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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6

전기인간의 공포 - 요미사카 유지 / 주자덕 : 별점 2.5점

전기인간의 공포 - 4점
요미사카 유지 지음, 주자덕 옮김/아프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대생 아카토리 미하루는 민속학 리포트를 위해 고향 토오미 시를 찾았다. 도시괴담 '전기인간'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모교인 나사카 초등학교에서 용무원으로 일했던 다케미네 노인의 도움으로 전쟁 전 방공호까지 둘러본 뒤, 전기인간 도시괴담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던 호텔에서 죽었다. 사인은 심부전이었다.
미하루의 연하 섹스 파트너였던 고등학생 토오루는 홀로 사건 조사에 나섰다. 미하루가 남긴 리포트와 유품으로 토오미 시로 찾아간 그는 다케미네 노인까지 욕실에서 급사했다는걸 알아내었다 토오루는 노인의 집에서 열쇠를 훔쳐 방공호 안 잠겨진 방까지 침입했지만 4개월 뒤, 나사카 초등학교 6학년인 니라사와와 켄자키에 의해 방공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일련의 사건 뒤, 비디오 게임지 "프레스타"의 작가 사쿠마는 편집장의 부탁으로 전기인간의 실체를 밝히는 기사를 쓰기로 수락했다. 사쿠마는 후배 작가 요미사카 유지와 함께 토오미 시 방공호 수색에 나섰고, 그곳에서 요미사카 유지는 미하루, 다카미네, 토오루 사건에 대한 기상천외한 추리를 내 놓는데....


'전기인간'이라는 도시 괴담과 관련된 괴사건을 그린 작품.
괴담 자체에 대해 탐구하는 부분과 의외로 본격적인 추리를 펼치는 부분으로 나뉘는데 두 부분 모두 괜찮았습니다. 제목이 유치해서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었는데, 기대 이상이었어요.

괴담 탐구는 주로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펼쳐지는데, '전기인간' 괴담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속성들에 대한 분석은 물론이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괴이는 죽습니다. 육체를 가지지 않는 괴이의 죽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는 한 괴이는 몇 번이고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라는 이론을 이야기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전기인간'은 실제로 있었고, '도시괴담'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 도시괴담의 수명을 연장시켰다는게 진상이거든요. 이렇게 괴담 분석을 통해 사건의 동기를 밝혀내는건 추리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피해자들은 '전기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국한된다는건 신선했습니다. 교수는 이 정도 이야기라면 전기인간은 당연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최초에 기사를 가져왔던 선배 기자 루카와 역시 "만약 호러 분위기로 쓸 거라면 진짜로 자신이 무서워야 합니다. 쓰는 사람이 무섭지 않은 호러는 형편없습니다. 그 존재에 대해서 말하면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러면 말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터무니없어도 규칙은 존중해야 합니다."라며 그 존재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요. 그래서 두 명은 죽지 않았던 겁니다. 사쿠마는 딱히 믿지는 않지만, 전기인간이 실존한다는 기사를 써야 하니 살려두었고요. 피해자가 전기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건 경찰은 알 수 없고, 1인칭 심리 묘사를 읽은 독자만 알 수 있는 장치라는 점에서도 재미있는 요소였습니다. 소설 속 경찰보다 독자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셈이니까요.

추리 부분도 정통 추리, 범죄 소설 느낌을 전해줍니다. 작가와 동일한 이름의 추리 소설가 요미사카 유지가 등장하는 부분이 특히 그러한데,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세 명이 죽은 사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추리였습니다. 범인은 다카미네 노인으로 그는 구 일본군 관계자였습니다. 연구했던 전기 병기를 숨기고 있었고요. 그래서 비밀을 지키려고 조사에 나선 미하루를 살해했던 겁니다. 전기 병기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요. 호텔 방은 비상계단을 통해 들어와서 미하루가 문을 열어주면 아무도 모르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자동 잠금 장치가 되어 있으니 살해 후에는 그냥 나가면 되고요. 미하루에게는 뭔가 알려줄게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면 들어가는데는 문제가 없었을테지요. 
이후 노인이 욕실에서 사망한건 진짜 사고였고, 그래서 토오루의 죽음 이후 사건이 벌어지지 않은겁니다. 범인이 죽어버렸으니까요. 토오루는 노인이 방공호의 잠긴 문에 숨겨 놓았던 전기 장치에 감전되어 죽었습니다. 문이 빡빡하게 잘 열리지 않아서 한 손은 손잡이를 당기고, 다른 한 손은 문 틀에 대고 버티는 과정에서감전된 것이지요. 
이렇게 '전기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범행이 가능했다는걸 설명하는데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말은 되니까요.

물론 증거가 하나도 없을 뿐더러, 토오루의 죽음에 대한 추리만큼은 확실히 비현실적입니다. 아무리 노인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뒤라 하더라도, 사람을 감전시켜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 유지되고 있었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 경찰의 수사도 간과하고 있습니다. 미하루의 죽음은 단순 변사로 처리하여 수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토오루의 죽음은 철저한 현장 조사가 수반되었을겁니다. 만약 장치가 있었다면 여기서 드러났어야 합니다. 비슷한 트릭이 사용되었던 "네 명의 의인"은 20세기 초엽이 무대로 그렇다쳐도, 현대 배경의 작품에서는 숨기기 어려웠을거에요.

어차피 이 추리는 작품 안에서도 단순한 아이디어 피력 정도로만 받아들여져서 별 문제는 없는데, 진짜 문제는 전기인간이 실제로 있다는 진상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전기인간을 볼 수 있는 초등학생 니라사와가 전기인간과 휴대폰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이 모든게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설명되는데 여러모로 별로였어요. 미궁에 빠진 괴사건에서 범인이 마지막에 나타나 스스로 범행을 고백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좀 더 세련되게 풀어나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전개에 있어 정리도 다소 부족했습니다. 교수의 말은 반복적이고, 니라사와와 켄자키의 관계와 묘사도 불필요하게 느껴졌던 탓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7년에 출간되었던 "전기인간"의 리커버 버젼인데, 리커버 버젼이 나올 정도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생각보다는 괜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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