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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3

중간의 집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2점

중간의 집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러리의 지인인 변호사 빌의 매제 조가 살해당했다. 현장을 찾은 엘러리는 피해자가 뉴욕 상류층 사람인 조지프 켄트 김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볼은 조 윌슨이라는 가짜 신분으로 빌의 여동생 루시와 결혼했고, 본래 신분으로는 돈많은 과부 제시카 보든과 결혼했던 중혼자였다.
현장에서 조 윌슨의 아내 루시에 관련된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수집되었고, 김볼로 가입했던 100만 달러짜리 생명보험 수취인이 얼마전 루시로 변경된걸 근거로 경찰은 루시를 체포했다. 빌은 동생의 변호를 맡아 끝까지 분투했지만 루시는 유죄가 인정되어 20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하지만 엘러리는 현장을 목격했던 김볼의 의붓딸 안드레아의 결정적 증언을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여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데 성공한다.


검은숲의 엘러리 퀸 전집 중 한 권. "도중의 집"이라는 제목의 자유추리문고 버젼도 이미 읽었지만,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기에 겸사겸사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엘러리 퀸 1기라 할 수 있는 국명 시리즈와 3기 라이츠빌 시리즈 사이에 위치한 2기 시기를 연 작품이라고 하는데, "스웨덴 성냥 미스터리"라는 제목을 붙여도 괜찮았을 거라는 언급이 작중에 등장할 정도로 '국명 시리즈'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후더닛'에 충실한 정통파 본격 추리 소설이며, '독자에의 도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명 시리즈'보다는 드라마의 변화 폭이 넓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반부는 아예 법정물로 간주해도 될 정도니까요. 법정물로의 수준도 높습니다. 특히 범인의 다분히 고의적이고 어설픈 행동들을 열거하며, 이는 루시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함이라는 빌의 마지막 변론은 굉장히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범인이 충분한 휘발유가 있었는데도 구태여 주유소를 방문해 베일을 쓴 얼굴을 보여줄 이유가 없다는 등의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검사 역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만한 좋은 변론을 펼칩니다. '범죄자들은 아둔하며, 뛰어난 지능을 가진 범죄자들은 소설책에서나 볼 수 있다'는 건데 그럴듯했습니다.
거의 빌이 이길 뻔 했지만 흉기에 루시의 지문이 묻어 있있다는 증거를 뒤집는데 실패한다는 결말도 현실적이었고요.

추리적으로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핀치의 만년필에 독특한 초록색 잉크가 들어있었다는 것, 범인이 립스틱을 이용하지 않고 구태여 코르크를 태워 필기구로 쓴 것 등 모든 단서가 '독자에의 도전' 단계 전까지 독자들에게 정말로 공정하게 제공된다는건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이를 통해
  1. 범인은 남자다.
  2. 범인은 흡연자고, 아마도 파이프 담배를 피운다.
  3. 범인은 자기 정체를 드러낼 내용이 새겨진 성냥갑을 가지고 있다.
  4. 범인은 김볼과 루시에게 적대적인 동기가 있다.
  5. 범인은 필기구를 소지하지 않았거나, 소유한 필기구를 사용하면 정체가 드러날 위험이 있어 사용하기를 꺼렸다.
  6. 범인은 아마도 김볼 쪽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
  7. 범인은 앤드레아에게는 우호적이다.
  8. 범인은 오른손잡이다.
  9. 범인은 김볼이 보험 수익자를 변경한 사실을 알고 있다.
라는 추리를 끌어내고, 관계자들 중 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도 그럴듯했습니다.
이런 후더닛 추리 외에도 '중간의 집'으로 명명된 집에 대해서 간단한 조사만으로 그 용도를 꿰뚫어 보는 추리도 볼만한 등, 확실히 '엘러리 퀸'이라는 명성에 값하는 점은 많았어요.

그러나 완성도는 다소 부족했습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억지가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였던, 앞서 안드레아가 목격했던 성냥부터가 그러합니다. 이를 토해 엘러리 퀸은 범인은 담배를 피운게 분명한데, 재와 꽁초와 같은 흔적이 없으니 파이프를 피웠다고 추리하지요. 하지만 애초에 엘러리 퀸 스스로가 범인은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강하게 주장했었습니다. 파이프로 흡연이 가능했다는걸 초반에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성냥 모두가 코르크를 태우는데 사용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만, 억지이자 반칙같은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의 아내 루시가 빌에게 선물하려고 산 문구 세트 칼을 만졌다는 완전한 우연이 재판에서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된 것, 핀치의 간단한 변장이 주유소 사장이 루시로 잘못 알아볼 정도였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했고요.

전개 면에서는 수수께끼가 모두 엔드레아의 위증에서 비롯되었다는 단점이 큽니다. 앤드레아가 중간의 집을 방문해서 목격했던걸 모두 털어놓았더라면 사건은 보다 빨리 해결될 수 있었을 거에요. 앤드레아가 입을 다문 이유도 납득하기 힘들었고요.
엘러리 퀸 특유의 장황한 대사들은 여전히 짜증스러웠으며, 빌이 엔드레아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었어요. 무고한 동생이 20년형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동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악덕 중혼자의 의붓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설명도 대체로 부족합니다. 빌이 처음에 '중간의 집'에서 발견했던 앤드레아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숨겼던 이유는?(둘이 원래 알던 사이였는지?) 김볼이 빌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려고 마음먹은날 앤드레아까지 중간의 집에 부른 이유는? 대체 핀치는 그 날 그 시간에 김볼이 중간의 집에 혼자 있을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결국 끝까지 설명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대부분의 '국명 시리즈'보다는 낫지만, 전체적으로 그냥저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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