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4/05/12

문라이트 마일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2점

문라이트 마일 - 4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하지만 옛날처럼 살면 우린 벌써 죽었을 거야."

아내와 딸의 부양을 위해 위험한 일은 지양하고, 양심에 반하는 일까지 닥치는대로 하면서 살고 있던 켄지 앞에 베아트리체가 나타났다. 그녀는 12년 전, 켄지가 찾아주었던 소녀 아만다의 숙모였다. 켄지는 아만다를 사랑했던 납치범 삼촌으로부터 소녀를 되찾아 알콜 중독에 빠진 형편없는 엄마에게 돌려주었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아만다가 또 사라졌다고 말했고, 켄지는 돈 한 푼 받을 수 없지만 과거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로 아만다를 다시 찾아나섰다.
그러나 아만다의 실종은 러시아 갱단과 관련이 있었고, 갱단은 켄지의 주소까지 알아내어 아만다가 가지고 사라진 아이와 '벨라루스 십자가'를 찾아오라는 협박을 시작했다...

데니스 루헤인을 대표하는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완결편. 책 소개를 보니 "가라, 아이야, 가라"의 후속작 성격이라고 하네요.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답게 납치, 절도에 살인과 폭력 등 각종 범죄가 난무합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갱들이 도박으로 수렁에 빠트린 의사 드레를 아동가족부에 취업시킨 뒤, 어린 임산부들에게 몰래 아이를 낳게 한 뒤 팔아치워왔다는 범죄 행각이 독특하더군요.
범죄들과 관련된 여러가지 죽음들이 끔찍한 시리즈 특징도 여전하고, 돈 때문에 기본적인 인간성을 저버리는 등장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들도 여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니 한 술 더 뜹니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켄지마저도 돈과 가족 때문에 양심을 파니까요. 이런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기는 한데, 역시나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켄지와 제나로, 딸 가비의 사랑과 유대감, 신뢰에 대한 묘사도 많습니다. 완결편인 덕분이겠지요? 이는 켄지가 탐정일을 완전히 은퇴하는 시리즈 결말에 대한 설득력도 높여 줍니다. 본인이 양심을 팔고 돈을 택했던 몇몇 사건들에 대한 회한과 함께 더 이상 위험과 폭력이 가득한 세상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지켜야 할 가족보다 완벽한건 없겠지요. 아만다가 딸(?) 클레어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이런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한 결말도 깔끔합니다. 러시아 갱 예핌이 약에 중독된 두목 키릴 등과 인간 쓰레기 아만다의 의붓아버지 케니를 모두 죽이고 켄지와 아만다, 납치했던 소피와 기타 등등을 풀어주고 끝나거든요.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 시점도 완벽한 셈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잘 짜여진 이야기는 아닙니다. 앞서의 해피엔딩은 대미를 장식하기는 하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문제는 커요. 예핌이 왜 이들을 살려주는지 설명이 없는 탓입니다. 어차피 네 명을 죽인 상황에서 세 명을 더 죽이는게 별 문제도 아니었을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중요 목격자인데요. 다른 악당이라면 다 죽이고 켄지의 집으로 찾아가 가족도 다 죽였을 겁니다.
드레를 아만다가 의도적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기차가 달려오는 것도 모르고 십자가를 주으러 달려갈만큼 멍청한 사람은 없을겁니다. 직전에 약에 취했다는 묘사가 있기는 한데, 이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마침 기차가 달려오는 순간을 딱 맞췄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대체로 우연이나 특별한 기회를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개도 그닥입니다. 예를 들자면, 켄지가 아만다의 집을 몰래 들어가 수색하다가 아만다의 가족들과 소피를 만나는데, 그 때 마침 러시아 갱단이 습격해서 소피를 납치해갑니다! 갱을 추격하던 켄지는 면허증을 빼앗겨서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요. 이런 전개는 독자가 무언가 추리할 여지를 아예 없게 만듭니다.
그나마 아만다가 보스턴 레드삭스 19번 유니폼을 애지중지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레드삭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부분은 약간 추리물 성격을 보이기는 합니다. 알고보니 아만다가 어린 시절 유괴당했을 때 살았던 마을 이름이 '베켓' 이었던 거지요. 좋은 추억만 가득했기에 레드삭스 19번 조쉬 베켓의 유니폼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켄지와 제나로는 베켓에서 아만다를 찾아내지요. 하지만 이 역시, 아만다의 행적을 뒤쫓는데 그리 중요한 단서가 되지는 못해요. 19번 유니폼이 없어도 '베켓'을 찾아가는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니까요.
핵심 인물인 아만다도 와 닿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혹독한 경험을 했다고 모두가 천재가 되는건 아닙니다. 친구의 아기를 자기 딸인양 돌볼 이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아만다의 현재는 켄지의 심경 묘사 정도의 비중은 할애해서 설명해 줘야 했습니다. 지금은 치기어리고 겁없는 사춘기 10대인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복잡한 내면을 갖춘 인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한 펄프 픽션입니다. 시리즈 팬이시라면 '완결편' 이라는 의미도 있고하니 읽어볼만 하겠지만,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 볼 필요는 없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