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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2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 김수영 : 별점 2.5점

 

제노사이드 - 6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소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뒤, 아버지가 보낸 수수께끼의 메일을 통해 기묘한 노트북과 거액, 그리고 은신처를 입수하였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불륜을 의심했지만, 곧 아버지가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치료약을 만들고 있었다는걸 알게되었다. 영문도 모른채 경찰에 쫓기게 되자 겐토는 은신처에 숨어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받는다.
한 편, 아프리카에서 예거가 이끄는 용병 4명에 의한 '네메시스 계획'이 진행되었다. 피그미 족 부부에게서 태어난 초인류 아키리를 말살하는 미국 주도의 작전이었다. 그러나 미 정부는 용병들도 모두 죽일 생각이었고, 이를 알아챈 용병들은 아키리와 손을 잡고 아프리카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는데...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 과학 액션 스릴러. 아프리카 탈주극과 일본에서 약을 제조하려는 겐타의 이야기라는 두 개의 큰 축을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중 아프리카 탈주극, 즉 미국 정부가 진화한 초인류 아키리를 말살하려 하지만, 아키리 일행이 이를 뿌리치고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여러가지 모험들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무제한의 자금은 물론,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쥐고 있는 미국 정부의 목표물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여러가지 계획들의 짜임새가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설정도 괜찮았습니다. 사실 이 작전에 정식 미국 군대가 투입되었다면 아무리 초인류의 지능이라도 아키리 일행이 살아남기는 불가능했을거에요. 그러나 정치적, 외교적으로 섣불리 정식 군대를 투입할 수 없었기에 소수의 용병을 고용하여 작전을 실행했고, 이들을 막아서는건 미군이 아니라 현지 무장 단체라는 상황이 조성되어 그나마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를 내다본 아키리 일행이 자기들이 포섭하여 탈출에 활용할 수 있는 인물들로 용병들을 구성했다는 것도 꽤 그럴싸했고요.
작전에 참여한 용병들의 이력과 그들의 능력은 물론, 도주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는 아프리카 무장 단체와의 교전도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제일 압권은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소년병 집단과의 교전이었어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아이를 죽여야 하는 딜레마가 실존했던 아프리카에서의 소년병 징집과 훈련 역사와 맞물려 극대화되어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키리의 누나 에마가 일본에서 이들을 도와주고 있었다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아키리의 능력만으로는 어려웠을 여러가지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명쾌하게 설명되면서도, 초인류의 가공할 능력을 잘 선보이고 있기도 하니까요.

이런 밀리터리 스릴러스러운 이야기 외에도 '초인류'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볼거리였습니다.
만약 지금 인류의 지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초인류가 진화의 결과 나타난다면, 그는 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이에 대해 등장인물들 (주로 루벤스)의 입을 빌어 털어놓는 작가의 생각이 아주 흥미로왔던 덕분입니다. 초인류가 무서운 것도 그의 지력과 무력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이라 말하며 이를 현재 인류에 빗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 인류가 얼마나 호전적이고 폭력적인지에 대한 설명을 여러 명의 입을 통해 쌓아올리다가, 아프리카에서의 잔혹한 체험에 뒤 이어 이야기하니까 훨씬 더 와 닿았던 것 같네요.
미국은 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종의 독재 국가로 그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전 세계적인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번즈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캐릭터들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반대 의견의 문제점은 꼬치꼬치 따지면서 배제하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주위에 가득하게 채워 가는 것'은 미국 정부 뿐 아니라 작은 회사에서도 흔히 보아왔던 일인데, 이렇게 설명되니 이해가 쉬워서 좋았고요.
'하이즈먼 리포트'를 중심으로 한 초인류가 탄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한 그럴듯한 이론들 등 작가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굉장한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덧붙이자면 저 개인적으로는 '초인류'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개체 한 명이 과연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도 아키리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을테니까요. 현생 인류의 지성을 아득히 뛰어넘어 온갖 자연 현상마저도 예측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현대 무기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한계는 존재하고요.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즉, 최소한의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개체수가 필요합니다. 물론 잘 성장한다면 지극히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테니, 인류에게 위협이라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만, 한, 두명으로는 조금 버거운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다른 한 개의 축, 일본에서 겐토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에마가 만든 프로그램 기프트를 활용하여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아버지의 의문의 죽음 이후, 아버지로부터 기묘한 메시지를 받고 우연찮게 노트북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은 재미있어요. 신약 개발에 대한 디테일도 엄청난 수준이고요. 그러나 평범했던 주인공이 급작스럽게 '세계를 위해' 일했던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고, 이를 막으려는 거대 조직과 싸운다는 일본 만화 등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던 전형적인 설정에서 그다지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경찰에게 쫓긴 뒤 은신처에 잠입하고 나서부터는 딱히 위협도 없어서 재미도 떨어지고요. 오히려 겐토가 이 약을 만드는데 거의 목숨까지 거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는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약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여 과학자로 한 걸음 나아가고, 아버지에 대해 되새기게 되는 성장기스러운 부분도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이었어요.
또 겐토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아키리를 죽이려고 했던 용병단 리더 예거의 아들이 이 병에 걸렸고, 예거를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약을 만드는 것 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이 계획은 헛점이 너무 많습니다. 예거가 이런 터무니없는 말만 믿고 아키리를 돕게 된다는게 과연 말이나 될까요? 예거의 아들이 작전 완료 시점까지 살아있을 가능성, 약이 그 때까지 완성되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용병들을 설득하는건 미 정부가 그들에게 준 약이 독약이라는걸 증명하는걸로 충분했을겁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즉, 겐토 이야기는 모두 빼더라도 이야기 전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겐토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로 한국인 유학생 '정훈'이 등장하는 부분은 한국인 독자로서 반가왔지만 이 역시 큰 줄기의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였어요.
하긴 애초에 아프리카 탈출부터가 문제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그냥 탈출해서 은신하면 되었을 텐데, 왜 자기 존재를 노출하여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초인류가 생각해 낼 만한 작전치고는 헛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헛점은 그 외에도 많아요. 용병단 구성도 안배된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인 믹이 왜 포함되었는지는 불분명하고, 마지막에 전투기를 자연 현상으로 격추하는 부분도 완벽한 초인류의 예측과는 별개로 조종 자체는 불완전한 '인간'이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계획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여객기 추락 후 피어스 해운의 배가 근처를 지나간다는걸 미정부가 놓쳤다는 결말도 안일하기 짝이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설득력이 낮은 부분이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구태여 삽입할 필요 없이, 아프리카에서의 탈출 계획만 정교하게 그려내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악의 우두머리도 미국 대통령보다는 CIA 국장 쯤으로 하는게 보다 현실적이었을테고요. 만화로 각색된 버젼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그간 격조했던 이유는 리뷰를 쓰기 위해 이용하는 에버노트 모바일 버젼이 심각하게 느려지고, PC와 동기화가 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던 탓입니다. 그동안 모바일로 썼던 글 여러 편을 날려먹었네요. 십 년도 넘게 사용해 왔지만, 에버노트를 버려야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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