넨도nendo의 문제해결연구소 - 사토 오오키 지음, 정영희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현재 가장 각광받는 일본 디자인 회사 넨도의 오너 디자이너 사토 오오키의 에세이집.
원래는 잡지에 연재된 글들이라고 하는데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편, 한편이 짧다는 점, 거기에 더해 전달하려는 주제가 명확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나 디자인 방법론에 대한 글들 - 어떻게 디자인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떻게 클라이언트와 커뮤니케이션 하는지 등 - 은 사례 중심으로 쓰여져 있는데 새겨들을만한 내용이 많더군요. 잘 나가는 디자이너다운 생각들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새로운 콘셉트의 상품개발이라고 해서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을 하겠다는 것은 위험하다.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이상적인 감각은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아직까지는 없었던 것'을 '보충한다'는 정도의 감각이다. 예를 들자면 시력 보호를 위한 '컴퓨터용 안경'이나 '지워지는 볼펜' 같은 것.
- 일단 해본다. 할수 있을까, 없을까와는 별도로 반드시 그 안에 새로운 발견이 있다.
- 세계 일류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밀려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기 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영역을 사수하는 것이 일류의 필수 조건이다.
- 센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좋아하느냐의 여부이다. 투입한 시간의 양이 해결을 좌우한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연습을 하루 거르면 그것을 회복하는데 3일이나 걸린다고 하지 않은가.
- 기회란 기본적으로 여자와 같다. 한눈팔지 않고 하나의 일에 몰두해 있다 보면 질투심 많은 기회는 내가 있는 곳으로 기꺼이 찾아온다. 반대로 늘 기회만 엿보고 있는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 디자이너에게는 독창성, 기발한 발상만큼 결단력이 중요하다. 결단의 요령은 '틀려도 괜찮으니 가능한 빠른 결단을 내리는 것.'
- 과제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눈 앞에 드러나는 문제보다 애초에 왜 그 문제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아보라.
- 디자이너는 누군가가 본 적 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도,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을 만드는 사람도 아닌, 누구나 본 적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다.
실제 사례로 수록된 디자인 작품들도 흥미롭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종이 블록'입니다. 잡지 부록으로 의뢰받았는데 조건이 까다롭더군요. "종이를 사용하여 입체로 조립할 수 있는데, 조립하기 쉬워햐 하고 조립하기 전에도 지면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의뢰거든요. 결과물은 "평면이지만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종이 블록"입니다. 사진만 보아도 의뢰를 100% 충족시키는 그럴듯한 결과물이더군요! 그 외 코카 콜라 식기라던가 하나로 합쳐지는 젓가락 등도 인상적이었고요.
이러한 내용들을 거만하게 느껴지지 않게 써내려간 글 솜씨도 인상적입니다. 누군가에게 '한수 가르쳐 주겠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디자인의 기본 사상이 확실히 '배려'에 기초해 있구나 싶었어요.
책의 장정, 디자인도 저자와 주제에 걸맞게 괜찮은 편입니다. 사토 오오키와 넨도의 작품 도판이 부족한 것은 좀 아쉽지만요.
사토 오오키라는 디자이너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런 글을 쓰고, 이렇게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라면 분명 좋은 디자이너일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네요. 나이 탓인지 디자인 에세이에서는 최고봉인 하라 켄야 만큼의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이런 디자이너와 함께 일할 기회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무 전방위적으로 다작을 하는 것은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얻을게 많으니까요. 현업 디자이너이시라도 마찬가지고요. 저 개인적으로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얻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글, 읽는 독자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을 써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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