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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 8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거물 앨버트의 애인 에마와 사랑에 빠진, 갓 스무살이 된 조는 경찰관 세 명이 죽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조는 도주 중에 에마의 배신으로 경찰에 체포되어 찰스타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교도소에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앨버트의 라이벌인 마소의 생명을 구해주었고, 출소 뒤  마소의 명령으로 탬파 지역으로 향했다. 지역 밀주 사업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써서 밀주 원료를 독점하게 된 조는 앨버트를 지역에서 축출한 뒤, 탬파 지역의 왕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마소가 조의 구역을 아들에게 넘겨주려한 탓에 두 세력은 엄청난 격돌을 벌였고, 큰 희생끝에 마소를 제압한 조는 조직을 이탈리아인인 부하 디온에게 넘기고 은퇴한 뒤 조직의 자문역으로 표면적으로 합법적인 사업에만 관여하였다. 하지만 조 때문에 딸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미쳐버린 전 경찰서장 어빙의 총격으로 아내 그라시엘라를 잃고 마는데...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네가 세상에 뿌린 씨앗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경찰의 아들로 템파 지역 밀주 사업을 장악해 거물이 된 조지프(조) 커글란이 은퇴(?)하기까지의 반생을 그린 범죄 스릴러.

기본 뼈대는 흔해빠진 밀주시대 암흑가 거물 성공담입니다. 1990년대 영화 "몹스터즈" 등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몹스터즈"의 주인공이었던 실존 인물 찰리 '럭키' 루치아노가 임팩트있게 등장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자의 필력은 이야기를 아주 뻔하지 않게 만듭니다. 방대한 분량으로 쌓아올린 등장인물들의 서사는 모두 일품이며, 조에게 닥치는 온갖 위험과 역경이 워낙에 창의적이고 생생해서 독자를 몰입시키기 때문입니다. 찰스타운 교도소에서 자기 아버지의 힘을 이용하려는 마소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운 좋게 마소의 생명을 구해주는 것부터 나름대로 기발했습니다. 탬파 지역 밀주 사업을 장악하기 위해서 군함의 무기를 털어야했던 작전도 그럴듯했고요. 조가 사업을 위해 흑인들과 손을 잡은걸 꺼림직하게 여겼던 KKK단의 훼방도 신선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도박 사업을 일으키려다가, 서장의딸 로레타의 광적인 전도 활동 탓에 꿈을 접는건 창의적인 역경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살짝 웃기기까지 했어요.
또 이런 일련의 서사와 역경을 통해 소개된 여러가지 복선들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마지막에 마소가 조의 사업을 통째로 자기 아들에게 주려고 조를 죽이려했던 부분에서 이런 복선들이 특히 잘 활용됩니다. 조의 거짓말 - 나를 배반한건 디온이 아니라 그의 형이다 - 을 밝히기 위해 초반에 무대에서 사라졌던 앨버트가 다시 나타나고, 시멘트 구두를 신고 수장당할 위기에 놓인 조가 죽은줄 알았던 에마가 찍힌 사진으로 시간을 끌고, 마지막에 조를 구해낸건 사업 초기부터 언급되었던 '기관총이 장착된 운송용 비행기' 덕분이라는 식입니다.

묘사도 출중합니다. 총격전은 많이 벌어지지 않고, 벌어져도 담담한 편이지만 '처단' 장면만큼은 인상적으로 잘 쓰여져 있습니다. 조와 마소 조직원들이 격돌하는 클라이막스에서 개틀링 기관포를 무력화 시키는 비행기의 공격도 화끈했고요. 배경 묘사도 뒤지지 않아서 찰스타운 교도소의 끔찍함과 탬파 지역의 무더위, 쿠바 담배 농장의 풍광 등은 모두 손에 잡힐 듯 생생했습니다. 읽으면서 '냄새'가 느껴질 정도도 말이지요. 이는 실존했던 금주법 시기 일화 및 인물들, 역사적인 배경과 결합되어 일종의 '팩션'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조 커글란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건 운이라고 해도 지나쳤습니다. 두뇌파 범죄자로 금주법이 끝나는걸 대비해 정상적인 양조 사업을 미리 준비하는 등 사업(?)에 있어서는 상당한 식견과 비젼을 지닌 것으로 보이지만, 위기 상황은 운으로만 모면한다는건 그리 좋은 설정은 아니었어요. 마소가 조를 불렀을 때, 별다른 준비없이 호랑이굴로 들어간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소가 호텔방에서 조의 거짓말 - 디온이 배신했다! - 를 밝혀낸 뒤 바로 조를 죽이지 않은 것 처럼요. 괜시리 시멘트 구두를 신겨 수장시킬 이유는 없었습니다.
또 앞서 인물들의 서사는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했는데, 과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로레타의 자살과 그의 아버지 어빙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부분은 많이 거슬렸고요. 이왕 이렇게 갈 거였다면 좀 더 확실히 상황을 드러내던가.... 
서로를 미워하던 토머스와 조 부자가 조가 큰 부상을 입고 회복한 뒤, 갑자기 친밀해지는 것처럼 인간 관계의 변화도 급작스러운게 많습니다. 이 시점에서 토머스는 조 때문에 모든걸 잃었기 때문에 미움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가까와질 이유는 없어 보였는데 말이지요. 아내 그라시엘라가 죽은 이후 전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조 커글란이 사랑에 목숨거는 순정남이라는건 어린 시절 에마와의 에피소드에서는 충분히 먹힐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애송이였으니까요. 그러나 나이도 먹은데다가 큰 조직의 수장이 된 현재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조가 쿠바 농장을 대하는 태도는 총칼을 앞세우고 약간의 호의만 제공했을 뿐인데, 이를 의미있는 것처럼 포장하는건 전형적인 식민지 지배자의 논리라 불쾌했고요.
무엇보다도 아내가 죽은 뒤 조는 범죄 세계를 떠났다는 한 페이지의 에필로그가 전부인 결말은 이 책만의 평가를 어렵게 만듭니다. 이 작품이 3부작의 가운데 권인 탓인데,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전혀 몰랐으나, 이 정도로 후속권과 이어진다면 각 권을 별개로 출간하지 말고 1~3권의 긴 장편으로 출간하는게 맞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속았다'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래서 이 책만의 별점은 3점입니다. 묘사와 전개 모두 좋은 1급 범죄 스릴러이지만, 이 책만으로는 온전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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