는게 신선하기는 한데, 그게 장점은 아닙니다. 별로 권해드리고 싶은 작품은 아닙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