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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5

흉가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4점

흉가 - 8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 윗집에 살면 안 돼! 지금 당장 도망쳐! (토코의 일기)

초등학교 4학년 쇼타는 아버지의 전근으로 교토 근처 안라 시의 시골 신흥 주택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쇼타는 어린 시절부터 흉조가 있을 때 마다 느꼈던 불길함을 이사온 집에서 느끼고, 집 안에서 유령과 같은 형체들과 조우한다. 다음날 어린 여동생 모모미도 한 밤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히히코'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말하자, 쇼타는 혼자서 집에 관련된 조사를 나서고 그러다고 마을 소년인 코헤이와 친구가 되는데...

납량특집용으로 읽게 된 미쓰다 신조의 공포호러 소설. 이른바 '집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불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집과 관련된 여러가지 묘사에서 시작해서, 이런저런 수수께끼들이 하나씩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대충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 쇼타가 집에서 본 기묘한 형체는 무엇인지?
  • 왜 마을의 대지주였던 타츠미가가 붕괴하고, 일족이 몰살당해 당주인 센 할머니만 정신 이상이 된 채 폐가인 집에 남아 있는지?
  • 산에서 내려온다는 뭔가 안 좋은 것은 무엇인지?
  • 마을 사람들은 왜 산 윗집, 아래 맨션 사람들을 배척하는지?
  • 모모미에게 찾아온 '히히노'와 '히미코'는 무엇이고, 그들은 왜 모두 여섯명인지? 이들은 토코의 일기 속 '도도츠키' 등과 어떻게 다른지?
등입니다.

이에 대한 답도 산에 사는 '뱀신'을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쇼타가 집에서 본 기묘한 형체, 특정 장소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라던가 매달린 끈은 가족들이 모두 목 매달아 자살하는 미래의 모습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타츠미가가 뱀신이 살고 있는 신성한 산을 난개발하려다 뱀신의 저주로 죽었는데, 그 와중에 유일하게 개발된 쇼타네 집이 뱀신을 불러들이는 형태가 되어 뱀신이 씌워진 탓이지요.
산에서 내려온다는 안 좋은 것은 당연히 뱀신이며, 마을 사람들은 산 윗집과 아래 맨션 사람들 모두 뱀신의 저주를 받는다는걸 알고 있어서 멀리 했을거에요. 누군가 윗 집에 살고 있는 동안은 괜찮다는 묘사 (센 할머니의 말) 가 살짝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일종의 '산제물'로 여겼을 여지도 충분하고요.

이를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섬찟함, 오싹함을 불러 일으키는 묘사는 명불허전. 특히 가장 섬찟했던 건 '히히노' 등의 정체입니다. 뱀신에게 씌워진 아버지, 어머니, 누나 등 쇼타의 가족이거든요. 밤 중에 모모미에 의해 눈을 뜬 쇼타 앞에 아버지가 나타나 "처음 뵙겠습니다. 히히노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어요. 기묘한 이름은 원래 아버지, 어머니 등의 이름 한자를 분해하여 읽은 것이라는 일종의 암호 트릭도 아주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쇼타에게도 '뱀신'이 발현된다는 마지막 말에서 효과적으로 한 번 더 사용됩니다. 쇼타와 여동생 모모미만 남긴채 일가족이 죽어버려 둘은 후쿠오카의 외할머니 댁에서 살게 되는데, 모모미가 쇼타에게 쇼타의 이름을 분해한 ('하네타라는 이름의 양') 누군가가 나타났다고 하거든요. 뱀신의 저주는 산 윗집에서만 효과가 있는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번 저주의 집, 흉가에 머물렀던 가족은 어디에 가서도 그 주박을 벗어버릴 수 없다, 즉 쇼타와 모모미도 곧 자살해버릴거라는 내용인 셈이지요. 놀러온다는 코헤이까지 같이. 씁쓸하면서도 뱀신의 집요함이 무섭습니다.
핵심 열쇠 중 하나로 등장하는 토코의 일기도 현재의 쇼타 상황과 맞물려 섬찟함을 배가시킵니다. 여러가지 말을 할 줄 알았던 앵무새 구리코가 이사를 마친 뒤, "온다"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특히나 소름돋았습니다.

<<화가>>에서 처럼 초등학생이 주인공인이라 일종의 모험물 속성도 있어서 관련 묘사도 많은데, 중반에 쇼타가 미친 할머니에게 쫓기는 장면 묘사는 개중 압권입니다. 이전 윗집에 살던 소녀 토코의 일기를 구하러 센 할머니 집에 갔다가 쫓기게 되는데, 박진감이 철철 흘러 넘치거든요. 히히노의 정체는 일종의 오컬트심령 호러라면 이 쪽은 일종의 크리처물이나 슬래셔 호러물을 방불케합니다. 쇼타와 코헤이가 맨션 이웃집 코즈미 키미로부터 탈출하는 장면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눈에 뜨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전에 3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던, 쇼타네가 살고 있는 윗 집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예' 기사화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쇼타의 가족이 동반자살한 사건도 온갖 매체에서 기자들이 달려왔다는 설명이 있을 정도인데, 왜 이전 사건은 기사화가 아예 되지 않았을까요? 토코의 일기는 마지막이 훼손되어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이 죽은건 분명한데 말이지요. 바로 이사를 가서 괜찮았다 치더라도, 이전의 세 가구 모두 무사했을리가 없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랫 맨션에 사는 코즈미 키미가 이상한 색녀가 되었다는 전개도 이상했습니다. 아랫 맨션까지 뱀신의 영향이 미친다는 묘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런 것 치고는 묘사는 과했고 설명은 부족했어요.

무엇보다도 코헤이가 나타나자 '히히노' 등이 자살한 이유는 알 수가 없네요. 코헤이가 오면 6명이 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숫자에 딱히 집착하는 모습은 없었고, 외부에서 온 할머니까지 뱀신에게 씌워진걸 보면 '한가족' 이라는 형태도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고작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이 나타났다고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는건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코헤이가 자주 집을 비우는 등 평범한 소년이 아니라는 암시가 일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시리즈에서도 활약하는지 좀 두고 봐야 될 듯 합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호러, 공포 소설로서의 가치는 높습니다. 충분히 무섭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흥미진진함도 잘 살아있으며 재미도 충분하니까요. 제가 읽었던 미쓰다 신조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 하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더운 여름, 납량 특집용으로 아주 제격인 작품이라 생각되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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