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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9

채택되지 않은 아이디어 - 사토 오오키 / 이현욱 : 별점 3점

채택되지 않은 아이디어 - 6점
사토 오오키 지음, 이현욱 옮김/미디어샘

일본 디자인 오피스 '넨도'의 대표 사토 오오키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을 통해 그만의 디자인 방법론과 접근법을 알려주는 책.

제목처럼 채택되지 않은 아이디어들은 제 1장의 3가지 프로젝트 - 자동판매기용 쓰레기통, 롯데 껌 아쿠오, 클린룸 재배 양상추 판매용기 디자인 - 인데, 이는 별로 였습니다. 채택되지 않은게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 디자인들이 많았고, 접근법도 다소 평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 '다카라벨몬트'의 의뢰로 진행한 미용업계의 비즈니스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작업은 굉장했습니다. 제품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야말로 '비즈니스'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모습도 놀라왔지만, 접근법도 타당했고 결과물도 설득력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기존 비즈니스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사업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기업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상황에서, 사토 오오키는 자신의 역할은 '문제해결까지의 과정과 디자인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당연히 그 과정과 해결책은 하나가 아닙니다.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보고 하나하나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경쟁업체와 정면으로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 등 방향은 아주 다양하니까요. 그래서 기업이 어떤 경영전략을 취하는지에 따라 제안하는 아이디어나 디자인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사토 오오키는 이 때 극단적으로 방향성이 다른 방법을 다각적으로 제안한다고 합니다. 몇 가지 제안을 할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경영 전략이 공격적이라면 과감하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반대로 방어적이라면 철저하게 안전한 옵션을 제시하는 식으로요.
다카라벨몬트에 닥친 현재의 문제는 저가격화, 고객방문 사이클이 장기화된 시장변화가 첫 번째, 노동환경 악화로 이직률이 증가하고 젊은 직원의 기술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낮아지는 인재 부족이 두 번째, 트렌드가 희박해지고 개인별 개성이 다양해져서 새로운 컨셉 서비스가 부족해지는 문제가 세 번째 였습니다.
사토 오오키가 제시한 첫 번째 컨셉은 개인별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가변성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고객이 팔걸이, 등받이 등을 고를 수 있는 의자와 색다른 공간, 화장품과 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함께 제안했고요.
두 번째 컨셉은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입니다. 이를 위해 나란히 연결할 수 있는 의자, 개인별 공간을 제공하는 거울 등이 디자인되었습니다.
세 번째 컨셉은 비즈니스 모델 제안으로 시간의 리디자인과 네트워크화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고객이 바빠서 미용실에 갈 시간이 없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특정 서비스에 대한 전문 기술만 제공하는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이지요. 커트만 하는 매장, 염색만 하는 매장이 있는 식으로요. 의자도 앉았다가 일어서서 스타일링을 확인하기 쉬운 형태로, 짧은 시간을 강조하기 위해 '신선도'가 돋보이도록 화장품을 냉장고에 넣는 컨셉 등이 제안되었습다.
이 세 번째 컨셉에서 발전시켜서 내 놓은 것이, 미용실 산업 트렌드 변화를 이겨내기 위한 3/30 (3주에 한 번, 30분) 컨셉입니다. 이게 진짜 와 닿았던게, 정말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저렴하더라도 짧은 시간만 서비스를 제공하니 저가격 문제 해결, 미용실을 자주 방문하게 되니 장기화된 방문 사이클 해결, 잘 하는 것만 하면 되니 직원 기술력 문제도 해결, 새로운 서비스 키워드로 '신선도'를 제시하여 새 컨셉 서비스 제안이라는 방식으로요. 정말로 디자이너가 비즈니스를 바꿀 수도 있다는게 실감이 나는, 좋은 프로젝트 경험담이었습니다.

반면 와세다 대학 럭비부 리브랜딩은 그리 인상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장황하게 설명은 하고 있지만, 결국 유니폼 디자인이 거의 전부였던 탓입니다. 팀의 방향성도 디자이너가 정했다는게 특이했지만 이 역시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스포츠팀이라면 디자인보다는 이기는게 더 중요하니까요. 유니폼이 멋있고, 캐치프레이즈가 좋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유니폼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과정만큼은 돋보였습니다. 제가 꼬꼬마 신입 디자이너 시절에 두산 베어스 리브랜딩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런 접근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크게 반성하게 되네요.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디자인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그 뒤 IHI 브랜딩과 프로테카 가방 디자인도 그냥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라서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IHI 브랜딩에서 가장 손쉬웠을 로고 변경을 하지 않고 가능했던 커뮤니케이션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좋았습니다. 하나는 '중공업의 이미지를 좋은 의미로 배신하는 시도'였고, 또 다른 하나는 'IHI'라는 세 글자와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으로 이를 통해 여러가지 제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 제안을 할 때 '요구범위 확장형'이라고 불리우는 방식으로 접근한게 눈에 뜨입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르는 제안과 요구에서 조금 벗어난 제안, 크게 벗어난 제안을 제안하는 것으로 클라이언트가 자극을 받아 원래 생각했던 요구의 범위를 수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범위를 크게 넓히기도 한다니, 프로젝트를 외주로 받아 진행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시도해봄직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같이 회사 소속 디자이너에게는 불가능한 방식이겠지만요. (시키는 것만 잘하는 것도 벅찹니다..)

이렇게 수록 프로젝트가 전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유익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디자이너로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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