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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세상 끝의 살인 - 아라키 아카네 / 이규원 : 별점 1.5점

세상 끝의 살인 - 4점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및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4년 9월 7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충돌 날짜는 정확히 반년 뒤인 2025년 3월 7일이었다. 그 뒤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루의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도망갔고, 아버지는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남동생 세이고는 뉴스 전부터 중학교 때 학교 폭력을 저지른 탓에 히키코모리가 되어 있었다. 매일을 운전 면허 교습을 받으며 소일하고 있던 하루는 고속도로 실습날인 12월 31일에 운전학원 실습차 트렁크에서 칼에 찔려 죽은 여성 사체를 발견했다. 
전직 형사였던 운전학원 강사 이사가와와 함께 얼떨결에 사건 수사에 나선 하루는,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있는 하카타와 이토시마에서 펼친 끈질긴 수사로 사건에 NARU라는 인물이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런데 NARU는 하루의 동생 세이고였다. 모든건 세이고가 중학생 때 다른 친구들과 나카노 이쓰키라는 동급생을 심하게 이지메하고 괴롭혔던 과거와 관련되어 있었다.

제 68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얼마 뒤 지구는 멸망하는데 운전학원에 다니는 여자와 운전을 가르치는 여자 교관이 차 트렁크에서 시체를 발견한 뒤, 연쇄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선다는 기발한 설정이 돋보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상황도 그럴듯합니다. 세이고는 유이치, 준야와 함께 지구 멸망 전, 자기가 괴롭혔던 이쓰키에게 사과하려고 변호사 히츠미의 도움으로 그를 불러냈던 겁니다. 그런데 마침 불러낸 현장이 폭주 택시 연쇄 살인마인 경찰 이치무라가 시체를 버리던 초등학교였지요. 범행이 들통났다고 여긴 이치무라는 우선 세이고를 현장에서 살해했고, 도주한 유이치, 준야, 히쓰미를 차례대로 살해했던 겁니다. 이 때 세이고의 차를 유이치가 타고 달아나서 범인의 동선이 기묘해졌던 것이고요. 
피해자들이 방심한 상황 - 왜 차 안에서 창문을 열어서 범인이 손쉽게 찌를 수 있게 했는지 - 을 통해 범인이 경찰이라는걸 은근히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정의감이 너무 넘치는 탓에 범죄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사가와 강사 캐릭터도 강렬합니다. 그외 멸망을 앞둔 상황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도 다채롭고요.

하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히쓰미의 신원을 알아내어 사건 파일을 입수하고, 피해자 준야를 처음 발견했다는 료도 형제와 우연찮게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듣고 동행하고, 세이고의 '마지막 사과'와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현장에 있었던 이쓰키가 하루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알려주고, 이치무라가 직접 나타나서 하루 등을 납치하지만 료도 형제와 중간에 만났던 소녀 나나코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구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가는 탓입니다. 이 과정에서 추리가 개입될 여지는 전무합니다. 이사가와 강사의 추리력이 번득이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본 사건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리고 범인이 경찰 이치무라라는건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경찰차 범퍼에 가해진 손상이 비중있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폭주 택시'가 경찰차라는걸 목격자들이 놓쳤다는게 더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높은 가드레일 탓에 경찰차 특유의 도장을 확인할 수 없었던 탓이라고 설명되는데, 지극히 운과 우연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치무라의 동기가 작품의 핵심인 '지구가 곧 멸망하는데 사람들을 죽이는 까닭이 뭔지?'를 잘 설명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무대 설정만 기발할 뿐, 결국 뻔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극과 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면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작품처럼 그 설정이 추리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에 가까운 1.5점입니다. 추리물도 아니고, 특수 설정도 이야기에 잘 녹여내지 못해서 감점합니다. 다른 후보작이 어땠기에 이 작품이 만장일치 수상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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