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약속했던 유럽 여행을 드디어 떠나는 뉴욕 경찰(애덤 샌들러)과 그의 아내(제니퍼 애니스턴). 기대에 부푼 그들은 비행기에서 우연히 한 가족 모임에 초대를 받는다. 고령의 억만장자와 그의 가까운 가족들만 모이는 초호화 선상 파티! 꿈 같은 상황에 들떠있을 때, 억만장자가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게다가 그들 부부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며 악몽이 시작된다 (넷플릭스 소개 인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운 여름 생각없이 볼만한 영화를 찾다가 감상하게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3일만에 3천만이 봤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어딘가에서 '정통 미스터리' 라고 소개된 글을 읽었기에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엄청나게 실망했습니다. 정통 미스터리라고 소개했던 글을 꼭 찾아서 분노의 댓글을 달고 싶을 정도로요.
일견 전형적인 미스터리물로 보일만큼 추리 소설의 온갖 설정들과 클리셰를 따라 하고는 있습니다만, 실제 내용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에 불과하며 미스터리로는 수준 미달의 이야기이었기 때문입니다. 정교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고, 이야기 전개는 구멍투성이거든요.
맬컴이 살해되고, 그의 아들 토비가 유서와 함께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이후에는 범인들이 추가 범행을 저지를 이유는 전무합니다. 닉과 오드리 부부가 사건을 들쑤시고 다닌다고 해도 범행이 드러날 이유는 없으니까요. 부부를 권총으로 죽이려 해 봤자,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만 드러내는 꼴입니다.
또 부부를 죽이려 할 때 (그러다가 실수로 세르게이를 죽였을 때), 후안 카를로스가 실제로 범행을 저질렀다는건 더 말이 안됩니다. 맬컴을 살해한건 토비고, 토비를 죽인건 그레이스입니다. 카를로스는 그레이스를 부추키고, 범행에 도움을 주었을 수는 있지만 직접 범행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복수도 이미 완료되었는데, 복수 대상도 아닌 미국인 부부를 죽이기 위해서 직접 나선다? 이건 말도 안되지요.
중간에 수지가 총을 들고 나타나서 닉과 카를로스를 협박하다가 독침에 맞아 사망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지는 왜 총을 들고 그들 앞에 나타났을까요? 앞선 범행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그녀가 맬컴과 결혼한 뒤에도 찰스 캐번디쉬와 관계를 지속했다는건 지금 시점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말이죠.
총질을 서로 해 대는 와중에, 부는 독침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레이스의 행각 역시 황당함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입니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무의미하고, 설명되지 않는 행동들로 점철된 영화가 제대로 굴러갈리 없고, 당연하게도 추리적으로도 건질건 전무합니다.
그나마 추리적으로 볼 만한건 딱 두 가지 뿐입니다. 첫 번째는 이야기의 도입부인, 콩가루 가족들만 모인 유람선 연회장에서 억만장자 맬컴이 살해당하는 장면입니다. 전형적인 영국식 본격물의 얼개를 잘 가져온 느낌이었어요.
두 번째는 그레이스가 맬컴의 사생아였지만 버림받았기 때문에, 유산과 복수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그레이스의 동기입니다. 동기야 진부하고 전형적이지만, 이를 찰스, 세르게이, 대령 등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어서 나름 미스터리의 원칙에 부합하거든요.
그러나 그 외 모든 부분은 빵점이에요. 맬컴 살인 사건부터 찬찬히 생각해 보면, 당연히 수지와 찰스 캐번디쉬는 범인이 아니에요. 둘이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는 증거가 뒤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수지가 전 재산을 상속 받게 되면, 언젠가는 둘의 재산이 될 테니까요. 구태여 범행을 저질러서 다른 사람들과 재산을 나눌 까닭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토비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고 불이 꺼지게 만들 수 있는건 승무원들을 고용하지 않은 이상, 자리를 비웠던 그레이스밖에는 없으니 공범은 그녀입니다. 토비가 죽었다면 범인은 그레이스일테고요. 동기가 있는 대령과 카를로스가 복수를 위해 벌인 범행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령의 수족인 세르게이는 살해당하고, 그레이스와 대령은 알리바이가 확실하니 실행범은 카를로스라는 결론입니다. 즉, 그레이스와 카를로스가 공범인거죠.
이렇게 유산이 누구에게 상속되는지만 확인해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닉과 오드리를 범인 취급하는 무능한 프랑스 경찰의 행각도 짜증나고, 그레이스의 이마에 난 상처가 그녀가 범인이라는 증거라는 클라이막스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게 무슨 증거가 된 단 말입니까? 무슨 특별한 흉기나 장치에 의해 난 상처도 아니니 그냥 걷다가, 운전하다가도 다쳤다고 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는데 말이죠.
또 애덤 샌들러가 연기한 닉 캐릭터도 무척이나 비호감이었습니다. 능력도 없는데다가 색드립이나 일삼는 한없이 가볍고 경박한 캐릭터거든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애덤 샌들러 캐릭터인데, 이런 류의 캐릭터가 먹힌 것도 2000년대 초반까지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래도 아내인 오드리가 추리 소설 매니아라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던 만큼, 아내의 도움으로 무능한 경찰 남편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식으로 흘러갔더라면 봐 줄만 했겠지만 작품에서는 그런 설정도 전혀 살리지 못했습니다. 둘 다 실수만 연발하고 좌충우돌의 연속이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촬영 등 기술적인 완성도는 높지만 단점이 너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헐리우드 코미디 팬이라면 모를까, 추리 애호가 분들이라면 쳐다 보실 필요도 없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