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 황세연 지음/마카롱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8년, 충남 청양군 장평면 중천리라는 촌 마을에 살고 있던 젊은 미망인 소팔희는 마을 주민 신한국을 도둑으로 오인해 살해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신한국의 시체를 이장의 차에 치어 죽은걸로 위장하고, 마을 주민들은 '범죄없는 마을'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사건 은닉을 결정한다.
그날 신한국의 집에 화재가 발생하여 사체가 발견되고, 마침 마을의 자살 명소로 유명한 구멍 바위에서도 자살자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이 출동하지만 폭우로 인해 일단 철수하고 마을에는 조은비 기자와 최순석 형사만이 남아 조사를 이어가는데....
한국 작가 황세연의 장편. 작년 (2019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장편 소설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사건의 핵심 수수께끼는 신한국의 죽음, 그리고 사체에 심한 폭행과 감전, 교통 사고 등 다양한 흉행의 흔적이 남은 이유가 무엇인지? 입니다. 진상은 곧바로 마을 주민들의 '시체 떠넘기기'에 의한 걸로 밝혀지고요.
시체를 옮긴 뒤 살인 누명을 씌운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18세기 후반 <<성진사전>>은 시체를 성진사 문 앞에 가져다 둔 뒤, 성진사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돈을 갈취한다는 이야기라고 하니까요. 술취한 사람 옆에 시체를 두고 누명을 씌우는 일은 뉴스 등에서도 곧잘 보아왔던 이야기고요.
그러나 작품 속 신한국 시체 떠넘기기는 누명을 씌우려는 목적은 덜하다는 점에서 조금 다릅니다. 누명 보다는 '나만 아니면 돼'에 가깝습니다. 시체 돌리기의 발단인 우태우 이장이 소팔희 축사로 사체를 옮기려 한 행위가 처럼요. 그 이후의 시체 떠넘기기는 거의 다 우연에 의한 것이라 의도적이지도 않습니다. 박광규의 실수로 양식연 양식장에 시체가 빠지고, 양식연의 실수로 왕주영의 차 앞에 시체가 떨어져 왕주영이 자기가 차로 치었다고 착각한게 진상이거든요. 그나마 왕주영이 우태우 이장 차에 치인걸로 위장하는 것 정도만 전통적인 시체 떠넘기기에 가깝습니다만, 이 역시 누명을 씌우기보다는 '나만 아니면 돼' 쪽이지요.
그러나 '나만 아니면 돼'와 우연과 실수로 점철된 시체 떠넘기기의 과정은 가면 갈 수록 지루합니다. 양식장에서 전기를 흘리지 않았다면? 왕주영이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과 같은 부수적인 우연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지요. 작위적인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건 너무 심했어요.
그나마 하룻밤 새 벌어진 시체 돌려막기 행각은 나름 속도감 넘치며 우스꽝스러워 읽는 재미는 나쁘지 않아요. 헐리우드 코믹 범죄극을 보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러나 사채업자 사병채 일당이 신한국에게 빌린 돈을 받으러 쳐들어 온 뒤부터는 영 별로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범죄(?) 행각을 알고 협박하며, 역시나 채무자였던 소팔희를 끌고 가서 팔아넘기려는 행각은 앞선 유쾌하고 순박한 분위기와 거리가 너무 멀거든요. 결말 역시 억지스럽습니다. 사채업자들이 콜라 뚜껑 하나만으로 선뜻 몇 억에 해당하는 채무를 탕감해주는 장면도 이해가 되지 않고, 최순석이 현금 3억원에 가까운 강남 아파트를 자기와 별 관계없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선뜻 내 놓는 이유 역시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아가 된 아픈 기억에 대한 진상을 깨우쳤다 한 들, 그건 마을 사람들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니 딱히 선행을 베풀 이유는 없습니다. 한국의 컨텐츠들을 사로잡고 있는 불행한 과거와 부모와의 사랑을 그린, 길이 늘리기 목적의 신파극에 불과해서 고독한 안티 히어로이자 독고다이 악당인 최순석 캐릭터하고도 어울리지 않아요.
사채업자들이 마을에서 담근 독버섯주를 먹고 환각을 일으켜 사고로 죽는다는 결말도 너무 뻔했습니다. 중반에 조은비 기자와 최순석이 독버섯주를 먹고 환각에 빠졌을 때 이미 드러난 설정이기도 하고요. 뭔가 복선을 활용한 듯한 부분은 이렇게 뻔한게 대부분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신한국의 복권과 콜라, 독버섯 주가 대표적이에요. 발견된 단서가 모두 증거가 되어서 범인과 이어지는 전개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박광규의 라이터가 좋은 예에요.
또 마을 사람들이 쓸데없이 법의학이나 과학 수사에 나름 지식이 있는 듯한 묘사가 많아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도 좋은 방향은 아니었어요. 범죄 없는 마을에 상금을 준다던가, IMF 때 콜라가 강남 아파트를 경품으로 내 걸었다는 무리수 넘치는 설정들도 그러하고요.
하긴, 등장인물들 모두가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으니 이런걸로 문제 삼는 것도 좀 웃기네요. 등장 인물들 이름부터 문제니까요. 조은비 기자와 최순석은 무난하다 해도, 젊은 미방인 소팔희는 소를 판 돈을 세다가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애서 따온 이름, 양식장을 하는 호수집 주인 이름은 양식연입니다. 피해자 신한국과 범죄 없는 마을 타이틀을 위해 시체를 은닉하려는 이장 우태우, 마을 사람 왕주영은 90년대 정당과 정치인에서 따온 이름이고요. 이런 류의 작명은 다른 조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클라이막스로 몰고가는 악덕 사채업자의 이름은 사병채니까요. 소씨, 우씨, 왕씨에 사씨 같은 흔치 않은 성에다가 이름마저 이러니 반쯤은 장난같아서 집중이 잘 안되더군요. 점점 심각해지는 작품 분위기와도 영 어울리지 않았던건 물론입니다.
물론 건질게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몇 안되는 단서들을 발견하면서 진상에 접근해가는 조은비 기자와 최순석 컴비의 활약도 꽤 볼거리이고요. 욕이 난무하지 않는 묘사도 마음에 들고, 개성넘치는 캐릭터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누구에게나 반말을 해서 '양순이 (서양여자)'라는 별명을 가진 소녀 황은조가 아주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이냐고 하면 그렇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나, 이야기 재미면으로나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거든요.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도대체 어떤 작품들이 출품되었던건지 좀 궁금해지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이런 시골마을이면, 왜 마을 사람들이 달랑 3명 밖에 안되는 사채업자들을 합심해서 사고로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말이죠. '범죄 없는 마을'도 물 건너간 상황인데, 앞 뒤 가릴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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