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의 유령 -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황금가지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노사이드"의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11년만의 신작. 광역 폭력단과 부패한 정치인이 엮인 스캔들을 소재로 한, 약간의 사회파 분위기 물씬나는 취재 수사극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건널목에 나타나는 유령이 누구인지?를 추적해나가는 취재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경찰이 아닌 기자 신분으로, '취재'라는 활동을 통해 얼마나 진상에 가까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캬바쿠라를 탐문하여 그녀와 동거했던 종업원 에미를 찾아내고, 에미를 통해 옛 집 주소를 알아내어 클럽과 거주지가 모두 폭력단 반도파와 연관되어 있다는걸 떠올리는 식으로요. 또 옛 집에서 발견되었던 피해자 어린 시절 사진의 확대 및 가공 작업으로 배경 건물에 적힌 이름을 알아내어 조사하는건 사진 전문가가 있는 잡지사에 딱 어울리는 수사 방식이었다 생각됩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 그리고 현재의 잡지사 등 모든 연줄과 방법을 동원하여 단서를 그러모으는 묘사도 현실적이면서 설득력 넘쳤고요.
'유령'이 된 피해 여성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몸을 팔았다는 등의 충격적인 이야기도 사회파 분위기에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건널목의 유령이 진짜 유령이었다는 진상은 황당했습니다. 현실감넘치는 수사극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어요. 유령이 된 그녀가 자신을 죽인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복수에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는지도 설명하지 못하고요. 유령으로 대충 수습하지 말고, 미쓰다 신조의 작품("노조키메" 등)이나 "전기인간의 공포"처럼 최대한 추리를 통해 괴사건과 심령 현상을 설명해주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유령과 함께 살았던 접대부 에미가 건네준 종이접기 - 피해자가 가르쳐 주었다는 - 와 철도 건널목의 위치 - 그녀 고향으로 향하는 길 - 를 단서로 활용하여 '쓰구미노'라는 지명을 끌어내는 식으로요.
같은 이유로, 취재 과정에서 벽에 부딪힌 마쓰다가 영매의 도움으로 그녀의 고향과 신원을 알아내는 부분도 영 별로였습니다. 유령의 등장부터가 실망스러운데 영매라니! 앞서의 설득력넘치는 취재와 수사를 모두 걷어차버리는 설정이에요. 영매가 이리 용하다면 개인 돈과 시간까지 써가며 취재를 행한 마쓰다의 노력은 무의미한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영매의 등장과 뒤이어 진짜 유령이 나타났을 때의 묘사도 없느니만 못했습니다. 차라리 무섭기라도 했다면 조금 나았을텐데, 그렇지도 않았고요.
유령이 된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는게 왜 이렇게 중요한지 잘 모르겠고, 부패한 정치가와 폭력단 조합과 성상납이라는 소재도 지금 읽기에는 너무나 낡았습니다. 2020년대 발표하려면 최소한 비트 코인 정도는 가지고 왔어야지요. 진부하기 짝이 없어요.
그래서 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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