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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미쓰다 신조 / 권영주 : 별점 2점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4점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기소설가 도조 겐야가 괴담 수집 취재를 위해 향한 가가구시촌은 신사를 맡은 '백'의 '가미구시가', 뱀 신을 모시는 '흑'의 '가가치가'라는 두 가문 세력으로 나뉘어진 곳이었다. 도조 겐야가 도착한 직후, 가가치가 무신당에서 수행승 젠토쿠 도사가 교살당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가가치가 어른들이 잇달하 살해당했다. 사체는 모두 허수아비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건들이 일종의 밀실같은 상황에서 벌어진 탓에 수사는 미궁에 빠졌지만, 도조 겐야는 추리쇼를 펄쳐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데....


"처음부터 생각해 보지 않고 괴이를 받아들이는 건 인간으로서 한심한 일이야. 그렇다고 인지를 뛰어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인간으로서 오만한 거고. 세상의 모든 일은 흑백을 명확히 가릴 수 있는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안 돼."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제 1작. 시리즈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읽고나서 14년만에 읽게 되네요. 
550페이지를 넘기는 대장편으로 일본의 괴담을 섬찟하게 그리면서, 괴담과 관련된 괴사건이 일어나지만 이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추리해서 해결한다는 아이디어를 잘 살린 작품이지요.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전개와 설정 모두 나무랄데 없습니다. 후속권이 계속 이어지는 인기 시리즈가 된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일단 미쓰다 신조 작품답게 괴기 현상에 대한 묘사가 좋습니다. 어린 시절 렌자부로와 함께 모험을 떠났던 렌타로가 사라졌던 사건이 특히 굉장했어요. 귀기어린 구구산의 분위기, 기묘한 계단을 통해 이어지는 당집과 지하실, 뒷 계단을 통해 나왔을 때 뒤를 쫓아온 괴이 등이 렌자부로의 시점으로 설명되는데, 한 편의 괴담으로도 완벽한 수준이었습니다.

오래전 벌어졌던. '신령 납치'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시즈에 실종 사건은 '시즈에가 스스로 몸을 숨겼던게 아니었을까?'라는 추리에서 시작해서, 마을을 덮친 괴이한 연쇄 살인 사건까지 추리해 내는 도조 겐야의 추리도 볼거리입니다. 등장하는 괴담, 괴이 현상에 가까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수수께끼 중 주요한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지요가 지장갈림길에서 목격했던 사기리 생령의 정체는?
  • 누가 숨어있기 힘들었던 나루터에서 가쓰토라를 어떻게 살해했는지?
  • 구니하루 찻잔에 독을 넣고, 잠깐 사이에 피해자를 허수아비처럼 꾸민 방법은?
  • 기누코를 살해하고 오솔길에서 사기리, 렌자부로, 도조 겐야 눈을 피해 달아난 방법은?
이에 대해서 도조 겐야는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추리를 내 놓고, 실패를 반복하는데 왠지 모르게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 놓는 추리들도 아예 말이 안되지 않고요. 예를 들어 맨 처음 '범인은 사기리 할머니의 시종인 구로코다!'라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구로코는 젠토쿠 도사 범행 당시 무신당 안에 있었고, 구니하루 범행 때에도 현장에 있었으며 맨 처음 장소를 이탈했기에 옆 방에 숨어들 수 있었고, 기누코 사건 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터부시하는 허수아비님 속에 숨어 렌자부로의 눈을 피했으며, 이는 구로코가 마을 사람이 아니어서 가능했다는 등의 내 놓는 근거 역시 꽤 탄탄한 편입니다. 이는 구로코의 정체는 렌자부로의 형 렌지로라는 추리로 이어지고요. 이 역시 나름대로 근거를 잘 제시해줍니다.
구구의례라는 의식을 행하며 할머니가 조제했던 약을 먹은 사기리가 좌반신에 마비가 남고 잘 걷지 못하게 된걸 보고, 그녀가 뇌경색에 의한 시야협착 증세를 가지고 있어서 왼쪽을 돌아볼 때 뒤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추리, 그리고 범인이 사기리의 쌍둥이 언니 사기리였다는 진상도 괜찮았습니다. 처음부터 사기리는 2명이 아닐까라는 단서를 계속 던져주고 있기도 하고요. 애초에 도조 겐야의 취재 노트, 렌자부로의 수기와 함께 작품을 전개하는 축인 '사기리의 일기'가 주인공인 동생 사기리가 아니라 언니 사기리의 일기였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모든게 허수아비 속에 숨어 있었던 사기리 시점이었던 거지요.
아울러 언니 사기리가 모든 범행을 허수아비 속에 숨어서 행할 수 있었던건, 그녀가 구구의례 뒤 허수아비님과 같은 산신님이 되었기에 가능했다는 핵심 트릭이야말로 괴담과 추리가 잘 결합된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이외에도 젠토쿠 도사를 살해한 범행은 이모 사기리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서 특별한 수수께끼가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다른 범인이 있었다는게 드러나며 이 사건에서의 목격 증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잘 짜여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작답게 부족한 부분도 느껴집니다. 일단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상당히 지루합니다. 가미카쿠시 촌을 양분하고 있는 흑, 백 세력의 필두 가가치가, 가미구시가 양 가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족 관계를 엄청나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문제는 이 설정은 미쓰다 신조 작품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신선하지도 않다는 점입니다. 
우선 '뱀 신'을 모시면서 떠받드는 가가치가의 묘사는 "백사당", "사관장", "흉가" 등 다른 작품 속 가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가치가 무신당에서 행해지는 의식 역시도 비슷하고요. 
물론 이건 이 작품이 작가의 초기작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다소 부당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불필요한 내용이 과하다는건 분명합니다. 마을 이름의 유래 등을 통한 마을 마귀 신앙 설명처럼요. 사건과 별로 관계가 없는 부분을 모두 쳐 내었더라면, 200페이지는 충분히 줄일 수 있었을겁니다. 

도조 겐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외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시골 마을을 찾아온 긴다이치 코스케와 별다를게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화적으로 독특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이렇게 무색무취한 것도 문제네요. 게다가 괴담을 무척 좋아한다는 설정은 관련된 설명이 늘어지게 만들 뿐이라 오히려 감점 요소였다 생각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사건은 풍성하고,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는 후더닛 측면으로는 볼만하나 본격 추리물에서 가장 중요한 트릭면에서는 아쉽습니다. 범인이 빠져나갈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던 허수아비 속에 숨는 트릭인데, 이는 이미 도조 겐야로부터 그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렌자부로 등이 마을 사람들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부인해서 흐지부지 넘어가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극단적 상황에서 심리적 거부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던것 아니었을까요? 렌자부로와 마을 사람들 의견으로 불가능하다고 쉽게 단정지을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설령 도죠 겐야는 그랬다쳐도, 경찰이 이를 쉽게 납득하고 넘어간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사기리가 떠내려보낸 주물을 쌍둥이 언니가 몰래 다시 어깨에 얹은 이유라던가, 기타 등장하는 괴이와 괴담 모두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렌타로 실종 사건입니다. 할아버지가 찾으러 갔을 때 사당이 사라진 이유에 대한 도조 겐야의 추리는 그럴싸 했지만, 누가 왜 렌타로를 납치했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으니까요. 이도저도 아니게, 어정쩡하게 정리된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아이디어는 돋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어차피 같은 설정이라면 "백사장", "사관장"같은 후기작을 읽는게 더 낫습니다. 외딴 지역에 전승되는 전설, 저주와 엮인 사건에 대한 추리 소설이라면 "흑사의 섬"도 나쁘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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