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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6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 미쓰다 신조 / 권영주 : 별점 3점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핵심 트릭과 진상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조 겐야는 대학교 선배 아부쿠마가와 가라스로부터 하미 지역의 특별한 제의와 기묘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미에는 네 개의 마을에 각각 신사가 있고, 홍수나 가뭄 때마다 신사마다 돌아가며 지역 농사의 젖줄인 미쓰 천의 원류 진신 호에서 미즈치 신을 모시는 제의를 행해왔는데, 13년 전 제의에서 사요촌 미즈시 신사 신관 류지의 큰아들 류이치가 죽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으나, 터무니없이 무서운 어떤 것을 본듯한 형상이었다. 그 뒤 제의에서도 신관들은 기묘한걸 목격했다고 했다. 
이 소재를 탐방하기 위해 도조 겐야는 편집자 소후에와 함께 가뭄 탓에 행해지는 하미의 기우제에 참석했다. 그리고 제의 중 신남 역할을 맡은 류지의 둘째 아들 류조가 가슴에 미즈치 님의 신기 중 하나인 뿔에 찔려 죽은걸 목격했다. 그러나 현장인 집배는 완전한 밀실이었다. 겐야는 현장을 확인한 뒤, 자살이라고 추리했고 류지가 동의하여 사건은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러나 미즈시 신사 외눈 광에 제물로 류지의 의붓손녀 사요코가 감금돠었다는걸 다른 신관들과 관계자들이 알게 되었다. 사요코를 풀어달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류지는 주술을 푸는데 시간이 걸린다며, 다음 날 풀어 줄 것을 약속했다. 

그날 밤부터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미즈치 신사의 다쓰키치로, 미쿠마리 신사의 다쓰조 신관이 차례로 살해당했고, 스이바 신사 류코 신관은 중상을 입었다. 류지는 소후에를 감금한 뒤 겐야를 협박하여 범인을 밝혀낼 것을 종용했고, 겐야는 관계자들 앞에서 범인은 류지의 의붓 손자 쇼이치라고 추리했다. 겐야가 내 놓은 범인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건 쇼이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추리쇼 직후 류지마저 총격으로 살해당했고, 도조 겐야는 소후에를 구해내 스이바 신사 후계자 류마와 함께 마을 밖 경찰서로 향하는 차 안에서 류마에게 진짜 진범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 때 네 개의 마을은 폭우로 범람한 미쓰 천에 모두 휩쓸리고 말았고, 도조 겐야는 경찰에 살해된 사람들과 범인들 모두 실종된 것으로 신고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자신감 있는 오만한 명탐정보다 도조 겐야 쪽이 마음에 드는 걸. 연쇄살인이 발생해 몇 명 죽고 난 다음에 겨우 사건을 해결해 놓고 실은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고 지껄이는 명탐정보다,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댁이 훨씬 더 믿음이 가." - 류마.

도조 겐야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 제 10회 일본 본격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입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인데, 굉장히 흡입력있고 재미있는 내용이라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즈치 신을 모시는 제의와 사건, 트릭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게 아주 돋보였습니다. 제의는 공물을 담은 큰 통을 호수에 빠트리면서 진행되는데, 이 통 안에 '산제물'인 사람을 넣어 두었던게 밀실 트릭의 진상입니다. 13년 전 제의에서 처음 산제물을 바쳤는데, 이 때 통에 갇혔던 산제물 이치로가 물 속에서 튀어나와서 류이치는 깜짝 놀라 심장마비를 일으켰던겁니다. 이치로는 지하 수로로 빨려들어갔고요.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는 산제물은 사요코였는데, 그녀 역시 통을 호수에 빠트릴 때 빠져나와 류조를 찔러 죽였습니다. 통 안에 공기가 남아있어서 관계자들이 현장을 보고 떠날 때 까지 숨어있을 수 있었고요. 이 과정에서 집배가 한 번 더 흔들린 이유 - 떠오른 통에 부딪혀서 - 까지 설명되는게 아주 좋았습니다.
사건에 대해 겐야가 내 놓는 여러가지 추리도 볼 만 합니다. 우선 겐야는 범인에게 해당되는 일곱 개의 조건을 꺼내어 놓습니다.
  1. 미즈치님 제의에 산재물이 부활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인물
  2. 쓰루코 대신 사요코가 제물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인물
  3. 산재물이 통 안에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인물
  4. 사요코가 제물로 바쳐졌음을 알고 범행을 결심한 인물
  5. 류마의 잠수 장비가 어느 광 어느 궤짝에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인물
  6. 잠수 장비를 착용하고 활동할 수 있는 인물
  7. 호수에 드나드는 방법을 알 수 있는 인물.
이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추려낸 후, 하나씩 소거해가는 과정이 아주 그럴듯했어요. 이를 통해 범인이 쇼이치라는걸 드러내는 추리도 합리적이고요. 물론 이는 나중에 아닌걸로 밝혀지지만요.
미즈시 신사가 '산제물'을 바쳤다는걸 밝혀내는 추리도 돋보입니다. 신에게 바치는 '신찬'은 누가 보아도 산제물인 여성을 형상화한 것인데, 류지가 이를 대충 고르는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는 등의 단서는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알려줍니다. 여러모로 '본격추리대상'을 탈만큼 추리적으로는 풍성합니다.
다만 도조 겐야의 추리는 일본어를 이용한게 많아서 한국 독자는 풀어내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산제물'을 추리해내는 추리가 특히 그러했습니다. 이런걸 원어로 보고 이해하며 추리에 동참할 수 있는 일본 독자들이 부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전쟁 당시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눈에 뜨였습니다. 류마가 해군 자살 특공대 후쿠류 출신이라는 설정인데, 류마의 입을 빌어 전쟁 당시 자살 특공대에 대해 개죽음이라고 비판하는 부분이라던가, 자식이 죽어도 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낙후된 촌락의 사고방식을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사고방식과 빗대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아버지나 자식이 죽어도, 형이나 동생이 목숨을 잃어도 슬퍼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기뻐했던건 비정상적이라는 것이지요.
쇼이치가 어떻게 되는지 밝혀지지 않은 후일담은 다소 마음에 걸리지만, 자매가 행복을 찾았다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몇 가지 있습니다. 사요코가 산제물로 통 안에 갖혔을 때 미즈치의 뿔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처럼요. '불안함을 느껴 호신의 의미로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데,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닙니다. 그렇게 아무나 가져갈 수 있게 두었다는 것부터가 설득력이 떨어지니까요. 그것도 제의 전에 말이지요. 또 호수에서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는데, 사요코가 범행을 저지른 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물론 공기가 들어있는 통을 사용했다는 트릭이 활용되기는 했는데, 과연 얼마나 숨을 쉴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물 밖으로 나온 뒤 사건에 대해 증언하지 않고, 숨어서 신관 연쇄 살인 사건을 일으킨 동기도 불분명합니다. 자신을 산 제물로 삼으려고 했다는게 신관들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라고 믿었다 한 들, 최우선 복수의 대상은 류지여야 합니다. 다른 신사의 신관들이 아니라요. 그리고 복수심에 불탔다 한들 신관들을 미즈치 님의 신기로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상식적이었다면 자신들의 편일 세이지, 류마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마을 밖 경찰서에 신고했어야 했어요.
류지가 산제물을 바치기로 결심한 뒤에도 외눈광을 유지한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의 때마다 산제물을 바친다면, 필요 없는 곳입니다. 미즈치 신을 모시는 곳이라서 쉽게 허물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그렇다쳐도 첫 산제물을 바친게 13년 전이니,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습니다.
이미 13년 전에 통 뚜껑을 잘 닫지 않아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통 뚜껑이 열렸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던 점이고요.

아울러,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어느 정도 읽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작품의 거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쇼이치 시점의 이야기는 너무 길고 지루했습니다. 쇼이치를 통해 하미 지방에 미즈치 신 외에도 기묘한 어떤 것 - '팽것', 귀녀 등 - 이 있다는 설정을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이러한 이형 존재에 대한 서술은 다른 미쓰다 신조 작품과 거의 똑같았던 탓입니다. 추리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거의 없고요. 그나마 진신 호에서 미쓰 천으로 이어지는 지하 수로는 여러 통로로 접근할 수 있다 정도만 추리에 도움을 주지만, 이 역시 류마가 조성한 무덤 - 이치로의 시체가 떠내려 온 - 과 이치로의 사체가 발견된 곳 등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그렇게 필요한 정보는 아니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쇼이치 부분을 빼고 도조 겐야 부분만 추려서 읽어도 충분히 말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쇼이치 가족의 어머니가 '가가구시촌의 사기리'였다는건 시리즈 제 1작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과 연결되는데, 이 역시 천편일률적인 묘사로만 이어질 뿐 특별한 소재로 사용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있는건 분명하니까요. 도조 겐야 시리즈, 혹은 호러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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